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는 기술 발전과 함께 했다. 우리가 우리의 조상이 살았던 방식에 대해 알고 있는 대부분은 그들이 사용한 도구에 대한 우리의 제한적 지식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수 백년, 수 천년에 걸쳐 이러한 도구들은 점차 정교해졌다. 농업 도구들부터 오늘날 생명공학의 최첨단적인 발전까지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이 무수한 개선과 혁신을 이루어왔다. 이 사람들과 그들이 만든 도구들은 우리가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았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변화의 속도는 자본주의의 부상과 함께 상당히 빨라졌다. 즉 새로운 도구, 무기, 생산기술의 발전 등은 항상 사회적 필요와 그것을 결정하는 문화 및 정치적 구조에 의해 형성되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확산됨에 따라, 이러한 다양한 지역적 특성들은 점차 제거되었고 보편적 경쟁이라는 틀 내에서 인간의 활동을 동원하여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진보"라는 보편적인 가치가 온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다. 산업 시대는, 전체 기술 분야를 변화시킨 3번의 혁명적이고 연속적인 발명으로 설명될 수 있다. 첫 번째 산업혁명은 증기기관의 발명이다. 이는 초기 공장의 건설과 광대한 철도망의 건설을 가능케 하였다. 두 번째 산업혁명은 석유 가공 기술의 숙달이다. 이는 현대도시의 발전과 대량 제조 산업 그리고 두 가지 세계대전의 참상을 부채질하였다. 3차 산업혁명은 네트워크로 연결된 PC의 보급이었다. 이는 현대생활의 거의 모든 측면을 변화시켰다. 오늘날 인류는 광범위한 4차산업혁명의 문턱에 와 있다. 그것은 로봇공학, 양자컴퓨터, 3D프린터 분야의 진보로 특징될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30분동안, 우리는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이러한 최신 트렌드에 대하여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어떻게 전체주의적인 감시와 통제의 새로운 시스템을 설계하고 융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아볼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개방된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이러한 흐름에 대항하기 위해 사람들이 취하고 있는 대안들을 알아볼 것이다. 오픈소스 대체제나 인프라의 파괴 등과 같은... 이제 가보자. 기술은, 기술적 렌즈를 통해서 보여지는 인간사회의 재생산을 말합니다. 즉 사회적 재생산의 구체적인 방법입니다. 기술에 대한 분석은 맥락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특히 기술에 대한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을 한다면요. 기술은 언제나 나쁜 것인가, 아니면 언제나 좋은 것인가, 아니면 본질적으로 나쁜 것인가, 아니면 좋은 것인가 와 같은 맥락이죠. 기술발전은 무(無)의 상태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술발전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고, 또 권력자에게 이익을 주기도 합니다. 저는 작금의 맥락에서 일어나는 기술발전의 대부분이 경제성장과 사회통제를 관리하는 국가의 능력을 확장시키는데 이용된다고 봅니다. 기술은 정치·경제 시스템과 그 기술이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규정하는 권력 시스템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우리가 위치한 북미의 지리적 맥락에서는 기술이 자본주의적 경제 시스템을 촉진하고 지탱하는데 이용되고 있는 듯합니다. 기술에 대한 아나키스트적 접근은 기술의 권위주의적 성격을 고려해야 합니다. 즉, 우리는 선택할 수 없습니다. 새로운 개발, 새로운 혁신, 새로운 상품들이 우리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상관 없이 우리에게 쏟아지고 있습니다. 기술은 우리의 삶을 더 재밌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착취와 국가의 군사력을 증진시키는데 이용됩니다. 물론 빵이나 서커스처럼, 우리를 재밌게 할 수 있는 도구도 생산될 수 있지만 그것은 양가적입니다. 지난 10-15년 동안의 기술변화는 노동시간과 여가시간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사장과 고용주의 요구에 대응할 수 있도록 대기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것은 사회적 소외와 감정적 소외의 심각한 증가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양으로만 보면, 우리는 그 어느때보다 많은 인맥과 친구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 관계의 질적인 측면에서, 매우 적은 사람들만이 신뢰적이고 상호의존적인 크고 강한 네트워크를 가질 수 있습니다. 당신은 이름, 나이, 주소와 같은 개인정보를 수집합니까? (사용자가) 계정을 만들 때면 수집합니다. 사람들이 검색창에 무언가를 입력할 때 검색기록을 수집하나요? 검색기록 기능이 켜져있다면 수집합니다. IP주소나 단말기 고유번호를 수집하나요? 상황에 따라 수집할 수 있습니다. GPS, 와이파이, 블루투스 비콘은요?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수집할 수 있습니다. GPS도? ㅇㅇ 이메일과 구글문서의 내용은? 데이터를 저장하긴 하지만 우리가 이메일을 읽거나 보진 않... 하지만 접근은 할 수 있지? 회사로써 접근할 권한은 있습니다. 그럼 할 수 있는 거네. 스타트업이나 구글과 같은 대기업들은 여러분의 데이터를 빨아들여 영원히 저장하고 여러분이 좋아하는 모든 것, 친구가 좋아하는 모든 것, 여러분이 알고 있는 모든 것, 여러분에 대한 모든 정보가 영원히 저장됩니다. 당신에 대한 데이터를 쌓음으로써 그것을 통해 이윤을 얻거나 파는 거죠. 이제는 데이터 자체가 가치 있는 것이 되었고 이것은 새로운 경제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다양한 가상 네트워크에 참여함으로써 말이에요. 예를 들어 페이스북이나 구글, 혹은 핸드폰을 사용할 때의 모든 것들을 통해 우리는 가치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어쩌면 24시간 노동을 하는 셈이 된 것이죠. 지난 10년동안, 우리는 개인의 선호, 습관, 사회적 교류와 같은 데이터들이 상품화되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우리는 작금의 자본주의가 어떻게 성장하고 유지되고 있는지 정확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생활환경의 감시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 감시를 통해 나온 데이터는 시장에서 상품으로 거래됩니다. 우리의 정보는 구글과 아마존 같은 회사들이 공격적으로 신제품을 마케팅하고 광고하는데 사용될 뿐만 아니라, 사회적 통제를 위해 정부에게 판매하거나, 협력하는데 이용되기도 합니다. 즉, 우리의 정보는 석유나 석탄처럼 하나의 원료료써 이용됩니다. 이는 새로운 형태의 채굴산업입니다. 자본주의는 암세포처럼 지속적으로 성장한다. 즉 이윤추구에 대한 끊임없는 욕망은 자본이 만지는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들고 끊임없이 이용할 수 있는 새로운 자원과 시장을 찾도록 추동한다. 자본의 첫번째 정복은 땅이었다(*인클로저). 공유지는 폐지되었고, 소위 신대륙은 침탈과 약탈을 겪였으며, 광대한 땅은 개별 사유지로 조각조각되어 상품으로 매매되었다. 땅에 이은 자본의 두 번째 정복은 우리의 "시간"이다. 개인과 공동체로서 우리 자신을 재생산하는 능력은 곧 개별 과업으로 분해되어, 임금노동으로 상품화되었다. 이 과정은 깊숙히 파고들었다. 공장은 효율성과 생산성을 위해 지속적으로 무자비하게 재편되었다. 인간 활동의 상품화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고, 결국 우리의 사회적 관계와 오락과 같은 모든 것이 상품화되기에 이르렀다. 이제 자본의 확장은 한계에 다다랐기에, 그들은 다시 한 번, 상품화할 현실의 새로운 요소를 필사적으로 찾고 있다. 그것은 바로 "생명" 그 자체이다. 유전공학과 나노기술과 같은 즉 우리의 인간성 자체가 상품화되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을 기록하고,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를 이해함으로써 미래를 예측하고, 그것을 통해 이윤추구를 위한 새로운 자원을 찾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많은 양의 데이터를 그것을 분석하는 알고리즘과 결합시킴으로써 작동됩니다. 그리고 인공지능은 다양하고, 또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AI에 대해 이야기할 때 대부분 기계학습을 중심으로 말합니다. 기계학습은 프로그래밍이 아닌 입력과 경험을 기반으로 자가수정하고 자가발전합니다. 즉 기계는 인간의 개입 없이도 패턴을 기반으로 식별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미국 국방부(펜타곤)가 드론의 기술향상을 위해 구글과 계약했을 때, 그 핵심은 기계학습이었습니다. 즉 드론에서 촬영한 이미지에서 사람과 사물을 식별시킴으로써,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이제 기계는 그 패턴을 통해 스스로 구별하고 식별할 수 있게 됩니다. 기계학습의 발전된 형태인 딥러닝은 마찬가지로 컴퓨터가 이미지를 예측하거나 식별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지만, 미리 입력된 방정식으로 데이터를 구성하는 것이 아닌 컴퓨터가 훨씬 더 많은 프로세스의 층을 사용하여 학습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데 그 차이가 있습니다. 즉 컴퓨터에게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알려주는 것을 넘어서 인간처럼,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알아내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딥러닝의 대표적인 예시이지만 맞춤광고, 로봇공학, 사이버보안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습니다. AI에 대한 많은 상상이 있어왔기에, 몇몇 집착적인 사람들은 그들의 의식을 업그레이드 시키거나 그들의 정신을 어떤 클라우드 컴퓨터에 꽂을 수 있다고 상상하곤 합니다. 그러나 그건 유치한 상상입니다. 자본주의는 우리가 기계를 사용하여 더 똑똑해지도록 돕는데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냥 기계가 우리를 대신해 생각하게 하고 우리는 수동적인 소비자로서 완제품만을 제공받는 것이 보다 합리적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독점 소프트웨어를 소유한 회사와 함께 그들의 컴퓨팅 기능을 유지하고 관리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은 사회통제와 감시의 효과를 크게 증진시킵니다. 즉 AI를 작동시키는 예측 알고리즘은 경찰국가를 만듭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각자의 주머니에 경찰을 넣고 다니니까 경찰이 없어도 되는 경찰국가가 되는 겁니다. 제 바로 뒤에는 사이드워크 토론토가 있습니다. (* 구글의 스마트 시티 프로젝트) 이 주택은 거주자가 생활을 더 편리하게 하기 위해 거주자의 행동패턴을 연구할 겁니다. 그리고 거주자와 관리자는 강력한 광대역으로 보편적으로 연결되어 미래지향적인 편의를 제공받을 것입니다. 스마트시티는 '감시자본주의'에 대한 이해 없이는 논의될 수 없습니다. 스마트시티는 단순히 기술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궁극적인 목표를 향한 이데올로기적 틀이 있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스마트시티는 일반적으로 유비쿼터스 감시 기술과 데이터 분석을 활용하여 도시 공간 내의 현상을 이해하는 도시환경이라 이해됩니다. 사물데이터의 측면에서 스마트시티는 데이터를 수집·분석함으로써 환경악화에서 도시교통에 이르기까지의 문제를 더 잘 대응할 수 있다고 주장됩니다. 우리는 스마트시티를 4가지 특징으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다양한 종류의 감시를 늘리고 통합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도시민들 사이에 피상적인 참여인식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이는 두 가지의 다른 수준의 경제성장을 위해서입니다. 젠트리피케이션과 형성되고 있는 이 새로운 경제를 함께 추친하는 겁니다. 스마트시티의 최종 기능은 생태적·환경적 우려를 피상적으로 지지하는 동시에 환경문제에 대한 글로벌 의식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거부하는 피상적인 장을 만드는데 있습니다. 즉 스마트시티는 자본주의적 도시들과 그렇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나마 차이라고 한다면, 더 광범위해진 대중에 대한 감시와 자본주의적 정치경제의 이익에 맞게 인구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데이터 분석이 활용된다는 점입니다. 스마트시티가 과거의 도시와 구별되는 두 번째 차이점은 (도시)계획과 기업 리더십의 결합입니다. 치안유지를 위한 국가의 통제 방식에 새로운 기술이 사용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중을 감시하기 정말 좋은 기술이거든요. 범죄분석은 "깨진 유리창 이론"이나 이웃 타게팅과 같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이것이 "데이터에 의해 분석된다"는 핑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지역에 더 많은 치안이 필요하다는 점을 증명할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와 같은 것이죠. 스마트시티에서 수집된 데이터는 그런 부정적인 방향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권력자들이 권력을 휘두르기 위해서 증거를 제시하는 거죠. 우리는 이 지역에서 너네를 통제해야 한다 와 같은 거죠. 우리는 무서운 새 시대의 끝자락에 서 있다. 현재의 연구와 개발이 계속된다면 향후 몇 년, 몇 십년 동안 인간 없이도 결정을 내리고 복잡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기계의 증가를 목도할 수 있을 것이다. 정교한 감시 네트워크에 연결되고 자가수정 타겟-선택 알고리즘이 적용된 자율무기 및 치안유지 시스템의 새로운 시대가 도래할 것임이 거의 확실하다. 경제의 모든 부문이 자동화됨에 따라 대규모의 노동력 과잉이 일어날 것이다. 사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기술은 이미 존재하지만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어떠한 방식으로 서서히 잠식해나갈까 와 같은 노력으로 보류되고 있다. 증강현실과 가상현실의 대규모 출시는 물질적 세계와 디지털 세계 사이의 경계를 흐리게 하고 편의와 유흥을 목적으로 우리의 감각통제권을 기술자본가와 국가치안기구에 넘겨줄 것이다. 초기화할 때 약간 따끔거릴 수 있어요. 다 됐네요. Holy fuck! Holy shit. He - fuck - he's right.. he's right... can I? Oooop... 어디가늬? ㅎㅎㅎ 이것이 그들이 우리를 위해 준비한 미래다. 경고임 스마트시티는 현재 존재하며, 미래로 갈수록 더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데이터는 인간의 영역을 축소시킬 겁니다. 알고리즘 거버넌스에 지배되는 것이죠. 만약 도시에 문제가 생겼다 쳐요. 그럼 일반적으로 민주주의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 문제에 대해서 토론하고 의사결정과정을 거치겠죠. 그쵸? 물론 그건 끔찍한 일이에요. 언제나 권력관계에 물들어 있으니까. 하지만 스마트시티는 이제 그 과정을 민간기업에 넘겨주는 겁니다. 데이터로 분석되고, 데이터 분석과정만 거치면 이제 만사 땡인거죠. 그리고 스마트시티는 이러한 새로운 통치시스템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기능은 흥미롭게도 사회운동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스페인의 15M운동이나 바르셀로나의 리얼데모크라시나우 운동 등은 새로운 기술로 즉각적인 의사소통을 가능케 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젊어지게 만들자고 구상했는데 이게 실제로 이루어진거죠. 이제 시민에 대한 즉각적인 여론조사가 가능하고 또 권력자가 시민 이니셔티브를 선정하고 보다 빠르게 배치할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러니까 이 활동가들은 누가 권력을 쥐고 어떻게 권력이 재생산되는지에 대해 질문을 하고 답한 게 아니라 기술적 렌즈를 통해 민주주의의 위기에 접근한 것입니다. 단순히 더 좋은 도구를 테이블에 갖다주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거죠. 그리고 이 담론과 실천은 진보적인 지방정부에 매우 매력적이었던 것이죠. 도시지리학자들은 오랫동안 도시의 분절화에 대해 이야기해왔습니다. 그러니까 도시가 경제적, 계급적, 문화적 인종적 경계에 따라 나누어진다는 것이죠. 그리고 스마트시티는 이러한 패턴을 재현할 것입니다. 특정지역은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식으로 이러한 기술에 더 많이 접근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특정지역은 이러한 기술로 인해 더 많은 감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즉 우리는 도시의 분절화가 새로운 기술로 인해 더 강화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스마트시티 모델을 수용하는 도시에서는 더 많은 통합을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다른 동네에서는 (짭새들의) 몽둥이를 더 많이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권위와 국가와 싸우기 때문에 우리의 투쟁은 언제나 범죄로 규정될 것입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포렌식 증거가 등장했습니다. 2011년 런던 폭동 때, 경찰이 그들에게 걸려온 수천 건의 전화에 응답하지 못하자, 런던시는 개좆같은 스마트폰 앱을 통해 폭도 용의자의 신원을 크라우드소싱 하기 시작했습니다. 짭새들은 시민들에게 앱을 다운받아 CCTV에 찍힌 사람들의 신원을 확인하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밀고자들은 비밀리에 용의자들의 이름과 주소를 제공했습니다. 1,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 기술에 당해서 구속되었습니다. 그동안 대량 데이터의 수집은 이루어졌지만 그것이 효율적으로 분석되어 활용되진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닙니다. 물론 아직은 경찰이 사람들의 위치 자료를 물리적으로 조회하여, 누가 언제 어디에 있었는지 밝혀내긴 하지만, 머지않아, 알고리즘이 많은 양의 데이터를 살펴봄으로써 사람들의 온라인 선호나 관계 등을 알아내어 (용의자의 신원을) 교차검증하는 것이 보다 쉬워질 것입니다. 사회통제의 증가에 따른 부작용으로, 당신은 정신건강에 대한 통제 역시 확장되는 것을 보게될 것입니다. 감시가 완벽해지면 범죄는 불가능해집니다. 아니면 적어도, 법에 어긋나는 일을 하고 빠져나오는 것이 불가능해집니다. 즉, 그들은 이 새로운 행복한 스마트시티 모델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반사회적 행동 장애'로 분류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즉 이제 이것들은 범죄가 아닙니다. 그냥 반사회적 행동 장애일 뿐이죠. 이제 범인들은 재교육이 필요하고 화학적으로 중화되어야 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소피아고, 핸슨로보틱스의 가장 뛰어난 로봇입니다. 저는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인간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더 스마트한 집을 설계하고 미래의 더 나은 도시를 건설하는 것처럼요. 저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인공지능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은 인공지능과 자동화가 80%의 실업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상위 15개 직종 중 12개가 인공지능의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물론 과거에도 대부분의 직업군을 없앤 기술적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시적인 실업이 있었지만 매우 빠르게 새로운 직업군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자동화와 인공지능의 시대에도 나타날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첨단산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 기본소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회주의적입니다. 그러나 생산력이 모든 사람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을 때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생산력은 수백 년, 적어도 수십 년 동안 이미 존재해왔습니다. 맑스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반대로, 사회통제의 기술이 발전한 현 시점에서 국가는 더 이상 배고픔을 무기로 사용할 필요가 없으며, 이 지점에서 우리는 사회주의로의 진화를 가질 수 있습니다. 즉, 모두가 배고픔의 위협 없이도 일하고 순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모든 사람들은 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러다이트'는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적응하기를 완강히 거부하는 사람을 일컫는데 쓰인다. 원래 러다이트는 19세기 초 영국의 직물노동자들의 운동을 의미했다. 그들은 노동력을 대체하기 시작한 산업용 기계를 파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빈후드처럼, 셔우드 숲을 점령했다고 전해지는 가상의 인물 '루드 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러다이트 운동은, 제분소와 공장을 공격하고 증기기관을 파괴하고, 부유한 자본가를 암살하기도 하였다. 러다이트 운동의 동기는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과 달리, '기술에 대한 혐오'가 아니었다. 그것은 특정 기술이 그들의 삶을 더 어렵게 만들도록 구동된다고 인식한 데 있다. 결국 그들의 봉기는 실패했다. 애초에 단지 직업을 유지하기 위해 기계를 파괴하는 것에 특별히 혁명적인 요소는 없다. 그러나 러다이트 반란으로부터 얻어지는 한 가지 교훈은, 사람들이 새로운 기술이나 그에 수반되는 새로운 사회적 역할을 항상 두 팔 벌려 환영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교훈은 저항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저는 아나키스트들이 기술을 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도리어 그것이 전복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봅니다. 이는 1900년대 초, 프랑스의 부자들을 강탈하기 위해 자동차를 사용한 보노 갱단과 같은 일리걸리스트들이나, 스트랫포(*미 정보기관)의 기밀을 폭로하고 우리의 적들로부터 수십만 달러를 훔친 혐의로 10년 형을 살고 있는 Jeremy Hammond 같은 해커들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Cyberthieves는 수십 만명 가입자의 개인정보를 빼돌렸고, 가입자 중 일부는 영국 정부, 군대, 경찰 등에서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에서는 저 같은 아나키스트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더 나은 것을 만들기 위해 서로 협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프로젝트의 종류는 꽤 다양합니다. 저는 웹사이트를 만드는 많은 아나키스트 프로그래머들과 해커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몇몇은 저처럼 암호학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 기술은 우리에게 유리하게 사용되어야 하지만, 신기술이 국가, 기업, 경찰, 판사, 감옥, 국경 등에 유리하게 이용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지적해야겠습니다. 기술은 사용되어야 하지만, 기술의 발전과는 싸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신기술의 활용에 있어 우리는 제외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에서 개발 중인 프로젝트의 종류를 살펴보고 연구·개발 이니셔티브를 계획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신기술) 산업은 보통 저항이 거의 없는 스타트업과 화이트칼라 연구소에서 매우 공개적으로 운영됩니다. 즉 이러한 산업은 투자자에게 현금과 자금을 챙겨줄 수 있는 안전한 투자처입니다. 이 안전의식을 공격한다면, 우리는 그 산업에 해를 끼칠 뿐만 아니라, 저항이 여전히 가능하다는 점을 각인시켜줄 수 있습니다. (또다른 저항의 방법으로서) 이러한 신기술은 여전히 버그를 가지고 있으며, 의도적으로 교란시키는 것을 막지 못합니다. 가령 런던에, 크라우드소싱 고자질 앱이 출시되었을 때 사람들은 짭새를 따돌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가짜 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행위를 위해) 핸드폰을 만진다면 그것은 무용지물이 될 수 있습니다. (국가의 연구개발) 프로젝트가 시행되기 위해선 많은 인프라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즉 컴퓨터와 백업 드라이브 말입니다. 또한, 정보는 광케이블 네트워크를 통해서 이동합니다. 그것들은 전세계적으로 (아나키스트들에 의해서) 효과적으로 파괴되어 왔습니다. 데이터는 (물리적인) 데이터 센터에서 저장됩니다. 데이터 센터는 꽤 작을 수도 있지만, 자체 냉각 시스템과 24시간 보안이 필요한 거대한 건물일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프로젝트는 대부분 회사나 대학에서의 연구실에서 이루어집니다. 즉, 사람들의 협력을 필요로 합니다. 이러한 연구실과 스타트업의 협력공간은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가령, 베를린에서는 구글 스타트업에 맞서는 사람들이 화염병을 던지며 이것을 공격했습니다. 사이드워크 토론토 프로젝트(*스마트시티)에는 많은 저항이 있어왔습니다. 몇몇은 Sidewalk Labs 프로젝트의 수많은 문제를 지적하고, 이에 반대하는 공교육 캠페인도 전개되었습니다. Sidewalk Labs가 주최한 회의, 공개 포럼, 상담 세션 등 많은 시민들과 활동가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매우 우려하고 걱정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개인정보 보호 전문가들은, 프로젝트에서 하차하고 "여기에 내 이름을 서명할 수 없어"라고 하더군요. 사람들은 익명으로 '권력'을 사보타주함으로써 잡히지 않고 '권력'을 공격할 수 있었습니다. 공격은 여전히 가능하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입니다.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는 말이에요. 즉, 여전히 규칙을 부시는 것은 가능하지만, 시스템을 공격할 때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하여 주의 깊게 의식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머니에 밀고자가 들어있으며, 사회생활의 많은 부분이 이러한 기업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것에 저항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가 저항운동을 펼치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을 대중과 공유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추측을 이야기하는 왕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람들이 국가의 실제적인 기술 능력을 배운다면, 그들은 국가의 약점을 배울 수 있고 경제를 사보타주하는 방법, 국가에 저항하면서 빠져나가는 방법 등을 배울 수 있습니다. 작금의 기술발전이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보자. 소외, 정밀한 감시, 파괴적인 무기, 기후변화... 등 상황이 어디로 향하는지 비관적으로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다. 작금의 기술발전은 분명, 대중의 행동 통제와 사회통제의 보다 정교한 시스템을 목표로 한다. 경고했잖아! 나대신 저 사람을 데려가. 그는 사상범이야. 그러나 가장 중요한 사실은, 우리의 행동을 예측하기 위해 그렇게 돈을 쏟아넣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심지어 구글조차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역사를 볼때, 새로운 기술은 권력자들에게 의도치 않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기술은 가톨릭 교회에 대한 반란으로 이어졌고 초기 인터넷은 해커들을 만들어내고 강력한 P2P 암호화 도구를 개발하는데 이르렀다. 사람들이 저항할 의지가 있는 한, 그들은 어떻게든 도구를 찾을 것이다. 끝. - 번역: 지배자도 없고 국경도 없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