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물리학자 에드워드 퍼셀은
만약 박테리아를 밀다가
놓아버리면
백만분의 1초 안에
멈출거라고 계산했습니다.
그 시간 동안 박테리아는
원자 1개의 너비보다
적게 이동했을 겁니다.
정자나
다른 미생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들은 아주 미세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미생물은 우리가 보기에
아주 생소한 세상에서
2.5 cm 의 물속을 지나가기에도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며 살아갑니다.
수영하는 물체의 크기가 왜 그렇게 중요할까요?
정자가 사는 세상이
향유고래가 사는 세상과
근본적으로 다른 까닭이 뭘까요?
그걸 알아내려면
유체역학 속으로 빠져들어야 합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수영장에서
헤엄친다고 상상해보세요.
여러분과 또 엄청난 숫자의 물 분자가 있습니다.
물 분자의 숫자가 훨씬 많습니다.
셀 수 없는 숫자 대 1이죠.
그래서 물 분자를
여러분의 큰 몸으로 밀고 지나가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아주 작다면,
물 분자만큼이나 작다면 어떨까요.
갑자기, 여러분은 마치
사람들이 가득한 수영장에서
헤엄치는 것처럼 느낄 겁니다.
그냥 손쉽게 쉬익 하면서
아주 작은 분자를 밀치고 나가는 대신
어떤 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이제는 분자 하나하나가
헤치고 나가야 할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1883년 물리학자 오스본 레이놀즈는
유체가 어떻게 거동하는지 예측할 수 있는
하나의 숫자를 알아냈습니다.
그것을 "레이놀즈 수" 라고 합니다.
레이놀즈 수는 간단한 속성과 관련되는데,
헤엄치는 물체의 크기,
속도,
유체의 밀도,
유체의 끈적임,
즉 점성 등입니다.
이것은
크기가 다른 생물은 서로서로
아주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면 커다란 몸집 때문에
향유 고래는
레이놀즈 수가 큰 세계에 삽니다.
향유 고래가 꼬리를 한 번 내려치면
아주 멀리 나아갈 수 있습니다.
반면에 정자는
레이놀즈 수가 작은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정자가 꼬리를 흔들지 않으면
원자 하나도 지나가지 못합니다.
정자가 된 기분이 어떨지 상상하려면
레이놀즈 수를
낮게 만들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당밀이 담긴 욕조 안에 있다고 가정해보죠.
여러분의 팔이
시계의 분침만큼 천천히 움직인다고 생각하면
정자가 얼마나 험한 여정을
하는지 상상이 될 겁니다.
그렇다면 미생물은 어떻게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을까요?
글쎄요. 많은 미생물은
아예 수영을 하지 않습니다.
미생물은 먹이가 그들에게
다가오게 내버려둡니다.
비유를 들자면 게으른 소가
주둥이 아래에 있는 풀이 다시
자라나길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많은 미생물이 헤엄치고
거기서 놀라운 적응력을 보여줍니다.
미생물이 쓰는 기법은
섬모의 모양을 바꾸는 것입니다.
섬모를 자유롭게 바꿈으로써
앞으로 나갈 때 더 힘있게
잡아당깁니다.
짚신벌레와 같은 단세포 생물은
물 분자가 가득한 곳을
지나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박테리아와 정자가 개발한
더 놀라운 해결책이 있습니다.
섬모를 앞뒤로 움직이는 대신
코르크 나사처럼 돌립니다.
포도주 병의 코르크 나사처럼
돌리는 움직임이 앞으로 나가게 만들어서
이들 작은 생물들은 나선형의 꼬리를 돌려서
물이 마치 코르크처럼 두껍게 느껴지는 곳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다른 전략은 더 이상해보입니다.
어떤 박테리아는 배트맨과 같은 방법을 씁니다.
몸을 잡아당기기 위해
갈고리를 씁니다.
갈고리를
고무총처럼 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다른 생물들은 화학 공학을 사용합니다.
헬리코박터균은 위 안의
끈적한 산성의 점막에서만 삽니다.
점막을 얇게 펴는
화학품을 분비해서
점액 속을 미끌어져 나갑니다.
이 녀석들이
위궤양을 일으키는 게
놀라운 일도 아닙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우리 몸과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정말, 정말 자세히 살펴보면
여러 미생물들이
질척질척한 세상을 잘 헤쳐나가는
방법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적응하지 못하면
박테리아는 결코 숙주를 찾을 수 없고
정자는 결코 난자에 다다르지 못할 겁니다.
그 말은 여러분이 위궤양을 앓지도 않을 뿐더러
애초에 태어날 수도 없었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