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프랑스 플럼빌리지 틱낫한 스님 Q&A 만약 내가 나의 조상을 모른다면, 또는 내가 고아라면, 어떻게 내가 부모/조상의 고통을 치유할수 있나요? 스승님 (Thay), 우리의 조상에 대한 이해에 관한 질문이... 두개가 있습니다. 질문은 이렇습니다: 나는 조상의 고통을 치유하고 싶지만, 조상이 어떤 고통을 받았는지 모를 경우 어떻게 해야하나요? 혈연관계를 가진 가족이 없이 자란 고아의 경우, 어떻게 부모/조상을 이해하고 치유할수 있나요? 두 질문은 서로 연관이 있는것 같습니다. 우리가 우리 조상의 고통을 알수가 없을 경우... 우리가 무엇을 할수 있을까... 우리가 실제로 전혀 우리의 어버지, 어머니를 모를 경우에요. 부모님과 전혀 접촉이 없었는데 어떻게 그들을 사랑하고 이해할수 있을까?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아버지도 살아있고, 어머니도 계시지만 그들과 제대로된 관계를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과 대화를 할수가 없고, 의사소통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아버지, 어머니를 잃고, 그들의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고, 어머니가 누군지 모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들이 이 세상에 없다면 만날수 있는 기회도 전혀 없겠지요. 그럼 어떻게 그들과 접촉할수 있을까요? 어떻게 그들의 고통과 행복을 이해할수 있을까요? 그럴경우 어떻게 우리는 조상에게 뿌리를 둘수 있을까요? ... 왜냐하면 뿌리가 없이는 진정으로 행복하기가 힘드니까요. 그러니 두 질문은 서로 연관이 됩니다. 깊이 보는 명상의 수련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와 접촉할수 있습니다 그들이 더이상 이세상에 없더라도, 그들이 설사 거절한다 할지라도요. 이곳 플럼빌리지에 한 비구니가 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아직 살아계신데, 그녀를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사회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인데, 자신을 딸을 잊으려하고, 과거를 완전히 부인하려 합니다. 그 비구니는 이런 편지를 썼습니다 - "아버지, 저는 어버지의 딸입니다. "만나뵙고 싶고, 접촉하고 싶습니다. 대화를 하고 가까이 있고 싶습니다" 라구요. 그런데 아버지는 거절했습니다. 우리 중에는 고아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부모님을 볼 기회도 없었고, 누가 아버지, 어머니인지도 모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수련을 통해서 우리는 그들과 접촉할수 있습니다. 우리의 몸, 느낌, 우리자신의 고통을 깊게 보면, 우리는 우리 부모님의 몸, 그들의 고통, 그들의 소망 등을 볼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옥수수 나무가 옥수수 씨앗의 연속인것 처럼요. 옥수수 나무는 옥수수 알을 볼수는 없지만, 자기가 옥수수 씨앗의 연속이라는걸 압니다. 옥수수 알의 연속이지요. 옥수수 나무는 자신의 모든 세포 하나하나 안에 옥수수 씨앗이 존재한다는걸 압니다. 마찬가지로 주의깊음을, 명상을 수련하는 사람은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와 접촉할수 있습니다. 부모님이 살아있지만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사람들보다 훨씬더 깊이있게요. 사람들은 자신의 부모님이 어떤 사람들인지...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양부모가 다 살아있지만, 제대로된 관계가 불가능합니다. 이에 대한 해답은 깊이 보기의 수련입니다. 그러면 우리 안의 아버지, 우리 안의 어머니를 볼수 있습니다. 우린 우리의 아버지와 비슷하게 생겼고, 비슷하게 느낍니다. 우리는 몸, 느낌,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의 부모님은 우리에게 몸, 느낌, 마음의 많은 부분을 전해 내려 주었지요. 이것을 알면 부모와의 연결됨을 느낄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아버지의 연속이고, 여러분은 여러분의 아버지입니다. 여러해 전에, 런던의 거리를 걷고 있다가, 한 서점의 진열창에 있는 책을 보았습니다. 제목이 "나의 어머니, 나 자신" 이었지요. 그 책을 사지는 않았습니다. (웃음) 왜냐하면 어떤 내용의 책인지 왠지 알것 같아서요. (웃음) 우리는 우리 어머니의 연속이고, 우리는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연결고리는 항상 있습니다. 그걸 알아차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안의 아버지에게 말을 걸수 있습니다. "아버지, 전 아버지가 거기 계신걸 압니다. "내 몸은 아버지로 가득 차 있습니다. "고통이 있으셨고, "어려움도 있으셨고, 그것들이 나에게도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저는 가르침을 만났고, 이제 우리는 함께 수련할겁니다. "우리 안의 부정적인 것들을 변화시키고 "훌륭한 것들은 더 키울것입니다. "이것들도 다 아버지에게서 온겁니다. "아버지께서 살아계실땐 "이런 긍정적이고 훌륭한 것들을 발전시킬 기회가 없었을겁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내 안에 아직도 있습니다. "이제 가르침과 상가(Sangha)와 함께, "우리는 같이 수련해서 이것들을 밖으로 드러나게 할겁니다. "우리는 함께 숨쉬고, 함께 걷고, 함께 앉아 명상 할겁니다. 그래서 우리를 위한 평화, 치유, 변화, 기쁨을 얻을겁니다." 이렇게 아버지, 어머니에게 이야기 할수 있습니다 실제로 직접 만나지 않더라도요. 마치 영적(spiritual) 조상과 유사합니다. 우린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못 만났고, 부처님도 한번도 개인적으로 만난적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지요. 우리 안에는 가르침의 몸 (Dharma body)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세포 하나하나 안에 살아 있습니다. 부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과 이야기할수 있습니다. "예수님, 제 안에 있으신것 압니다." 다른데 가서 예수님을 찾을 필요 없습니다. 그도 우리의 조상이고 우리는 그의 연속입니다. 우리는 그가 걸었던것 처럼 걸을줄 알아야 하고, 그처럼 빵도 나눌줄 알고, 그처럼 포도주도 주의깊게 따를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엠마우스 이야기에 보면, 세명의 여행자가 있었는데, 처음엔 예수님을 못 알아보았습니다. 그들이 묵을 곳에 들어가서, 어떤 사람이 저녁을 주문하고는 빵을 나누고 포도주를 따르는 모습을 보고는, 그들은 그 사람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지요. 그가 부활했다는 것을요. 그러니 빵을 주의깊게 나눌줄 알고, 두 손 안에 있는 빵조각을 즐길줄 알면, 예수님의 몸과 접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찬식 [聖餐式, Eucharist]의 의미이지요. 예수님과는 하루 24시간 언제나 만날수 있습니다. 그처럼 걸을줄 알고, 그처럼 앉을줄 알고, 숨쉴줄 알고, 그처럼 빵을 나눌줄 알면, 그러면 우리는 그와 항상 함께 있는 겁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깊이 있는 관계이지요. 이것은 피로 맺어진 우리의 조상과도 마찬가지이며, 영적 조상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한번도 불평해본적 없습니다... 부처님을 한번도 못 만나봤다고요. 부처님보다 2천5백년 늦게 태어나는 바람에... 못 만났다고 불평 안합니다. (웃음) 왜냐하면 부처님도 바로 여기 지금 이순간에 만날수 있다는걸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아버지, 우리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지혜와 통찰력은 주의깊음과 집중명상을 수련하면 가질수 있습니다. 제 답변이 괜찮았나요? (웃음) (종소리) (번역: 한국 주의깊음 수련 상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