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지 않으시겠지만, 폭력은 오랜 세월동안 감소해왔고, 그리고 지금 우리는 인류 존재 이후로 가장 평화로운 시기를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폭력의 감소는 점진적으로 진행되지 않았지만, 폭력을 없애지 못했고, 폭력이 계속 감소하리라는 보장이 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에게 전쟁의 발발부터 어린이와 동물들을 위한 치료제까지, 폭력의 쇠퇴는 수천 년에 걸친 지속적인 역사적 발전이라는 사실을 납득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부터 폭력의 6가지 중대한 역사적인 쇠퇴와 이에 대한 설명을 우리를 폭력으로 물들인 심리학적 매커니즘의 관점과 에이브러햄 링컨이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로 표현한 우리를 폭력으로부터 떨어뜨린 심리학적 매커니즘의 관점, 그리고 우리 본성의 착한 천사들에게 우호적인 역사적 변화로 설명하겠습니다. 첫 번째 폭력의 쇠퇴를 저는 위무화 과정이라고 부릅니다. 5000년 전까지, 사람들은 무정부 상태로, 중앙 정부 없이 살았습니다. 이때 사람들의 삶은 어땠을까요? 음, 무정부 상태 대 정부 상태의 폭력의 비율을 짐작하는 방법은 법의학 고고학에서 왔습니다. 이걸 "CSI: 구석기 시대"로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많은 선사시대 유골이 폭력의 외상을 가지고 있는데요, 예를 들어서 으깨진 두개골들, 참수의 흔적들, 화살촉이 박힌 뼈들이나 목에 밧줄이 묶인 채 발견된 미라들이요. (웃음) 제가 21개의 추정들을 모았는데, 보시다시피 폭력으로 인한 죽음이 차지하는 범위가 꽤 크지만, 폭력으로 인한 죽음의 평균은 15% 정도 됩니다. 15%의 선사시대 유적지에서 폭력에 의한 외상의 흔적을 보여줍니다. 이 15%를 일부 현대 사회와 비교해 봅시다. 20세기의 미국과 유럽에서는 제 2차 세계 대전과 다른 많은 전쟁들이, 폭력으로 인한 사망의 1% 중 0.6%를 차지했습니다. 우리가 모든 대학살들과 인간이 야기한 기근들 까지 더해서 폭력으로 인한 사망률을 크게 계산해봐도, 폭력으로 인한 사망은 최대 3% 정도로 나옵니다. 그리고 21세기의 폭력으로 인한 사망률을 보면, 막대기가 안 보일겁니다. 왜냐하면 1픽셀 높이인 1%의 0.03보다 낮거든요. 폭력의 2번째 쇠퇴는 중세의 전형적인 하루를 보여주는 이 목판화를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웃음) 이러한 폭력의 정도를 낮춘 것은 문명화의 진행으로 불려왔습니다. 유럽의 많은 곳에서, 범죄역사학자들은 8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살인 통계를 도표화 시켰고, 이는 1200년도부터 2000년도까지의 10만명 당 연간 살인을 로그 스케일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보시다시피, 엄청난 감소가 일어나, 현대 영국인은 살인으로 죽을 확률이 그의 중세 조상의 35%밖에 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영국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역사 데이터가 있는 모든 국가- 이탈리아, 네덜란드, 독일, 스위스 그리고 스칸다나비아도 해당됩니다. 이 그래프의 빨간색 선은 방금 말한 다섯 나라의 평균을 보여줍니다. 비교를 위해, 왼쪽 상단에 점으로 무정부 사회의 비교되는 데이터도 표시했습니다. 무정부 사회의 데이터를 나타내는 점과 빨간색 그래프의 시작점 간의 틈을 저는 위무화 과정이라고 부르고, 그 후의 폭력의 쇠퇴를 문명화 과정이라고 부릅니다. 세 번째 역사적인 폭력의 쇠퇴는 유럽 각지에서 법과 질서가 집행 되었던 방식을 봄으로써, 즉, 가학적인 공개처형들을 살펴보면 알 수 있는데요. 예를 들어 바퀴에 묶어 굴리거나, 산 채로 태우거나, 철 고리로 햘퀴거나, 반으로 가르거나, 말뚝에 꽂기도 하죠. 하지만 인도주의 혁명이 전개됨에 따라, 주요 국가들은 범죄자 처벌에서 고문을 없앴습니다. 이 타임라인은 1625년부터 1850년까지 고문이 합법적이었던 국가들의 수를 보여주는데요, 그리고 보다시피, 18세기 후반에는 고문 폐지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미국 헌법의 8번째 개정으로 '잔인하고 끔찍한 형벌'의 금지가 이 운동의 중심 내용이었습니다. 또한 인도주의 혁명 동안 크지 않은 범죄에 대한 사형 집행도 금지되었습니다. 18세기 영국에는, 222가지 사형감이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밀렵, 위조, 집시의 회사에서 일하는 것, 그리고 7살부터 14살의 강력한 악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1861년에는, 주요 범죄의 종류는 4가지로 줄어들었습니다. 지금은 사형 집행이 미국을 제외한 서방 민주주의를 채택한 모든 나라에서 금지되었습니다. 여기 빨간 선은 1775년부터 현재까지, 사형을 집행하는 유럽 국가들의 수를 보여줍니다. 대부분의 사형 철폐는 20세기에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파란색 선은 실제로 사형을 집행하는 유럽 국가들의 수를 보여주는데요, 이것은 정치인들이 그들의 법전으로 사형을 집행하기 이전에, 시민들이 사람을 사형시키는 데에 관심을 꽤 잃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까 저는 미국을 사형 집행 폐지의 예외로 언급했는데 그 이유는 아직 미국 50개 주 중 33개 주가 사형을 집행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사형은 과거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이 그래프는 식민지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사형 집행을 보여줍니다. 보시다시피, 현재 미국에서 매년 16000건의 살인사건이 일어나지만, 사형은 40명에게만 집행되었고, 이 집행률도 지난 10년 동안 계속 감소하는 추세입니다. 마지막으로, 인본주의 혁명은 노예 제도를 폐지시켰습니다. 노예 제도는 전 세계에서 합법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성경은 노예 제도가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고 했고 민주주의 아테네는 노예가 먹여 살리는 사회였습니다... 하지만 18세기 후반에, 노예 제도 폐지의 조짐이 보였고 전 세계를 휩쓸게 되었습니다. 1980년, 모리나티가 사형 제도를 폐지했을 때, 우린 인류 역사에서 독특한 시기에 있었습니다. 지구의 모든 곳에서 노예 제도가 사라진 시기요. 네 번째 폭력의 쇠퇴는 긴 평화라고 불립니다. 이번엔 그래프를 설명하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긴 평화를 가장 잘 나타내는 숫자는 0이니까요. 그것은 역사상 전례가 없는 전쟁의 쇠퇴였습니다. 이 평화의 시기를 상징화하는 몇 가지 예시들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미국과 소련 간 전쟁이 이 시기에 없었습니다. 제 3차 세계 대전이 시간 문제라는 모든 전문가의 예측과 달리 말이죠. 나카사키 원자폭탄 투하 이후에 원자폭탄은 터지지도 않았고; 또 다시, 핵전쟁이 불가피하다는 모든 전문가들의 주장이 빗나갔습니다. 커다란 두 세력 사이에서는 1953년의 한국전쟁을 끝으로 전쟁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고, 커다란 힘을 가지고 반세기 가까이 다툼과 언쟁 정도만 있었습니다. 서유럽 국가 간의 전쟁은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로 없었고, 비교를 위해서, 1945년 이전까지, 서유럽 국가들은 매년 2번의 전쟁을 600년 동안 일으켰고, 1946년에서야, 유럽에서 더 이상 전쟁이 발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선진국 사이에서도 전쟁이 없었죠. 가장 높은 GDP지수를 가진 44개국 사이에서도 1946년부터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보통 전쟁이 가난한 지역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지만, 역사상 대부분 지속적으로 전쟁을 한 나라들은 부유한 선진국들이었고, 그들이 크고 파괴적인 군대에 돈을 쓸 수 있었기에, 전쟁으로 큰 피해가 발생했었습니다. 자 그럼, 세계의 나머지는요? 제가 새 평화라고 부르는 과정에서, 긴 평화가 세계의 나머지까지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걸 1946년부터 현재까지의 전쟁으로 인한 사망률을 두께로 나타낸 그래프로 설명하겠습니다. 여기 식민지 전쟁으로 인한 사망률은, 유럽의 제국들이 식민지를 포기하자마자 0으로 떨어졌습니다. 또 주 간 전쟁, 나라 간 패를 갈라 싸운 전쟁의 사망률도 가져와 봤는데요, 그래프는 뾰족하게 생겼지만 하향 추세이고, 각각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그리고 이란-이라크 전쟁에 해당하는 혹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여기 내전과 다른 나라들이 내전에 끼어든 형태인 국제화된 내전의 사망률을 가져와 보았습니다. 전체 스택의 높이는 전 세계에서 일어난 모든 전쟁의 총 사망률을 뜻합니다. 그리고 보다시피, 그래프는 울퉁불퉁해도 분명히 하향 추세를 보입니다. 21세기의 첫 10년에, 그래프에 나타나는 아주 얇은 층이 모든 카테고리에서 전쟁으로 인한 사망률이 전례 없이 낮은 것을 보여줍니다. 마침내, 권리 혁명입니다. 작은 규모의 폭력은 취약 계층으로 향했습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나, 여성, 어린이 그리고 동물들으로요. 평등권 혁명은 처음으로 사형 집행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19세기 말에는, 150명 정도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매년 사형을 당했는데요- 그건 매주 3번 사형이 집행된다는 것과 같습니다. 1950년대에 이르러서는, 그 숫자가 0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당했던 인종차별적 태도의 공격은 감소세에 이르렀습니다. 이 그래프는 미국 백인이 특정 의견에 동의하는 정도를 보여주는데요. 그래프는 흑인과 백인 학생이 다른 학교에 다녀야 한다거나 흑인이 이웃으로 이사를 온다면, 자신이 이사하겠다는 미국 백인들의 %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구부러진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미국 백인의 대다수에서 한 자리 수의 %로 떨어졌습니다. 그 뒤틀린 생각은 이제 여론에 끼지도 못합니다. 여성 인권 혁명은 1970년대 강간의 정점 이후 강간률을 80% 감소시켰고 가정 폭력에도 약간의 감소를 불러왔습니다. 아동 인권 혁명은 많은 미국의 주들에서 체벌을 금지시켜 학교의 구타와 구속도 없어졌습니다. 또한 구타에 대한 승인과 부모가 아이에게 행하는 여러 형태의 체벌들이 모든 서구권에서 감소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물리적이거나 성적인 아동 학대의 비율도 아동 학대가 처음 측정된 이후로 감소하게 되었습니다. 동물권 혁명은 미국과 영국에서 사냥의 감소와 채식주의의 부상을 일으켰고 동물에게 해를 끼쳤던 영화에 극적인 감소를 불러왔습니다. 자, 이것들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져줍니다. '왜 폭력이 많은 시간에 걸쳐 큰 큐모로 줄어들었을까?' 저는 인간의 본성 자체가 변화해서 폭력적인 성향이 우리에게 기인해왔기 때문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항상 엄청 복잡하고 두 가지 성향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요 우리를 폭력으로 향하게 하는 것과 폭력을 금지하는 것 입니다. 폭력에 대한 동기부여는 뭘까요? 저는 우리의 뇌의 아주 조그만한 부분이라도 공격적인 본능을 담고 있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단순한 착취와 같은 독특한 동기들이 있습니다. 사람의 피해가 개인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도중에 장애물이 되는 일이 벌어지고 그것은 강간, 약탈과 정복 그리고 라이벌의 제거와 같이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폭력의 동기에는 권세도 있습니다. 개인이 먹이 사슬에서 올라가 알파가 되고, 그룹을 동일한 동기로 단결 시켜 종교, 나라나 인종에서 패권을 잡기 위해서죠. 여기에는 복수나 도덕적인 폭력이 있는데 이것들은 폭력이 허용되야 하거나 폭력이 잘못한 자들에게는 필수라고 느껴지게 하는데요 결국 계속되는 복수와 거친 정의, 잔혹한 형벌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마도 가장 파괴적인 것은 유토피아 이데올로기나 무장 종교의 신념, 전체주의, 나치즘, 공산주의같이 영원히 좋아 보이는 세계를 보여주는 것들일지도 모르죠. "계란을 안 깨면 오믈렛을 만들 수 없어" 라는 말처럼 만약에 당신이 세계가 완벽할 거라는 신념을 가졌다면, 방해하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가치가 있는 일이겠죠.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역사상 가장 잔혹한 행위들은 도덕적인 유토피아를 향한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했습니다. 자, 그럼 우리가 이러한 폭력적인 경향을 거스르게 하는 것은 뭘까요? 우리 본성의 착한 천사라는 것은 뭘까요? 자기조절 입니다. 전두엽 피질의 회로에서 행동의 결과를 예상하게 하고 우리의 폭력적인 충동을 자제 시키죠. 공감도 있습니다. 다른 이의 아픔을 느끼는 능력이죠. 또 도의심도 있습니다. 규범과 금기를 인식하고 올바른 행동을 하도록 다스리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를 객관적인 분석에 참여하도록 돕는 인지 과정이죠. 마지막 질문은 이겁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가 역사를 심리학의 시선에서 볼 수 있을까요? 어떤 역사적인 발전이 우리 본성의 착한 천사를 불러내어 우리가 유혈 행위를 저지하게 할 수 있었을까요? 첫 번째 가능성은 토마스 홉스가 '리바이어던'을 칭송했을 때 얻었습니다. 합법적인 힘의 사용에 대한 독점을 가진 주 및 사법 제도. 폭력에 대한 독점을 한 주는 이웃을 공격하려는 사람의 충동을 예상 이득을 취소하는 인상적인 페널티의 사용으로 중화시킵니다. 마찬가지로, 그 인상적인 페널티로 당신을 공격하려는 이웃의 충동도 억제해 공격을 막으려는 호전적인 자세를 더 이상 취하지 않아도 되고, 복수를 추구할 필요도 없어지게 합니다. 이 독특한 페널티로 편견을 우회하며 폭력을 감소 시키는데 이게 모두를 자신은 천사의 편에 있고 적들은 공격적이고 불의에 찼다고 생각하게 하여 양쪽 다 항상 정산해야 될 것이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복수를 줄였습니다. 두 번째 원리는 부드러운 상거래 입니다. 약탈은 제로섬 게임으로, 약탈자의 이득은 피해자에 대한 손실로 없어집니다. 무역은 비 제로섬 게임으로, 모두가 이기는 게임입니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상품과 지식이 더 멀리, 더 다수에게, 더 저렴한 가격으로 거래됨에 따라 차라리 사는 것이 약탈하는 것보다 비용이 덜 들게 되었고, 사람들이 살아있는 것이 죽어있는 것보다 더 이득이 가게 되었습니다. (웃음) 세 번째 가능성은 확장되는 집단으로, 이것은 생물학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합니다. 저 혁명은 우리에게 공감을 주었습니다. 불행히도, 기본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동정심은 같은 피를 가진 친척, 가까운 동맹과 작고 귀여운 동물들 같이 좁은 집단에만 적용됩니다. 하지만 역사가 흐름에 따라, 문해 능력, 여행, 국제주의의 확장이 우리의 공감 대상을 가족에서 마을로, 씨족으로, 부족으로, 국가로, 다른 인종으로, 양성으로, 어린이들로, 그리고 아마도 다른 종에게까지 넓혀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성의 에스칼레이터 입니다. 문해 능력, 교육, 담화의 발달로 인해 대중들이 더 추상적이고 보편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는 이론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적은 이점을 극복하게 되었고 이것이 나는 나고 너는 아니기 때문에 특권을 혼자 가지는 것이 어려워졌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폭력의 효용성 주기를 인식하고 폭력의 효용성 주기에서 멀어지게 했으며 그리고 폭력을 이겨야 할 대회로 보기보다는 해결되어야 할 문제로 보는 시선이 많아졌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공통 분모란 무엇일까요? 저 4가지의 힘이 모두 다 평화로운 방향을 지향하는 것이 그저 큰 우연일까요? 아니면 다 이런 식으로 전개된 데에는 이유가 있는 걸까요? 저는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하고, 그 이유가 폭력이 게임 이론가들에게 사회적 딜레마라고 불리기 때문입니다. 폭력은 항상 가해자가 피해자를 활용하게 하려 유혹하죠. 물론 피해자에게는 파멸적이지만요. 장기적으로 보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위치가 바뀔 수도 있고, 누구나 가해자나 피해자가 될 수 있으므로- 모두가 폭력을 포기하기로 합의하는 것이 당사자에게는 더 낫겠죠. 딜레마는 이겁니다. 어떻게 내가 폭력을 포기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도 그리 하도록 할 수 있을까요? 만약에 당신이 자신의 칼을 쟁기로 만들었는데, 다른 사람은 칼을 가지고 있는다면, 아마 침략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인간의 경험과 독창성은 이 문제를 인류가 역병과 기아같이 인류에 천벌이었던 것에 맞서왔던 것처럼 잘게 해결해왔습니다. 4가지 힘의 공통 분모는, 모든 당사자의 물질적, 감정적 그리고 인지적 자극을 증가시키고 동시에 폭력을 피하는 것 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