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 깨어난 포스>는 시리즈에 근본적인 변화를 주는 작품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해, 우리가 관객으로서 이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정작 감독과 제작진은 이 영화가 스타워즈 세계관을 얼마나 바꿔놓았는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의 발단부에서 이미 '스톰트루퍼의 역설'이 성립하는데도 말이죠. 이 개념을 설명하려면 영화 초반에 나오는 두 장면을 살펴봐야 하는데, 여기서 시리즈를 뒤바꿀 변화가 시작됩니다. 첫 번째 장면에서는 스톰트루퍼가 피를 흘립니다. 대규모 우주전쟁을 다룬 시리즈인 것치고 <스타워즈>엔 피가 거의 안 나옵니다. 가끔씩 나오면 의미를 담아 연출한 경우죠. "사랑해." "나도 알아." "손 들어!" <깨어난 포스>에서는 주인공이 될 스톰트루퍼를 핏자국으로 표시합니다. 잠시 후 두 번째 장면에서 이 스톰트루퍼가 헬멧을 벗어 맨얼굴을 드러냅니다. 조금 전 일로 많이 충격받은 표정이죠. 가면을 벗겨 인물의 본성을 드러내는 연출은 시리즈가 전통적으로 사용해온 모티프입니다. 스톰트루퍼라면 이미 수백, 수천 명 봤지만 얼굴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죠. 이 두 장면을 통해 영화는 스톰트루퍼도 방호복을 벗으면 우리와 똑같이 감정이 있고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이라고 말합니다. 결과적으로 <깨어난 포스>는 시리즈 역사상 단 한번도 없었던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스톰트루퍼의 인간성을 보여주려는 시도죠. 이 연출 하나로 세계관이 얼마나 바뀌는지 이해하려면 잠시 전작들을 살펴봐야 합니다.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스톰트루퍼는 제국군 소속 병사들입니다. 전 은하계를 아우르는 군사력이자 우주 제국주의와 탄압의 상징이죠. 설정상 엄격하게 훈련받은 정예 병사들로, 무자비하고 충성심이 강하기로 유명합니다. "총탄 자국을 보렴." "자와 족은 이렇게 정확하게 쏘지 못해." "이건 제국군 스톰트루퍼의 사격 실력이란다." 하지만 제국의 하수인이라는 본래 역할이 무색하게 스톰트루퍼는 전 지구적 인기를 자랑하는 대중문화 아이콘입니다. '스톰트루퍼'라는 이름은 1차대전 당시 독일군 돌격대의 명칭에서 따온 겁니다. 독일어를 그대로 번역하면 돌격대 병사를 '스톰 맨'이라고 불렀습니다. 강습 임무를 수행하는 중무장 병력으로 중대 단위로는 '스톰트루퍼'라고 불렀죠. 이후 '스톰 맨'은 히틀러를 지키는 SS친위대의 계급명이 되기도 합니다. 팬들에게 미움받는 프리퀄 트릴로지에서 스톰트루퍼의 선조격인 공화국의 클론 트루퍼가 나오는데요. 클론 트루퍼들은 대량생산 전투병기입니다. 모두 동일한 유전자를 갖고 있어 같은 모습을 하고 있죠. "클론은 그 어떤 명령에도 절대복종합니다."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말입니다." 시간이 흘러 오리지널 트릴로지의 시대에는 클론 병사들이 퇴역하고 징집병과 자원병이 섞인 스톰트루퍼들이 그 자리를 채웁니다. "이것 보십시오. 드로이드 부품입니다!" <깨어난 포스>는 그 이후의 이야기인데, 퍼스트 오더 역시 스톰트루퍼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퍼스트 오더는 어린 아이들을 납치해 세뇌시켜 스톰트루퍼로 키웁니다. "난 스톰트루퍼야." "다른 놈들처럼 기억도 안 나는 집에서 끌려와" "살인병기로 길러졌어." 다시 말해 소년병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새로운 설정도 아주 흥미로운데 헬멧을 벗는 유일한 스톰트루퍼가 젊은 흑인이기 때문이죠. 다른 스톰트루퍼들은 얼굴도, 이름도, 그 어떠한 개인적 특성도 없습니다. 아주 비인간적인 모습을 하고 있죠. 8편의 영화에 걸쳐 하찮은 소모성 졸개로만 나옵니다. '핀'이라는 새 이름을 갖게 되는 'FN-2187'만이 유일한 예외입니다. 부대에서 탈영한 핀은 저항군에 합류합니다. "당연하지." "그렇고말고." "저항군 맞아." "사실은 저항군 소속이라구." 핀은 유머러스하고 감정이 풍부하며, 뚜렷한 개성을 갖춘 캐릭터입니다. "너 파일럿이잖아!" "어디든 갈 수 있는데 왜 굳이 돌아가는 거야?" "가족이 거기 살아?" "아니면 잘생긴 남자친구?" "알 바 아니잖아, 신경 꺼." 어린 나이에 납치, 세뇌당한 것치고 성격이 지나치게 밝긴 합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수백만 명의 스톰트루퍼 중에서 핀만이 자의식을 갖게 된다는 겁니다. 핀 말고는 퍼스트 오더를 거역할 수 있는 스톰트루퍼가 없는 걸까요? 물론 아닙니다. 다른 병사들도 거부반응을 일으킬 수 있죠. 실제로 설정상 퍼스트 오더는 병사 불복종 대비책을 갖고 있습니다. "FN-2187은 저희 사단 소속인데" "검사결과에 따라 재정비 프로그램에 보냈습니다." "이전엔 이런 일이 없었고?" "이번이 첫 임무였습니다." "장군님!" 그럼에도 핀은 저항하죠. 핀은 나머지 스톰트루퍼들과 정반대의 지점에 서있습니다. 인간적인 이유로 저항군에 합류하는 핀은 매력있는 주인공이 되지만 핀을 제외한 다른 병사들은 아무런 부연설명 없이 저항군에게 죽어나가기만 합니다. 이 때문에 핀에게 인간성을 부여하는 발단부가 전체적인 맥락에선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이야기를 쓴 사람마저도 발단부는 믿지 않는 것 같죠. 왜냐면 핀이 수년간 살인병기로 길러졌는데도 그토록 인간적인 모습을 간직할 수 있다면 다른 스톰트루퍼들도 충분히 그럴 수 있을테니까요. 하지만 <깨어난 포스>의 각본가들은 이렇게 발상을 전환하고 도덕적 회색지대를 탐구하는 데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대신 더 많은 액션씬에 치중해서 스톰트루퍼들을 껍데기 취급하며 더 많이 죽입니다. "츄이, 그거 잠깐 빌려도 돼?" 이젠 스톰트루퍼를 죽이는 게 하도 일상적이어서 세계관 내에서 농담거리로 사용할 정도죠. 그것도 아주 가벼운 농담 말입니다. "이거 진짜 좋구만." 스톰트루퍼는 상징적인 차원에서는 물론이고 실제로도 죽이기 쉽습니다. 그래서 정말 많이 죽습니다. "파일럿 끝내준다!" <깨어난 포스>에서는 2시간 15분의 러닝타임 동안 총 68명의 스톰트루퍼가 총칼에 맞거나 폭발에 휩싸여 죽습니다. 영화가 직접 보여주는 숫자만 해도 이 정도죠. 다시 말하지만 여기서 스톰트루퍼는 소년병이나 마찬가집니다. 이런 설정을 부여했다면 최소한 상황이 얼마나 비극적인지는 연출해 줘야 하는데 영화는 그러지 않습니다. 이야기에 얼마든지 깊이를 더할 수 있는데 말이죠. 예를 들어 세뇌로부터 깨어난 스톰트루퍼들이 퍼스트 오더를 내란으로 전복시키기 위해 저항군을 조직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핀이 각성한 이유는 무고한 민간인이 죽어서가 아니라 같은 스톰트루퍼 친구를 잃어서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핀에게 핏자국 이상의 무언가를 남기는 사건이죠. 그런데 영화는 이 중요한 전환점을 너무나도 쉽게 잊어버립니다. 잠시 뒤 핀은 언제 그랬냐는 듯 환호성을 지르며 전우들을 죽이거든요. "이거지!" "좋았어!" "방금 봤어요? 방금 그거 봤냐고요!" "당연히 봤지!" 물론 핀을 비롯한 저항군이 스스로를 지키려고 그런 걸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맞는 말입니다. <스타워즈>는 항쟁에 관한 얘기니까요. 압제적인 군사, 경찰 권력에 맞서 싸우다 보면 해방을 위해 폭력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 집단을 위해 다른 집단에게 폭력을 가하는 건 비극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불가피하더라도 말이죠. <깨어난 포스>에서 핀의 이야기를 통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는 '사람은 변할 수 있다'는 겁니다. 핀이 변할 수 있다면, 다른 병사들이 변화할 가능성도 납득해야 합니다. 그 가능성이 희박하더라도, 핀 역시 깨어나기 전엔 스톰트루퍼였으니까요. 결국 오리지널 트릴로지의 핵심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아버진 아직 선해요." "황제가 바라던 절대악이 아니라구요." 다스 베이더처럼 사악한 인물에게도 일말의 선이 남아있지 않던가요? '사람은 변할 수 있다'는 게 핵심이라면 "네 말이 맞았어." 스톰트루퍼가 한 명 쓰러질 때마다 변화와 구원의 기회도 하나씩 사라지는 겁니다. 또 다른 핀이 될 수 있는 기회 말입니다. 저희 '패트리온' 페이지를 후원하시면 이렇게 정치와 엔터테인먼트의 교차점을 탐구하는 콘텐츠를 더 많이 보실 수 있습니다. "Pop Culture Detective Agency"에 많은 후원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