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관심이 많은 사진학과 학부생이었을 때 저는 저의 교수들이 전시회에 대해서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전시회는 마사 슈나이더(Martha Schneider)라고 부르는 미술관에서 열릴 예정이었습니다. 전시회의 제목은 "새로운 예술가, 오래된 과정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그 전시회에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갤러리에 포트폴리오를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시 19살이었고 대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마추어 예술가들에게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지속적으로 간청을 한 이후에 한 여성이 저의 포트폴리오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음주 그녀는 저에게 그 장소에서 개인전을 열 수 있는[웃음]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 개인전을 통해서 시카고 미술관과 휘트니 미술관이 제 작품 몇 점을 샀습니다. -[남성 인터뷰어, 카메라 밖에서] 당신은 굉장히 대담한 분이시군요? [존슨] 대담하기보다는 순진한거에 가깝죠. 바보같은 짓이었을 수도 있어요. 만약 지금의 저라면 그런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을 거에요. 그리고 그 갤러리에서 전시회도 못했을 거고요. [웃음] 저는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MoMa로 가지 않을거고, "이봐 내가 작품을 가지고 여기 왔어. 이걸 좀 보라고."라고 말하지도 않을 겁니다. ["라시드 존슨은 침착하다"] --[존슨] 그가 들어옵니다. [하우저 앤 워스, 어퍼 이스트 사이드] [마크 파요, 갤러리 관리자] --[파요] 특히 당신 작품의 경우에, 그림이 검은 색이기 때문에 입체적인 질감을 보는 게 어려워요. 사진이 평평하고 단조롭게 보일 수 있습니다. --[존슨] 사람들이 사진을 볼 때 실제로 작품의 질감이 얼마나 생생한지 깨닫게 되는 것은 멋진 일입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사진을 좋아합니다. [모두 웃음] 저는 19세기에 유행한 사진 처리 기법을 많이 사용해서 작업을 진행해 나갑니다. 그리고 이러한 소재를 사용해서 작업을 해 나가는 동안에 해야할 일이 있는데, 사진에 민감한 화학물을 종이에 바르는 일입니다. 이런 작업 과정 때문에 저는 종이에 많은 신경을 써야 했습니다. 그리고 소재와, 그 소재가 적용되는 방식, 그리고 물리적으로 제가 그것과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있는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저는 검은 비누와 왁스를 녹여서 붓는 일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것이 저에게 매우 자연스러운 발전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른 몇 가지 재료를을 잘 이해하는 데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재료들은 실제로 예술작품에서 사용된 적이 없는 것들이며, 이러한 재료를 저만의 방식으로 적용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스물 두 살이었을 때 저는 항상 러시아 터키 배스 하우스(Russian Turkish bagth house)에 갔습니다. 저는 그곳에 가서 땀을 흘리곤 했어요. 그리고 휴식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제가 스트레스를 잘 받는 편이거든요. [웃음] 그래서 그 공간은 저에게 성전같은, 거의 종교적인 공간처럼 되었습니다. 저는 항상 어떤 재료나 무언가를 찾아서, 정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심리적인 정화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정화에 대해서도요. [데이비드 코단스키 갤러니, 로스앤젤레스] 시어버터는... 제가 어렸을 때 저희 어머니가 서아프리카에서 시어버터를 가지고 오셨어요. 그리고 그게 우리 집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시아버터를 사용하니 우리가 마치 아프리카에 있는 것 같잖아?" 마치 이프리카산 버터가 우리 가족의 일상에 깊숙히 스며든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항상 가정적인 것(domestic)에 관심이 있었고,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만드는 것,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다른 필터를 통해 변형하거나 점유하는 데 관심이 있었습니다. [베니스 비엔날레, 이탈리아] 교수님이 저한테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어요.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집을 나가기 전에 거울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에 관한 작은 것들 중 무언가를 바꿔야 한다. 그리고 바로 그 사람이 너희가 생각하는 저희 자신이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너 자신이다. 여러분이 거울 앞을 떠나고 2분이 지나면 우리는 바뀌게 됩니다. [웃음] 그거 아세요? 그러므로 이 경우에 거울은 자신의 이미지를 해체하는 수단이 됩니다. 거울이 그 안에 있는 것들을 투영하기 때문이죠. 저는 사람들이 오브제를 보고 실제로 저의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바로 그 현재'의 공간을 다시 찾을 수 있는 오브제를 만드는 데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할 때 관람자는 "바로 그 현재"에 스며들 수 있게 됩니다. 제가 흑인이라는 사실과 이를 둘러싸고 발생하는 사안들은 저의 작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강력한 영향을 끼칩니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담론을 만들어내지요.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특성이 제 작품 전체를 다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저는 예술을 더 큰 예술사의 일부로 보고 작품을 만듭니다. 뉴욕은 삭막한 곳입니다. 예술가로 살아나기가 힘든 곳이죠. 저를 지지해줄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힘들어요. 저는 시시한 스튜디오를 몇 군데 가지고 있어요. [웃음]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제가 계속해서 작업을 해나가기를 원했다는 거에요. 그리고 얼마나 멀리까지 저 자신을 밀어붙여야 하는지 알았다는 겁니다. 뉴욕은 예술가가 되기를 원했을 때 여러분이 찾아올 수 있는 장소입니다. 이 장소에서 여러분은 여러분이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관심을 얻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존슨] 제가 담배 한 대 빌릴 수 있을까요? --[남성] 여기 하나 있네요. --[존슨] 고마워요, 사람들은 뉴욕이 역동적인 도시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잘 터를 잡지 않으면 [웃음] 이 삭막한 도시에서 버텨내지를 못할 겁니다. -[남성 인터뷰어, 카메라 밖에서] 원하는 일들을 다 이루셨나요? 잘 해 온 것 같아요. 잘 한게 맞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