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제 친구가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가는 도중 제 친구는 택시 기사님과 대화를 나누었죠. 택시 기사님은 진심을 담아 제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나중에 제 친구는 저에게 이 얘기를 들려주며 그 말을 듣고 정말 기분이 좋았다고 했어요. 제 친구에게는 정말 큰 의미를 가진 말이었죠. 전혀 모르는 사람이 한 말에 대해 제 친구가 굉장히 격한 반응을 보인 것처럼 보이지만 비단 제 친구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저는 사회 과학자입니다. 저는 좋은 사람들의 심리를 연구합니다. 제가 이 분야에서 연구한 바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과 좋은 사람처럼 보이는 것에 대해 굉장히 큰 관심을 보인다고 합니다. 이분이 정의하는 “좋은 사람”과 이분이 정의하는 “좋은 사람” 그리고 택시 기사님이 정의하는 “좋은 사람”은 그 의미가 모두 다를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정의를 내리든 많은 사람들은 도덕적 정체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누군가 이런 문제제기를 한다고 치죠. 우리가 말한 농담에 대해 지적을 한다든지 회사 직원들이 단일 인종에 편중되어 있다든지 또는 무리한 경비 지출을 반대한다든지 말이죠. 이렇듯 우리는 위험 지역을 지키기 위해 수없이 노력합니다. 때로는 여러 방법을 동원하기도 합니다. 소외 계층 사람들을 돕거나 자선단체에 기부를 하거나 비영리 단체에서 봉사 활동을 하기도 하죠. 우리는 좋은 사람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이것은 굉장히 중요하죠. 하지만 이런 상황에선 어떨까요? 만약 좋은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한 집착이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길이라면 어떨까요? 만약 “좋은 사람”에 대한 정의가 너무 좁아서 원칙적으로는 충족시키기 어렵다면 어떨까요? 만약 더 나은 사람이 되려면 우선 좋은 사람이 되려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요? 어느 연구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연구인데요. 뇌는 단순한 과정을 통해서 수많은 일을 처리합니다. 즉, 대부분의 경우에 정신적인 부분의 처리 과정이 자신도 모르게 이뤄짐을 의미합니다. 마치 배터리 소비를 줄이고 여러분의 생각 뒤편에서 낮은 전력 모드가 되는 것과 같죠. 여기에는 제한적 합리성이라는 전제가 있습니다. 노벨상을 받기도 한 제한적 합리성의 개념은 인간의 생각에는 공간 자원 및 처리 능력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많은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 단순한 방법에 의존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일부 과학자들은 어떤 주어진 상황을 가정합니다. 잘 안 되네요. 다시 해 볼게요. (웃음) 어떤 주어진 상황에서 1,100만 개의 정보가 여러분 머릿속에 들어옵니다. 1,100만 개요. 그런데 그중에서 40개만 의식적으로 처리됩니다. 1,100만 개 중에서 단지 40개요. 이런 적 있으신가요? 직장에서 바쁜 하루를 마치고 차를 타고 집에 돌아갑니다. 집 현관을 들어서려는데 집까지 어떻게 운전해서 왔는지 기억이 안 나는 겁니다. 초록불을 지났는지 빨간불을 지났는지 말예요. 전혀 기억이 안날 거예요. 자동 주행 장치가 알아서 했거든요. 아니면 냉장고를 열고 버터를 꺼내려고 찾고 있는데 처음에는 버터가 보이지 않았다가 다시 보니 바로 눈 앞에 있었던 경험을 해보셨나요? 웃어넘길 만한 실수 같은 일들이지만 이것이 바로 우리 뇌 속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 뇌 속으로 들어오는 1,100만 개의 정보 중에서 단 40개만 의식적으로 처리한 거죠. 이것이 제한된 합리성의 제한된 부분입니다. 제한된 합리성에서 발생하는 이러한 작업들은 제 연구에도 영감을 주었습니다. 저는 동료 맥스 베이즈먼과 마자린 바나지와 함께 이른바 제한적 윤리성이라는 개념을 정립했죠. 제한된 윤리성의 전제는 제한된 합리성과 같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일종의 어떤 방식으로 묶여있고 단순한 방식에 의존하며 이로 인해 우리는 때때로 길을 잃는다는 것이죠. 제한된 합리성을 지니고 있다면 슈퍼에서 어떤 시리얼을 구매할지에 영향을 미치거나 출시할 제품을 결정하는 데에 영향을 미칠 거예요. 제한된 윤리성을 가지면 동일한 인간 심리이지만 다른 것을 판단합니다. 이때는 다음에 누구를 고용할지 어떤 농담을 말할지 또는 어려운 사업에 대한 결정을 내립니다. 제한된 윤리성이 작용하는 예시를 하나 들어 볼게요. 무의식적인 편견은 한편으론 제한된 윤리성이 영향을 미친 결과입니다. 무의식적인 편견은 우리 마음 속의 연상 작용에서 비롯됩니다. 우리의 뇌가 정보를 정리하기 위해 사용하는 단순한 방식들은 의식의 바깥 쪽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것입니다. 의식적인 신념과 일치하지 않을 때도 있죠. 노섹, 바나지 그리고 그린왈드 같은 연구자들은 100만 명의 사람들로부터 자료를 수집하였고 한가지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예를 들면, 대부분의 백인 미국인들은 백인이라고 하면 뭔가 좋은 것을 연상하는 경향이 훨씬 높습니다. 흑인을 좋은 것과 연관 짓기보다 말이죠. 또 대부분의 남성과 여성은 흔히 연관 짓기를 과학을 여성과 연관 짓기보다 남성과 연관 짓는 경향이 있죠. 이렇게 연관 짓는 행동들은 사람들의 의식적인 생각과 일치하지 않기도 해요. 사실 이들은 아주 평등주의적 관점을 가지고 있죠. 또한 1,100만 개의 정보와 40개의 정보가 다를 수도 있죠. 또 다른 예시를 들어 볼게요. 이해관계의 갈등입니다. 우리는 선물이 작을수록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볼펜이나 저녁 식사 같은 걸 생각해보세요. 선물이 얼마나 작으냐에 따라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치죠.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어떤 증거들이 나열되고 있음을 알아채지 못합니다. 선물한 사람의 관점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죠.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태도를 유지하려고 아무리 의식적으로 노력하더라도 말이죠. 제한적 윤리성에서 보면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함에도 우리는 여전히 실수를 하며 떄로는 실수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좋은 의도를 갖고 한 일임에도 부당한 상황을 만들기도 하죠. 그리고 실수로부터 배우기보다 변명만 늘어놓곤 합니다. 제 사례를 하나 말씀드릴게요. 이전에 제 수업을 들었던 한 여학생이 메일을 보냈는데요. 제가 과제로 냈던 읽기 과제가.. 저는 매년 읽기 과제를 내는데요. 그게 성차별주의적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한번은 학생 두 명을 혼동한 적이 있는데요. 제 수업을 듣던 같은 인종의 학생들이었는데 서로 전혀 닮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그 둘을 혼동했던 거예요. 그것도 한두 번도 아니고 학생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요. 이런 실수를 하게 되면 우리는.. 특히 저 자신은 위험 영역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게 되죠. 제한된 윤리성에 대해 메리 컨과 함께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는 실수를 저지르기 쉬울 뿐만 아니라 위험영역에 얼마나 가깝냐에 따라서 실수하는 경향이 다르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좋은 사람으로 보이면 누구도 우리에게 반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자신의 결정이 윤리적인지 별로 신경쓰지 않죠. 저희 연구 모델에 따르면 그러면 우리는 덜 윤리적인 행동을 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반면 누군가는 우리가 좋은 사람인지 의심할지도 모르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할 수도 있죠. 그러면 우리 자신의 결정에 대한 윤리적 의미들이 더욱 두드러지며 이 경우에 우리는 기를 쓰며 더욱 더 좋은 행동을 하려고 합니다.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스스로가 좋은 사람인 것처럼 느끼게 하는 행동을 하려고 하죠. 물론 늘 그렇지는 않지만요. 제한적 윤리성의 관점에서 우리가 어쩌면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은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우리 내면의 나침반에 대한 중요성입니다. 우리는 아마도 우리의 사리사욕이 자신의 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과대평가하고 좋은 사람으로서의 자기관이 우리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꺠닫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필사적으로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고 하고 위험영역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실수로부터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에게 주지 않습니다. 실제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 말이죠. 그건 아마도 우리가 이것을 쉽게 생각해서일 수도 있어요. 우리는 좋은 사람에 대해 이분법적으로 정의하고 있죠. 좋은사람이거나 아니거나 정직한 사람이거나 아니거나 인종차별주의자, 성차별주의자, 동성애 혐오자이거나 아니거나 말이죠. 이러한 이분법적인 정의로는 성장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인생의 대부분에서 하는 일은 아닙니다. 만약 인생에서 회계를 배워야 한다면 회계학 수업을 들어야 하고 부모가 되어야 한다면 그에 관한 책을 읽겠죠.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고 자신의 실수로부터 배우며 지식을 쌓으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되어 갑니다. 하지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자연히 깨닫게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노력이나 성장의 댓가 없이 얻어지는 것으로 생각하죠 제가 그동안 생각해왔던 것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거예요. 그냥 흘려보내는 거죠. 그리고 그 대신 더 높은 기준을 설정하면 어떻게 될까요? 꽤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한 더 높은 기준 말이에요. 꽤 괜찮은 사람도 반드시 실수를 합니다. 꽤 괜찮은 사람인 저도 항상 실수를 하죠. 하지만 괜찮은 사람으로서 저는 실수를 통해 배우며 실수를 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저는 실수할 것을 기대하며 실수를 추구합니다. 저는 이러한 실수들에는 댓가가 뒤따른다는 걸 압니다. 윤리 또는 편견, 다양성, 포괄성과 같은 이슈들에 있어 우리는 실제로 그 댓가를 치릅니다. 저는 그것을 받아들이죠. 괜찮은 사람으로서 저는 제 자신의 실수를 온전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어요. 사람들이 제 실수를 지적해줄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제 실수를 스스로 찾아내는 연습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제가 되었죠. 물론 그렇게 하는 일은 굉장히 부끄럽고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때로는 우리 자신을 나약하게 만들기도 하죠. 하지만 이러한 약점을 통해 우리가 더 나아지기 위해 시도했던 모든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진보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거예요. 우리 자신에게 기회를 주면 어떨까요?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서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입니다. 그것 말고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