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전능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노스웨일즈의 아름다운 에이버 폭포에서 인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마음TV '믿음은 자연스럽습니다' 편에 다시 오신 걸 환영합니다. 오늘은 우리들 일상의 대인 관계의 연결과 구조 속에서 괴롭게 하는 것들을 깊이 들여다 보면서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아무도 면역력이 없는 바이러스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 이것은 마귀의 가장 효과적인 도구 중 하나이면서 마귀의 가장 흔한 계략 중 하나 입니다. 저는 분노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예, 분노입니다. 얼마나 복잡하든 단순하든, 분노의 범위는 대인 관계의 명단처럼 끝이 없습니다. 달리 말해서, 세상에서 분노를 피하기는 불가능합니다. 문제는 누가 여러분을 화나게 하는지, 언제 화가 치밀지 그 분노가 어디서 오는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여러분이 분노가 치밀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입니다 성도님들, 지금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분노가 치밀 때마다 어떻게 반응하세요? 누군가 여러분께 상처를 주거나 잘못할 때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세요? 종종 우리의 반응은 분노의 뿌리에 우리를 취약하게 하기 때문에 그것은 위험합니다 분노가 마음에 뿌리를 내릴 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 그것은 여러분을 데리고 속여서 괴로움, 시기, 질투, 악의, 화, 다툼의 길로 이끌 겁니다 그것은 위험하고, 분노는 여러분의 영적 성장에도 위험합니다. 중요한 건 자연적인 분노의 심각성이나 분노할 권리에 대한 여러분의 인식이 아닙니다 중요한 건, 분노를 품어 키우면 치명적이라는 겁니다. 누가 여러분께 어떤 행동이나 말을 했던 분노를 품어 키우면 치명적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지켜야 하는 이유입니다. 성도님들, 마음을 지키셔야 합니다. 우리가 분노가 치밀 때, 상처가 되고 가해자를 비난하는 건 보편적입니다. 우리의 권리가 침해됐다고 느끼기 때문에, 상처를 받은 마음이 분노를 느끼는 건 권리라고 쉽게 믿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린 분노와 괴로움을 변호하며 용서할 마음이 없음을 정당화하려 듭니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그 주장의 근거는 육적인 것이고 영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육신의 법칙이고 영적인 법칙이 아닙니다. 성도로서, 우리의 표준은 이렇습니다. 여러분이 잘했건 잘못했건, 여러분은 분노를 품을 권리가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기준이고, 우리의 신념입니다. 여러분이 그 권리를 주장한다면, 여러분은 이미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내 상황을 몰라요! 날 둘러싼 사정도 몰라요!" 보세요, 여러분이 자신의 권리를 정당화 시키려고 내면에서 노력하고 시도하는 그 어떤 주장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기준은 바뀌지 않습니다. 분노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분노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끝. 여러분은 사람의 눈에 옳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본인의 눈에 옳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 여러분 삶의 목적의 소유자이신 분, 손에 모든 마음을 쥐고 계신 분 - 여러분은 분노할 권리가 없습니다. 만약에도 없고, 예외도 없습니다 성도로서 여러분은 분노할 권리가 없습니다. 끝. 분노할 일이 생깁니다. 예 - 생깁니다. 하지만 우리는 마음에 분노를 키우진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에 그런 죄를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보세요, 화가 나는 건 정상입니다. 그러나 분노를 품어 키우는 것은 죄입니다. 분노를 품어 키우는 것은 성령님을 근심케 합니다. 그런 판단은 여러분의 분노에 대한 주장으로 자신을 하나님보다 더 높은 위치에 두는 것이고 자신의 이기적인 주장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높은 위치에 두는 겁니다. 만일 마귀가 여러분을 속여 분노하는 것이 여러분의 권리라고 믿게 하다면, 여러분은 본인의 손으로 자신을 사슬로 묶는 겁니다. 더 위험한 것은 자신이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다는 겁니다. 이런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고립의 악순환에 쉽게 빠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분노한 마음으로 살 때 초래하는 결과입니다. 마음에 분노를 품고 있을 땐, 모든 것을 분노를 통해 봅니다. 오늘 이 아름다운 폭포를 와서 봐도 여러분은 분노의 렌즈를 통해 볼 겁니다. 분노를 통해 말하고, 분노를 통해 먹고, 분노를 통해 웃습니다. 분노를 통해 기도까지 합니다. 오늘날 많은 기도를 원수를 향해 하고 약함을 위해 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여러분은 분노한 채 잠을 자는데, 이건 오늘날 많은 악몽의 원인입니다. 여러분은 분노를 통해 사람들과 사귀는데, 많은 우리들은 오늘날 의미를 사람들의 행동과 행위에 두고 판단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생각 속에서 상상의 전쟁을 현실에 존재하지도 않는 문제까지 갖고 싸웁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행동을 우리의 좁은 인식과 잘못된 선입견을 통해 잘못 이해하고 그들의 동기를 잘못 판단합니다. 우린 쉽게 우리 자신의 행동은 합리화하면서 남은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우린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자신도 달성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기준으로 기대하면서 건강치 않은 육신에 기초한, 영적이 아닌 대인 관계로 이어가게 합니다 그러한 관계는 시작도 하기 전에 실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삶의 순환은 계속 이어집니다. 상처의 순환, 고통의 순환, 분노의 순환. 성도님들, 이런 것은 멈춰져야 합니다! 십자가에 못을 박아야 합니다 - 구세주의 십자가에! 십자가에서 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세요.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 그것이 하나님의 기준이고, 성도 된 우리의 기준입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 분노할 여지가 남아있지 않습니다. 구세주의 십자가에 원망의 여지는 없습니다. 분노할 권리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용서가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성경말씀 야고보서 2:10-11에서 처럼 - 오직 하나님께서만 어떤 죄가 다른 죄보다 더 큰지 결정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메시지를 마치면서, 마태복음 18장에 나오는 무자비한 종의 비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후에 여러분께서 이 비유를 한번 읽어보시라고 권합니다. 그리고 읽으시면서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 왜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그 좋은 선물을 다른 사람에게 베풀지 않는 걸까? 우리 마음에는 항상 육신과 영의 싸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세요 - 마음에 분노를 품을 때마다, 여러분은 육신에 복종하는 겁니다. 로마서 8:6-8을 기억하세요 육신의 세계에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 분노를 거부하시고 오늘 마귀를 대적하세요! 분노가 나지 않게 하므로써 오늘 마귀를 대적하세요. 어떻게요? 여러분에게 행해진 모든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 행한 것 이라고 보는 겁니다 누군가 나를 모욕할 때는 하나님 아버지를 모욕하는 겁니다. 누군가 나를 학대하면 하나님 아버지를 학대하는 겁니다. 누군가 내게 거짓말하면 하나님 아버지께 거짓말하는 겁니다 저 자신은 아무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마음에 원망할 자리가 없습니다 제겐 분노할 권리가 없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선지자 티비 조슈아 목사님의 말씀에: "예수님으로 인해 제가 아무것도 못 본 체할 수는 없습니다!" 잠언 19:11 이제, 성도님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자신을 풀어주기 시작하세요 어떤 형태로든 여러분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을 용서함으로써.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로, 지금 당장 분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세요! 지금 당장 상처의 굴레에서 벗어나세요! 놓일 지어다! 놓일 지어다, 전능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지금 여러분의 감정이 분노에서 자유를 얻었음을 선언합니다! 자유케 될지어다, 전능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 영혼 안에 있는 모든 분노의 사슬 - 지금 당장 풀릴지어다! 여러분 영혼 안에 있는 모든 억울함의 사슬 - 지금 당장 풀릴지어다! 여러분 영혼 안에 있는 모든 화나게 하는 사슬 - 풀릴지어다! 전능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마귀가 여러분을 자신과 연관 짓기 위해 사용한 어떤 사슬이든 - 여러분의 가족, 사업, 결혼, 재정에 - 지금 당장, 깨어질 지어다! 깨어질 지어다, 전능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멘! 저는 지금 그 사슬이 풀린 걸 봅니다! 그 사슬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지금, 여러분께 자유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기 시작 하세요. 하나님의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감사합니다, 주 예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