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보렴." 이 문구로 눈 맞추기 코치가 되었죠. 저는 15살 이반의 엄마입니다. 이반은 자폐 아동이고, 말을 안 합니다. 대신 아이패드 사진을 통해 소통합니다. 이반에게는 사진이 곧 단어입니다. 이반이 2살 반일 때, 진단을 받았죠. 지금도 그 때의 고통이 기억납니다. 남편과 저는 길을 잃은 기분이었죠.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몰랐습니다. 당시에는 인터넷도 없었습니다. 구글로 정보를 찾을 수 없었어요. 우리는 순전히 직감에 의존하여 첫걸음을 내디딜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반은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 못했고 전에 알던 단어도 잊어버렸습니다. 이름을 불러도 무반응이었고 어떤 질문에도 묵묵부답이었습니다. 말이 소음으로 느껴지는 듯 보였죠. 이반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기분 상태인지 파악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눈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연결고리는 끊겨 있었습니다. 이반에게 어떻게 삶을 가르칠까요? 이반이 좋아하는 걸 하면 그때 아이는 절 바라보았고 우리는 서로 연결되었습니다. 이런 순간이 자주있길 기대하며 아이가 좋아하는 걸 찾는 데 집중했습니다. 이반의 누나 알렉시아와 함께 몇 시간 동안 술래잡기를 하곤 했습니다. 우리가 "와! 잡았다!"라고 말하면 이반은 눈짓으로 우리를 찾았습니다. 그 순간, 아들이 살아있다고 느꼈습니다. 수영장에도 장시간 머물렀습니다. 이반은 물에 대해 큰 열정을 보였어요. 아이가 두 살 반이었을 때 비가 많이 내리던 겨울날 실내 수영장으로 향하고 있었죠. 궂은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았죠.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그만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이반은 멈추지 않고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바른길로 진입해서야 눈물을 멈췄어요. 그제야 진정이 되었습니다. 이름을 불러도 답이 없던 2살 반의 아이가 안개가 자욱하고 비가 쏟아지는 날 저도 알아보기 힘들었던 길을 기억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우수한 시각 기억력을 가졌던 겁니다. 이반의 세계를 이해할 문이 열렸습니다. 그때부터 모든걸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사진을 한 장씩 보여주며 삶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이반은 지금도 사진으로 소통합니다.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을 말하고 자신의 감정도 표현합니다. 그러나 이반의 시선만 중요한 게 아니었죠. 타인들의 시선도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자폐만을 보지 않고 아이 자체를 봐줄까요? 아이의 능력과 가능성을 보고 우리처럼 좋아하고 싫어하는게 있는 아이의 모습을 봐주길 바랐습니다. 이를 위해, 제 몫을 해야 했습니다. 마음을 다잡고 아이를 놓아줘야 했습니다. 무척 힘들었습니다. 이반이 11세 되던 해 집 근처 동네에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어느 날 오후, 아이를 기다리던 저는 채소가게에 들어갔습니다. 모든 것을 조금씩 파는 평범한 가게였죠. 이것저것 사다가 가게 주인인 호세와 대화하게 되었습니다. 이반에게 자폐증이 있다고 말했죠. 저는 이반이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혼자 걷는 법을 배우길 바랐습니다. 용기를 내어 호세에게 물어보았습니다. 혹시 매주 목요일 오후 두 시 이반이 정리하는걸 무척 좋아하는데 물병을 정리하러 와도 되는지 물었죠. 상으로 초콜릿 과자면 충분하다고요. 이반이 좋아하는 과자였죠. 호세는 바로 승낙했습니다. 그 후 일 년 동안 이반은 호세의 채소가게에 갔습니다. 물병이 진열된 선반을 정리했지요. 한 치의 착오도 없이 물병의 상표가 나란히 한 줄에 정렬되어 있었어요. 이반은 초콜릿 과자를 들고 행복해하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호세는 자폐증 전문가가 아닙니다. 전문가일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꼭 영웅이 아니라도 포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박수) 네, 영웅적 행위가 없어도 다만 가까이서 지켜보면 됩니다. 혹시 두려움이 찾아오거나 이해 안되는 부분이 있다면 질문합시다. 호기심을 가집시다. 그러나 절대 무관심하지 맙시다. 용기를 가지고 서로의 눈을 바라봅시다. 우리의 눈빛이 누군가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줍니다. (박수) (갈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