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 바름은 속임수일까?
-
0:00 - 0:04이 강연에는 성인 언어가 있습니다.
시청자께서 신중하실 것을 권고합니다. -
0:05 - 0:08이 말씀을 먼저 드려야겠어요.
-
0:08 - 0:12제가 여기 있는 이유는 예의 바름에
관한 책을 저술했기 때문이고 -
0:12 - 0:15그 책이 출간된 것이
-
0:15 - 0:19바로 2016 미국 대통령 선거
무렵이었기 때문입니다. -
0:19 - 0:22그 뒤로 강연 초청을
많이 받기 시작했는데요. -
0:22 - 0:25예의 바름에 대해 강연해달라거나
-
0:25 - 0:28미국 정치에서 왜 예의 바름이
더 필요한지 말해달라는 거였죠. -
0:28 - 0:30엄청 대단했어요.
-
0:31 - 0:35문제는 제가 예의 바름에 대한
책을 저술한 이유였는데요. -
0:35 - 0:39제가 확신하기에 예의 바름은..
-
0:40 - 0:41헛소리라고 생각했거든요.
-
0:41 - 0:43(웃음)
-
0:43 - 0:47자, 그렇게 말하면 매우
예의에 어긋나게 들리겠지만 -
0:47 - 0:49그런데 여러분과
출판사에게는 다행스럽게도 -
0:49 - 0:52저는 결국 생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
0:52 - 0:54그 책을 저술하고
-
0:54 - 0:56예의 바름에 관한 오랜 역사와
-
0:56 - 0:5917세기 무렵의 종교적
관용에 대해 연구하면서 -
0:59 - 1:04예의 바름에도 덕목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
1:04 - 1:08예의 바름이 절대 헛소리가 아니라
오히려 반드시 필요하다는 걸 알았죠. -
1:08 - 1:10특히 관용적 사회에서 말이죠.
-
1:10 - 1:12그런 사회는 어떤 사회냐 하면
-
1:12 - 1:15다양성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할 뿐만 아니라 -
1:16 - 1:20격하고, 때로는 혐오스런 이견조차
인정한다고 약속하는 사회입니다. -
1:20 - 1:22그런 이견도 다양성에서 나오죠.
-
1:23 - 1:26그런데 '이견'을 뜻하는
'disagreement' 라는 단어를 보면 -
1:26 - 1:32그 형용사인 'disagreeable'이
'불쾌한'의 뜻을 갖는 이유가 있습니다. -
1:32 - 1:38164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영국의 철학자 토마스 홉스는 -
1:38 - 1:43의견 불일치의 단순한 행위가
모욕적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
1:44 - 1:46그런데 홉스의 말은 지금도 맞아요.
예를 들면 이런 식이죠. -
1:46 - 1:49자, 여러분과 저의 의견이
서로 다릅니다. -
1:49 - 1:53그런데 제가 옳아요.
전 늘 옳은 말만 하거든요. -
1:53 - 1:58그런데 여러분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
1:58 - 2:02여러분이 선의로 다른 의견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없을 테니까요. -
2:02 - 2:06분명 뭔가 꿍꿍이가 있거나
아니면 멍청하거나 -
2:06 - 2:07꽉 막혔고
-
2:07 - 2:10뭔가 노리는 게 있거나
아마 미쳤다고 생각할 겁니다. -
2:10 - 2:12그건 반대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죠.
-
2:12 - 2:15그래서 여러분이 저와 의견이
다르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
2:15 - 2:21저의 견해는 물론, 지성 측면에서도
절대적으로 모욕입니다. -
2:21 - 2:23그게 심해지는 경우는
-
2:23 - 2:27기본적인 것에 있어서
의견 충돌이 생길 때입니다. -
2:27 - 2:31자신의 세계관이라든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말이죠. -
2:31 - 2:33어떤 종류의 의견 불일치를
말하는지 다들 아실 거예요. -
2:33 - 2:36식탁에서 종교나 정치를 논하거나
-
2:36 - 2:40한술 더 떠서 대중 문화의 정치성을
논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
2:40 - 2:42왜냐하면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
2:42 - 2:45사람들이 실제로 진지하게
의견이 대립하게 되는 경우이고 -
2:46 - 2:51상대방과 논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
2:52 - 2:55물론 그런 기본적인 문제의 의견 충돌은
-
2:55 - 2:59미국 같이 확실히 관용적인 사회에서는
-
2:59 - 3:01관대하게 받아들여집니다.
-
3:01 - 3:04어쩌면 이 사실로부터
-
3:04 - 3:07적어도 역사적으로 관용적인 사회에서
-
3:07 - 3:12다양성이 환영받지 못했던
이유가 설명될지도 모릅니다. -
3:12 - 3:16아니에요. 그런 공동체에서는
마지 못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
3:16 - 3:20서로를 경멸하면서도
친밀하게 지내는 것이죠. -
3:20 - 3:23그것이 제가 종교적 관용을
연구하면서 알게 된 것입니다. -
3:23 - 3:25근대 초기 잉글랜드와 미국에서의
종교적 관용에 대한 연구였죠. -
3:26 - 3:27그리고 또 하나 알게 된 사실은
-
3:27 - 3:35그럼에도 서로 해치지 않고
공존이 가능한 이유는 -
3:35 - 3:37예의 바름 덕분이라는 것입니다.
-
3:37 - 3:41왜냐하면 예의 바름은 이견을
참을 만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
3:41 - 3:47같은 신념을 갖지 않더라도
함께 살 수 있는 것이죠. -
3:48 - 3:50종교, 정치 혹은 어떤 것이든지요.
-
3:52 - 3:55그리고 또 깨닫게 된 것이 있는데요.
-
3:55 - 3:58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의 바름을 따집니다. -
3:58 - 4:01예의 바름에 관해
정말로 많이들 말하는데요. -
4:01 - 4:03그것을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
4:03 - 4:07만약 예의 바름이 다른 의견을
인정하는 데 필요한 덕목이고 -
4:07 - 4:10이를 바탕으로 반대론자들과
실제로 논쟁할 수 있다면 -
4:10 - 4:12예의 바름이란
-
4:12 - 4:15논쟁을 피하기 위한
전략으로 볼 수 있습니다. -
4:16 - 4:19마치 공을 가지고 집에 가버리겠다고
위협하는 것과 약간 비슷해요. -
4:19 - 4:22경기가 뜻대로 안 풀릴 때 말이죠.
-
4:22 - 4:24왜냐하면 무례함의 재밌는 점은
-
4:24 - 4:28그것이 늘 반대론자에게
죄가 있다는 것입니다. -
4:28 - 4:29웃기는 말이죠.
-
4:29 - 4:31우리 자신의 나쁜 행실에 관해서는
-
4:31 - 4:35갑자기 건망증이 찾아오기도 하고
-
4:35 - 4:38아니면 그걸 정당화하기 위해서
-
4:38 - 4:43반대론자들의 무례함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라고 말합니다. -
4:43 - 4:49"내 주장에는 뭐든지 반박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예의를 갖출 수 있어? -
4:49 - 4:51아무튼, 그쪽이 먼저 시작한 거야."
-
4:51 - 4:53이렇게 굉장히 쉽게 넘어갑니다.
-
4:54 - 4:57또 다른 편리한 점은
-
4:57 - 4:59오늘날 예의를 따지는 사람들 대부분이
-
4:59 - 5:06예의 바름이 실제로 뭐냐는 물음에는
모호하고 애매한 태도를 보인다는 거예요. -
5:06 - 5:10예의 바름은 단순히 존중의
유의어라고 흔히 말하고 -
5:10 - 5:13좋은 예절과 공손함을 의미하지만
-
5:13 - 5:18그럼에도 명백히 누군가를
예의 바르지 않다고 비난하는 것은 -
5:18 - 5:22공손하지 못하다고 하는 것보다
훨씬 훨씬 더 나쁩니다. -
5:22 - 5:27예의 바르지 않다는 것은
잠재적으로 용인할 수 없기 때문이죠. -
5:27 - 5:31단지 버릇없다는 것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거든요. -
5:31 - 5:35그래서 예의 바르지 못하다고 하고
예의 없음으로 비난하는 것은 -
5:35 - 5:39누군가가 여하튼 도리를 벗어나
있다고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
5:39 - 5:42함께할 가치가 전혀 없다는 거죠.
-
5:44 - 5:45자, 요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
5:46 - 5:49예의 바름은 헛소리가 아닙니다.
-
5:49 - 5:50가치있는 것이죠.
-
5:50 - 5:53왜냐면 그 덕분에
근본적인 의견 불일치가.. -
5:55 - 5:57가능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생산적이 되게도 하기 때문입니다. -
5:58 - 6:01예의 바름은 중요하지만
또한 정말 정말 어렵습니다. -
6:03 - 6:06예의 바름을 논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
6:06 - 6:09글쎄요.. 그건 정말 쉬워요.
-
6:09 - 6:10정말 쉽지요.
-
6:10 - 6:14그리고 그것 또한 언제나
완전 헛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
6:15 - 6:18그래서 이 상황이 제게는
약간 어색한데요.. -
6:18 - 6:20저도 예의 바름에 관해
계속 말하고 있으니까요. -
6:21 - 6:23(웃음)
-
6:23 - 6:25여하튼..
-
6:25 - 6:27우리는 자주 잊어버리지만
-
6:27 - 6:30정치가와 지식인들이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경고한 것이 있습니다. -
6:30 - 6:33미국이 예의 바름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경고했죠. -
6:33 - 6:36그리고 그 위기를 불러온 것이
과학기술의 발달 때문이라고 탓하며 -
6:36 - 6:40케이블 TV, 라디오 토크쇼,
SNS 같은 것들을 비난했습니다. -
6:40 - 6:42역사가들은 이렇게 말할 거예요.
-
6:42 - 6:44의견 충돌의 황금기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이죠. -
6:44 - 6:47적어도 미국 정치에 그런 건 없습니다.
-
6:47 - 6:51그렇지만 제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예의 바름의 첫 번째 근대적 위기는 -
6:51 - 6:54사실 약 500년 전에 시작됐습니다.
-
6:54 - 6:57그때 마틴 루터라는 이름의
어느 신학 교수가 -
6:57 - 7:01당대 최신의 통신 기술을 활용했죠.
-
7:01 - 7:02바로 인쇄기였습니다.
-
7:02 - 7:06교황이 적그리스도라는 내용의
인쇄물을 만들었죠. -
7:07 - 7:10그래서 의도치 않게
종교 개혁이 일어났습니다. -
7:10 - 7:14그래서 인쇄기를, 말하자면
16세기의 트위터라고 한다면 -
7:14 - 7:17마틴 루터는 악성 댓글러의
원조나 마찬가지예요. -
7:17 - 7:19있는 그대로 말씀드리자면
-
7:19 - 7:23그가 한번은 분명히 말하기를
자신은 기도할 때마다 -
7:23 - 7:25누군가를 비난할 수 밖에
없었다고 했어요. -
7:25 - 7:28'반기독교도인', 즉 천주교도들이
그 비난의 대상이었습니다. -
7:28 - 7:31물론 반대파인 천주교도들은
그 말에 깜짝 놀라서 -
7:31 - 7:33예의를 갖출 것을 요구했죠.
-
7:33 - 7:35그러나 그들도 당한 만큼
똑같이 되돌려 주었습니다. -
7:35 - 7:37'이단자'라는 고전적 비방을 하거나
-
7:37 - 7:39더 심하면 '프로테스탄트'라고
비하했습니다. -
7:40 - 7:44'개신교도'라는 뜻으로 16세기에
모욕적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죠. -
7:45 - 7:48그때나 지금이나 예의 바름을
이야기할 때 중요한 점은 -
7:49 - 7:54반대파에게 수준 낮다고 하면서
-
7:54 - 7:56도덕적으로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입니다. -
7:56 - 7:58그래야 더 수준 낮게
행동할 수 있으니까요. -
7:58 - 8:00왜냐하면 예의를 갖춰 달라고 하면
-
8:00 - 8:03그걸 요구하는 쪽은
예의를 지키는 본보기가 되고 -
8:02 - 8:07무모하게 반대하는 상대방은
무례하다고 낙인 찍히기 때문이죠. -
8:08 - 8:11그래서 17세기에는
예의 바름을 거론하는 것이 -
8:11 - 8:15종교적 기득권층에게는
좋은 수단이 되었습니다. -
8:15 - 8:20기존 교회의 반대파들을 침묵시키고
억압하고 배제하는 수단으로 쓰였죠. -
8:20 - 8:23특히 그들이 공개적으로
저항할 때는 더욱 그랬습니다. -
8:23 - 8:26그래서 영국의 성공회
목사들이 설교를 할 때는 -
8:26 - 8:28무신론자들의 무례한 발언을
문제삼곤 했습니다. -
8:28 - 8:30모두가 퀘이커 교도들을 비난하며
-
8:30 - 8:33그들이 모자를 벗으며 인사하지 않고
-
8:33 - 8:36무례하게 악수를 한다고 비난했죠.
-
8:37 - 8:39그런 무례함에 대한 비난은
-
8:39 - 8:42곧이어 박해의 구실이 되었습니다.
-
8:43 - 8:45여기까지는 익숙한 내용이죠?
-
8:45 - 8:48우리는 그런 전략을 자주 접합니다.
-
8:48 - 8:5320세기에 인권운동가들의
입을 막기 위해 이용되기도 했죠. -
8:53 - 8:55이 사실로 알 수 있는 것이 있는데요.
-
8:55 - 8:57각 정당의 열혈 지지자들이
-
8:57 - 9:00계속 이런 구식 전략을 꾀하는
이유를 알 수 있죠. -
9:00 - 9:02시대에 뒤떨어진
'공손함'을 들먹거리면서요. -
9:02 - 9:06그건 바로 특정 집단과
그들의 특정한 견해가 -
9:06 - 9:09도리를 벗어났다고 알리고 싶지만
-
9:09 - 9:12실제로 그런 주장을 펼치기 위한
수고를 덜기 위해서입니다. -
9:13 - 9:15그래서 당연히 저와 같은 회의론자는
-
9:15 - 9:19대화의 미덕을 말하기 시작하면
따분함을 느끼곤 합니다. -
9:19 - 9:22사회적, 정치적 분열을 치유함에 있어서
-
9:22 - 9:26예의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키는 것 같아서죠. -
9:26 - 9:29그것은 서로가 진지한
대화를 하지 못하게 하고 -
9:29 - 9:33서로 다른 말만 하며
자기 주장만 펼치게 만듭니다. -
9:33 - 9:36자신이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드러내면서
-
9:36 - 9:38자신이 어느 편에 있는지
사람들에게 알리려 합니다. -
9:39 - 9:44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해도
용서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
9:44 - 9:47예의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게
헛소리라고 친다면 -
9:47 - 9:50예의를 갖추는 미덕 또한
헛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
9:51 - 9:54하지만 역사적 관점은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
9:54 - 9:56생각해 보세요.
-
9:56 - 9:58근대 초기의 예의 바름의 위기가,
-
9:58 - 10:00종교 개혁을 촉발했던 바로 그 위기가
-
10:00 - 10:03관용적인 사회도 탄생시켰잖아요.
-
10:03 - 10:05로드 아일랜드, 펜실베니아
-
10:05 - 10:08그리고 궁극적으로
미국과 같은 곳을요. -
10:08 - 10:13이런 곳들에서는 적어도
이견을 보호하고자 했습니다. -
10:13 - 10:15다양성은 물론이고요.
-
10:16 - 10:21그것을 가능케 해준 것이
예의 바름의 미덕이었습니다. -
10:21 - 10:23의견 불일치가 용인되고
-
10:23 - 10:26우리가 더불어 살 수 있고
-
10:26 - 10:28심지어 신념이 달라도
그럴 수 있었던 것은 -
10:28 - 10:30하나의 미덕 때문이죠.
-
10:30 - 10:34그러나 제 생각에 그 미덕은
어쩌면 열망이 덜하고 -
10:34 - 10:36훨씬 더 대립적인 미덕입니다.
-
10:36 - 10:39오늘날 예의 바름에 관해
이야기하는 많은 사람들이 -
10:39 - 10:41마음에 두고 있는 것보다요.
-
10:41 - 10:45저는 그 미덕을 일컬어
'최소한의 예의'라고 하고 싶습니다. -
10:45 - 10:48아시다시피 그런 미덕은
-
10:48 - 10:52헤어진 배우자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 필요하죠. -
10:52 - 10:53나쁜 이웃과의 관계나
-
10:53 - 10:55다른 당의 구성원들과의
관계도 물론이고요. -
10:56 - 11:01왜냐하면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것은
마지못해 상대에게 맞춰주는 것이니까요. -
11:02 - 11:04그런데 그것도 말이 되요.
-
11:04 - 11:08예의 바름의 미덕이 있기에
우리가 반론할 수 있기 때문이죠. -
11:08 - 11:11그래서 몇 세기 전 홉스의 말대로
-
11:11 - 11:15"의견 불일치"가 "불쾌함"을
의미하는 것도 이유가 있는 겁니다. -
11:17 - 11:19허나 헛소리가 아니라면
-
11:19 - 11:22'예의 바름'과 '최소한의 예의'는
정확히 무엇일까요? -
11:22 - 11:23그것은 무엇을 필요로 할까요?
-
11:24 - 11:26자, 미리 말씀드리면
-
11:26 - 11:32존중이나 공손함과는
같지도 않고 같을 수도 없습니다. -
11:32 - 11:34왜냐하면 예의가 정말로 필요한 때는
-
11:34 - 11:40존중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한
사람들을 대할 때이기 때문이죠. -
11:40 - 11:44또한, 예의 바른 것은
친절함과도 같을 수 없습니다. -
11:44 - 11:45왜냐하면 친절함이 의미하는 것은
-
11:45 - 11:50상대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죠. -
11:50 - 11:52그들의 잘못된 견해에 대해서도요.
-
11:53 - 11:57반면에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것은
여러분의 생각을 말하는 것입니다. -
11:58 - 12:01그것도 상대방을
앞에 두고 말하는 거예요. -
12:01 - 12:03뒤에서 수근대지 않고요.
-
12:04 - 12:09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것은
비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12:09 - 12:13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주먹다짐을 하는 것도 아니에요. -
12:13 - 12:15왜냐하면 최소한의 예의의 요점은
-
12:15 - 12:19근본적으로 반론 제시를 용인하면서도
-
12:19 - 12:26장래에 공존할 가능성을 부정하거나
파괴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
12:26 - 12:30비록 지금은 상대방이 우리 앞길을
가로막고 있더라도 말이죠. -
12:31 - 12:35그런 면에서 예의 바름은 실제로
다른 덕목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
12:35 - 12:36바로 용기라는 덕목이죠.
-
12:36 - 12:42그래서 최소한의 예의는
동의하지 않을 용기를 갖는 거예요. -
12:43 - 12:45그리고 그 상태를 유지한 채로
-
12:45 - 12:48반대파와 같은 공간에 있고
-
12:48 - 12:51함께 머무르는 것입니다.
-
12:52 - 12:56또한 사람들이 예의에 대해 논할 때
헛소리라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
12:56 - 12:59사실 유일하게 예의 바른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
12:59 - 13:01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
13:02 - 13:06그런데, 그 오랜 역사를 공부하며
제가 뭔가 배운 것이 있다면 -
13:06 - 13:0917세기의 종교적 관용에 대한
연구에서 이걸 깨달았습니다. -
13:10 - 13:15여러분이 논쟁을 피하는 방편으로
예의 바름에 관해 말하고 -
13:15 - 13:19더 우호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을 고립시키는 수단이 되어 -
13:19 - 13:21같은 생각으로 여러분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들과 멀어지거나 -
13:22 - 13:26혹은 반대파와 실제로
진정한 대화를 하지 않고 -
13:26 - 13:31정말로 근본적으로 의견이 다른
사람들과 전혀 대화를 하지 않는다면 -
13:31 - 13:34글쎄요, 당신은 예의 바름을
잘못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
13:35 - 13:36고맙습니다.
-
13:36 - 13:40(박수)
- Title:
- 예의 바름은 속임수일까?
- Speaker:
- 테레사 베잔(Teresa Bejan)
-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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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 바름이란 정확히 무엇이고, 예의 바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요? 역사적 통찰력으로 가득 찬 강연에서 정치 이론가인 테레사 베잔은, 예의 바름이 관용적 사회의 토대로서뿐만 아니라 정치적 열성파가 반대 견해를 침묵시키고 일축하는 방법으로 어떻게 사용되어 왔는지 설명합니다. 베잔은 대신 '최소한의 예의 바름', 즉 내일 삶을 함께할 가능성을 없애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과 근본적으로 의견을 달리할 수 있음의 덕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 Video Language:
- English
- Team:
- closed TED
- Project:
- TEDTalks
- Duration:
-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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