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악몽이라고 해야겠네요. (웃음) 1년에 꼭 한 두 번씩 우리를 괴롭히는 꿈들이 있죠. 절벽에서 떨어지거나 이빨이 다 빠지거나 기차에 치이는 그런 악몽 말이죠. 제 악몽에서 저는 직업이 있습니다. 항상 똑같아요. 잘나가는 회사에서 괜찮은 자리를 제안받는 꿈입니다. 꿈속에서 저는 "제안을 받아들여"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갑자기 상사가 생기죠. 휴가를 내고 싶으면 결재를 받아야 하고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회의가 있죠. 깨고 나서야 악몽이었다고 안도합니다. 저는 직업이 없습니다. 덕분에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죠. 누군가의 허락 없이도요. 오해는 없길 바라는데요, 직업이 없다고 해서 할 일이 없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 모두 할 일이 있죠. TED 강연을 준비하고 여기로 와서 무대에 서는 것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제 직업은 아니죠. 반드시 와야 할 의무도 없고 임금을 받지도 않는데요. 제가 원해서 온 자리입니다.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생각을 나누면서 제 자신보다 더 큰 가치에 기여한다고 느껴요. 참여하고 있다는 기분입니다. 이 일이 삶의 의미와 목적의식을 줍니다. 일자리의 미래에 대한 제 첫 번째 생각은 꽤 단순합니다. 두 글자로 표현할 수 있어요. "u"와 "n"입니다. "un", 즉 '비(非)'를 뜻하죠. 누군가는 직업이 있고 누군가는 저처럼 직업이 없겠죠. 지금쯤 눈치채셨겠지만 실직은 제게 안 좋은 것은 아닙니다. 인생의 최우선 순위이자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직장에 다니지 않고 살아남는 것입니다. (웃음) 저는 고용이라는 개념이 늘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말하자면, 제 인생을 책임질 수 있을 만큼의 나이가 되어 고지서를 납부하고 집이 있고 식료품도 살 수 있을 정도라면, 아이스크림뿐 아니라 브로콜리 같은걸요. 아이들도 길러냈죠. 그런데 무슨 연유에서인지 일주일 5일, 8시간 동안 누군가 제 자리를 대신해 우선순위를 맡아주는 것이죠. 아마도 미래 일자리를 떠올리실 겁니다. 미래의 일자리에 대한 강연이 될 것이라고요. 로봇과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질 거라라고요. 미래주의자의 관점에서 미래에는 신기술이 모든 직업을 대체하거나 첨단 기술과 관련된 새로운 직업군이 생겨나겠지요. 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기술 파괴에 따른 일자리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우선 저는 일자리가 증가할지 감소할지 모릅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 중에 '기술적 실업' '고용 없는 성장'이란 말이 있어요. 그러나 일자리 수를 결정짓는 요소는 정치, 기술, 인간행동, 경제 분야에 걸쳐 매우 다양합니다. 복합적인 것과 복잡한 것의 결정적 차이는 무엇일까요? 복잡한 문제는 뇌 수술이나 양자 물리학, 첨단과학 등 풀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하지만 지식, 규칙, 그리고 요령으로 풀 수 있어요. 복잡한 문제는 종종 예측 가능하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복합성은 정반대의 성격을 가집니다. 서로 얽히고설킨 요인들, 미지의 영역이 존재합니다. 차는 복잡하지만 교통체증은 복합적입니다. 일은 복잡하지만 일자리 수는 복합적입니다. 미래에 일자리가 더 많아질지 적어질지 알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몰라요. 둘째, 이 부분이 더 중요한데요, 저는 일자리의 수에 집중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보지 않습니다.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만의 유명한 일화가 있죠. 1960년대 그는 아시아를 여행 중이었습니다. 그는 수로 건설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인부들이 현대식 트랙터가 아니라 삽을 쓰는 모습에 굉장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가 질문하자 관료가 대답하길 "이해 못 하셨군요. 이것은 일자리 사업입니다." 밀턴은 대답했습니다. "당신들이 수로를 만드는 줄 알았어요. 일자리를 원하는 것이라면 그냥 삽 대신 숟가락을 주는 것이 어때요?" 우리의 목표가 최대한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있다면 그것은 달성하기 꽤 쉬운 목표입니다. 혁신을 멈추고 노동자들에게 숟가락을 주면 돼요. 옛날로 돌아가는 것이죠. 사람들이 답을 찾기 위해 온종일 도서관에 있었던 그때로 컴퓨터, 인터넷, 구글 그런 것들이 없고 디지털화 같은 위험한 기술에 반대하는 법률을 만들던 때로요. 코닥의 불쌍한 근로자들에 대하여 들었나요? 자율주행차라니요? 기가막히군요. 택시 운전사들은요? 의사들은요? 더 이상 운전 중 문자를 안 하게 되면요? 다쳐서 병원에 가야 했던 수 천명의 사람들이 더 이상 병원을 가지 않아도 돼요. 그들은 그렇게 안전하게 살아있겠죠. 그 사람들을 위한 일자리도 필요해요. 제 말이 이해가 되세요? 즉, 일자리의 수에 집착하는 것은 우리에게 도움이 안 돼요. 과감히 반대의 시나리오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더 적은 일자리를 꿈꾸는 거죠. 더 적을수록 더 좋습니다. 지금까지 자동화와 일자리의 역설을 말씀드렸습니다. 둘 다 원한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우리의 일자리를 지키거나 자동화를 통해 그 일을 안 해야죠. 더 많은 모순들이 있죠. 환경과 일자리를 살펴봅시다. 여러분은 안전한 식수, 신선한 공기가 있는 쾌적하고 깨끗한 도시 환경을 원하세요? 아니면 일자리가 더 우선일까요? 일자리로 공해가 증가해도요? 저는 인공지능, 로봇, 일자리 창출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미래의 일자리에 대한 다른 견해를 제시하고자 합니다. 제 아이디어의 핵심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일자리가 필요 없습니다. 도발적인 생각이지요. 당장 간절히 직장이 필요한 분들이 있을 수 있고요. 제가 많은 혜택을 누린 것도 인정합니다. 저는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두고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미래에는 일자리가 정말 필요하지 않습니다. 에이브러햄 매슬로의 유명한 연구인 "욕구 단계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욕구를 타고납니다. 맨 밑에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있습니다. 음식, 물, 집 등 기본욕구를 충족시키면 더 많은 걸 추구합니다. 사랑과 우정 마지막 5단계 욕구가 자아실현입니다. 욕구 단계에서 직업을 찾아볼 수 없어요. (웃음) 현대사회에서 기본 욕구는 돈으로 해결합니다. 기본적 욕구는 돈으로 대체할 수 있어요. 우린 돈이 필요하죠. 돈이 중요하지만 돈으로 충분하진 않죠. 부자가 꼭 아니라도 알 수 있죠. 어마어마한 부를 가진 사람들을 떠올려 보세요. 그들에 대해 우리가 아는 한가지 사실은 무엇일까요? 그들은 더 많은 것을 원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더 원할까요? 우선 돈이 필요하고 의미가 필요합니다. 돈과 의미가 있는 인생이라면 좋은 인생일 겁니다. 오늘날 선진국에서 돈과 의미를 얻는 방식은 대체로 직업을 통해서입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이란 보장은 없습니다. 지구에 인류가 머문 시간을 따져볼 때 인류는 지구에 20만 년을 살았습니다. 그 기간 동안 사람들은 대체로 직업이 없었습니다. 물론 일을 했지만 직장의 형태가 아니었어요. 사냥꾼이나 어부처럼 아침에 일어나 필요한 일을 했을 뿐이죠. 만약 지금 제 이야기가 진짜이고 직장이 필요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나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 집중해 보죠. 아시다시피 인구 수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인구가 77억 명입니다. 10억 명까지 20만 년이 걸렸고 70억까지 200년이 걸렸습니다. 선형 성장에 머물 수 없는 상황입니다. 순환 지속가능성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직장이 필요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나요? 현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으니 대책을 찾기는 어려워요. 대부분 극단적이고 무책임하고 터무니없고 비싼 대안으로 몇 십 년 전 환경론자들과 같죠. 지금은 다릅니다. 오늘날 환경문제와 관련된 극한 직업은 비즈니스에 우호적인 주장을 펼치는 것이죠. 바뀐 것은 없습니다. 지속 가능의 반대말은 지속 불가능입니다. 직장의 반대말이 자유 시간이라면요? 무슨 생각하실지 압니다. '순진하긴, 우린 그럴 여유가 없어" 라고 생각하겠지만 자유 시간의 대가를 말하기 앞서 현재 시스템의 대가를 짚어보겠습니다. 직장이 있는 사람들 전부가 부가가치를 창조하나요? 진지하게 묻습니다. 어떤 직업은 건강을 해치는 일을 합니다. 어쩌면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환경오염에 일조하죠. 무기나 담배까지 언급할 필요도 없죠. 아주 단순하게 음식을 놓고 볼까요? 현재 지구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너무 적게 먹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이 먹어서 죽습니다. 그게 현실이죠. 전 세계적으로 과체중, 암, 당뇨, 심장병으로 죽는 사람들이 영양실조로 죽는 사람보다 많습니다. 선진국들은 한참 멀었죠. 게다가 생산한 식품의 30~40 퍼센트가량을 폐기합니다. 돌아와서, 하루 8시간 근무하며 건강에 해롭고 목숨을 위협하는 쓰레기를 만들어도 그들이 가치를 창조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반대로 주장할 여지가 있습니다. 당장 멈추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만둬. 집으로 돌아가. 그만해" 노동자들에게 자유시간이 주어지면 사회는 오히려 얻는 게 많아집니다. 세계야생동물재단(WWF)에 따르면 50년도 채 안 돼 지구상 야생동물의 60%가 사라졌습니다. 현 시스템에 대가가 따르지 않았다는 말은 맙시다. 자유 시간의 대가로 돌아와서, 경제학적 관점에서, 경제학은 생산, 유통, 소비의 과학입니다. 과학이라기보다는 철학과 사상에 가깝죠. 효과적으로 정확하다고 평가되는 다양한 경제모델이 있습니다. 그중 제일 유명한 모델이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입니다. 공산주의는 베를린 장벽 붕괴를 계기로 패배했고 그 후 우리는 자본주의를 유일한 방안으로 여겨왔습니다. 모두의 인정을 받는 챔피언이 생기면 이런 문제가 생깁니다. 승자에 반대되는 의견을 내면 패자를 옹호한다는 인상을 피하기 어려워집니다. 철저히 좌절된 패자를요. 우리는 자본주의가 가진 문제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공산주의자라 치부하지 않고요. 자본주의로는 자유 시간의 가치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성장 대신 지속가능성의 가치를 이해하고 싶을 때 자본주의가 우리를 도울 수 없듯이요. 미래 비전에 대해 말하자면 우리에겐 첨단 기술의 미래가 있어요. 이 첨단 기술 미래사회에서는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가져갑니다. 인공지능이 모든 일을 하고 인간이 욕구를 충족합니다. 자본주의 제도에서의 첨단 기술 미래사회라면 기계를 가진 자가 모든 것을 차지합니다. 나머지 사람들은요? 그저 불쌍한 패자일 뿐이죠. 승자가 독식하고 나머지는 불쌍한 패자라면 게임은 끝난 것처럼 들리네요. 자본가는 시장이 필요해요. 고객이 없으면 자본가는 아무것도 아니죠. 그러니 변화를 시도해봅시다. 첨단 기술 기반의 문명화된 미래사회를 그려볼까요? 문명화된 첨단 미래사회는 '분배'에 더 집중합니다. 확고한 공유경제 기반을 확립한다면 자유 시간에 드는 비용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돈 문제가 전부는 아닙니다. 그게 다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의미도 필요합니다. 직업이 없다면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우울증, 가정 폭력, 자살 등의 문제가 있습니다. 실업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돈 보다 더 풀기 어려운 과제하고 생각합니다. 일의 미래가 궁금하시다면, 저는 이렇게 제안하고 싶어요. 사람들에 무슨 일을 하는지 묻지 마세요. 대신 왜 그 일을 하는지 물어보세요. 적극 추천하진 않아요. 몇몇 저녁 모임에서 이런 질문해봤는데 "왜 일을 하냐"라고 묻고 다니면 다시 초대받지 못할 수 있어요. (웃음) 주로 이런 대답이 돌아옵니다. "왜요? 왜겠어요? 돈 나갈 데가 많아요." 그러면 대답하죠. "물론 그렇겠죠. 저도 돈 나갈 데가 많아요. 월급 때문만은 아니죠? 다른 이유가 있겠죠?" 이제 아시겠죠? 다시는 초대받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자신 있게 왜 일을 하는지 대답하는 사람, 매일 8시간씩 직장에 가는 이유를 알려줄 사람을 만난다면, 그럼 알게 되겠죠. 그 사람이 말하는 일이 미래의 일자리입니다. "왜?"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여러분이 변화를 받아들이길 바랍니다. 우리 앞에는 많은 변화가 놓여있습니다.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과 함께 현재를 사는 우리는 몇 십 년 후 사회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저에겐 꿈이 있어요. 처음에 말씀드린 그 악몽은 아닙니다. 그 꿈에서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일을 합니다. 해야만 해서가 아니라 하고 싶어서 일을 합니다. 그 길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은 한 가지만 기억해 주세요. 일의 미래에 대해 논할 때 기억하세요. 우리는 일자리가 필요 없습니다. 고맙습니다.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