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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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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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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건 중
하나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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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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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배경을 좀 살펴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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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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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와 헤르체코비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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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으로 합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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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1800년도 후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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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이 밀려날 때부터
그곳을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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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08년
공식적으로 합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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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배경을 덧붙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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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이 발칸 지역에서 밀려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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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유고슬라비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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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남부 슬라브 족의 통일에 대한
희망을 불러일으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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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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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말하는 유고슬라비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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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말하면
남부 슬라브 족을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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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이것은 남쪽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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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민족주의적인
희망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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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08년에
이곳은 이미 점령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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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있는 국가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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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유고슬라비아의 일부분이 될
이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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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합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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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독립국가인
세르비아 왕국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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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곳이 민족운동의
본거지였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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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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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여기에 또 다른
남부 슬라브 국가들을 합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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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언젠가 대단한 유고슬라비아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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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1914년에 이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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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선 하나를 그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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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역사상 가장
유명한 날짜의 하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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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6월 28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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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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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그의 부인인 소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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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지금은 보스니아에 합병된
사라예보를 방문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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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사라예보에 있을 때
그곳엔 계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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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는 그들을 암살하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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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보스니아인"이라 불리는
무리의 음모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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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검은 손'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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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적 단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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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과의 연결고리는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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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매우 수상쩍고
음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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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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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무리는 세르비아 왕국의
일부와 연계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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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의
암살을 시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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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이야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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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초기 암살 시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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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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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암살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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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리 중에 어떤 남자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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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청산가리 캡슐을 베어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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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으로 뛰어들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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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캡슐은 변질되어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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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깊이도 겨우 10인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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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를 살려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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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 가담자 중 한명인
가브릴로 프린치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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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계획이 실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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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 시도 자체를 포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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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는 사라예보에 있는
카페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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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시도가 왜
실패했는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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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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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의 경로를
예상하는 것에 실수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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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사라예보를 여행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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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가브릴로 프린치프 가까이로
지나갈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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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데 갑자기 그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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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경로로 가는 것을 알고
다시 그의 바로 옆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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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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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들의 호위병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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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암살 음모가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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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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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들은 보다 신중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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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가브릴로 프린치프는 일어나서
샌드위치를 내려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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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소피를 태운 차량이 이동하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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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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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자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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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덜 안전한 경로를 택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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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를 깨닫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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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경로를 바꾸려했지만
상황은 더 나빠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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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차의 시동이
꺼지려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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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가브릴로 프린체프는
차 가까이로 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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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소피를
사살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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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이 얼마나 중대했는지
알려드리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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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은
왕위 계승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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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통치자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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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요세프의 조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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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는 왕위 계승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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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가브릴로 프린치프에게
암살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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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가브릴로 프린치프에게 암살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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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기 오른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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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릴로 프린치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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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 가브릴로 프린치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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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 직후의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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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이 전체 유고슬라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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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 운동에
어떻게 연계되어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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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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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체포되었을 때
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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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고슬라비아의 민족주의자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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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슬라비아의 통일을 목표로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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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국가의 형태이든 상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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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오스트리아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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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 암살 행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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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운동으로부터 시작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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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를
세르비아와 합병함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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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적으로 크로아티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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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와
합병하고자 하는 열망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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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암살은 다음 강의에서 보게 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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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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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이 제1차 세계대전을
촉발시킨 이유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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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항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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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 있는 많은 제국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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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무장하고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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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전쟁을 향한 바람을 갖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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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단지 근본적으로 모든 유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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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노를 넘어뜨리도록 하는
동맹들이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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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이러한 제국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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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나라들이 서로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