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발데사리] 저는 언제나 사람들이 예술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들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말했어요. "왜 안되는 건데?
내가 이걸 예술로 만들기 위해서 뭘 할 수 있는거지?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거야?
[기계소리]
나는 예술작품을 만든다.
나는 예술작품을 만든다.
아시겠지만. 그게 좋습니다.
별안간에 저는 이것을 예술이라고 말했습니다. 누군가는 제 말을 믿을 것입니다.
저의 관심을 끄는 것은 삶에서의 부조리입니다.
[웃음]
[문이 닫히는 소리]
-안녕하세요 존.
-안녕하세요 마리.
-좋아요. 새로운 걸 가지고 왔어요.
-아 좋아요.
-그들 가운데 몇 개가...
-좋아요.
-질문이 있어요. 보여드릴게요.
-예술을 하는 것은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저에게 그것은 다른 것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거에요.
이 색깔이 아닌 저 색깔 또는 이 오브제가 아닌 저 오브제를 선택하는거죠.
그리고 계속해서 그 일을 반복하는 겁니다.
그 때 선택을 해야 합니다.
-좋아요. 이것들에 관해서 제가 할 질문은요
이 개별적으로 프레임화된 작품들을 당신이 원하는건 아는데요.
이들 프레임된 것들 각각을 원하시나요? 아니면 하나의 프레임
안에 프레임화된 하나의 프린트가 되기를 원하시나요?
-그들은 단일한 프레임이 될 겁니다.
-좋아요.
-글쎄, 지금이 아닌 나중에 그렇게 될 것 같군요. 다른 질문이
있는데요, 그에 대해 얘기할 수 있을까요?
-네. 그럼요.
-예술 세계에서 제가 만들어 온 것들을
저는 개념적인 미술, 미니멀한 예술과 연결짓습니다.
이건 그냥 끄적거린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 일이 조금 지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창고에 보관하기를 원치 않는 많은 작품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어떤 작품은 지나치게 고상했습니다.
제가 그림을 포기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그겁니다. 그 작품들이
지나치게 고상하다는 거요. 아시겠지만 적당한 붉은 색 옆에 적당한
푸른색을 배치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주 주의깊게 색깔들을 섞습니다.
저는 이와 관련해서 대단히 시스템적인 작품을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색상환(the color wheel)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저 남성이 좋습니다. 녹색의 남성이요.
너무 짙은 녹색입니다. 모르겠어요.
-아 그래요?
-저는 이에 대해서 아직 생각하고 있습니다.
-네. 조금 두드러지는 녹색이에요.
-네. 맞아요.
모르겠어요. 그것 말고 다른건요?
저의 아버지는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어머니는 루터교 신자였고요.
저는 감리교 교회에 다녔습니다. 지역 교회였어요.
저는 문학을 좋아하고 성경을 읽었습니다.
킹 제임스 번역본이요.
그리고 도덕적 의무에 대해서 깊이 생각했습니다.
그 때문에 이후 예술가가 되었어요.
예술은 제가 볼 수 있는 어떤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술이 부러진 뼈를 붙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이 은식처 같은 곳을 찾도록 도와주지도 않아요.
그리고 저는 사회 운동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제가 저의 여동생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 같아요.
저는 예술 학위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어요.
"어떻게 해서 먹고 살거에요?"
[웃음]
그래서 저는 교사 자격증을 받았습니다.
가르치는 일은 의사소통과 관련이 있습니다. 강의 자체는 그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학생들의 눈에서 나오는 그 빛을 봐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 빛을 보지 않는다면, 그들의 눈에서 빛이
보일 때까지 방법을 바꾸며 계속 노력해야 합니다.
저는 예술이 의사소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가르침을 통해서 어떻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지 배웠습니다.
그 뒤에 제가 교실에서 가르치던 가르침에 예술이
영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서 창의적인 가르침을 주려고 했어요
그리고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하고 있는 예술은
내가 교실에서 하고 있는 이야기이며, 그 역도 성립한다."
아시겠지만 그들은 서로 호환이 가능합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세상을 보아야 하는지 가르치려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어요. "만약 너희가 두 가지를 보고 있다면, 그들을 보아서는 안된다.
그 사이에 있는 것을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거기에 중요한게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우선순위를 정하곤 합니다.
만약 제가 저쪽에 있는 벽을 본다면,
벽에 걸린 무언가를 보는 것이 당연합니다.
저는 두 사물 사이의 공간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중요합니다.
단어는 우리가 의사소통하는 방식입니다.
이미지는 우리가 의사소통하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들을 왜 다른 범주로 분류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의 다양한 이미지 조각들을 보고 있을 때
그들 뒤에 어떤 단어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는 아마도 작가가 글을 쓰거나 시인이 시를 쓰는
방식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존이 UCLA에 있는 저의 스튜디오에 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회의를 했습니다. 그는 말했어요. "너에게 기회를
주려고 한다" 그 말에 저는 아주 신이 났어요.
그냥 그 말을 듣기만 했는데도요.
저는...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제 반 친구들 가운데 어떤 애들이
그를 위해서 일을 했다는 걸요. 작은 그림을 그리거나
선생님을 위해서 포토샵으로 그림을 그리는 등의 일이요.
제가 말했어요. "좋아요. 그게 뭐에요?"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어요. "내가 키우는 개를 산책시킬 사람이 필요하구나."
[웃음]
그래서 제가 말했어요. "좋아요."
"생각해 볼 시간을 주세요."
선생님은 제가 학교에서 문제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아셨어요. 제 학업과
대학원에 가야하는 문제나 제가 하고 있었던 생각들에 관한 문제들이요.
그래서 선생님이 말했어요. "매주 월요일에 개를 데리고 나에게 와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하기 시작했죠.
저는 그분이 저에게 인간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분은 자신의 일에 관해서 대단히 겸손한 모습을 보이세요.
그는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이곳으로 옵니다.
어떻게 작품을 만드는건지 보여주는데 그건 아주 긴 과정이에요.
직업에 대한 일생의 전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어요.
-처음 몇 년 동안 저는
작품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갤러리에 그것들을 가져다 놓았습니다.
한 작품을 가져다 놓는데는 3일이나 4일 정도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 뒤 하나의 작품이 다른 작품과 어떻게 어울리는지 보아야 해요.
한 작품의 크기가 다른 작품의 크기와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보아야 합니다.
모든 문제점은 하나의 작품이 옆에 있는 다른 작품과
잘 어울리지 않을 때 발생합니다.
[웃음]
그리고 저는 언제나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작품을 그곳에 가져다 놓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회고적인 전시회를 했고
그 전시는 로스엔젤레스 현대미술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모델을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그것이 다른 요소들과 어떻게 작용을 하는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말했어요. "내가 왜 그런 일을 하지 않고 있는거지?"
이것은 독일 크라펠트에서 전시되었던
미스 반 데어 로에가 만든 하우스 랑게라는 작품의 모델입니다.
제가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작품에서 지키고자 했던
주요한 원칙은 재료를 사용할 때 그가 사용한 것보다
더 좋은 재료를 사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주요한 재료는 벽돌입니다. 그는 벽돌을
딱히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흥미롭게도, 그는 자신의 아버지의 벽돌 저장소에서
작품을 만들었고, 그래서 그는 벽돌이라는 재료에 익숙했습니다.
창문이 달린 외벽 전체는
가짜 벽돌로 덮여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도 창문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미스 반 데어 로에는 정원의 뷰를 프레임하는 데 매우 신경을 썼습니다.
벽에 창문이 있는 곳에는
태평양과 캘리포니아 남부의
풍경이 보여지도록 풍경을 대체했습니다.
그러나 각 창문의 앞면을 보면
관객이 자리에 앉아 뷰를 감상할 수 있는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사용하던 의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한 벽쪽을 보면
소파를 추가해서 장소를 가공했는데, 그 소파는 귀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그 소파 양 측면에는 위 아래를 뒤집은 코가 두 개 있고
콧구멍에서 꽃이 나오거나 빛이 나오게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요소를 미스 반 데 로어가 싫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요소가 오히려 미스 반 데 로어의 작품을 영화롭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살아있는 동안 충분히 유명세를 누렸습니다.
저는 재미로 그의 작품을 차용하고 그 이면을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실제로 저는 영화의 스틸 사진들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영화의 장면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저 그림들을 싼 가격에 살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한테 이것은 이미지의 데이터 뱅크를 사용하는 거였습니다.
사람들은 머리에 그 이미지를 담아두고 그것들을 가지고 놀면서
그 이미지를 자신들을 위해서 재배열했습니다.
제가 구입한 다수의 사진들은 신문에 실렸던 것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지역 유명인사 같은 사람들이 등장했습니다.
시장, 소방서장, 고위 인사들이요.
그들 다수가
무언가를 기리키거나 악수를 하거나 미소를 짓습니다.
공식적인 사진 찰영 기회에서 찍힌 것들이에요.
대통령 옆에 서있는 것 같은 거요.
저는 이런 사진들이 마음에 들었지만 별로 좋지 않기도
했어요. 그리고 깨달았죠. 제가 그 사진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은 이유가
저는 제 스튜디오에 고립되어 있었고, 이 사람들이
결정을 내리고 그것이 저에게 영향을 끼칠 수도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그와 관련된 어떤 일을 하고 있지 않았어요.
그것 때문에 저는 예술과 관련해서 제가 하는 일을 처음으로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어디에도 쓸모가 없었어요.
저는 이런 가격표 스티커를 사용하고 있었고
얼굴에 그 스티커들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말했어요.
"놀라운데."
저는 "경작되는 땅은 고르다"라는 구절을 계속 사용합니다.
어느 순간 갑자기 그들은 저에게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했고, 저는 그들을 그 자체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바뀔 때도 그들은 대체가능했습니다.
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지나치게 구속적인 구조는 성장을 저해합니다.
제 말은,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자유롭지 않은 구조는 무엇도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울타리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생각을 둘러싸는 울타리입니다.
우리는 이 울타리를 움직일 수 있지만 아주 조금만 바꿀 수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창의성을 촉진하는 제한된 움직임입니다.
저는 다양한 인체의 일부를 사용해서 여러 해 동안 작업을 했습니다.
저는 제가 코를 가지고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뒤에는 귀를 만들었어요. 그 뒤에는 코와 귀였습니다.
저는 지금 깊은 주름살이 있는 이마, 그리고 눈썹을
가지고 작품을 만듭니다.
우리는 언제나 같은 생각으로 되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방향에서부터 올 수밖에 없어요.
우리는 다음에는 개의 눈썹을 사용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