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따라했다면
이런 소리가 날 겁니다.
틱! 탓, 틱! 탓, 틱! 탓,
틱! 탓, 틱! 탓, 틱! 탓,
잘못했을 경우엔 이런 소리가 나죠
틱 탓!, 틱 탓!, 틱 탓!
[사소한 물건. 큰 생각]
[줄넘기에 대한 생각. 키라 가운트]
줄넘기는 단순한 줄에 불과합니다.
밧줄이나 빨랫줄,
노끈으로 만들 수 있죠.
베베 꼬여 있죠(웃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중요한 것은 적당한 무게가 있어야 하고
쉭쉭거리는 소리가 나야 한다는 것이죠.
줄넘기의 기원이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아요.
고대 이집트와 페니키아에서
시작되었다는 몇몇 증거가 있죠.
그리고 줄넘기는 네덜란드 출신 정착민과
함께 북미에 전파되었습니다.
여성들의 옷이 좀 더 몸에 달라붙게
되면서 줄넘기도 중요해졌죠.
그리고 판타롱 바지가 유행하면서
여성들도 줄넘기를 할 수 있게 됐어요.
치맛자랏이 줄에 걸리지 않으니까요.
여자 가정교사들은 학생들을 지도할 때
줄넘기를 사용했어요.
심지어 남북 전쟁 전의 남부 아프리카
흑인 노예 아이조차도
줄넘기를 했죠.
1950년대 할렘, 브롱크스,
브루클린, 퀸즈에서
인도에서 줄넘기를 하는
수많은 여자아이들이 보이시죠?
때때로 줄넘기 두 개를 한 번에
뛰어넘기도 했습니다.
아니면 계란교반기처럼
따로 따로 넘을 수도 있었죠.
줄넘기는 메트로놈과 비슷하죠.
틱, 틱, 틱, 틱
라임과 리듬과 노래를
덧붙여서 할 수 있거든요.
줄넘기는 우리 동네가
이웃보다도 훨씬 멋진 곳으로
여겨지게끔 하는 공간을
창조했습니다.
흑인 여성들에게 더블 더치 줄넘기는
여전히 문화와 정체성의
강력한 상징입니다.
195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여성들은 스포츠와 거리가 멀었어요.
남자들은 야구, 농구, 축구를 했지만
여성들에겐 허락되지 않았죠.
하지만 이 시기에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여성들도 운동을 하기 시작한거죠.
남자들이 낄 구석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죠.
여성들만의, 여성이
힘을 갖고 있는 분야였습니다.
여성들이 빛날 수 있는 곳이었죠.
하지만 저는 소년들도
마찬가지였을거라 생각하는데요
왜냐하면 남자애들이 흑인 여자들이
줄넘기를 하면서 부르는 노래를 듣고
이를 힙합 뮤지션들이 자신들의 노래에
샘플링 했다고 생각하거든요.
(노래) 얼음, 쉐이크,
줄넘기를 잘하는 것처럼,
생선 휠레, 쿼터 파운드 버거,
감자 튀김, 차가운 얼음, 쉐이크
줄넘기를 잘 하는 것처럼.
넬리의 "컨트리 그래머"가 그래미 시상식
최우수 싱글이 된 이유는
사람들이 이미 유사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겠죠.
"우리는 레인지 로버를 타고
너를 향해 가고 있어 ..." 라는 부분이
"갈 거야 내 사랑 롤러코스터를 타고
달콤한 내 사랑, 널 절대 놓치지 않아."
흑인들이 사는 도시에서
성장한 이라면 누구나
이 노래를 알 것입니다.
성공은 따놓은 당상이었죠.
더블 더치 줄넘기가
이 노래를 꾸준히 퍼뜨렸고
구호와 동작도 함께 유지되면서
제가 말하는 "구전 운동"으로
자연스레 이어졌습니다.
말과 행동이 모두 퍼지는 거죠.
여러 세대에 걸쳐서 내려온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줄넘기가 그 전파에
일정 역할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죠.
기억을 전달하는데는
특별한 수단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줄넘기는 다른 모든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문화를 넘나들죠.
사람들은 앞으로 전진해야 했고
그래서 줄넘기가 필요했습니다.
저는 때로 가장 단순한 사물이 가장
창조적인 움직임을 만든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