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음악]
액션!
아주 크죠
정말 굉장해요
이들은 실제가 아니라는 것을
제 자신에게 계속 상기시켜야 했어요
우리가 만드는 것은 어찌보면
역사 영화라고 볼 수 있죠
촬영장에서 촬영을 할 때 저는 보통
이런 모습으로 있어요
여기 와서 윌리엄스버그 세트장 세우고
베를린에서 촬영하는 게, 상상으로 펼치는 놀이죠.
저한테도 유대인이 쓰는 언어로 드라마 찍는 게 대단한 일이었죠.
우리는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촬영을 하고,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의상과 의식을 다루니까요.
그러나 누구나 그 본질을 이해할 수 있어요.
이 작품은 아주 아름답고 특별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다른 두 세계를 보여주는 거죠.
이 작품이 신의 존재와 같은 걸 다룬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뭐랄까.. 누구나 목소리를 낼 권리를 다루는 거죠.
그리고 결단코 나와 같은 사람들은 실제로 그럴 기회가 없었어요.
대중 문화에서 이런 이야기를 통해 우리 스스로를 고찰할 기회는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우린 우리만의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어나가는지 잘 몰랐어요.
그래서 전 이 작품이 정확하게 하디시즘이라는 공동체를
제대로 나타낸 최초의 드라마라고 생각하죠.
이들은 실제로 존재하며, 아주 보편적이고 공감대를 형성해온
경험을 가지고 있죠.
하디시즘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이 작품을 볼 때, 그리고 저같은
작품을 보고 이 소녀가 정확히 이 문화에 맞게 살고 있었고
그녀의 꿈을 쫓기 위해 최대한의 용기를 낼 수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이 소녀도 마찬가지에요.
앤과 알렉사를 만나자마자 바로 친구가 되었어요.
그리고 만약 누군가가 이 이야기가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를
제대로 이해하게 될거라면,
그리고 정말 긍정적인 방향으로
문화적인 영향력을 끼칠 거라면, 바로 이 여자들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데보라를 만나고 나서 그녀의 책을 읽었고,
정말 굉장하다고 생각했어요.
자리에 앉아 단숨에 책을 읽었는데, 도저히 책을 내려놓을 수 없었죠.
그러고나서, 그녀가
"내 책을 TV 드라마로 만들어 보는 게 어때?"라고 했어요.
그래서 한동안은 안나와 제가 드라마를 만들고 싶어서
다양한 주제들을 놓고 작업해봤어요.
특히 독일에서 유대인으로 사는 것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죠.
저한텐 이 이야기가 한 젊은 여성이
스스로를 찾아 나서며
이 세계에서 그녀가 속할 공동체를 찾아나가는 여정이에요.
에스더는 19살 소녀죠.
브루클린 내 윌리엄스버그라는 지역과 사트말이라는 공동체에서
태어나고 자라왔죠.
- 에스더, 잊지마. 남자가 먼저 말하는 거야.
그녀는 매우 독실한 이웃들과 함께 성장했어요.
그리고 중매로 맺어진 불행한 결혼 생활로부터 탈출해서
베를린으로 날아갔죠.
그녀의 이야기는 특별하고 로맨틱해요.
뉴욕 브루클린의 윌리엄스버그의, 이렇게 아주 배타적인 무리를 떠나
여기서 선택의 여지 없이 살 길을 찾아나가는 게
굉장히 특이하다는 걸 느꼈어요.
아주 어린 나이부터 그녀는 스스로가 항상 남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죠.
항상 마음 속으로 의문을 품어왔고,
대담한 마음가짐을 지녔다는 사실로 인해
그녀는 늘 특이하다는 말을 듣고 살아왔어요.
사트말 유대교는 하디시즘 공동체로
헝가리의 사투 마레라는 마을로부터 유래됩니다.
그들은 대부분 홀로코스트에서 생존한 이들의 후손이고
세계 대전 후 뉴욕에 자리 잡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들로부터 이어져왔죠.
이러한 역사는 그들이 다른 하디시즘 공동체와는
다소 동떨어진 느낌을 주는데요.
왜냐하면 전쟁이 끝난 후, 과거와는 다른 그들만의 정체성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사트말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심각한 정신적 트라우마로 시달린 이들이 세웠습니다.
사트말 1세대에게,
제 생각엔 처음 1세대와 2세대에겐
이런 트라우마가 사트말 공동체의
사상적인 구조를 세우는 데 큰 원동력이 되었죠.
사트말 사람들이 이디쉬어를 모국어로 쓰는 것도 특별한 점이죠.
어느 정도는 그들이 이디시어를 존속시켜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 그런데 왜 하필 베를린이야?
- 생각을 해봐.
- 뭐라고?
- 정신나간 걔네 엄마가 베를린에서 살잖아!
오늘날 데보라 펠드만이라는 사람의 인생에 변화를 가져오는 점은
우리에게 정말 중요했습니다.
그녀는 어린 소녀이자 유명 인사이며, 대중적인 지식인이기 때문에
우리는 에스더의 베를린 생활이 실제 데보라의 베를린 생활과는
큰 차이가 있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선 지난 일에 대한 회상은 책을 기반으로 하지만
현재의 이야기는 모두 꾸며진 내용입니다.
진부한 클리셰를 벗어나고,
이런 공동체 속에서의 삶은 어떠할지 예상하는 걸
뛰어넘어야 합니다.
그 공동체의 전통 의상, 의식, 그리고 관련된 모든 것들을
정확히 고증했다고 인정받기보다는
우린 TV를 통해 내보내야 하기 때문에 이 인물들의 세상에 대한 생각들이
어떻게보면 진짜같다는 느낌을 빼고
더불어 한 단계 효과를 고조시키는 게 정말 중요했습니다.
여러분이 서로 다른 공동체를 나타낼 때에,
특히 겨우 명맥을 유지해온 공동체일 경우엔 전반적으로
세부사항을 정확히 설정해야 한다고 느껴요.
단순히 배우뿐만 아니라, 이 공동체에 뿌리를 둔 사람들이
화면에 나오든 나오지 않든 이 촬영에 참여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맨 처음 계약한 사람중 한 명인 엘리 로즌씨는
배우이자 번역가이고, 특히 이디시어에 관해서는
전문가였죠.
우리를 이끄는 가이드인 셈이었죠.
우리의 정신적인 리더였어요.
그는 대본을 번역할 뿐만 아니라
배우들이 이디시어로 말하는 걸 지도하고
우리가 모든 문화적 세부 사항을 놓치지 않게 도와주었으며,
라비를 연기 했죠.
이 공동체를 나타내는 대표가 되어서
제대로 된 공동체의 문화를 보여달라는 제의를 받았을 떄
음, 저는.. 그저..
바로 뛰어들었습니다.
완전히 초정통파 세계에서 촬영 장면을
촬영하고 감독할 때,
그의 조언이 없었더라면 방향을 잃었을 거예요.
우리가 보는 모든 걸
그저 눈으로 훑고, 관찰하고, 만져보는 게 아니라
이 공동체 속에서 여전히 살고 있는 사람들과 접촉하기 위해
우리 모든 팀원들이 뉴욕으로 두 차례 조사하러 떠났었죠.
우리 부서의 리더에게 최대한 많은 접근 권한을 제공하려 노력했습니다.
물론 이 여정은 마치 사냥과 같았죠.
좋은 인상으로 분위기를 느끼고
단지 구경하거나 정보들을 습득하는
일종의 이미지에 기반한 조사였습니다.
우린 주위를 둘러봤죠. 정말 많은 사진들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얻은 시각적 인상을 바탕으로
이 세계를 흡수하려 노력했습니다.
뉴욕을 돌아다니는 동안,
우리는 한때 사트말 사회의 한 여성으로서 그곳에서 자라고
결혼해서 첫 아이를 낳고, 모든 일을 겪었던 바로 그 윌리엄스
그분은 우리를 데리고 윌리엄스버그의 많은 곳을 갔고,
건물 외관의 변화를 소개해주었습니다.
슬라이크는 그녀가 사는 세상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고
그 와중에 저는 제가 나중에 작품의
인물들을 구현하기 위해 그녀의 말을 받아 적었죠.
우린 윌리엄스버그를 배경으로 과거 장면을 촬영하기 시작했어요.
그러고 나서 베를린으로 이동했습니다.
갑자기 느낌이 확 달라졌죠.
또한 이디쉬어에서 영어로 바꿔 쓰고, 의상과 화장 방법을 바꿨죠.
그 머리도 느닷없이, 정말 다양한 머리 스타일이 있었잖아요?
머리를 다 밀기도 하고, 가발을 쓰거나 이런 저런 스타일로요.
에스티는 굉장히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어요.
제가 이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데보라 펠만에게 말한 게,
사트마의 단정한 의상에서 서구 스타일로
옷을 바꿔 입게 되는 인물의 경험이었습니다.
그녀는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진행했고,
본인 스스로를 그 경험 속으로 밀어넣었어요.
티셔츠를 입고, 팔을 드러내고, 신체의 더 많은 부분을
드러내는 과정을 말이죠.
꽤 오래 걸렸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그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저는 데보라의 경험을 에스더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어요.
어떤 면에서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시대물 성격을 띠는 영화를 만들어서
오늘날 대중에게 보여주는 그 과정이 힘들었죠.
전통 의상을 제작하는 데 큰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서로 다른 두 세계를 배경으로 촬영되어서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의상을 제작해야 했죠.
게다가 주인공 에스티라는 인물은
성격뿐만 아니라 외모와 옷에도 둥근 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 책임 디자이너는 야외 촬영지를 미리 파악해서
어느 곳을 우리가 촬영에 사용할 것인지
그리고 그 촬영지와 잘 어울리도록
세트장을 어떻게 설치할지를 알았습니다.
촬영 장소가 조금 복잡했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뉴욕 장면을 여기 베를린에서 찍었기 때문이죠.
- 왜 하필 독일이야?
제가 참여했던 다른 영화들은
창문을 통해 밖에서 안으로 들어와
그 다음엔 내부에서 모든 걸 해결했죠.
아마 그래서 이번이 저한테는 최초의 경험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울프강은 훌륭한 카메라맨이에요.
그는 지금껏 훌륭한 몇 가지 작품을 촬영했습니다.
그는 조명 없이 자연광에서 촬영할 수 있고
즉흥적으로 자연스럽게 작업하는 능력이 있었죠.
우린 그의 손에 카메라가 달려 있냐는 농담도 합니다.
그는 다양한 종류의 빛을 결합하는 능력이 탁월한데,
우리가 외부 촬영지와 내부 세트장을 연결하고자 했기 때문에
조명(빛의 배치)을 세심히 다루어야 했어요.
울프강은 그 부분에서 아주 탁월했어요.
편집 작업을 할 때 촬영본을 보며 느낀 건
안과 밖을 구분하기가 힘들었다는 점이에요.
어떤 부분이 안에서, 혹은 밖에서 촬영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부분이 뉴욕에서, 또는 베를린에서 촬영되었는지를 말이죠.
- 에스티 여기 없나요?
쉬라 하스는 인재입니다. 얼굴 쓰는 게 대단해요.
그녀는 얼굴의 일부분만 움직이는데도
여러분을 울고 웃게할 수 있어요.
쉬라는 한마디로 엄청난, 정말 엄청난 배우예요.
재능이 뛰어납니다. 타고난 재능에 아주 열심히 일하죠.
더없이 즐거워요.
매일 쉬라와 일하면서 순수한 기쁨을 느꼈죠.
제가 생각하는 에스티가 지닌 가장 아름다운 점은
그녀가 이루말할 수 없이 노력한다는 겁니다.
그녀가 이 삶을 살아가는 내내 남들과 다르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그리고 그녀 스스로도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느꼈음에도
그녀는 항상 어딘가에 적응하려고 무던히 노력한다는 거죠. 정말로요.
또한 에스티는 절실하게 소속감과 행복감을 찾고자 한다는 거예요.
총 4명의 주요 인물들이 있죠.
에스티가 주인공이긴 하지만
다른 주요 인물들이 모두 사트말 사람으로
안과 밖에서 동시에 존재하는 일을 다루죠.
주목할 점은 그녀가 쫓겨나, 15년 전에 그 공동체를 떠난 점이죠.
바로 그 역할, 그 역할이 지닌 모든 것에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아밋 라하브가 다른 작품에서 연기한 걸 본 적이 없어요.
우린 그저 오디션에서 그를 만났고
그는 우리를 완전히 압도했습니다.
모든 장면에서, 그는 대단했죠. 타고났어요.
저는 그가 무척 순수하고 깨끗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약점은 아니에요.
그에겐 단 한 가지의 사실이자 그가 아는 유일한 사실이 있죠.
- 여기 어딘가에 있을텐데.
- 저기 있다!
- 여기 말야. 저 쓰러진 나무 옆에!
제프 윌부쉬와는 정말 특별한 일이 있었죠.
독일인인 우리 캐스팅 디렉터는
"아, 이디시어 할 줄 아는 독일인 배우 구했어요."라고 말했죠.
저녁 무렵에 알렉사와 제가 너무 피곤한 상태였는데,
사무실에 둘이 앉아있었어요.
한 남자가 들어오고 우리는 설명했죠.
"자, 이게 바로 우리 작품 스토리입니다."라며 모든 걸 말했죠.
그러자 그는 "이거 제 이야기네요."라고 했어요.
우리가 "뭐라고요?"라고 하니까
그는 이렇게 말했죠.
"저는 사트말 출신이고
이디시어는 제 모국어예요. 제 이야기네요."
모이쉬는 비극적인 인물이라 생각해요.
그에겐 많은 일들이 있죠.
그가 맞서 싸워야 하는 개인적인 문제들과 같은 것들이요.
그는 쫓겼고,
또한 쫓는 사람이기도 하죠.
그래서 그는 에스더를 찾으러 옵니다.
- 말해. 에스티는 어디 있지?
- 전화기야, 에스티는 어디 있어?
- 얀키, 너 미쳤냐?
사트말 전통 결혼식을 구현하는 작업의 첫 단계로
우린 여기 베를린에서 많은 엑스트라를 찾는 걸로 시작했습니다.
크고 수북한 턱수염을 가진 사람들을 말이죠.
그리고 이 사람들 모두 필요한 헤어 스타일과 화장을 받았죠.
이 작품에 관한 농담이 있는데요.
여자보다 남자들이 머리하고 화장해야 한다는 겁니다.
- 내 턱수염이 지금 자라고 있어.
근데 자르지 말래. (35까지)
꽤 복잡한 문화 유산이죠.
우린 제대로 구현하고자 했습니다
수많은 세부 작업이 필요했어요.
저는 가상에 존재하는 부부의 관계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나이와 성별에 따라 분류했습니다.
일종의 체계가 있는 셈이죠.
결혼식은 대규모의 화려한 행사입니다.
가족 모두 겪는 큰 기쁨의 순간입니다.
하지만 다른 공동체가 그러한 것처럼
사트말 사람들은 그 기쁨을 굳이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죠.
제 모든 걸 쏟아부었어요.
그러니 모든 게 제대로 이루어져야하죠.
전 모든 이들의 행동을 확인하죠.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대단히 즐겁지는 않아요.
우리에게 정말 중요했던 건
사트말 결혼식에 적절한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었죠.
그러고나서 또한 수많은 엑스트라를 섭외하고
의상을 마련했습니다.
가장 첫 과제이자 매우 힘들었던 과제가 바로
모든 장면을 이틀 안에 촬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장면이 바로 우리에겐 마치 대규모 할리우드 촬영인 셈이었죠.
촬영할 당시 날씨가 무척 더웠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모든 엑스트라들과 배우들이
거의 38도를 웃도는 더운 날씨에
의상을 겹겹이 입고
화장에다 가발까지 착용해야 했죠.
- 매일매일 세트장이 딱 지금 같아요. 일상이죠.
- 이미 익숙해졌어요.
- 이분이 여기 왕이라서 그래요.
- 그곳은 더워요.
- 너무 더워요. 제발 그 더운 곳에 다시 들여보내지 마세요.
우리에겐 저스틴 시무어라는 훌륭한 의상 디자이너가 있죠.
그녀는 전 세계를 무대로 하는 분이에요.
아주 융통성이 있는 분이죠.
꽤나 힘들었어요.
일부 의상은 여기서 구할 수 없었죠.
그래서 몇 가지 의상은 그녀가 직접 윌리엄스버그까지 가서 구해야 했습니다.
사트말 사람들은 이 슈트라이멀이라는 털모자를 쓰는데
우리는 그 모자들을 마련할 수 없었어요.
가격이 개당 140만원이 넘었죠.
모자 하나를 만드는 데 밍크 6마리 정도의 털이 들어가고,
우리에겐 털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진 않았어요.
그저 많은 양의 모자가 필요했죠.
그래서 함부르크에 있는 한 극단에서 인조 모피로 모자를 만들어주셨어요.
결국 이 작품에서 단 한 마리의 밍크도 희생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저는 슈트라이멀 모자의 모양을 잡고 있습니다.
털들을 모두 고르게 하고, 진짜 털처럼 빛나 보이도록 하는 작업이에요.
모자 하나하나 모두 크기를 달리 작업했습니다.
모든 엑스트라의 머리에 맞게끔 작업했죠.
저쪽에 텐트가 하나 있죠. 슈트라이멀로 가득합니다.
우린 저걸 슈트라이멀 텐트라고 부릅니다.
헤어와 메이크업 총괄 책임자인 옌스는
여태 화면으로 본 적이 없는 파이욧을 만들어냈습니다.
제가 본 파이욧 중 최고예요.
꽤 흥미롭습니다.
어제 우리는 엄청 웃었어요.
150명의 하시드 사람들을 밖에 세우니 꽤나 재밌는 그림이더군요.
누군가는 "저걸 봐! 유대인들이 베를린으로 돌아왔어!"라고 말했습니다.
항상 우리 팀은 작품 속에 현실을 나타내고자 노력했습니다.
다양성이 없다면 현실도 없죠.
그저 길을 건너는 행위일 뿐이에요.
베를린에서 우리가 원한 바는
정말 다양한 형형색색의 경쾌함을 자아내
우리가 고른 건축물에 반영하는 것이었죠.
우리는 서베를린이 있던 때로 돌아갔어요.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지어져 당시 시대상을 나타내는
특정 타입의 건축물이나 장소를 골랐습니다.
자유로운 공간을 넘어선, 무언가를 원했어요.
더 리드미컬한 곳을요.
실크는 필하모닉 옆에 있는 아주 훌륭한 촬영지를 찾아냈습니다.
지금껏 어느 누구도 그곳에서 촬영한 적도 없었고, 정말 완벽한 촬영지였죠.
그곳은 음악 아카데미로 1960년대에 설립되었습니다.
훨씬 가볍고 열려 있는 구조물로, 전후를 나타내야 했습니다.
소통을 나타낼 수 있어야 했어요.
낮은 권위의식도요.
건축물로 이런 걸 나타내는 셈이죠.
우리만의 음악 아카데미를 만들었습니다.
유대인과 무슬림 사람들이 함께 음악을 연주하는 곳이죠.
한편으로는 말도 안되는, 식민지로부터 벗어난 모순이기도 하죠.
마치 이런 거죠. "대체 왜 중동에서 온 사람들이
독일 음악을 연주하는 거야?"
예상치 못한 세계들을 하나로 묶는 말도 안되는 일인 거죠.
바로 이 점이 작품의 모든 부분에 반영되는 주제입니다.
이 음악 아카데미의 개념은 세계 곳곳에 있던 재능 있는 다양한 음악가들이
이곳에 모여서, 저마다 가진 악기로 함께 연주하는 것이죠.
TV는 열망의 대상입니다. (???)
우린 베를린의 다른 한 버전을 보여주는 게 좋았어요.
음악으로 가득 찬 모습,
놀라운 (역사적) 배경에 불구하고, 미래의 젊은이들과
과거의 음악이 만나는 그런 베를린이요.
이 작품은 역사 속으로 되돌아 가는 면이 있죠.
유대인 인물이 있고,
그녀의 인생을 구속하는 것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그녀가 속한 공동체에 트라우마를 남긴 그 근원으로 되돌아갑니다.
- 저 저택 보여?
- 나치가 유대인들을 강제 수용소에서 죽이기로 결정한 그 회의가
- 1942년에 저 저택에서 열렸어.
- 그런데 넌 여기서 수영한다고?
- 호수는 죄가 없잖아.
우리가 사는 세상과 그녀가 충돌하는 모습을 보면
물론 우리도 이 세상에 의문을 품게 됩니다.
베를린에서 이디시어로 작품을 촬영하기란,
모순적으로, 일종의 새로운 디아스포라를 보여주었죠.
이스라엘 국적과 미국 국적의 젊은 유대인들이
독일로 돌아온다는 점에서 모순적이죠.
이는 조직적인 동향입니다.
단지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음, 우리가 종교적인 맥락에서 벗어나
이디시어라는 언어를 재발견할 수 있는 장소라는 게 딱 들어 맞아요.
일리가 있죠.
이디시어로 된 예술 작품이 있을 거예요.
마찬가지로 극장에도 있겠죠.
그런데 이디시어로 넷플릭스 시리즈물을 만든다?
정말 놀라운 거죠.
다들 알다시피 베를린은 역사적 비극을 공개적으로 중요시 여깁니다.
그 점은 베를린을 아주 노골적이고 흥미롭게 만듭니다.
에스티는 이 곳에서 베를린처럼 행동하죠.
비슷한 성격을 더합니다.
우리는 그 점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독일어로 말했듯,
불합리한 전통과 악습을 끊는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