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흥미로운 기념비는
사라지는 기념비이며
존재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기념비이고
이 이야기들을 복잡하게 엮어서
우리에게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기념비라고 생각합니다.
(사이렌 소리)
저는 오랜 시간 동안 더욱 반 기념비적인
접근 방식을 제안했습니다.
이 접근법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플랫폼이 되어주는 접근법입니다.
저는 뉴욕에서 3월 초에 코로나에 걸렸습니다.
제 건강상태는 나빠졌습니다. 원래 천식이 있었기 떄문입니다.
숨을 쉴 수가 없어서 고통스러웠고 고통 때문에 저 자신을 더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코로나 기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가족 중 누군가가 코로나가 걸려서
병원으로 갔고 아팠고
코로나로 함꼐 하지 못했는데
2주 뒤에 그가 죽었고
그런데도 장례식장은 가지 못한다는 이야기들이요.
멕시코인으로서 저는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의식과 사람들의 애도, 축하 같은 것들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고인의 삶을 마무리 짓는 일과
작별을 고하는 일이 지역사회의
생존자들에게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맞은 사람들에 작별조차 고할 수가 없는 상황에 있습니다.
브루클릭 미술관은 이 예술작품과
미국의 지역사회 사이에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서 노력 중입니다.
그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죽음과 작별을 기억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며,
우리가 모일 수 있는 방법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중국 문화에서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는 편입니다.
중국 문화권에서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이 아주 미신적이라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하면 더 많은 죽음을 불러오고 운이 나빠진다고 믿기 떄문입니다.
코로나 사태와는 상관없이 중국에서는 과거부터 이런 관습이 있었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사람들은 굉장히 겁에 질려 있거나
이 이야기 하기 두려워 하는 것 같습니다.
저의 이모가 지난 3월에 돌아가셨습니다.
이모는 사실상 우리 가족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이모를 떠나보내는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녀가 죽기 바로 직전인
음력 1월 1일에 우리가 그녀를 보았기 떄문입니다.
중국 사람들은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부적을 태우는 의식을 합니다.
그래서 페이퍼 마셰 조각품이 존재합니다.
페이퍼 마셰는 물질적인 물건을 대표하는 예술품입니다.
이 물건이 집이나 차, 아이폰이 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런 경험을 하지 못했고,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물리적 공간 같은 것을
가지지 못했으며,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과 물리적으로 함께하며 편안한 감정을 가지지도
못했기 때문에, 그 사실에 대해 슬퍼하지 않고
다음날도 무사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제 스튜디오에서 우리는 사람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고
생생한 이벤트에 직접 참여가 가능한
그런 예술작품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작품이 실시간으로 사람들에게 전해져서
어떤 지역 어느 시간대에 살던 우리 작품에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참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금이 간 모래시계"는 저희가 주문제작한 소프트웨어에
따라서 조작되는 로봇의 팔입니다.
우리는 acrackinthehourglass.net이라는 웹사이트를 통해서
가족이나 친구,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을 보낼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모래시계에서 모래가 떨어지고 떨어진 모래가
그림을 그리게 되어 있습니다.
모래로 그린 이미지가 나타나면
두 대의 카메라가 모래시계가 그린 이미지를 생생하게 방송해줍니다.
참여를 하시면 친구를 초대해서 함께 웹사이트에
로그인을 해서 작품을 볼 수도 있습니다.
작품은 스튜디오에서 사람들이
협동하여서 만들어 내게 되었습니다.
작품은 논의를 통해서 탄생하였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어떤 일, 아마도 외롭지 않고자 하는
열망에서부터 탄생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관람자가 브루클린 미술관의 홀에 들어섰을 때,
이 얼굴들 모두를 본다면
그는 방을 둘러싸고 그 얼굴들이
서로를 관찰하며 눈빛을 주고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초상화 속 대부분의 인물들이 관객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진 속의 인물을 멀찌감치 떨어져서 찍거나
다른 곳을 응시하지 않으며, 오히려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고 응시하면서 찍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모래시계가 그린 이미지가 천천히 기울고
중력으로 모래가 모두 떨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 때 초상화가 사라지고
모든 모래는 재활용되어
새로운 초상화를 그리게 됩니다.
여태 그려진 모든 초상화 중 수백 점 모두가
같은 적은 양의 모래로 만들어졌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그 사실은 정말로 중요합니다.
그림 주변에 보편적인 결속과
연결이라는 감각을 표현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땅 어느 장소에서 어느 누구에게나
이 일이 일어날 수 있고
그런 공감대는
우리를 하나로 엮어주고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이해하게 만들어줍니다.
사라짐, 덧없음이 우리가 기억을 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