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에게는 여기 서 있는 것이
무척 익숙한데,
관타나모에 여러 번, 34번 갔거든요.
사람들로 에워싸인 작은 공간에
서는 것이 익숙하군요.
밝은 취조실 조명,
음식이나 음료는 반입 금지,
아주 익숙한 환경입니다.
(웃음)
TEDx에 청중들에게 이렇게
헛소리를 하면서 시작하려고 했는데,
그런데 시작할 때 정말로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이 있습니다.
얼마 전 돌아가신
고모님에 대한 헌사입니다.
진 고모는 94세였습니다. 장수하셨죠.
그런데 진 고모는 태어날 시기를
잘못 고르셨던 것 같습니다.
고모는 1920년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고모는 딸이었기 때문에
별로 기회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고모는 무척 뛰어나고
영리한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누린 것은
제 아버지였습니다. 고모의 남동생이요.
케임브리지에 다니고, 좋은 성적을 받는
모든 좋은 것들 말입니다.
고모는 그런 것들에서 배제되었습니다.
저는 가끔 고모를 놀리고는 했는데,
만약 고모였다면
- 토리당 지지자셨습니다 -
고모는 국가를 운영했을 수도 있고,
마거릿 대처보다 더 훌륭하게
핸드백을 휘둘렀을 거라고요.
솔직히 좀 위협적인
동작 같기도 한데요.
말씀드린 것처럼, 기회를 누린 것은
제 아버지였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제 아버지의 삶은
인격분리장애 때문에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똑똑했고
모든 기회를 누렸지만
아버지께는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최근에 기억난 이야기
두 가지를 들려드리겠습니다.
하나는 제가 일곱 살 때의 일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말씀드리는 겁니다.
저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버지를 깎아내리려는 뜻은 없습니다.
아무튼, 제가 일곱 살 때, 아버지께서
저를 서재로 부르시더니 말씀하셨습니다.
"클라이브, 너희 세대는
미숙한 채로 너무 긴 청소년기를 보낸다.
솔직히, 너도 이제 일곱 살이다.
혼자 힘으로 살 수 있어야 할 나이지."
(웃음)
"여기 200파운드가 있다.
가지고 꺼져."
혼란스러웠습니다.
그 당시 제 용돈은
일주일에 1실링 정도였습니다.
제가 당시에 계산해 보지는 않았겠지만,
여기 오기 전 어젯밤에
한번 계산을 해봤습니다.
아버지가 준 것은
제게 80년치 용돈이었던 겁니다!
그렇다지만 제가 독립해서
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죠.
다행히도 어머니께서 오셔서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돈을 가져가시고, 저를 재우신 거죠.
아버지께서 이런 식으로 하신 적이
꽤 자주 있었습니다.
기억나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조금 나중의 일인데,
그때는 남부 미시시피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을 변호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도와주러
오셨는데, 늘 그렇듯이
저를 아주 쓰레기 같다고 생각하셨고
미시시피의 잭슨까지 히치하이크로
남의 차를 얻어타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주지사의 관저에
머물기로 하셨는데,
주지사에게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제 의뢰인을 처형해야 할 뿐만 아니라
저를 함께 처형하는 편이
이 세상을 위해 좋을 거라고요.
(웃음)
미시시피 관계자 중에는
아버지 의견에 동감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그 시절 저에게는 다소
혼란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결국, 제가 사형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된 것에 결정적이었던 것은
제 아버지를 이해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행동 중 적어도 일부는,
꼭 이성적인 판단을 거쳐서 나온 것은
아님을 이해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사람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그분을 싫어하기도 하고, 사기꾼이나
더 나쁜 사람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아버지께서는 그동안
아주 기이한 행동을 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런 사람 중 한 명은
사실 고모였습니다.
진 고모는 대단히
동정심이 많은 분이었지만,
하지만 그분은 그저
이해할 수 없었던 겁니다.
혹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하는 게 낫겠네요.
푸른 눈을 가진 남동생이
정신적 질환이 있었다는 걸요.
그러다 보니 고모는 항상 동생이
나쁜 일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생의 정신 질환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요.
무척 슬픈 일입니다.
누군가 아버지의 증상을
좀 더 일찍 알아보았더라면,
도움을 받으셨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니까요.
정신과 진단을 받은 적도,
치료를 받은 적도 없었습니다.
그런 도움을 받지 못하고
망쳐진 아버지의 삶이
저를 리키 랭글리에게로 이끌었습니다.
리키 랭글리는 루이지애나에서
제가 변호했던 사람입니다.
리키 랭글리는 소아성애자였고,
많은 어린이를 성추행했습니다.
그리고 끝내는 제러미 길로리라는
여섯 살 아이를 죽였습니다.
제가 이 사건의 1심을 끝낸 것은
오래전 1993년이었습니다.
그리고 리키 랭글리의 사연은 훨씬 전,
그가 태어나기 전까지 돌아가야 합니다.
그 사람의 사연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야기 끝에 우리는 로렐라이 길로리라는
여성에게 도달할 것입니다.
살해당한 아이의 어머니이며,
제 인생의 위대한 영웅이라고
생각하는 분입니다.
리키가 태어나기 전의 일입니다.
그의 부모는 차를 몰고 가고 있었습니다.
뒷좌석에 두 아이를 태우고 있었고,
운전하던 알시드는
술에 취한 상태였습니다.
차는 도로를 이탈했고
전봇대를 들이받았습니다.
뒷좌석에 타고 있던 아이 중,
헝클어진 머리의 한 아이는
오스카-리였습니다.
금발에 여섯 살이었던
사랑스러운 아이였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였습니다.
그 아이는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여동생은
목에 큰 상처를 입고 죽었습니다.
참담한, 정말로 참담한 일입니다.
어머니인 베티는,
자동차 앞유리창으로 튕겨 나갔고,
크게 다쳤습니다.
그리고 이후 거의 2년간
자선 병원에 있었습니다.
베티는 목부터 발목까지를 전신 깁스
같은 것으로 고정한 상태였습니다.
재판에서 그 상황을 보여준
오스트레일리아인 자원봉사자가 있었는데
여러분이 사형 집행을 막으려고
그런 자원봉사를 한다면
저는 아마 말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무튼 베티가 전신 깁스를
하고 있었을 때 아이를 가지게 됩니다.
이건 물론 남편인 알시드와
관계가 있는 건데,
아무래도 그 사람은 남편과
아내의 역할에 대해서
다소 시대를 거스르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도 베티의 임신을 믿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임신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것은 또한 우리가 재판 과정에서
보여준 사실이었지만,
적어도 판사에게 재미있었을 겁니다.
좀 이상한 사람이었죠.
(웃음)
사랑스러운 남자죠, 사실.
아무튼, 베티는 임신했습니다. 하지만
다섯 달 동안 누구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다섯 달 동안,
베티의 배 속에 있었던 리키는
다량의 엑스레이에 노출됩니다.
그리고 어머니인 베티가 먹고 있던
모든 약물에도요.
그중에는 임신한 여성에게 절대로
처방해서는 안 되는 것도 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중 한 약물이
소아성애와 연관이 있습니다.
만약 태아가 이 약물에 노출되면,
이 사람은 나중에 소아성애자가
될 확률이 매우 높아집니다.
너무도 공교로운 일이라,
배심원에게 제출하지는 않았습니다.
만들어 낸 자료라고 여길 테니까요.
하지만 사실이었습니다.
아무튼, 다섯 달 후에 의사들은 마침내
베티가 임신했다는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의사들은 전신 깁스를 잘라냈습니다.
의사들은 베티에게 말했습니다.
"임신 중절 수술을 받으셔야 합니다.
모체와 태아가 받은 영향을 생각하면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하지만 남편인 알시드가 말했습니다.
"아뇨, 아뇨. 안 됩니다.
저는 가톨릭 신자입니다.
낙태는 안 돼요."
그래서 베티는 리키를 낳게 되었습니다.
리키가 태어났을 때, 명백히
리키는 금발에 푸른 눈을 한
오스카-리가 아니었습니다.
부모가 무척 사랑했던 아들 말입니다.
이상한 모습이었습니다.
최대한 좋게 표현해도 그랬습니다.
리키의 부모는 자기 자식에 대해 분명
그렇게 말했고, 여전히 그렇게 말합니다.
리키는 분명 그곳에서
엄청나게 고통받았을 겁니다.
곧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는
꽤 명백해 보입니다.
리키는 오스카-리가 아니었습니다.
리키의 아버지는 리키가 오스카-리가
아니라는 이유로 학대했습니다.
그 자신 또한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리키는 여덟 살 때, 지역 묘지의
비석 위에서 자기 시작했습니다.
열 살 때, 리키는 학교 게시판에
이런 글을 붙였습니다.
"나는 리키 랭글리가 아니다.
나는 오스카-리다."
리키의 죽은 형 말입니다.
이때 이미 리키에게
정신병이 발현된 겁니다.
자신과 죽은 형인
오스카-리를 동일시했거나,
자신을 괴롭히는 오스카-리를
또 다른 자아라고 여겼고
본인이 원치 않는 것을
하게 만든다고 여겼습니다.
리키는 다른 아이들을 성추행하기 시작했고,
이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당시 리키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리키는 아동 성추행 혐의로
조지아 교도소에 수용되었습니다.
자기 사촌의 아이를 성추행한 혐의였죠.
이때가 리키가 처음으로
상담을 받은 때입니다.
상담사는 리키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소아성애자입니다.
당신은 정신 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그런데 치료할 수는 없습니다.
치료가 안 됩니다.
이런 문제를 계속 겪게 될 겁니다.
사실 이론에 의하면,
조금 이상한 이야기지만,
우리가 당신을 풀어준 후에
일 년 정도가 지나면
당신은 필연적으로
또 다른 아이를 성추행하게 될 겁니다."
리키는 제 아버지처럼
매우 지능이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고정관념이 많은데,
정말로 똑똑한 사람은
정신 질환을 겪을 리가 없다는 겁니다.
명백히 말도 안 되는 소리죠.
리키는 그 말을 듣고 대답했습니다.
"이봐요. 당신은 나를 이해시켰어요."
리키는 조지아 사면 및 가석방 위원회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러면 저를 석방하지 말고, 부디
정신 병원으로 보내주십시오.
제가 있어야 할 곳으로요."
하지만 관료 체제가 흔히 그렇듯이,
위원회는 리키의 의견을 무시했고,
그를 석방했습니다.
예측할 수 있듯, 일 년 정도 후에
리키는 끝내 한 아이를 죽였습니다.
제러미 길로리, 여섯 살이었고,
로렐라이 길로리의 아이였습니다.
앞에서 제가 언급했던 여성이죠.
제가 처음 리키와 이야기했을 때,
리키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아이를 오스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 말입니다.
그를 없애버리려고 했던 겁니다."
명백히, 이럴 때 가장
까다로운 부분 중 하나는
논리적으로 말할 줄 아는
합리적인 인간에게,
비이성적인 것을 이해시키는 일입니다.
정말로 무척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리키에 대해
발견한 작은 실마리는
오스카-리의 사진과
제러미 길로리의 사진이었습니다.
오스카-리의 고모가
둘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였죠.
아마도 리키의 생각이나 감정을 이해할
작은 실마리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리키가 이 불쌍한 아이를
죽였다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리키는 1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배심원들은 리키가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점을 인정했지만
"위험하니까 죽이는 편이 낫겠습니다."
라고 한 겁니다.
우리는 재심을 신청했고,
그 전에 저는 리키에 대해
더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로렐라이를 알게 되었습니다.
살해당한 아이의 어머니 말입니다.
로렐라이는 아주 멋진 사람이었습니다.
알코올 중독에서 회복 중이었고,
많이 교육받지는 못했지만
대단히 온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로렐라이가 희생자의 어머니로서
가장 원했던 것은,
이유를 아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이해하고 싶어했습니다.
제가 로렐라이를 만났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정말로 이해하고 싶으시다면,
리키와 이야기해보실 수 있습니다.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리키도 당신을 만나서
사죄하고 싶어 합니다.
리키는 자신이 당신 아이의 목숨을
빼앗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자신의 정신 이상에 대해서도
조금 설명해 드리고 싶어 합니다.
만약 그렇게 하시면, 그래도
모든 것이 설명되지는 않겠지만,
애초에 비이성적인 행동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당신께 도움이 될 겁니다."
제 생각에 정말 대단한 일인데,
로렐라이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래요, 한 번 해볼게요."
그래서 그녀는 리키를 만나기 위해
스스로 감옥으로 향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리키와 이야기를 해 보세요.
만약 리키가 하는 말이 싫으시면,
그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셔도 됩니다.
저는 상관 없습니다.
전적으로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 곳으로 갔고,
항상 그를 '랭글리'라고 불렀습니다.
분명히 처음에는 그렇게 했습니다.
로렐라이가 자리에 앉자, 리키는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모두 설명하고
그녀에게 사죄했습니다.
자신의 여섯 살배기를 살해한 사람과
거의 세 시간을 이야기했을 때,
로렐라이는 처음으로 그를
'리키'라고 불렀습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리키, 당신을 위해 싸우겠어요!"
그리고 그녀는 감옥을 나와서
검사장의 사무실로 향했습니다.
누구였는지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제가 정말 싫어했던 사람이거든요.
로렐라이는 사무실로 들어가서,
이 모든 것을 설명했습니다.
"저는 리키 랭글리가
정신병을 앓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형 선고를 원하지 않습니다.
말이 안 되는 일이죠.
그건 다만 저를 다시 고통받게 하고
끔찍한 일일 뿐,
아무 것도 해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로렐라이의 말로는,
검사장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길로리 씨, 당신은 이상한
형사 피고인, 아니 피해자군요"
그리고, 아무튼 그 사람은
사형 선고를 다시 고려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당국은 로렐라이를 아이들과
떼어 놓으려고 했는데,
어머니로서 부적합하다고 생각한 겁니다.
자신의 첫째 아이를 죽인 사람에 대해서
매우 이상한 접근 방법을
택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우리는 재판에 나갔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점 한 가지는,
- 제가 미국에서 사형 재판을 맡을 때
좋아하는 점 한 가지는 -
사람들에게 어떤 질문이든
해도 된다는 점입니다.
여러분에게 해보고 싶네요.
"당신은 선서했습니다.
제 질문에 무엇이든 답하셔야 합니다."
아주 재미있습니다.
(웃음)
저에게는 큰 재미죠.
여러분들에게는 아닐 겁니다. 정말로요.
그래서 저는 배심원을 골랐습니다.
다들 멋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열두 명이었는데,
가까운 가족이나 친척 중
심각한 정신 질환을 앓는 사람이 있으며
그에 대해 정말로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제 한심한 농담에도
웃어주는 사람들이었고,
저는 이 재판의 결과가
괜찮을 거라고 자신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정말로
검사를 싫어했으니까요.
아무튼, 저는 로렐라이에게 말했습니다.
미국에서 사형이 선고될 수 있는 경우,
두 번의 재판을 거칩니다.
먼저 피고가 사형이 선고될 만큼
악질적인 살인죄를 저질렀는지 판단하고,
사형이 선고될 만큼
중죄를 저질렀을 경우에만
두 번째 재판을 받습니다.
죽느냐 사느냐가 갈리는 재판이죠.
종신형인지 사형인지를 판단하는 겁니다.
저는 로렐라이에게 말했습니다.
"자, 이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고,
유죄를 선고하거나, 사형 선고를 받을
살인죄로 판단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원하셨던 대로 진술할
기회는 없을 것 같습니다.
리키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것은
당신에게 끔찍한 영향을 줄 뿐이라고
양형 단계에서 진술할 기회 말입니다.
아마도 그렇게 증언하실
기회는 없을 겁니다.
그렇게 될 것 같아서
미리 말씀을 드려야 했습니다.
잘 된 일이지만,
당신에게는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로렐라이는 그날 밤에 가서,
신앙심 깊은 태도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돌아와서
저에게 말했습니다.
"저의 입장은 ……."
그녀는 서부 루이지애나
억양으로 말했습니다.
"제 입장은 그 사람이
정신 질환을 앓고 있으며,
그 사람은 감옥이 아니라
정신병원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정신 이상으로 인한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고 진술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제 아이를 죽였을 때
그 사람은 정신 이상 상태였으니까요."
저는 말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한 가지, 정말로 보장받고자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정신병원에서 풀려나서
다른 아이를 해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는 겁니다."
저는 답했습니다.
"그건 쉬운 일입니다."
리키는 오직 그것을 바랐습니다.
리키는 실험용
기니아 피그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리키는 스스로가 어떠한 사람인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알았으니까요.
이와 관련된 한 가지는,
'뉴스 오브 더 월드'가
항상 표현하는 방식인데,
리키 랭글리 자신보다 더 리키 랭글리를
미워하는 사람은 없다는 겁니다.
그는 실험용 기니아 피그가 돼서
연구 대상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겪은 고통을
다른 사람들은 겪지 않기를 바랐고,
자신이 저지른 그런 일에 더는
아이들이 고통받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리키는 서명해야 하는 곳에
모두 서명했고,
저는 로렐라이에게 물었습니다.
"증인으로서 답하고 싶은 질문이 있으십니까?"
로렐라이는 말했습니다.
"한 가지를 물어봐 주세요."
그래서 저는 그렇게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대목은
저를 늘 목이 메이게 합니다.
로렐라이에 관해 이야기 할 때,
그 순간은 인간의
위대한 한 장면이었기 때문입니다.
로렐라이는 증인석에 섰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한 가지를 물었습니다.
"길로리 씨, 당신의 여섯 살 아이를
살해한 저 사람이 그 순간
정신 이상을 일으키고 있었는지에 대해
당신의 의견은 무엇입니까?"
로렐라이는 배심원을 향해 말했습니다.
"네, 실은 그렇습니다.
저는 리키 랭글리가 절박하게
도움을 구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태어났을 때부터요.
어떤 이유에서든
그의 가족과 사회와, 법 체제가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던 것입니다.
증인석에 앉아 있으면서, 제 아이
제러미가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 사람이 도움을 구하며
절규하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저는 저 사람이 제 아이를 죽일 때,
정신 이상을 일으키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사형이 선고될 수 있는 재판에서
최종 변론을 한다는 것은,
- 제가 여러 번 했던 것이지만 -
꽤 힘들고 책임이 무거운 일입니다.
앞서 이것저것 심문한 것처럼
재미있는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때는 쉬웠죠. 저는 배심원들에게
그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분이 하는 말을 들어주십시오.
저는 더 나은 말을 덧붙일 수 없습니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배심원들은
제1급 살인에 대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리키와 로렐라이 모두의 정의를 위해
여전히 투쟁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제가 해 드린 이야기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한 가지는, 로렐라이가
희생자라는 겁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무서운 일 한 가지는
정부가, 선과 악을
가르치는 가장 큰 주체가,
희생자들에게 증오를
가르치려 한다는 것입니다.
로렐라이는 저에게 위대한 영웅입니다.
그녀는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그것은 명백히 옳은 일입니다.
그런데 다른 한 가지 측면은
정신 질환에 대한 것입니다.
리키는 스스로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음을 이해했습니다.
저의 가련한 아버지보다
훨씬 더 말입니다.
하지만 결국 정말 좋은 것은,
제 고모도 온정적인 분이었고,
똑똑한 분이었고, 무엇이었든,
그분은 제 아버지의 진짜 이유를
한 번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요.
하지만 로렐라이 길로리는 이해했습니다.
로렐라이 길로리는 리키가
정신 이상이었던 것을 이해했고, 또한
우리가 그를 미워하지만 말고
이해해야 하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것이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데에
가장 근본적인 것입니다.
나중에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막을 수도 있는 곳으로
우리를 데려다주는 것도
바로 그것일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제가 여러분께 이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했던 이유입니다.
로렐라이 길로리는 우리 세상에서
주목받지 못한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여러분께 그녀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