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VTT 00:00:06.018 --> 00:00:12.500 독자들이 실제 이야기와 배경을 알게된다면 책을 달리 보게 되고, 00:00:12.500 --> 00:00:18.310 더 잘 읽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글을 쓰는 동안에서 무언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00:00:18.310 --> 00:00:24.989 페이지 위에서 글을 쓰는 동안 실제 주체의 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죠. 00:00:24.989 --> 00:00:31.226 제가 아버지의 자살에 대해 책을 쓰고있을 때, 십년동안 작업했지만 어떻게 써야 할지 잘 몰랐어요. 00:00:31.226 --> 00:00:36.143 처음엔 너무 단적으로 글을 썼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족 모두 얼마나 슬퍼했는지 00:00:36.143 --> 00:00:38.821 그런 것에 대해 썼어요. 도저히 못읽게 더라구요 00:00:38.821 --> 00:00:44.685 그러다, 책 중간부에 와서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00:00:44.685 --> 00:00:50.016 반 정도 썼을때, 모든것이 달라지는 놀라운 일이 있었어요. 그런 일이 있을거라고 00:00:50.016 --> 00:00:55.066 그때, 글을 쓰고 있을 당시엔 생각도 못했어요. 다음날, 정신을 차리고 00:00:55.066 --> 00:01:00.830 단편소설의 내용을 줄이고 처음 계획대로 책을 써나갔죠. 그리고 이전까지 쓴 내용을 다시 읽어봤어요. 00:01:00.830 --> 00:01:07.268 마치 처음 읽는 글 같았고, 제가 썼지만 패턴이 있다는 걸 발견했어요. 00:01:07.268 --> 00:01:10.928 제가 보지 못했던 순간까지 연결되어 있는거예요. 00:01:10.928 --> 00:01:17.385 그 순간, 글쓰기에 대한 저의 생각이 통채로 바뀌었죠 이 책의 최고 페이지는 00:01:17.385 --> 00:01:22.304 그런 전환이 있던 후예요. 힘들고 계획 없이 썼을때 였죠 그래서 전 독자들에게 이 책의 배경에 대해선 00:01:22.304 --> 00:01:28.064 숨기는게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전 독자들에게 알았으면 해요. 00:01:28.064 --> 00:01:34.451 아버지께서 제가 13세 자살하셨고 제에게 알라스카에 와서 일년 같이 지내자고 00:01:34.451 --> 00:01:41.067 부탁하셨지만 전 거절했고 이 후 곧 아버지께서 자살하셨어요. 00:01:41.067 --> 00:01:46.764 왜냐면 제가 아번지와 아들이 일년동안 타지에서 지내는 이야기를 쓰고 있을때, 00:01:46.764 --> 00:01:51.664 그때가 바로 제가 아버지와 함께 일년을 타지에서 일년을 같이 보낼 수 있는 기회였죠. 글을 쓰고 있을땐 몰랐어요. 00:01:51.664 --> 00:01:57.933 글을 쓰고 있을땐, 제가 아버지와 함꼐 일년을 보낼 기회를 다시 얻는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않았어요. 00:01:57.933 --> 00:02:01.429 소설 속에 굉장한 힘이 있는것 같아요. 00:02:01.429 --> 00:02:06.066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순간에도 패턴이 있어요. 독자가 이러한 패턴을 알라볼 수 있는 때는 소설의 00:02:06.066 --> 00:02:12.177 실화를 알았을 때죠. 그래서 저는 항상 독자에게 소설에서 어떤 부분이 실화이고 공상인지를 알려주고 하죠 00:02:12.177 --> 00:02:18.344 왜냐면, 전 작가의 과거 경험에 바탕을 둔 소설에 무척 관심이 많거든요. 00:02:18.344 --> 00:02:23.265 무의식중에 우리는 안좋았던 일을 좋았던 일로 00:02:23.265 --> 00:02:27.760 바꾸고, 다시 재구성해서 용서를 받으려고 하죠 00:02:27.760 --> 00:02:33.382 저도 그랬던것 같습니다. 책을 통해 아버지의 절망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갔고, 결국 00:02:33.382 --> 00:02:37.428 아버지를 그리고 마지막 가시는 길이 어떠했을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제가 하고자 했던 겁니다 00:02:37.428 --> 00:02:40.929 왜냐면, 제가 아버지에 대해 쓴 다른 단편소설에서 전 제 자신이 겁쟁이같았더든요. 00:02:40.929 --> 00:02:44.683 잘 썼지만, 소심했죠. 소설들에서 아버지가 느낀 절망 근처에 가지 못했거든요. 00:02:44.683 --> 00:02:49.334 그래서 이번 소설에서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 자살하는 순간까지 다루려고 생각했어요 00:02:49.334 --> 00:02:53.296 마지막 순간을 쓸때,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죠. 00:02:53.296 --> 00:02:57.417 그런데, 소설의 중간부에서 소년이 자살을 하죠. 아버지가 소년에게 총을 건내주죠. 왜냐면 00:02:57.432 --> 00:03:02.623 아버지는 자살충동을 느끼고 있고, 소년은 아버지가 건낸 총을 바라보고 있죠. 그 순간 전 소년이 총을 자기머리에 00:03:02.623 --> 00:03:07.175 대고 쏠거라고 알았어요. 그땐 아무 생각도 없었어요. 이 후 몇 년이 지나서야 이해할 수 있었어요. 00:03:07.175 --> 00:03:13.431 00:03:13.431 --> 00:03:17.846 00:03:17.846 --> 00:03:24.710 00:03:24.710 --> 00:03:30.499 00:03:30.499 --> 00:03:37.264 00:03:37.264 --> 00:03:43.592 00:03:43.592 --> 00:03:47.881 00:03:47.881 --> 00:03:54.224 00:03:54.224 --> 00:04:00.597 00:04:00.597 --> 00:04:06.623 00:04:06.623 --> 00:04:11.826 00:04:11.826 --> 00:04:16.678 00:04:16.678 --> 00:04:21.703 00:04:21.703 --> 00:04:23.762 00:04:23.762 --> 00:04:30.923 00:04:30.923 --> 00:04:38.749 00:04:38.749 --> 00:04:44.180 00:04:44.180 --> 00:04:48.674 00:04:48.674 --> 00:04:55.220 00:04:55.220 --> 00:05:00.348 00:05:00.348 --> 00:05:05.018 저는 사실 이걸 믿지 않아요. 우리가 자연으로 들어갈 때 거울을 발견한다고 생각합니다. 00:05:05.018 --> 00:05:09.763 증폭하는 거울이죠, 그래서 우리 마음 속에서 무언가 무서운 생각을 품고 있다면 00:05:09.763 --> 00:05:12.820 자연 속에서는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을 발견하게 돼죠. 증폭되어 우리에게 재투영되니까요. 00:05:12.820 --> 00:05:18.073 그래서 저는 그런 꿈은 더 없어요. 믿을 수가 없거든요 그런데 재밌는 점은 제 삶은 그런 꿈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00:05:18.073 --> 00:05:22.929 이루어져 있다는 거예죠. 저희 집은 뉴질랜드의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있어요. 00:05:22.929 --> 00:05:29.013 자전거도타고 윈드서핑도 하고 일년 중 한동안은 터키에서 보트를 타고 지내기도 해요. 00:05:29.013 --> 00:05:34.675 아름다운 작은 만의 해안을 따라 보트를 타며 많은 시간 자연에서 00:05:34.675 --> 00:05:40.932 마음의 위안과 평온을 찾죠. 하지만 그럼에도 그런 꿈은 없어요. 00:05:40.932 --> 00:05:46.679 한 때는 산 속에서 생활하고 싶었었어요, 언덕을 오르고 00:05:46.679 --> 00:05:52.680 동굴에서 사는 그런 삶이요. 그런 점에서 배낭 여행도 좋아하고요. 00:05:52.680 --> 00:05:58.456 하지만 이내 저는 혼자서는 2-3일 이상은 지내지 못함을 깨달았어요. 그러고 나면 00:05:58.456 --> 00:06:07.841 정말 외로워지고 사람이 그리워져요, 저는 자연 속에서 혼자 지낼만한 사람이 아닌거죠. 00:06:07.841 --> 00:06:12.600 5개월 정도 배를 타고 세계 일주를 하러 직접 배를 만든 적도 있었어요. 00:06:12.600 --> 00:06:17.760 정말 열심히 했죠, 식료품과 생필품도 챙겼고요. 00:06:17.760 --> 00:06:21.538 하지만 충분히 꽃혔던 건 아니라 그만 두었죠. 00:06:21.538 --> 00:06:25.702 그러니 계획은 세웠고 그러한 생활을 정말 꿈꾸고 00:06:25.702 --> 00:06:29.464 항해하는 것도 좋아지만, 절망과 두려움이 더 크다는걸 인정할 수 밖에 없네요. 00:06:29.464 --> 00:06:35.222 그만큼의 시간 동안 홀로 된다는 생각은 정말 안 좋은 기분이 들었었어요. 00:06:35.222 --> 00:06:41.089 저는 글쓰기를 무의식적으로 해요. 삶을 살아가는 방식도 마찬가지였어요. 00:06:41.089 --> 00:06:46.842 그러다보니 반복적으로 안좋은 일이 생기고 같은 실수를 두 세번 되풀이 하기도 했죠. 00:06:46.842 --> 00:06:50.256 부분적으로는 제가 하는 일의 목적의식이 분명하지 않아서예요. 00:06:50.256 --> 00:06:56.223 'Legend of a suicide'를 출간할 수 없을 때, 수년간 배를 타면서 지냈어요. 12년이나 출간을 못했었거든요. 00:06:56.223 --> 00:07:00.991 그래서 바다에 가서 범선을 몰면서 제 아버지의 인생을 복기했어요. 00:07:00.991 --> 00:07:06.421 아버지는 치과 의사셨는데 당신의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았죠, 그래서 알라스카로 가서 어부가 되셨어요. 00:07:06.421 --> 00:07:10.460 정말 행복해하셨죠, 하지만 아버지에겐 안 좋은 일이었어요, 결국 안좋게 끝났으니까요. 00:07:10.460 --> 00:07:14.924 제가 바다에 갔을 때는 제가 아버지의 인생을 복기한다고 생가하지 못했어요. 00:07:14.924 --> 00:07:20.343 저는 그 곳에 무의식적으로 갔고 00:07:20.343 --> 00:07:25.864 재난과 기차 전복을 겪었죠, 소설 속 제 인물처럼요. 00:07:25.864 --> 00:07:30.006 제가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글쓰기가 저에게는 종교 활동 같아서예요. 매일 아침 00:07:30.006 --> 00:07:35.845 몇 시간 동안 전에 썼던 20-30페이지를 잃으며 명상을 하죠. 00:07:35.845 --> 00:07:38.703 새로 써야 할 대목까지 읽으면서요. 00:07:38.703 --> 00:07:46.573 그러고나면 몇 시간 동안 그 날의 2-3페이지가 순식간에 떠올라요. 00:07:46.573 --> 00:07:52.842 그러한 과정에서 일종의 몰입, 무의식이 작용하죠. 물론 저는 무신론자이고 00:07:52.842 --> 00:07:59.626 종교적 신념도 없어요. 하지만 글쓰기라는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갈망을 채워주는 것 같아요. 00:07:59.626 --> 00:08:03.848 우리는 모두 종교와 같은 무언가에 대해 목마름과 갈망이 있다고 생각해요. 00:08:03.848 --> 00:08:08.470 글쓰기는 그런 점에서 저에게 매우 충만하게 해 주는 일이었죠. 00:08:08.470 --> 00:08:12.303 저는 글을 쓸 때 문장을 딱히 염두에 두지 않아요. 00:08:12.303 --> 00:08:17.005 그저 매우 빨리 떠오를 뿐이예요, 그러면 할 수 있는 한 빨리 글을 쓰곤해요. 00:08:17.005 --> 00:08:21.675 그리고 첫 번째 버전으로 책을 출간하죠. 그 이후론 책에 관해 생각하지 않아요. 00:08:21.675 --> 00:08:27.302 하지만, 매일 언어를 공부하는데요, 매일 고대 영어를 Beowolf로 번역하는 일을 해왔어요. 00:08:27.302 --> 00:08:34.843 영어에 프랑스어가 차용되기 수천년 전 형태를 보면서요. 00:08:34.843 --> 00:08:45.822 그리고 제 수업에서 meter와 구문론에 관해 생각하죠, 저는 영어 역사 언어학을 가르치는데요. 00:08:45.822 --> 00:08:51.258 허구에서의 스타일을 가르칠 때, 이에 관해 많이 생각하죠. 00:08:51.258 --> 00:08:56.567 하지만 실제로 글을 쓸 땐 이런 점을 생각하지 않아요 저에게 글쓰기는 매우 율동적이거든요. 00:08:56.567 --> 00:09:00.612 전체 텍스트가 풍경속의 장면을 통해, 운율 속의 리듬을 통해 합쳐지죠 00:09:04.657 --> 00:09:08.702 그게 제가 추구하는 바예요, 그리고 그래서 글 쓰기 전에 이전 20페이지를 읽는 거구요. 00:09:08.702 --> 00:09:10.861 그래야 새 글 속에서 그 리듬이 연결이 되거든요. 00:09:10.861 --> 00:09:16.750 글을 쓰는 일은 정말 치유적인 성격이 있어요. 치료 이상이죠, 글쓰기와 치료는 모두 진실에 관한것이지만 00:09:16.750 --> 00:09:22.176 글쓰기는 아름다움에 관한 것이기도 하고, 치료에서는 찾을 수 없는 미적 목표가 있기도 해요. 00:09:22.176 --> 00:09:26.709 그리고 그러한 미적 목표가 없는 글쓰기는 그저 쓰레기에 불과하죠, 단지 치료일 뿐이예요. 00:09:26.709 --> 00:09:32.703 치료가 가치가 없다는게 아니라 그런 글에는 예술적, 미적 목적이 없다는 거죠. 00:09:32.703 --> 00:09:38.786 그래서 제가 저의 아버지, 아버지의 죽음에 관해 글을 쓰며 놀라웠던 점은 00:09:38.786 --> 00:09:44.257 00:09:44.257 --> 00:09:48.583 00:09:48.583 --> 00:09:55.340 00:09:55.340 --> 00:09:59.003 00:09:59.003 --> 00:10:02.684 00:10:02.684 --> 00:10:05.382 00:10:05.382 --> 00:10:09.587 00:10:09.587 --> 00:10:14.753 00:10:14.753 --> 00:10:21.980 00:10:21.980 --> 00:10:26.003 00:10:26.003 --> 00:10:31.007 00:10:31.007 --> 00:10:35.377 00:10:35.377 --> 00:10:41.344 00:10:41.344 --> 00:10:46.642 00:10:46.642 --> 00:10:47.7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