-
안녕하세요.
-
영적 논쟁은 자주 의미론에 대한 논쟁으로 축소됩니다.
-
그렇지만 오늘 에피소드에서는
느낌의 인식을 통해서만 궁극적으로 경험될 수 있는 것을
-
이해하는 것을 도와드리기 위해
의미론을 가지고 놀아보겠습니다.
-
수천 년 전 바람(desire)은 고통의 원인이라고 알려졌습니다.
-
그것이 사실인가요?
-
아니요.
-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졌습니다.
-
그때 사용되었던 단어는 Taṇhā였습니다.
-
직역하자면 Taṇhā는 갈증을 뜻합니다.
-
갈증과 바람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
아주 많습니다!
-
갈증과 바람은 동전의 다른 두 면입니다.
-
갈증은 바람의 그림자 측면입니다.
-
즉 선택이 두 개의 면을 가진 동전이라고 생각해보세요.
-
한 면에는 바람이, 다른 한 면에는 갈증이 있습니다.
-
갈증은 선택이라고 불리는 이 동전의 그림자 측면입니다.
-
갈증은 먼저 결핍이 있다는 것을 내포합니다.
-
그리고 그 결핍이 우리가 바람이라고 부르는
갈망을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
갈증은 애착(attachment)입니다.
-
애착은 싫어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무언가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고통의 원인은 싫어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려 하고
-
싫어하는 것의 반대되는 것 즉 우리가 애착하는 것을 향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에 있습니다.
-
애착은 우리에게 무언가가 없다는 것을
극도로 인식하기 때문에 우리가 갈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
갈증의 부산물인 애착은 중독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
애착은 우리가 어떠한 것을 피하려고 하기 때문에
원하게 되는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갈망하는 것입니다.
-
갈망과 바람에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
갈망은 바람의 그림자 측면입니다.
-
갈망은 언제나 어느 정도의 박탈감을 인식함으로써
생겨나는 부산물인 것입니다.
-
바람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
사실 원한다고 하더라도 이번 생에서
무언가를 바라지 않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
또한 만약 바람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이해했다면
바람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어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
그렇지만 우리는 바람을 변화시키고 승화할 수 있습니다.
-
바람의 가장 순수한 형태는 경험에 대한 승낙입니다.
-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
바람은 대조를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나오는 승낙입니다.
-
바람은 거절의 부산물이 아닙니다.
-
즉 바람은 경험 혹은 경험의 선택을 승낙하는 것이고
그것은 싫어하는 것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
따라서 애착의 형태를 띠지 않습니다.
-
바람의 가장 순수한 형태는 저항이 없는 형태입니다.
-
그것은 진정한 자신의 도구입니다.
-
그것은 확장(expansion)과 자아 인식,
자아 실현을 도와줍니다.
-
갈망은 에고의 도구입니다.
-
싸대기 맞을 준비가 되셨나요?
-
에고는 부처가 알지도 못했던 말입니다.
-
부처에게 에고라는 말을 한다면
부처는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할 것입니다.
-
사실 에고는 프로이트가 사용한 용어입니다.
-
부처의 가르침에 적용하여 사용하기 위해
받아들여진 용어입니다.
-
에고라는 용어는 분리된 자아가 없는 깨어난 관점과
-
자아의 분리된 감각이 존재하는 깨어나지 않은 관점 사이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습니다.
-
후에 칼 융은 이것을 의식 대 무의식을 뜻하는
그림자 측면이라고 불렀습니다.
-
부처가 자신의 깨어난 경험을 정확히 설명했을 때
부처가 설명하려고 했던 것은
-
그가 자신 안에 존재하고 있던
양극성을 관찰했다는 것이었습니다.
-
진실과 환상, 의식과 무의식,
고통과 행복과 같은 양극성 말이죠.
-
그리고 깨어남이 모든 양극성을
초월했다는 것을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
깨어남은 고통이 아니듯이 행복도 아닙니다.
-
깨어남은 양극성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
지금까지는 이 우주의 모든 움직임은
누군가가 무언가를 향해 움직이고 싶어했기 때문에,
-
누군가가 어떠한 것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었기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
사람들은 원치 않는 것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어하기 때문에
원하는 것을 향해 움직이고 싶어합니다.
-
이 고통은 조건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까지
존재하는 영원한 조건입니다.
-
긍정적인 것을 향해 움직이고
부정적인 것으로부터 멀어지며 인생을 살고 있다면
-
우리는 언제나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
말하자면 우리는 멈춰서 현재의 순간에
장미향을 맡을 수 없는 것입니다.
-
모든 결정이 고통으로 인해 정해집니다.
-
모든 결정은 고통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한 노력의 부산물입니다.
-
멀어지고 싶다고 바라는 것이 없는 삶을 상상해보세요.
-
고통에 완전히 저항하지 않는 상태의
즐거움을 위해 삶을 살아갑니다.
-
눈물의 길을 끝내기 위해서
멀어지고 향하는 이 영원한 움직임은,
-
싫어하는 것으로부터 멀어지고 갈망을 향하는 이 움직임은,
-
(애착이라는 것은 단지 이러한 움직임입니다.)
-
우리는 우리가 싫어하는 것을 향해 돌아섭니다.
-
우리는 우리가 싫어하는 것과
완전히 함께하고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
우리는 아무런 조건을 붙이지 않고 그것을 대합니다.
-
우리가 그것을 바꿀 필요 없이 그것을 기꺼이
경험하고 싶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말이죠.
-
의식의 부재의 그림자 속에 의식의 존재의 빛을
기꺼이 가져오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는 자유로워집니다.
-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싫어하는 것에
싫어하는 감정을 갖지 않습니다.
-
따라서 그것은 더 이상 우리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
바람이 자신의 그림자로부터 자유로워졌기 때문에
바람은 변화되었습니다.
-
그리고 자신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에
더 이상 환생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
환생을 향한 갈망은 영혼 그 자체로부터 사라졌습니다.
-
영혼은 이제 싫어하는 것 혹은
갈망하는 것에 의해 선택하지 않습니다.
-
영적인 깨어남은 세 가지 뚜렷한 단계에서 일어납니다.
-
이제 우리는 당연히 미래에는 잠재적으로
더 많은 단계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
그렇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서 저는 깨어남을
이 세 가지 주요 단계들로 축소했습니다.
-
삼위일체처럼 말이죠.
-
이제 이 단계들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
먼저 영성 101입니다.
-
우리가 정말로 우리의 현실을 창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해 깨닫게 됩니다.
-
우리는 정말로 자유로워질 수도 있습니다.
-
영성 101은 우리에게 비참해지는 대신에
행복해질 선택권이 될 수도 있습니다.
-
따라서 우리는 행복을 향해 나아갑니다.
-
우리는 긍정적인 것에 집중합니다.
-
우리는 우리의 삶의 안녕을 늘릴 수 있는 모든 것을 합니다.
-
우리는 즐거움의 방향을 따라 흐릅니다.
-
우리는 즐거움을 허락합니다.
-
우리는 다른 그 어떠한 것들보다도
우리가 어떻게 느끼는지를 우선시합니다.
-
우리는 더 나은 기분을 느끼는 것에 우리의 인생을 바칩니다.
-
우리는 드디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습니다.
-
그렇지만 여전히 다른 싫어하는 것들 때문에
무언가를 원합니다.
-
우리는 아직 비참한 기분을 느끼는 것으로부터 도망다닙니다.
-
싫어함과 갈망, 원하지 않음과 원함의 끝없는 순환이
계속된다는 것을 내심 느끼기 시작합니다.
-
어떠한 것을 갖든 더 원하죠.
-
이러한 순환이 더 이상 예전에 그랬던 것만큼
즐겁지 않게 되죠.
-
그리고 이제 두 번째 단계, 영성 2.0의 단계입니다.
-
영성 2.0에서는 바람을 향한 모든 움직임이
원하지 않는 무언가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움직임임을
-
그리고 우리가 원하지 않는 그 무언가는 절대로
우리를 쫓아오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
폭풍이나 토네이도처럼 곳곳마다 우리를 쫓아올 것입니다.
-
우리는 우리가 싫어하는 것을 향해 돌아서서
폭풍의 중앙으로 곧장 걸어가는 것이 정답이라고 결정합니다.
-
긍정적인 감정을 허락하는 대신에 이제 우리는
우리의 부정적인 감정을 허락하는 연습을 시작합니다.
-
더 이상 부정적인 감정에 대한 저항성이
존재하지 않게 하기 위해 말이죠.
-
우리는 통합하고 온전해집니다.
-
무의식을 의식하게 됩니다.
-
갈망은 순수한 바람이 됩니다.
-
그림자가 더 이상 의식의 빛으로부터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온전해집니다.
-
우리의 목표는 더 나은 기분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더 잘 느끼게 되는 것이 됩니다.
-
싫어하는 것 없이, 따라서 갈망 없이
현재의 순간에 있게 됩니다.
-
우리는 아무 데도 가지 않습니다.
-
과거가 우리를 미래로 향해 미는 것을 멈추고
우리는 현재의 순간에 남게 됩니다.
-
그리고 나면 우리는 영성 3.0에 준비된 것입니다.
-
영성 3.0에서 우리는 현실에서 바람에 따라
의식적으로 창조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
그러나 바람은 더 이상
싫어하는 것에 의해 결정되지 않습니다.
-
이 때문에 영성 3.0은
우리가 선택이라고 부르는 영역인 것입니다.
-
갈망하는 대신에 자신의 무한한 창조자적 본성을 인식하고
-
고통과 상관 없이 부유해질지 그렇지 않을지를 선택합니다.
-
즉 "나는 가난하기 때문에 돈을 원하는 것이 아니야.
-
나는 부유한 사람의 관점이
궁금하기 때문에 그것을 원하는 거야.
-
마치 내가 딸기 아이스크림을 원하는 것처럼 말이야.
-
나는 초콜릿 아이스크림이 너무나도 싫기 때문에
딸기 아이스크림을 원하는 게 아니거든." 이런 것입니다.
-
우리가 선택한 것을 향해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영감입니다.
-
우리는 완전히 지금에 존재합니다.
-
더 이상 과거가 현재나 미래에 투사되지 않습니다.
-
영성 3.0는 그림자 속에 빛을 비춤으로써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상태입니다.
-
처음에는 무의식 안에서 시작합니다.
-
우리는 잠들어 있습니다.
-
그리고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
깨어나기 시작할 때
자신의 존재의 양극성에 대해 알아차리기 시작합니다.
-
자신에게 빛의 측면과 그림자의 측면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
긍정성과 부정성의 차이를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
그리고 우리의 그림자 측면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굉장히 많이 창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때문에
-
여태껏 살아온 어두운 심연으로부터 벗어나
빛으로 기어들어가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합니다.
-
이것이 영성 101입니다.
-
영성 2.0에서는 의식 상태에 도달한 후,
구멍에서 빠져나와 빛 속으로 기어들어온 후
-
의식이라는 빛을 붙잡고
자신의 그림자의 심연 속으로 다시 내려갑니다.
-
우리가 마주한 그 그림자는 의식의 빛과 함께
더 이상 그림자가 아니게 됩니다.
-
그리고 나면 우리는 영성 3.0을 향해 진화합니다.
-
무의식이 의식이 됩니다.
-
양극성이 소멸합니다.
-
우리는 우리 그 자체로 완전합니다.
-
우리는 반대되는 것들을 초월한 상태인
진정한 평화를 경험합니다.
-
평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
평화는 단지 사이 좋게 지내는 것,
전쟁과 내적, 외적인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
평화는 대립과 양극성이 없는 상태입니다.
-
평화는 대립이 없고 오로지 하나의 통합된 존재가 있는 곳
즉 영원의 상징의 중앙점입니다.
-
이것이 우리가 깨어남이라고 부르는 상태인 것입니다.
-
그리고 깨어남은 은퇴가 아닙니다.
-
깨어남은 의식적이게 되는 계속되는 과정에 따라
생겨나는 부산물에 더 가깝습니다.
-
우주 혹은 근원이 자신에 대해 더 자각함에 따라
더 자각해야 할 것이 많아집니다.
-
따라서 더 큰 우주의 소우주인 우리는
더 자각해야 합니다.
-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경험할 깨어남은
언제나 더 많아집니다.
-
깨어남의 이 세 가지 단계는
영원의 상징 속에 명확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상징을 이용해서
깨어남 세 단계의 과정을 설명드리겠습니다.
-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제가 이 특정 단계들에 붙인 이름 때문에
-
우리는 어떤 단계가 그 전 단계보다
더 높은 단계라는 생각의 함정에 빠집니다.
-
수평선 상에서 이것을 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
우주는 어떤 단계가 그 이전 단계보다
더 높거나 중요한 단계가 아니라고 봅니다.
-
우주가 기어가는 것을 걸어가는 것에 비해
보잘것 없는 것이라고 보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
기어가는 것도 걸어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
따라서 세 가지 단계들을 양쪽 모두 동일한 무게를 가진
저울처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무한의 상징을 보면 양극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한 쪽에는 물질 그리고 다른 한 쪽에는 비물질이,
-
한 쪽에는 삶 그리고 다른 한 쪽에는 죽음이,
-
한 쪽에는 빛 그리고 다른 한 쪽에는 어둠이 있습니다.
-
그렇지만 그 양극성의 사이에는 정적인 한 점이 있습니다.
-
이 부분이 무한을 실제로 나타내는 부분인 것입니다.
-
이 부분은 반대되는 것들 사이의 균형이 아닙니다.
-
이 부분은 통합 그리고 반대되는 것들의 초월입니다.
-
따라서 이곳에 영성 3.0이 있습니다.
-
한 쪽에는 영성 101이, 다른 한 쪽에는 영성 2.0이,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영성 3.0이 있습니다.
-
깨어남의 단계를 서두르고 싶을 것입니다.
-
왜냐하면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모두
언제나 엄청난 기분을 느끼고 견고하게 현재의 순간에 있고
-
저항성이 존재하지 않는 초월의 장소에
서둘러서 가고 싶기 때문입니다.
-
그렇지만 깨어남의 이 단계들은 서둘러지지 않을 것입니다.
-
우리가 가장 많이 서두르는 단계는
영성 2.0의 수행 단계입니다.
-
영성 2.0은 우리가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도망치며 보냈던
감정들을 저항하려고 하는 함정에 다시 빠지는 곳이죠.
-
이것이 제가 오랜 기간 동안
영성 3.0에 대해 가르치지 않은 이유입니다.
-
영성 3.0에 대해 가르치는 대신에 저는 사람들이
-
영성 3.0에 다다르기 위해 영성 2.0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성 2.0의 수행 속에 있을 수 있게 되도록 기다렸습니다.
-
왜냐하면 3.0에 다다르기 위해 2.0을 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영성 2.0의 포인트를 놓친 것이기 때문입니다.
-
그렇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자신이 느끼는 바와
무조건적으로 함께 할 수 없게 됩니다.
-
우리는 더 이상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허락하지 않게 됩니다.
-
그 대신에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 안에 들어감으로써
-
우리의 부정적인 감정들에 저항하게 됩니다.
-
어떤 사람들은 수 년을 영성 2.0을 수행하며 보냅니다.
-
이 깨어남의 과정에서 우리는 날기 전에 걷는 법을 배우고,
걷는 법을 배우기 전에 기는 법을 배웁니다.
-
한 단계가 다음 단계를 이끄는 다른 기술들을 말이죠.
-
우리는 걷는 법을 배우게 되면
기는 단계에서 좌절하지 않습니다.
-
우리는 나는 법을 배우기 전에
걷는 단계에서 좌절하지 않습니다.
-
우리는 우리의 확장을 돕기 위해
다른 기술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
영성 3.0은 영성 101과 영성 2.0의 아름다운 융합입니다.
-
영성 101은 주로 빛을 허락하는 것이고
영성 2.0은 그림자를 허락하는 것이고
-
영성 3.0은 겉으로 보기에는 반대되는 것들의
융합의 초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종교적인 용어를 사용하자면 영성 101은 아버지,
영성 2.0은 성령 그리고 영성 3.0은 아들입니다.
-
즉 빛이 신이고 그림자가 여신이라면
빛과 어둠의 융합은 그 아이입니다.
-
영성 3.0에서는 영성 101에서 배운 기술들
'우리의 현실을 창조하기',
-
'의식적으로 집중하기', '긍정적인 의도'가
다시 과정속에 더해집니다.
-
그렇지만 영성 2.0 덕분에 그 기술들은 정화되었습니다.
-
이 바람과 수행들은
두려움이나 부정적인 감정에 의해 움직이는 것도
-
회피나 저항의 부산물도 아닙니다.
-
이 때문에 바람을 향해 움직이는 것에
아무런 고통이 없습니다.
-
우리가 어떠한 것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이 때문에 우리는 선택을 함에 있어 자유롭습니다.
-
우리는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
이것이 신성을 살아가는 상태인 것입니다.
-
이것이 자아 실현의 상태인 것입니다.
-
이것이 완전하고 총체적인 인식과 깨달음의 상태인 것입니다.
-
좋은 한 주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