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베스 할러입니다.
저는 메릴랜드에 위치한 타우센 대학교에서 대중 커뮤니캐이션을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저는 이 학교와 다른 학교들에서 장애학을 가르칩니다.
저는 뉴욕의 시티 대학교에서도 학생을 가르치고 그 학교 장애인 연구 프로그램에서도 강의를 합니다.
저는 토론토 요크 대학교에서 장애인 연구 프로그램을 하며 강의를 합니다.
저는 알링턴의 텍사스 대학교에서 장애인 연구를 가르칩니다.
저는 90년대 이후로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미디어의 영향력에 대해서 연구를 계속 했습니다.
저는 ADA의 고유한 관계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뉴스 미디어가 ADA를 어떻게 다루었는지에 대한 논문을 썼기 때문입니다.
제가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서 필라델피아의 템플 대학교에 가기 전에
저는 메릴랜드 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1989년에는 ADA 관련 논문을 쓰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왜 여러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는지, 당시에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1988년에 '지금 당장 농인총장 운동(Deaf President Now moement)'이
DC에 위치한 겔러데트 대학교에서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그 밖에 다른 지역에서도 그 운동에 영향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연구자가 되기 전에 기자였기 때문에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았습니다.
제가 1989년 컬리지파크에서 기자로 일을 시작했을 때 저는 겔러데트에서
농인 학생에 관한 수업을 주제로 기사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듣지 못하는 사람들 지역사회에 아주 깊은 관심이 있었습니다.
dc 지역에는 규모가 큰 농인 공동체가 있습니다.
농인 지역사회가 어떻게 대변되고 있는지에 대한 석사 논문을 썼고
그 전에 지금 당장 농인 총장 운동을 진행하던 중에, 그리고 그 이후에
뉴욕 타임지와 워싱턴 포스트지가
저에게는 새로운 시작점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컬리지 파크를 떠날 때는 1991년이었고 ada가 통과된 직후였습ㄴ디ㅏ.
제가 템플 대학교로 가서 박사학위를 시작했을 때
저는 여전히 장애인 영역에서 연구하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학교의 동료 연구원들과 저는 이 주요한 장애인 인권법이 통과되는 것에 대해서 연구를 했습니다.
저는 이 일을 제 연구의 중심 주제로 삼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1990년에 그 일이 발생했을 때 실제 방송을 내가 시청을 했었는지 여부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이 제 연구의 주제였기 때문에
방송 매체가 다룬 모든 내용을 보았고 아직 기억하고 있습니다.
ada는 학문으로 다루기에 정말 흥미로운 주제였고
그 중에 어떤 일이 실제로 발생을 했고 발생하지 않았는지 이후에 직접 목격한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ada는 시간이 지나가면서 점점 변화했기 때문입니다.
제 논문에서 저는 어떻게 주요 뉴스 미디어에서 ada가 어떻게 다루어졌는지 보았습니다.
아시다시피 모든 큰 뉴스 잡지와 주요 신문사가 그 때 있었고
저는 94년에 논문을 다 쓰고 95년에 졸업을 했습니다.
당시는 ada가 생기고 그리 시간이 많이 흐르지 않은 때였고 아직 많이 시행되지 않은 제도이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법을 준수하게 하기 위해서 몇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시간이 지나면서 실제로 전혀 실제 생활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부분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다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의회가 이 주요 장애인 인권 법을 통과시키고
사람들이 이 법을 따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연방 법이
장애인에 근거해서 차별을 하지 않도록 규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에서 차별이 완화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디어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ada를 위해 노력한 사람들에게 이 사실은 잔혹한 현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장애학 학자들과 장애인 권리 옹호론자들과 이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사람들은 ada가 법으로 제정이 되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미디어는 장애인 문제를 너무 나쁜 방식으로 다루어 왔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행동주의자들은 그들이 이 과거에서 벗어나 모든 일을 할 줄 알았고
미디어가 그들을 힘들게 할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발견했고 90년대 초 장애학 학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연구 결과를 제시하고
ada가 왜 미디어가 중요한지 비로소 깨달은 직후 몇 년 동안
장애인 지역사회에서도 그렇게 했습니다.
저는 한 컨퍼런스에서 발표를 했었는데
장애인 연구 컨퍼런스였고, 사람들이 와서 말했습니다.
"미디어에 대해서 연구한 건 진짜 좋은데
우리한테 더 중요한 게 있어요. 사람들한테 직장을 주고 적절한 교육을 받게
해주고 기관에 갖혀 지내지 않게 하는거요." 그 때 저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대중에게 의견을 말했다가 논지를 잃어버리게 되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대중의 의견을 바꾸지 못하면
어떻게 이런 일들을 바꾸실 수가 있나요?
그리고 어떻게 대중의 의견은 어떻게 바꾸시려고요? 미디어에서 곧 의견을 피력해야 할
때가 올 텐데요." 그리고
2000년대 초 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던 장애인 행동주의자들과 장애학에 대한
연구 결과가 존재합니다. 그들은 ada가 통과된 뒤에 잘못된 전략을 선택했고
통과가 되면 시행이 될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예 우리가 해냈어요."라며 착각한거죠. 그러나 사업과 ada 문제가 얽히면서
미디어가 메시지를 왜곡했고
ada가 통과된 이후 몇 년 동안
법안은 시행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뉴스 미디어는 이런 맥락으로 이야기를
했기 때문입니다. "이 법을 따른다고 해도 경제적 이익이 없으며 우리에게 돈을 가져다 주는 것도 아니고
우리 가게에는 장애인이 한 명도 안오는데 왜 우리가 이런 일을 다 해야 하는거죠?"
물론 그들이 장애인이나 휠체어를 탄 사람을 그들의 가게에서 보지 못한 이유는
장애인들이 쉽게 갈 수가 없기 때문이거나 그들의 웹사이트를 아무도 몰라서
그 웹사이트에 아무도 방문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그걸 몰라서 그런 걸 수도 있죠(웃음)
다수의 기자들이 장애인 지역사회의 사람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장애인 지역사회는 뉴스 미디어에 대해서 정말 조심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언제나 나쁜 점만을 보도하고 뉴스 매체들 가운데
어느 하나 더 나은 매체는 없기 때문입니다(웃음).
그래서 사업 영역을 하느 사람들도 그 미디어가 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전해듣고
ada에 대해서 아주 나쁜 면만을 생각했으며 그런 의견을 또 다시 미디어가 부채질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사실에 대해 잘 모릅니다. 미디어가 이런 얘기까지는 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1995년 미국 전역에서 미국인들은 ada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고 다른 장애인들의 권리에 대한 이슈는 무엇인지 여론 조사가 있었습니다.
1995년 오직 18퍼센트의 미국인이 미국 장애인법에 대해서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 수치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네요.
제가 생각하기에 미디어가 이런 얘기를 할 때 무엇을 해야하는지 대비하지 못한
것이 실패의 요인이며, 그러나 이 문제는 정말 어려운게 사실입니다.
오늘날 미디어 때문에 장애인과 관련된 정책과 법, 정부의 이야기들은
더 복잡해졌습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ada관련 이야기는 미디어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미디어에 이런 이야기를 하기 위한 노력에는 여전히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이야기도 해보겠습니다. 데이터 자료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저는
ada를 가르칠 때 이 이야기를 합니다. ada가 잘 시행되는지 아닌지는
누가 대통령을 하고 있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여러 명의 공화당 출신 대통령이 있었고 그들은
ada가 시행되든 말든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8년을 집권하 대통령들이 있었습니다.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ada는 훨씬 더 잘
시행이 되었습니다. 외부적인 요인이 맣이 존재하며,
ada는 원하는 만큼 급진적으로 세상을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1990년 우리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되짚어 봅시다.
ada는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처럼 얼마 되지 않은 해 동안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리고 큰 문제 없이 이행되었습니다.
저는 수업을 하면서 이런 예시를 많이 사용하며 그 중에서도
마침내 최근 시행이 되었던 ada에 관한 뉴스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두 가지 이야기를 사용하는데요, 그 중에 하나는 펜실베니아의 작은 도시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ada를 헤드라인으로 쓰는 다수의 이야기들은 비난하는 어조로 내용을 전달합니다.
"ada 때문에 물가가 비싸졌습니다. ada 때문에 좋은 시절은 갔습니다" 와 같은 표현을 그들은 사용합니다.
저는 어조는 항상 쉽게 바뀔 수 있다고 학생들에게 말해줍니다.
실제 이야기는 "왜 펜실베니아의 이 지역에서는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는데도 ada에서 규정한 법을 준수하지 않았는가"입니다. 저한테는 이게 진짜 이야기입니다.
또 다른 한 가지 헤드라인은 펜실베니아 로건스포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헤드라인이 이렇게 났습니다, "귿르은 반드시 800만 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마침내 ada를 준수하여 시행되어야 하는 법에 대해한 이야기입니다. 이건 2008년에 기사가 났었습니다.
뭐, 생각해 보면 800만 달러는 좀 적은 돈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금액은 1992년 준수를 해야 한다고 했을 때의 비요이었습니다.
그런데 미디어는 아직도 이 금액을 두고 ada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사람들, 일반 대중은 많은 것을 알고 있습ㄴ디ㅏ.
그리고 실제로 소셜 미디어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뉴스 미디어를 통해 불공정한 이야기를 하고
불공정한 기사를 읽습니다.
그들은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함께 소셜 미디어에서
떠들어대고 장애인들의 삶이 어떤지 보고 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ada에 관한 험담이 있었고
법을 제정하는 사람들과 대통령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생각했습니다.
저는 소셜 미디어에서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의 인권을 옹호하는 것을 봅니다. 그들은
장애인들의 권리와 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런 법들이 폐지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합ㄴ디ㅏ.
그리고 제 생각에 미디어에는 큰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소셜미디어를 아주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합니다.
사람들은 지역사회에서 실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점자책이나 자막 달기나 휠체어를 위한 경사로 같은 것들이
얼마나 유익한지 봅니다. 그리고 장애인이
어려움에 처하면 쏜살같이 달려가서 그들을 도와주고 장애인의 접근성을 낮추는 요인이 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봅니다.
제 생각에 일반 대중은 1995년보다 지금 훨씬 더 장애인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1995년에 ada에 대해 알고 있었던 사람은 오직 18%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ada에 대해서 들어보지 못했다고 해도, 그들은 장애인의 권리에 호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1995년 연구자료를 토대로 알 수 있는 사실은,
사람들이 ada에 대해 듣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미국인들에게
장애인의 권리라는 개념에 대해서 말한다면 그들은 그 권리를 찬성한다는 겁니다.
그들은 장애인들이 건물에 들어갈 때 계단이 있어서 휠체어로 진입을 못하거나
직장에 지원할 때 수화를 대신 해줄 수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차별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장애인의 인권에 대해 대중이 아무 무관심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모든이가 평등한 접근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또한 사람들이 장애인에 대해 사랑을 가지고
친구로, 가족으로 여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ada를 제정하기 이전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가족들 뒤로 숨고, 누구도 이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눈치채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템플에서 교수직을 시작했을 때
제가 대학원시절에, 더 젊은 세대들은
장애인을 배척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육을 받고 자랐으며 그들의 장애, 형제 자매,
가족의 장애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부끄러워 하지 않습니다.
저는 저널리즘 강의에서 만난 아직도 한 학생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토론을 했는데,
그녀가 말하기를 자신의 어머니가 수화에 능숙했는데
그 이유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듣지 못했고, 그래서 어머니가 귀가 들림에도
불구하고 가장 먼저 배운 언어가 수화였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학생은 자신의 형제가 다운 증후군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랑스럽게 이 말을 했습ㄴ디ㅏ.
저는 ada가 가져다 준 변화가 정말 강력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ada 덕분에 우리가 지금 이 영상을 찍고 있고 여러분이 이 영상을 보고 있는 거니까요.
만약 여러분이 사업을 한다면 "좋아 나는 내가 운영하는 식료품점에서
다운증후군인 직원을 구하는데 더 마음을 열겠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사람들이 미국 시민으로 장애인 지역사회를 더 포용하려고 하는
문화적 변화의 힘은 강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ada가 그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ada가 계속 일을 한다면 우리의 미래에 정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ada가 정말 좋은 법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잘 쓰여진 법이고
어느 때라도 더 개정이 된다면 바람직할 것입니다.
우리는 오바마 대통령이 재직 중이던 8년 동안 어떻게 이 법을
시행했는지 배웠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배우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육부와 법무부와 다른 모든 연방 기관들이
법을 시행함으로써 장애인을 도울 수 있고
이 법을 이행하라고 사람들에게도 권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점점 더 나아지고 있고 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장애인들이 우리 소비 문화의 주요 일부라는 사실을 이해합니다.
그리고 현재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든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일을 하는데
이 시기에 장애인들이 리더가 될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건물에 진입하지 못해서 일을 하지 못하게 될 때라도
차선책을 강구해서 삶을 꾸려나가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장애인들이 하는 말, 세상에 모든이를 포용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의견을 듣는다면 미래는 밝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모든 이를 위한 접근성으로부터 숨어있는 이점을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이에게 더 밝은 미래가 될 것입니다. 만약 휠체어를 타는 모든 사람들이
어려움을 디딤돌로 사용하고 모든 택배 기사가 카트를 밀면서 어려움을 디딤돌로 사용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모든 상점에서 장애인들을 위한 자막이 나오는 방송을 시청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장애인들을 돕기 위한 많은 것들에서 모든 이들이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만약 장애인들이 지도자가 되어 우리를 이끌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믿기 시작한다면
그들은 정말로 가장 혁신적으로 기업가 정신이 투첧기 때문에
가장 접근성이 높은 방법으로 이 세상을 움직을 수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미래에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말을 우리는 훨씬 많이 들을 것이고
그들이 팬데믹 기간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이미 해결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든 이들에게 더 좋은 미래를 만들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울 것입니다.
여러분이 능력을 가지고 있든 그렇지 않든 말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만약 여러분이 장애가 없다면 그들의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만약 가족에게 장애가 있다면 그들이 독립하고 더 강해지도록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필요한 모든 도움도 줄 수 있습니다.
만약 바로 당신에게 장애가 있다면
세상이 당신에게 맞춰가고 있다고 확신하십시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세상을 완전히 공평하고 접근성이 있는 곳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잘 갖춰지지 못한 집에서 살고 있고
많은 법들이 아직도 ada에 포함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 집과 법이
ada가 만들어지기 훨씬 전에 만들어졌기 때문입다. 그러나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온라인이 있고 비디오 채팅이 있고 차선책이란 언제나 있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고 문제에 대해 불평을 그만둬야 합니다.
지금 팬데믹 기간이라고 해서 불평하지 마세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현 상황을 두고 불평합니다.
이것은 모두 좋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상황은 변할 것이고 우리는 적응해야 합니다.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상황에서 적응해야 하는지 우리에게 가르쳐줄 수 있습니다.
그들은 Adapt라고 부르는 장애인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기관을 만들었습니다.
그 기관이 우리에게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어떻게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는지 가르쳐 줄 것입니다.
적응하는 법을 배우고 새로운 세상으로 모두 함께 가야 합니다.
우리는 포스트 팬데믹을 대비해야 합니다.
모든 이가 접근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하고 우리 모두는 평등합니다.
우리는 지원을 공고히 하고 있고 필요한 자원을 필요한 이에게 주려고 ㄴ로ㅕㄱ합니다.
우리는 더 나은 지역사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를 하는게 좀 어색한 시간이었습니다.
올해는 ADA의 30주년입니다. ADA가 아직도
존재하고 있어서 기쁩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나아갈 때
30년 후의 ADA 역시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여러 부분을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왜 바꾸려고 하지 않습니까?
ADA는 제정된지 30년이 지났지만 우리에게 여전히 지침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ADA는 미래로 우리를 이끌 기 위해서 만들어 졌습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잔뜩 쌓인 문서들 사이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 만약 우리가
미국에서 사람들에게 좋은 방식으로 권리를 가져다줄 수 있다면,
우리가 ADA를 지켜낼 수 있다면, 우리는 희망컨대 아주 접근성이 좋은
미래를 만들어 가고, 모두가 평등한 접근성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