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스트, 반권위주의자, 급진주의자들은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 세상을 번화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이 모든 투쟁들은 자주 개인적인 문제를 간과한다. 나 자신, 타인, 세상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지에 대한 많은 사람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 말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너무나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혹은 압박감을 느껴서 간단한 판단도 내리기 어려운 상태일 수도 있다. 몇몇 이들에게 과거의 안 좋은 경험이나, 트라우마, 불안과 같은 요소들로 인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백인우월주의, 가부장제, 자본주의가 판치는 이 미친 세상에서... 매일 이런 식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운동은, 정신건강의 문제를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거나 혹은 후순위로 밀곤 한다. 정신질환은 무시된다. 주류사회는 미친 사람을 양극화시킨다. 한 쪽에선, 미친 사람의 창의력을 찬양한다. 예술, 영화, 책과 음악에서 말이다. 당신이 400년의 노예제도에 대해서 들었을 때... 400년이요? 그건 고급 와인 같은데요! 다른 쪽에서, 미친 사람을 낙인찍고 두려워하면서 우리를 통제하고 가둔다. 그러나 많은 경우 사회는 수 백만명의 정신질환자들을 전자보다는 후자의 영역에 배치시켜, '정상'사회의 감옥에 가두려고 한다. 대부분 광기는 찬양되지 않는다. 광기는 보통 당신이 직장이나 집을 잃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이 방에서 나오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불안, 편집증 등으로 인해 사회화될 수 없기 때문에. 혹은 관계를 맺지 않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위험한 대처 메커니즘을 이용하거나 혹은 유해한 정신건강 시스템에 의존하여 생존한다. 정신의학과 제약산업은 우리의 '정신건강'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거대한 이윤을 쓸어담고 있다. 그러나 국가권력과 자본의 이러한 병폐적 진단과 처방에 벗어나려고 시도한들... 우리가 도대체 뭘 할 수 있겠는가? 앞으로 30분동안,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정신질환의 원인과 잠재적 해결책에 대한 그들의 식견을 공유하면서. 그리고 낙인과 싸우고,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고통들을 적절하게 잊을 수 있게 했던 경험들을 다루면서. 정신건강은 우리 자신의 내부적 안녕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정신건강은 우리가 세상의 고통에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대한 마음의 평정을 말해요. 정신건강은 스스로 평온하고 건강하다고 느끼는 자신만의 방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정의를 매우 넓게 받아들여야 해요. 왜냐하면 다양한 문화마다 다양한 행복의 개념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정신건강을 개방적으로 받아들여요. 즉, 우리는 삶의 복잡성 속에서 그것을 직면하고 평온을 느낄 수 있는가?에 대해서요. 원주민으로서, 우리는 엄청난 트라우마를 겪였고 이런 환경에서 정서적 균형을 찾는 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정신건강이란 제가 현실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을 때 쓰는 용어입니다. 그리고 제 뇌가 하는 여러가지 일들이요. 가령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의 변화를 말하죠. 저에게 해를 끼치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말이에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정신건강이란 말은 더 큰 맥락을 숨깁니다. 우리가 정신건강을 이야기할 때 사용하는 언어는 생물공학적 언어예요. 이로 인해 사회적 맥락은 배제되죠. 우리는 당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아요. 당신의 피부색깔이든, 당신이 어떤 집에 살든, 당신이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든 그리고 당신이 매일 해야 되는 일이 뭔지든 말이에요. 만약 당신이 원주민 보호구역에 산다면 당신은 많은 어려움을 만날 것입니다. 당신이 다른 어려움을 갖고 있더라도 보호구역에서 살아남아야 하는데 이걸 어떻게 전부 해쳐나가죠? 어떻게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삶을 물려줄 수 있을까요? 정신건강은 사회적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우리가 처한 사회적 조건을 바꾸지 않는다면 해결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볼 때, 당신은 당신에게 가해지는 억압과 맞서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정신질환자로 만드는 세상에 대항하여 싸울 수 있는 능력을 준비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정신건강을 오로지 그 사람에 속해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우리를 아프게 하는 주변세상에 대한 일종의 반응이죠. 정신 불안은 일종의 전염병입니다. 우리 사회가 순수한 자본주의든 뭐든 간에 사회는 우리가 모든 문제를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판매합니다. 성공한 삶의 조건 같은 건 국가와 대중매체에 의해서 주입된 겁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이룰 수 없어요. 사람들이 그런 물질적인 성공을 거둔다고 해도 의미를 찾기 위해 다시 고군분투할 겁니다. 우리 주변의 상황은 심리적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회적으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방법은 진솔하고 가까운 관계를 추구하기 보다는 사회적 자본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정신건강 문제를 안고 사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주는 사회를 볼 수 있어요. 어떤 미친 흑인이 건물을 돌아다니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적어도 제가 사는 이 도시와 나라를 생각하면 말이에요. 정신건강 문제를 안고 사는 흑인들에 대한 경찰의 대응은 항상 그렇진 않지만 치명적인 총상으로 이어져요. 저는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는다는 걸 말해주고 싶어요. 어떤 사람은 치료사를 만나고 어떤 사람은 진단을 받고 어떤 사람은 약을 먹어요. 그래서 저는 많은 아나키스트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어요. 하지만 우리는 많은 대화를 가집니다. 아나키스트가 아닌 친구나 가족들보다 사실은 더 많은 대화가 이루어집니다. 정신건강 의료체계에서 일을 하다보면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트라우마 문제로 힘들어 한 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의료체계에 들어와서 결국 정신질환 진단을 받게 되면 과거에 그들에게 일어났던 일들이 생명공학적 문화에 의해 가려지는 거죠. 그저 당신이 필요로 하는 약만이 처방될 뿐입니다. 우리는 약봉지에서 벗어나 생각하고 더 혁식적인 사고방식을 사용해야 합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다. 즉 우리는 우리 주변 환경과 관계를 맺고 주변 환경에 의해서 형성된다. 이 사실은 광기를 단순히 신경학적 불균형으로 보는 사람들에 의해서 종종 간과된다. 실제로, 당신이 얼마나 가난한지, 피부가 무슨 색인지, 당신의 젠더와 성적 지향성, 그리고 당신이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적인 구성원으로서 얼마나 잘 통과했는지. 이것들은 모두, 당신이 사회에서 어떻게 대우받고, 당신이 어떤 건강관리와 사회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와 연관되며 그러니까 이것들은 당신의 정신적 행복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현재 SNS로 확산되고 있는 극도의 개인주의는 좋아요와 팔로우로 대표되는 정체성의 피상화된 상호작용이 인간 접촉을 대체하는 경향이 있다. 너 구독자 잃었어? 정신성(영성)의 영역은 종교제도에 의해 너무나 오염되어서 우리는 주변 세계와 의미있는 연결을 느끼는 데 필요한 의식과 전통에 접근할 수 없다. 이러한 혼란에서 이익을 얻는 것은 세계의 가장 거대한 기업가들로 이루어진 제약산업이다. 그들은 의사들에게 매년 수십억 달러의 로비를 통해 가장 이윤이 많이 남는 약들을 판매하게 한다. 그리고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이 약을 먹게 조장하면서 ♫♫ 미쳤어 난 외로워서 미치겠어 난 미쳤어 너무 우울해서 미치겠어♫♫ 네 명 중 한 명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질문해야 합니다. 정신건강 상태가 어떻든 간에, 그것은 급격히 쇠퇴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현상이 의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생각합니다. 제 생각엔 모든 것이 정신건강 문제로 묘사되는 것 같습니다. 이를 위한 정신건강 해결책이 있다는 거짓된 생각으로 말입니다. 아마도 알약의 이름으로 그리고 종종 추가적인 통제의 이름으로 말입니다. 우리가 정신질환이라고 부르는 많은 것들은 사실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으며 그리고 생물학적, 화학적 뿌리에 기인하지도 않습니다. 그것들은 사회적 조건에서 온 것들입니다. 우리가 처한 세상에서 우리가 정말 "잘" 살 수 있을까요?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계가 실제로 매우 건강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하려는 일이 사람들이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면 그건 무서운 일일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자주 슬프고 자주 아프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현실적인 이유들 때문에 종종 불안하고 편집증적입니다. 제 주변의 물질세계가 끔찍하다면 제 정신은 안정될 수 없습니다. 추방, 파산, 노숙, 투옥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은 누군가의 절망적인 경험에 기여하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해결책을 제시하기 보다는 언제나 알약이나 주사일 뿐이죠. 아니면 그냥... 제거 저는 난민 신청자들과 함께 일합니다. 그들이 이곳 캐나다에 도착한 첫주부터 그들은 완전히 다른 범위의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지닌 삶의 무게들입니다. 그들의 살았던 곳에서의 전쟁, 강간, 수감, 고문 같은 거요. 그리고 그들이 캐나다에 오기 위해 고생했던 것들이요. 그들은 캐나다에 오기 전에 10개의 나라들을 1년 내내 떠돌아다녔을 지도 모릅니다. 여권이나 서류 없이요. 그들이 가지는 무게는 매우 무겁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아무것도 없이 이곳에 도착해서 캐나다에서 난민신청자가 되는 어려움에 직면해야 됩니다.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는 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거예요. 그들은 1년, 2년 정도 머물러야 이곳에 머물 수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 기간동안, 그들이 자신과 자식들을 위해 어떤 일이 해야할지 모른다는 점이 매우 힘든 일입니다. 스트레스받고요. 정신건강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더 큰 사회적 맥락과 연결지어 생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저는 정신건강에 정말 영향을 미치는 것 중 하나가 개인주의 사회에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우리의 뇌과학 때문에 일어난다고 인식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니면 우리 잘못때문에 일어나는 거라고 혹은 우리가 생존할만큼 충분히 강하지 않아서. 실제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더 큰 사회적 문제입니다. 개인적 차원에서, 세상에서 내가 중요하다 생각하는 것들과 단절될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불균형에 맞서려는 공동체와 함께 모든 권력의 불균형에 맞서는 것입니다. (정신질환의) 많은 요소들은 사회의 표준적인 기반들과 같습니다. 반-흑인, 인종주의, 자본주의 같은 거요. 이러한 것들을 파괴하지 않고서 실질적인 해결책이 없습니다. 흑인들의 불행을 초래하는 요소를 생각해보면, 첫째는 대서양 횡단 노예무역의 경험입니다. 식민주의의 경험이요. 계속 진행 중인 식민주의의 경험. 진행 중인 흑인공간에 대한 점령. 저는 그 공동체에 대한 과잉감시를 일종의 점령이라고 봅니다. 점령이란 말은 물론 부드러운 인용구겠지만요. 500년 간의 식민주의는 원주민들에게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말이에요. 어떤 이들은 상처를, 어떤 이들은 고통을 그리고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지는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혼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남겨졌을 때 더 나아지기란 매우 힘든 일입니다. 제 생각엔 공동체에서 일부러 모든 걸 빼앗는 것 같아요. 마치 모두가 죽는 걸 보고싶어하는 것처럼요. 제 생각엔 단일집단에서는 자살률이 높은 것 같아요. 물론 이누이트 공동체가 아마 제일 높다는 건 알고 있지만, 우리의 공동체도 자살률이 꽤 높죠. 사람들이 포기하고 죽음에 둘러싸여 있을 때, 저는 그들의 기억들을 의식하고 치유자에게 둘러싸여있는 게 좋은 방법이라 생각해요. 왜냐하면 인디언법에 의해 이러한 의식이 포기되도록 강요되었으니까요. 우리는 이제 그것들을 다시 배워야 합니다. 복종을 재생산하고 국가권력을 강화하는 데 이용되는 현대과학들 중에서 정신의학은 특히 역겹다. 정신의학의 역사는 요양원과 정신병원의 수많은 사람들을 수용소에 가두고 고문하는 일들로 넘쳐난다. 국가권력에 의해 수행된 다른 것들을 이해하고 파괴하려는 끊임없는 탐구는 국가권력은 인간 실험자에게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실험해왔다. 불임실험과, LSD 혼수상태에서 수십년에 걸친 자궁절제술까지. 20세기 초 정신의학자들은 우생학을 열렬히 수용하였다. 이것은 나치 과학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으며, 홀로코스트에 대한 편리한 사이비 과학적 정당성을 제공하였다. 2차세계대전 이후 이 용어는 금기시되었지만 정신의학과 우생학 간의 기본적인 연결고리는 오늘날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 정신의학은 과학에 기반을 둔 의학인 척을 하고 있지만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의학적 조건과 이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의 성경에서 말이다. 이른바 DSM이라고 불리는 정신질환을 분류하는 방법이나 과정은 과학적인 측면이 존재할 수 있지만 사실 많은 경우, 그것은 사회적 편견과 개인의제를 홍보하는 늙은 백인 남성들로 가득찬 방에 지나지 않는다. 랄프는 아팠습니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천연두만큼 위험하고 전염성이 큰 병입니다. 마음의 병이요. 랄프는 동성애자였습니다. DSM의 신성한 페이지에서, 동성애는 1987년까지 정신장애로 분류되었다. 오늘날에는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정신장애 판단을 받아야 한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치료를 받기 위해서. 한때 색광증이나 히스테리로 낙인 찍혔던 여성들은 오늘날은 BPD로 즉, 경계성 인격 장애로 낙인 찍힌다. 이것은 주로 트라우마가 있거나 합법적으로 보이지 않는 여성들에게 내려지는 진단이다. 비록 정신의학과 이러한 유산들을 분리시키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역사는 패딩셀, 강제주사, 전기충격, 그리고 무기수용으로 이어졌다. (*패딩셀, 자살, 자해를 막기 위해 벽에 패드를 댄 방) 만약 당신이 현대 정신건강 관리시스템의 잘못된 편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면, 당신은 쉽게 정신건강적 악순환 속으로 떨어질 것이다. 트라우마에 의해서, 폭력성이나, 트라우마의 재발로 인해서 말이다. 그것은 아마 강제입원이나, 스스로나 사랑하는 사람을 해치는 형태일 수 있다. 아니면 결국 경찰에 의해서 살해당하든지... 국가권력은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식별자가 되어 정신건강 문제에 관여합니다. 국가권력과 정신의학은 정신적 건강을 당신이 얼마나 '정상'에 잘 순응하는지로 정의하고 그리고 이 사회에서 '정상'은 주류사회의 모든 문제적 본성을 포함합니다. 만약 당신이 지도상담사에게 성공을 위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다면, 그들은 당신이 사회에 잘 순응해야 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아이들을 동화시키기 위해 레지덴셜 스쿨이 시작되었습니다. 자신의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으면 감옥에 보낸다는 게 법이었어요. 그들은 레지덴셜 스쿨을 위탁양육제도라고 불렀어요. 그 양육을 받는 아이들은 좋은 방식으로 자라지 못하고 균열로 빠져들어갔습니다. 국가는 보통 정신질환을 범죄로 분류합니다. 사실 정신병원의 운영방식을 보면, 감옥이랑 크게 다르지 않아요. 그리고 감옥의 운영방식을 보면 보통 정신병원으로 사용됩니다. 미국 사회에서 죄수를 다루는 방식과 우리가 정신질환자를 다루는 방식에는 실질적인 차이가 없습니다. 경찰이 정신질환자를 총으로 쏘는 것도 포함해서요. 뉴스: 한 경찰관이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10대 청소년을 총으로 쏴 죽였습니다. 정신질환자가 경찰에게 4발의 총상을 입었습니다. 그는 아무런 무력 위협을 하지 않았었습니다. 한 정신질환자가 댈러스 경찰관 두 명이 쏜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저는 교도소에서 4개월 반 정신병원에서 1개월 반을 보냈습니다. 그 두 개 사이에는 눈에 띄는 유사점들이 있습니다. 강압적인 폭력, 고립에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차이점도 있습니다. 제가 감옥에 있을 때 저는 멀쩡하고 나 자신이고, 난 국가와 싸우고 있고, 그들은 나의 적이고, 하지만 그들은 날 새장에 가둬놨어. 하지만 정신병원에 있을 땐, 완전히 다른 세상 같습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고, 내가 내가 아닌 것 같고 만약 제가 약을 거부하면 저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주사를 맞을 것입니다. 감옥에 살면서 느꼈던 트라우마가 정신병원에서 느꼈던 트라우마보다 차라리 나아요. 일반적으로 정신질환은 은폐하고 숨길 것으로 여겨집니다. 혹은 사회가 말하는 개소리에 당신이 순응하도록 당신을 고치고 하향평준화시켜야 할 것으로요. 그것도 안 된다면 당신을 감옥에 가둘 겁니다. 자본주의에 순응하지 않았다고. 일반적으로 국가권력은 개인을 기준으로 정신질환을 다룹니다. 그렇게 문제도 개인화되고 그 해결책도 개인화됩니다. '자기관리'는 신자유주의가 정신건강을 다룰 때 사용하는 접근의 대명사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자기관리를 실천한다고 하는 것이 실제로는 많은 목표를 잃어버리는 게 아닌가 싶어요. 일반적으로 자기관리는 매우 개인화된 접근방식에 집중합니다. 개인의 필요를 단순한 흥미나 사람들이 당신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같은 거로 한정하는 거죠. 저는 세계 최악의 기업들이 만든 약물을 복용함으로써 정신건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과다약물 복용으로 이익을 얻어요. 또 그들은 의사들에게 광고를 하죠. 가능한 큰 이윤을 남길려고요. 분기별로 말이에요. 씨발 당신은 이것들을 동시에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실제로 제약업계가 정말로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이윤입니다. 그들은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약물에 중독될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실제로 이 약들로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고 있고요. 물론 제약업계 사람들만큼 많진 않지만요. 저는 이런 분석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당신은 폐쇄적이거나 흑백논리라는 틀에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시스템이 존재한다고 해서 그게 비판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 생각해요. 그 시스템을 통해 이익을 얻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이해하면서 말이에요. 당신의 케어가 어떤 모습일지 결정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게 당신을 덜 비판적으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신건강 옹호자가 되는 것도 아니예요. 정신과 의사로서, 저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일해야 합니다. 적어도, 역사적으로, 현재는 아니더라도 저는 약물과 입원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전 괜찮다고 봅니다. 제가 '사람들과 함께'라는 가치에 집중하는 것은 아마 사실에 입각한 동의로 되돌아가는 겁니다. 저는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을 돕는데 집중하고 싶어요. 덜 강압적인 환경에서 살아와서 그들이 약물을 줄이거나 끊도록 도울 사람이 없는 사람들이요. 당신은 그들을 돕기 위해 백인의 세계에 들어가야 할 거예요. 그들이 당신을 믿을 만 하다는 인증을 받기 위해서요. 가령 저는 캐나다 보건부에서 심리학자들 데려올 수 있어요. 그들은 비용을 지불하겠죠. 하지만 저는 캐나다에서 영적 장로를 위한 기금을 지원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영적 학위가 없으니까요. 정신질환의 원인과 성격에 대한 국가의 권위와 공무원의 지시를 의심없이 받아들이기 보다, 우리는 오늘날의 많은 미친 사람들이 우리가 직면한 문제에 대한 제도적 지원과 비공식적 지원을 적절히 조화시킬 수 있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힘을 주장하고 있다. 이 성장하는 운동은, 정신질환에 대해 낙인을 찍는 것에 대항한다. 정신질환을 고립되고,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는 개념 말이다. 대신 우리는 상호연결성과 공동체 지원에 뿌리를 둔 동적인 사회적 해결책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SNS는 물론 결점이 있지만 비슷한 경험을 한 다른 사람들과 연결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함으로써 P2P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는 SNS가 공동체와 정신건강 지원에 있어 지리적, 정서적 장벽에 직면한 개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결국 정신건강 문제에 처한 사람들을 돕기에 가장 좋은 사람은 이미 그것을 겪은 사람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신건강 문제나 트라우마에 직면한 사람들을 지지하거나 돕기 위해서는 우리는 호기심을 가져야 합니다. 질문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배우기 위해 그 사람들과 연결하기 위해 우리는 돕고자 합니다. 우리는 인간적으로 그들을 더 깊은 차원에서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이 사람들이 과거에 겪었던 일, 그리고 지금 느끼는 감정. 정부는 우리를 파괴하려고 별의별짓을 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종류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습니다. 때때로 그 트라우마들은 우리를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먹어치웁니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는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그것을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으로 다음 세대를 위해 계속 전진해갈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세대가 이러한 문제들을 좋은 방법으로 해결해가기를 바랍니다. 트라우마가 지속되지 않도록요. 가능하다면 뒤집었으면 좋겠네요. 상황과 인간은 매우 복잡해요. 그래서 저는 그 복잡성에 개방적이면 좋겠어요. 사람들을 단순화하거나 라벨을 붙이지 마세요. 가령 이 사람은 '트라우마적'이야, 이 사람은 '괜찮을 거야'. 그녀는 '강해' 그녀는 '탄력적이야' 우리는 복잡한 상황을 단순화시키려고 해요. 사람들은 정신건강 문제를 다루는 개인적이고 공동체적인 방법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사회적으로는 완전히 실패하는 경향이 있어요. 제가 알아낸 것은, 일반적으로 공동체는 돕고자 하는 욕구와 능력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이러한 문제들의 원인이 되는 사회적 조건들에 대해서 저는 더 다루어져야 한다고 봐요. 그러나 아무도 그렇게 잘 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제가 속한 공동체의 지원은 매우 비공식적이에요. 그냥 우리는 친구들과 어떻게 지내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야기해요. 그 중 많은 부분이 이러한 관계를 미리 구축하는 것에 관한 거예요. 왜냐하면 당신에게 위기가 닥쳤을 때 당신이 하는 모든 행동들은 결국 사람들과의 관계에 영향을 받으니까요.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이 합의에 의한 것인지 확인해보아야 합니다.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것, 그리고 당신과 그것을 공유하는 그 기분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만이 아니라 내가 뭘 해줄 수 있을까? 저는 이게 첫번째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위기의 붕괴 속에 돌파구가 될 기회가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어려운 시기를 겪고 다른 측면을 헤쳐나간다면, 당신은 그 속에서 결코 갖지 못했을 어떤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로서, 우리는 그 위기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관계와 토대를 마련해야 합니다. 최고의 공동체 지원이 개입의 모습일 필요는 없습니다. 이상적으로, 우리 공동체가 좋은 곳에 있고 또 그 개인들이 좋은 관계를 맺고 서로를 돕고 지원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면 위기는 일어나지 않거나 완화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해야 할 것이 사람마다 감정이 서로 다른 범위에서 나타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때때로 그냥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사람들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에게 부여된 권위는 참여자의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전복될 수 있습니다. 심리치료사, 정신과 의사, 사회복지사, 정신건강사의 역할은 한 발짝 물러서서 비위계적이고, 비밀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서로 함께 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공동체가 트라우마로부터의 치유, 변혁적 정의, 그리고 그 공동체의 책임에 대한 모든 일들이 동료 지원과, 위기 개입에 대한 모델로 통합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이러한 작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듯이, 저는 정신건강 위기의 규모에 대해서 회의적입니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너무나 다양하고 많아서 때로는 그것에 압도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계속 앞으로 전진하고 이것들에 대한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습니다. 자살과 약물 과다복용의 유행에서부터 경찰의 끊임없는 살인사건에 의해 촉발된 충격과 분노에 이르기까지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그들이 필요로 하는 지원을 받지 못하고 사망한 모든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와 삶은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는 점점 끔찍해져가는 이 미친 세상에 맞서 투쟁을 계속 하고 있지만, 우리는 다가올 전투에 대해 집단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아름다움과 갈등을 수반하는 정신질환을 관리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는 것은 더 강하고 건강한 저항의 공동체를 구축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우리가 이것을 할 수 있다면, 우리의 운동은 더 지속적이고 탄력적이게 될 뿐만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를 함께 여행하면서 새로운 가능성들을 얻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 미래당 아나키스트 모임은 (???) 이를 위한 토론과 공동체 조직을 형성하는 자원으로 활용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공동체 지원 그룹을 시작하는 데 관심이 있습니까? 아니면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싶습니까? 몇몇 동지들과 모여서 서로 이야기를 나눠보세요. 어디서 시작해야 할 지. 미래당 아나키스트 모임은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그냥 친구를 만들고 싶다고요? 미아모와 함께 해주세요! 화염병을 던지고 폭탄을 설치할 때만이 아나키스트인 것은 아닙니다. 사랑을 하고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재미있게 놀고 서로 도울 때도 우리는 아나키스트입니다. 카카오톡에 미래당 아나키스트 모임을 검색하거나 페이스북을 이용해 함께 하실 수 있습니다. 함께 세상을 바꿉시다. 영상이 너무 기네요. 더 쓸 말도 없습니다. 이 영상은 Submedia가 원작입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아직도 영상이 안 끝났네 이번 회는 올해의 마지막 회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한달을 쉴 거예요. (갑자기 자막?) 치안유지와 국가권력에 폭력에 대항하는 공동체의 저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소위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지난 10, 12, 15년 간의 맥락은 국가안보의 위협이라는 미명 하에 치안권력을 강화하려는 모습을 포함합니다. 짭새들 좆까라. 세상을 뒤엎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