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전자음악] 탈라 마다니 : 시람들은 언제나 별을 보러 엘에이로 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오늘 할 일도 별을 보는 거에요. 로스엔젤레스에서 자연과 얼마나 빠른 속도로 친해질 수 있는지 알게된다면 여러분은 아마 기뻐하실 거에요. 그리고 여러분은 여러분을 고취시키는 것들을 찾으셔야만 합니다. 저 빛좀 보세요. 아주 멋지네요 [놀라는 소리] ♪♪ 아주 가까워요. 달이 아주 가까이 있어요, ♪♪ [열쇠가 짤랑이는 소리] 이 스튜디오는 좋은 곳입니다. 제 작업실이에요. 필요한 게 뭔가요? 아마 물감과 붓, 공간이 필요하실 거에요. 여러 다른 그림들에는 서로 다른 기원이 있어요.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경우 시작 단계에서부터 아이디어가 존재하죠. 그런 아이디어는 언어적인 아이디어와는 조금 다릅니다. 그렇지만 그런 아이디어가 떠올라야 작업을 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 뒤에 그 아이디어를 이미지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저는 정말로 눈에 잘 띄는 얼굴이 있다는 생각에 대단히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 얼굴에 코를 그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스케치를 많이 하면서 시작하는 편입니다. 저는 이 색깔로 작업을 시작했지만 그 뒤에 오렌지 색이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래서 모두 흑백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 뒤에 저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저의 그림에서 히치콕의 영화에 나오는 그림자들을 사용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스마일리(smiley)의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생각하곤 했습니다. 평화라는 사안을 둘러싼 스마일리의 의미에 대해서요. 저는 스마일리를 보면서 교리, 임재, 힘이라는 요소들에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무력을 행사할 때 틀림없이 그들은 자비로운 존재는 아닙니다. 제가 쇼를 볼 때 관심을 가지고 보는 다른 요소는 빛입니다. 저는 "프로젝터"에 관심이 많아요. 그리고 제가 프로젝터를 가지고 작품을 만들 때 프로젝터의 빛을 보면서 종교적 빛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어떻게 프로젝터가 종교적 빛을 대신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빛은 빛의 근원이 되며 우리를 통제하고 있는 빛입니다. 이전 어느 때보다 지금 종교적 레퍼런스들이 많이 존재하며, 이 때 스마일리는 우상숭배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다른 숭배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죠. 저는 충돌이라는 관념에 관심이 있습니다. 충돌 그 자체가 아니라, 더 가까워지고, 선택하는 것, 즉 외부의 세력 때문에 하나의 문화에 적응하면서 발생하는 충돌이요. 스마일리가 잔인한 방식으로 다른 남자의 코를 베는 그림을 통해서 스마일리가 더 부각되고 그 욕망을 통해서, 두 시스템을 더 가깝게 만드는 일종의 촉발점이 존재하게 됩니다. 이따금 다른 문화를 차용하다가 잘못된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로스 엔젤레스는 풍경이 잘 보이는 지리에 속하는데, 갑자기 여러분 앞에서 폭탄이 터질 확률은 낮습니다. 그리고 일상에서 자신의 생각을 활용해 작품을 만드는 데 우리를 저지할 세력은 거의 없습니다. 저는 이란의 테헤란 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15살 때 테헤란을 떠나 오레곤으로 왔습니다. 오레곤은 문화적으로 아주 발달한 장소였습니다. 분명히 외부의 어떤 존재가 저를 어떤 장소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통해서 이란 국경 밖에서 사람들이 이란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가장 먼저 배우게 됐고 그 이후에는 오레곤이 대도시가 아닌 시골에 가까운 도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 제가 로스엔젤레스로 이사를 갔다면, 저는 분명 아주 다른 경험을 했을 겁니다. 엘에이에 아주 많은 이란인들이 살기 때문이죠. 저는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이란에서 온 사람들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제가 멕시코 출신의 예술가였더라면, 관객들은 저의 그림을 보고 멕시코인이라고 추측했을 것입니다. 저의 작품을 보면 여러 명의 남성에 초점을 맞추는데, 그들은 지나칠 정도로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작품의 주체가 되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요,. 이런 차이는 여성으로서 차별을 받은 저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온 것은 아닙니다. 제가 남성에게 집중하기 시작한 이유는 저의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저는 미국의 남성 락커룸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한 관심사는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제한된 저의 한계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저는 저의 작품에 이러한 요소를 반영하기도 합니다. 여기 있는 모든 작품을 다 완성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떤 것들은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캔버스입니다. 그러나 어떤 것들을 보면 무언가를 그리기는 했어요. 이 그림은 깃털을 달고 날고자 시도하는 인물을 그린 거에요. 이 그림속의 일은 여전히 어떤 장소를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계속 작업을 할 수 있는 것들을 여기에 기록했어요. 저것들은 스케치북이지만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닙니다. 그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아주 많은 일을 해야 하고, 어떤 작품은 완성되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것들은 어쩌면 완성되지 못했을 수도 있는 것들입니다. 그림 그리기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제가 그림에 관심이 많은 이유는 쉽게 실현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주 자유롭고, 쉽고, 통제되지 않는 방식으로 그들을 그리기 위해 시도합니다. 그러므로 단지 이미지를 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려진 인물들의 태도까지도 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높은 수준의 자유와 순수한 삶, 기쁨이 반영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화가로서, 저의 스토리텔링은 풍자적이고 유머러스한 특징을 가집니다. 그러므로 관객은 제 작품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해방감을 느낄 수 있고 다른 식으로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작품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방의 한쪽 귀퉁이에 애니메이션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건요, 음... 나무 판자 조각입니다. 아크릴 물감으로 칠했어요. 여기에 마크를 새기고 사진을 찍고 지우고 다시 지울 수 있습니다. 애니매이션은... 2분 또는 2분 반 길이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1700개 정도의 프레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 공간에 인물이 나타나고 몇 단계에 걸쳐 움직임을 지속합니다. 이 애니메이션에는 음성을 입힐 예정입니다. 그렇게 하면 아주 흥미로워질 거에요. 하나님의 목소리를 입힐 예정인데, 하나님의 목소리가 어떤 소리일지 상상해야 합니다. 이 작품은 저의 첫 번째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여기에 제가 작품을 만들게 된 배경이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영상을 볼 때 순진무구한 기쁨이 느껴집니다. 저는 어른들과 아이들 사이의 관계에 관심이 많습니다.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과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의 잠재력에 대해서요. 서구 문화의 근간이 되는 이야기들은 어른과 어린이의 위치를 바꾸는 경향을 가집니다. 여러분은 "오이디푸스 렉스(Oedipus Rex)"에 대해 잘 아실 겁니다. 그렇지만 이란의 다수의 신화에서는 부모가 아이들을 죽이며, 이따금 실수로 자녀를 죽이기도 합니다. 만약 어린이들이 어른들의 도움으로 더 강해진다면 어떨까요? 그림이 인물을 묘사하는 방식을 보고 있노라면 이따금 천진난만하기도 하고, 나쁜 행동을 하기도 하며, 누가 억압하는 자인지 알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피해자가 되는 것을 좋아하는지 여부도 알 수 없어요. 저는 특정한 제스처를 인지하고 그 안에 있는 오점을 찾아내는 우리의 문화에 대단히 관심이 많습니다. 저에게, 구원이란 어린아이들 같이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런 감각에서 보았을 때, 진실한 억압자는 우리의 전두엽입니다. 진실한 감각에서 억압이란 통제된 행동입니다. 속죄는 이런 악한 행실을 통해서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아주 나쁜 행동을 했을 때 그들을 나쁜 사람으로 평가하곤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부여한 억압에 관하여 이야기해야 합니다. [부드러운 전자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