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막제공: SNOW.or.kr (본 자막은 SNOW 자원활동가들에 의해서 제작되었습니다)** 지난 시간에 1789년 까지 강의를 했었습니다 바스티유 감옥 습격 사건은 6월에 있었는데 파리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에서 무기들을 얻길 바랐고 또 몇 몇 정치범 들을 풀어주기 위했기 때문에 저지른 일이었습니다 파리 시민들은 루이 16세의 압제에서 그들 자신을 지키기 위한 한 방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루이 16세는 마지못해 왜 바스티유 습격 사건이 일어났는지 조사해보고는 말했습니다 “그래 프랑스 국민 의회 (The National Assembly) 내가 더 이상 너희 길을 막지 않을게” 그는 불길한 징조를 읽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가 뭔가 할 때마다 더 극단적인 반작용을 불러일으킬 뿐이었거든요 그래서 1789년 말에는 프랑스에서의 혼돈이 더 이상 걷잡을 수 없어졌습니다 국민 의회는 그들은 헌법을 제작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렇지만 1791년 까지 완성하지 못하지요 그렇지만 그들은 여러 가지 일들을 긁어 모으기 시작했어요 헌법의 초안을 만들기 위해서요 그렇지만 1789년 8월에 그들은 이미 그들 버전의 독립 선언서를 만들었었습니다 프랑스 인권 선언 (The Declaration of the Rights of Man and of the Citizen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이었지요 그러니까 만약 모든 일이 다 잘 되었다면 우리는 단지 몇 년을 기다리기만 하면 됐습니다 그러면 헌법도 만들어 졌을 테고 어쩌면 입헌 군주 정체 비슷한 정치 체제도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불운하게도 특히 루이 16세에게 불운하게도 모든 일이 잘 굴러간 것은 아닙니다 저번에도 언급했듯이 이런 모든 일들이 전파 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시작된 것은 모두 사람들이 굶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국가 재정 위기가 있었지요 기근도 왔습니다 그리고 1789년 10월에 우리는 여전히 1789년을 공부하고 있습니다만 10월에 루머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가 베르사유 궁전에 먹을 것을 비축해놓고 있다는 루머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베르사유 궁전에 거대한 음식 무더기가 쌓여있다고 상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들이 먹을 빵을 구하지 못하던 그 때 일어난 일입니다 빵은 아주 주요한 식량이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소작농 부인들이 베르사유 궁전으로 가두시위를 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무장했지요 소작농 부인들이 베르사유 궁전으로 가두시위를 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입니다 그들이 베르사유 궁전으로 행진했는데 실제로 그 궁전 안으로 들어가기 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베르사유 궁전에서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은 왕과 왕비가 파리로 거처를 옮기라고 요구했습니다 여성들의 시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요구를 관철시켰습니다 결과적으로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파리에 틀어박히게 되었습니다 파리에서라면 그들이 못된 일을 예를 들면 곡물을 비축해놓는 일 따위를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다지 친밀하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감시할 사람들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게 되었습니다 내 생각에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역시 사람들이 굶주렸다는 것인 것 같습니다 왕이 곡물을 비축해놓는 다는 소문이 돌았죠 또 이런 소문이 돌았는데 바로 왕이 새 프랑스의 상징인 프랑스 국민 의회에게 상당히 무례하게 군다는 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것도 사람들을 화나게 만들었죠 그래서 전반적으로 상상할 수 있다시피 모든 사람이 루이 16세를 포함해서 그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말로 관심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미 만들어 지고 있었던 일종의 입헌 군주국에도 관심이 없었고 프랑스 국민 의회에게 잃게 되는 그 힘에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1790년에 들어가면서 굉장히 안 좋은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왕과 왕비는 기본적으로 가택연금에 처해지게 되는데 튈르리 궁전 (The Tuileries) 이라 불리는 건물에 갇히게 됩니다 프랑스 국민 의회가 이 헌법의 초안을 작성하고 있었던 것은 이미 알고 계시지요 그들은 헌법의 초안을 만드는 계획을 저기에서 세웠습니다 그들은 테니스 코트의 서약에서 모두 맹세했습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프랑스 전역에 반대하는 반란이 있었습니다 여기가 프랑스입니다 이 프랑스 전역에 반대하는 반란이 발생했습니다 진행되고 있는 혁명이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들의 짓이었습니다 그러고는 진압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서로에게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한 귀족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런! 그거 알아? 일이 진행되는 꼴이 마음에 안 들어 우린 이미 많은 폭력을 목격했다고 사람들이 열이 받았어 난 그냥 내 돈이나 어쨌든 뭐든 싸갈 수 있는 걸 짐 싸서는 그냥 이 나라에서 빠져나가야겠어 난 이 나라를 떠나서 이민을 갈 거야” 그렇게 귀족들이 프랑스를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망명 귀족 (The emigre 프랑스 혁명기의 망명 귀족) 이라고 불렸습니다 나도 내가 발음을 부정확하게 하고 있는 걸 압니다 그렇지만 이런 식이었습니다 “이런! 나는 프랑스에서 혜택 받고 살았어 그렇지만 더 이상 그렇게 운이 좋을 거 같진 않아 난 떠나는 편이 낫겠어” 그리고 이런 생각이 이제 우리는 1791년을 공부하고 있습니다만 그러니까 1790년엔 단지 많이 불안해할 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1791년에는 위험에서 도망치려는 그런 생각이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머리 위에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나라를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레이트 브리튼 (영국, 스코틀랜드, 웨일즈) 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다른 어느 국가도 그들에게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거라고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장군 중 한 명이 그들을 안타깝게 여겨 말했습니다 “이봐요 적어도 국경까지 오면 어때요? 그럼 지금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불안을 좀 줄일 수 있을 거 에요” 그래서 진짜 하인처럼 차려 입고 이 일이 바로 그들이 어떤 타입의 사람인지 잘 보여주는 일입니다만 그들은 하인처럼 차려 입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의 하인은 귀족처럼 입혔지요 그래서 그들이 파리를 빠져나가다가 습격 당해도 목표가 되지 않게요 하인처럼 차려 입고 왕과 왕비는 그 왕은 이 장군의 사유지로 탈출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바렌 (Varennes) 에 있을 때 발견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들을 사로잡아서 다시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이것은 바렌으로의 탈출 아니면 파리로부터의 탈출이라고 불립니다 아니면 파리로부터의 탈출이라고 불립니다 그러니까 루이 16세는 이미 재난의 징조를 알아차렸습니다 그들은 도망가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그들을 다시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자 당신이 상상할 수 있듯이 벌써 많은 사람들이 왕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왕이 존재한다는 개념도 싫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혁명적이고 가장 과격한 부류라는 자코뱅 단원들이 있었습니다 왕과 왕비가 탈출을 시도했다가 잡혀온 이후로 그들은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이럴 수가! 도대체 왕이 있는 게 무슨 소용이람? 너희 프랑스 국민 의회 너넨 왜 어떤 권력이든 간에 권력을 왕한테 줄 수도 있는 그런 종류의 헌법을 만들려는 거야? 우리는 공화국제로 가야 해” 물론 공화국이라는 것은 미묘한 정의 차이가 많지만 어쨌든 가장 간단한 정의는 왕이 없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황제가 없고 여왕도 없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말합니다 “우리는 필요 없어 너도 알잖아 너희 프랑스 국민 의회 말이야 너흰 스스로 급진적이라고 생각해 그렇지만 충분히 급진적이진 않은 것 같아 우리는 전적으로 군주제라는 왕이 존재하는 형태를 완전히 제거하고 싶어” 그리고 루이 16세가 실제로 달아나려고 했었던 사실 때문에 루이 16세는 왕좌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퇴위하거나 혹은 그만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실제로 파리에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여기가 바로 마르스 광장 (The Champ-de-Mars) 입니다 내가 발음을 완전 틀리게 하고 있는 것은 나도 압니다 이것은 광장의 최근 사진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이 공원에서 서명을 받기 시작했고 또 말했습니다 “우리는 왕이 필요 없어 우리는 우리만의 공화국을 만들기를 원한다고 그 프랑스 국민 의회는 충분히 급진적이질 못해” 그래서 사람들이 이 쪽 마르스 광장으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일이 약간 험악하게 돌아갑니다 진짜 군대가 일종의 사람들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리고 사실 이 군대는 프랑스 국민 의회의 지시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제 3계급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일이 약간 말도 안 되게 돌아갑니다 몇 몇 군인이 돌을 맞았습니다 몇 몇 군인은 처음에는 허공에 총을 발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일이 완전히 이상하게 돌아갔을 때 그들은 군중을 향해서 총을 발사했습니다 50명 정도가 죽었습니다 대학살이었습니다 혹은 마르스 광장의 대학살이라고 불러도 좋습니다 나도 발음이 틀렸다는 것을 압니다 이건 프랑스 발음 강의가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당신은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사람들이 더 화가 났다는 것을요 사람들은 여전히 굶주리고 있었습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왕과 왕비는 마지못해 했습니다 모두들 그들이 아마 재집권을 하려고 시도할 것이라고 의심했습니다 그들은 도망치려고 시도했었습니다 자코뱅 단원들이 아니면 자코뱅 단원들이 이끄는 대부분의 혁명가들이 이런 것을 제안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봐 우리는 공화국이 있어야 해 심지어 왕도 필요 없다고” 그리고 그들은 사람들을 여기에 모았습니다 갑자기 현재 프랑스 국민 의회가 통제하고 있던 군대들이 실제로 군중을 향해 총을 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이 돌을 던졌다는 이유로 민간인을 죽였습니다 어쩌면 큰 돌이었을지도 모르지만요 그렇지만 당신은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일이 이미 배가고프고 이미 억눌렸던 사람들을 훨씬 더 화가 나게 했다는 것을요 그리고 사람들을 좀 더 편집증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왕과 왕이 어쩌면 결국 재집권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했죠 갑자기 프랑스 혁명의 가운데에 들어오려고 노력하는 두 세력이 생긴 것입니다 나는 이제 여기서 약간 한 쪽으로 가보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게 내가 처음으로 유럽사를 배울 때에 가장 혼란스러웠던 것이기 때문이죠 이런 상태였습니다 내가 주황색으로 강조한 부분이 오스트리아입니다 여기 이 지도는 일종의 현대의 지도입니다 그렇지만 주황색은 내가 그 시절의 오스트리아를 표시한 것입니다 1789년 1790년 1791년쯤이었지요 이 빨간 부분은 프러시아입니다 나는 이것들이 현재의 오스트리아 같은 개념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오늘날의 오스트리아는 이 현대적인 나라로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프러시아는 이미 현대의 나라로 존재하지도 않지요 그리고 당신이 갖고 있는 신성 로마 제국이라는 개념은 이 다른 왕국들과 겹칩니다 아니면 제국들과요 아니면 뭐든지 당신이 원하는 대로 부르세요 나는 약간 측면을 보길 원합니다 신성 로마 제국 (The Holy Roman Empire) 은 볼테르가 말한 유명한 말처럼 성스럽거나 (Holy) 로마이거나 (Roman) 제국 (Empire) 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옳았습니다 그것은 사실 독일의 왕국들과 나라들의 헐거운 연맹이었을 뿐입니다 주로 독일의 왕국과 나라들의 당신이 볼 수 있듯이 이곳은 현대 독일과 일치합니다 그리고 신성 로마 제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두 세력은 아니면 신성 로마 제국에서 실제로 가장 영향력 있었던 세력은 오스트리아였습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통치자가 신성 로마 제국 황제라는 칭호를 가졌습니다 레오폴드 2세 (Leopold Ⅱ) 였습니다 그러니까 레오폴드 2세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입니다 그렇지만 그가 옛날의 로마 제국의 황제들을 같았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옛날의 로마 제국의 황제들은 실제로 로마에서 떨어져 나왔습니다 주목하십시오 그 시절의 신성 로마 제국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로마에 대한 지배력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로마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라틴어를 말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게르만 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국도 아니었습니다 그건 단단히 결합된 통치 구조가 아니었습니다 나라들의 느슨한 연맹이었을 뿐입니다 가장 영향력 있는 지방은 오스트리아 아니면 레오폴드 2세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합스부르크 (Habsburgs) 였습니다 그가 장악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라는 칭호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를 실제로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 생각에는 그 시절의 이런 점에서 당신이 제국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는 또한 마리 앙투아네트의 오빠였습니다 레오폴드 2세는 그녀의 오빠였습니다 그러니까 레오폴드 2세와 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 (Frederick William Ⅱ) 가 있었습니다 프러시아는 또 주요한 게르만 계 나라였습니다 더 괜찮은 색으로 써 볼게요 그들은 필니츠 선언(The Declaration of Pillnitz)을 발표했습니다 여기 칠판에 써 볼게요 그러니까 이건 프랑스 주민들의 일을 한 층 더 꼬이게 만들었습니다 필니츠 선언 그 일은 8월에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주 분명하게 해두고 싶군요 1791년 6월에 그들이 탈출하려고 했다가 바렌도에서 잡혔습니다 그러고 나서 1791년 7월에 마르스 광장 대학살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니까 이미 사람들은 귀족을 매우 경계하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귀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뻗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더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 외국 세력이 필니츠 선언을 했습니다 그 외국 세력 중 하나가 현재 프랑스 왕족의 오빠입니다 그리고 선언은 근본적으로 프랑스를 군주제로 되돌릴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군사력이나 수단을 가리지 않고 이 일을 해낼 것이라고는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 선언은 그들이 지금 프랑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그다지 심각하게 그 선언을 한 게 아닐지라도 프랑스 시민들은 그 선언을 정말로 심각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여기 이 국경 지역에 거대한 세력이 있었습니다 오스트리아군과 프러시아군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건 사람들이 그냥 가볍게 받아들일 만한 아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귀족들이 모든 권력을 재집권하여 사람들을 억압하려고 뭔가 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증가시켰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자코뱅 단원들에게 어떤 종류의 공화제로 갈 것이냐는 싸움의 연료가 되었습니다 이 강의는 여기까지만 하려고 합니다 알다시피 첫 번째 강의에서는 일이 나빠졌습니다 이제는 일이 최악으로 나빠졌군요 프랑스 전역에 혼돈이 야기됐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왕이나 여왕 따위가 필요한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습니다 외국 세력이 끼어 들어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봐 그들은 그들이 거기서 보고 있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왕과 왕비를 타도하려고 하지 어쩌면 그게 그들에게 아이디어를 줬나봐 그나저나 난 네 오빠잖아 그러니까 너를 도와주고 싶어” 그게 사람들을 더 겁먹게 했습니다 현재의 프랑스 국민의회는 일종의 혁명을 시작한 세력인데 그들은 어떤 면에서 시민들을 학살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일들이 프랑스 역사에서 정말로 긴장되고 험악한 시기로 들어가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신도 이제 배우겠지만 결국 공포 정치로 끝이 나게 됩니다 다음 강의에서 그것에 대해 배워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