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리오: 예술가로서 제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제가 예술가의 범주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저는 언제나 모든 일들을 과격하게 진행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언제나 다른 식으로 진행합니다. 저의 작업은 모순과 대단히 관계가 깊습니다. 저는 모순을 포용합니다. 모순은 아름다움과 화(anger), 여러가지 다른 감정들, 그리고 인간의 몸과도 공존합니다. [라틴 음악] "이발소에서 울면 안돼(No Crying Allowed in the Barbershop)"라는 작품은 저의 기억을 재창조한 것입니다. 제가 다섯 살이었을 때, 저의 아버지는 저를 처음으로 이발소에 데리고 가셨습니다. 바로 집 근처에 있는 이발소요. 그 일은 축하할 일이었지만 결국에는 재앙적인 사건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발소에서 머리를 자르는 사람이 곱슬 머리를 어떻게 다루는지 잘 몰랐기 때문이에요. 저는 많이 울었고 무서웠습니다. 저는 머리 자르는 소리를 듣고 정신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일은 인종적 문제와 한 아이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두 가지를 합쳐 놓은 사건이었습니다. 저는 이 두 가지 요소가 저의 삶에 동시에 찾아왔다고 생각합니다. "이발소에서 울면 안돼"라는 작품은 남자다움과 관련된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아주 직접적으로 그것을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요. 그리고 이 경험은 어떤 방식에서 우주와도 연결됩니다. 이 작품은 아프리카 혈통을 가진 저의 아버지께 바치는 작품입니다. 아프리카계 후손으로서 저는 종종 우리가 출생했던 지역사회로부터 완전히 배척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모순이지만 푸에르토 리코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해가 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남성: 그가 8살 또는 9살이 되었을 때 저는 그 아이가 집의 천장에, 아이의 방에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왔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 그림때문에 행복해졌습니다. 루이사: 그는 항상 모든 것을 하려고 했어요. 집, 트럭, 자동차 같은 여러 가지를 그렸어요. 우리는 그가 그림 그리는 걸 보는 게 좋았어요. 왜냐하면 그가 적어도 한 가지 기술을 갖기를 바랐거든요. 노동자 계층에서 태어나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어떤 다른 일보다도 어려운 일이었어요. 저는 "예술가가 될거야"라고 말해본 기억이 없어요. 가능하지 않았고, 대안도 아니었죠. 저는 사회 노동자로서 일했고 예술가로서의 일은 잠시 보류해야 했어요. 저는 언제나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해야 했습니다. 한 가지 일이 잘 되지 않으면, 다른 일을 해서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제가 예술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설치미술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단순한 작품에서 더 나아간 것을 만들고 그에 대해 어떤 말을 해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저는 관객을 압도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이 제 작품을 보고 미적으로 불편함을 경험한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어요. 이 사실은 흥미로워요.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실제로도 이렇게 살고 있냐고 물어보거든요. 그리고 저는 그렇게 살지 않아요. 제 작품은 계산되고 의도된 겁니다. "범죄 현장(The Scene of a Crime)"이라는 작품이 휘트니 미술관에서 전시되었을 때 저는 그 작품이 사우스 브롱크스에서 가지고 와서 매디슨 에비뉴 중심에 설치를 한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라틴계 지역사회는 아주 접근성이 높은 곳으로 그려집니다. 그리고 "범죄의 현장"을 보면 거기에 노란 리본이 있어요. 그곳에 들어가서는 안되는거죠. 그 이유는 제가 매우 특정한 이 공간들과 매우 특정한 문제들을 신성한 것으로 구분했기 때문입니다. 관객들이 그 곳으로 들어가지 못할 때 그들은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과 직면해야 하는 순간이 오죠. 마치 커다란 거울 앞에 서있는 거나 다름없어요. 매번 저는 예술 작품을 만들고, 사회의 다양한 다른 분야로 들어가 정보를 수집합니다. 그리고 제가 현재 있는 곳과 사회의 나머지 장소를 하나로 모을 때 작품이 비로소 완성됩니다. 남성: 나는 알고 싶어. 우리가 감옥에 있는 너를 계속해서 만나러 와야 하는거니? 아니면 네가 없는 가족인 것처럼 살아야 할까? 네가 감옥에 있고 우리 두 사람이 여기 있으니까 말이야. 네 엄마가 이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신거 알잖아. 남성: 나는 네 기저귀를 갈기 위해서 한밤중에 일어나야 했어. 넌 여러 번 오줌을 싸고 울었지. 모든게 기억이 난다. 나는 네 입에서 처음으로 아빠라는 말이 나왔던 때를 기억한다. 나는 올해 너무 힘들었어. 주위의 사람들이 계속 세상을 떠났고 네가 감옥에 갔으니까. 마치 모든 재앙이 내게 닥쳐오는 것 같았어. 오소리오: 저는 사람들이 그들이 누구인지, 무엇을 보았는지에 생각하고 대화를 시작하기를 바랍니다. 더 많은 대중이 작품에서 느낀 것들을 공유했으면 좋겠어요.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서 있는지에 대해서도요. 남성: 아들아. 나는 너를 사랑한다. 오소리오: 저는 제가 원했던 것이 변화를 갈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사회적인, 물리적인, 그리고 영적인 변화요. 남성: 당신은 이발소, 택시, 농구장에서 대중예술 프로젝트를 해오셨는데요, 국내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한게 이번이 첫번째인가요? 오소리오: 아니요. 저는 산타 바바라에서 작업을 한 적이 있어요. 당시 작품의 제목은 "보존의 상태(state of preservation)"이었어요. 작품의 주제는 플라스틱이었고요. 저는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라틴계 가족의 전형적인 모습을 상상하고 작품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아주 부유하고 개방적인 가족을 찾아가서 그들이 사는 집 전체를 플라스틱으로 만들었습니다. [웃음] 그리고 그들은 세 달 동안 그렇게 살아야 했습니다. 모든 소중한 물건들을 플라스틱으로 감쌌죠. 놀라운 일이었어요. 그들은 정말로 개방적인 사람들이었으니까요. "가정 순례(Home Visits)"라는 작품은 종교와 관계가 있습니다. 성인을 방문하는 인기있는 종교적 행위요. 제가 어린 아이였을 때 성당 사람들이 과달루페 성모의 작은 성상을 들고 찾아오곤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현대 예술도 이런 방식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여성: 저기에 불꽃이 보이는 것 같아요. 오소리오: 왜 현대 미술 작품이 어떤 가정에 방문하고 다음주에는 다른 가정에 방문해서는 안되는 건가요? 새로운 세기에 대한 생각은, 아마도 저에게 새로운 시작이었을 겁니다. 저는 시간을 돌이켜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고 싶었습니다. 저의 사명, 저의 철학, 그리고 예술을 바라보는 저의 방식까지도요. 그리고 저는 다시 찾아내거나 창조해야 할 무언가가 여전히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앞에 있는 건 누구인가요? 소녀: 그건... [웃음] 소녀: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오소리오: 무슨 일이 있는지 이야기하는 거구나. 이야기는 티나와 그녀의 두 딸에 관련된 겁니다. 티나는 집과 소유하던 모든 것들을 화재로 잃었습니다. 그 일이 일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서 그녀는 소녀에게 작은 담요를 덮어주었어요. 그리고 가족들이 제게 들려준 수많은 이야기들이 그 안에 담겨있습니다. 저는 제가 그렇게 많은 것을 얻었지만 하룻밤 사이에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끌렸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했고, 다른 장소로, 다른 전시회로 계속 옮겨가야 했습니다. 이곳에 한 주동안 있었기 때문에 이 집이 그리울 거에요. 그리고 공간이 비어있게 되면 낯설게 느껴질 거에요. 어릴 때부터 저는 어딘가 한 조각이 빠져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뉴욕에 갔을 때 저는 말을 할 수 있었지만 잘 하지는 못했어요.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지만 그림을 그릴 수 있었어요. 하지만 그 그림은 온전한 것이 아니었고 진짜 모습은 파악하지 못한 채였어요. 그리고 가끔씩은 내가 영원히 소외된 존재라고 느꼈습니다. 내가 그곳에 있지만 완전히 그곳에 속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요. 그렇지만 예술가로서 저는 한 가지는 해결했다고 생각해요. 저만의 자리를 찾은 거요. 저에게는 분명한 사명이 있습니다. 제 작업을 통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어요. 세상 사람들이 제가 느끼는 이 소외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도 알게되었죠. 왜냐하면 저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많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