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강연은 성인용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969년, 저는 실바니아 흑백TV 뒤에 서서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들을 듣고 흉내내는 그런 아이였는데 아빠, 여동생, 엄마 앞에서 토끼 귀를 움직이며 그랬죠. "절로, 아니 그 옆으로, 저쪽으로 화면이 안 보이잖아." 그들이 보고 있었던 장면은 "한 사람의 작은 발걸음, 인류에게는 큰 도약." 닐 암스트롱과 버즈 알드린이 달을 걷고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저는 인종차별이 살짝 있었던 버지니아주, 린치버그에서 살고 있었던 다섯 살의 깡마른 흑인 아이였죠. 제 인생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었고요. 저희 부모님은 교육자이셨고 항상 제가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죠. 그러나 그 달착륙 사건 이후 제 친구들, 이웃들 전부 "너 우주비행사가 될거지?"라고 물었고 저는"아니"라고 했죠. 짧게 깎은 머리도 싫고 저처럼 생긴 사람도 없으니까요. 보이는 게 중요했으니까요. 저는 집에서 다섯 구역 정도 떨어진 피어스 가에서 사는 한 남자를 알고 있었는데 테니스 훈련을 받고 있었죠. 바로 아서 애쉬였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그의 성격, 훈련법, 지능과 스포츠에 대한 열정을 들려주셨어요. 저는 아서 애쉬가 되고 싶었지, 달의 남자가 되고 싶진 않았어요. 제가 이런 여정을 계속 하면서 학교 선생님인 아버지는 밴드에서 연주도 하시고 누나와 제 피아노 레슨비를 벌기 위해 무슨 일이든 다 하셨고 교육과 관련 된 다양한 활동들도 하셨죠. 어느 날 아버지는 진입로에 빵트럭을 끌고 오셨습니다. 전 이렇게 생각했죠. "빵 트럭이란 말이지, 아빠가 트럭을 몰 동안 나는 빵을 배달하라는 거군." "그럼, 지금부터 나는 빵 배달부군." 그런데 아빠는 "우리의 캠핑카란다." 라고 말했습니다. "에이, 아빠, 그건 아니죠. 트럭 옆면에 이렇게 써 있는데요. '메리타 빵과 롤'." 그러자 아빠는 이 차를 우리 캠핑카로 만들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여름 내내, 저희는 전체 전자 배선을 다시 설치했습니다. 프로판 가스를 콜멘 스토브에 채워넣었고, 2층 간이 침대도 만들고요. 저희 가족은 이 트럭을 저희 여름방학을 시작하는 계기, 린치버그를 나갈 수 있게 해주는 비상 탈출선으로 바꿨죠. 그리고 그 전에, 사실 전 이웃 중 누군가에게 다섯살 때 강간을 당했습니다.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았는데, 제 친구들 중 아버지가 없는 친구들이 있었거든요. 저는 저희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을 강간한 그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저는 제 아버지가 그렇게 사라지는 걸 원치 않았죠. 그래서 저희가 빵트럭을 타고 린치버그를 탈출했을 때, 그 시간은 아빠와 저만의 시간이었죠. 저희는 그레이트 스모키 산맥에 가서 잿빛 노을이 진 산의 풍경을 바라봤죠. 그런 다음 머틀 비치를 따라 걸었는데 이때 모든 게 바뀌었어요. 아주 어린 나이인 저에게 탐험가가 되는 것의 의미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전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치워버렸습니다. 모든 트라우마를요. 탐험가에 대해 알아가고 있었으니까요. 얼마 지나지 않아, 저희 어머니께서는 저에게 제 나이에는 쓸 수 없고 위생 당국의 허가도 받지 않은 화학 교구 실험 세트를 주셨죠. (웃음) 엄마의 집 거실에서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지만요. (웃음) 화학자가 될 것만 같았어요. 화학자가 되기 위해 고등학교, 대학까지 진학했고, 대학에서 풋볼선수로 뛰며, 풋볼선수 장학금까지 받았죠. 이미 폭발도 시켜봤으니 저는 화학자가 될 줄 알았죠. (웃음) 제가 졸업을 할 때 쯤 저는 디트로이트 라이온스 팀에 선발되었지만 훈련을 받던 중 허벅지 부상을 당했고 전직 NFL 선수들은 늘 그러잖아요, NASA로 일을 하러 가니까. 그렇죠? 그래서 저도 NASA로 갔죠. (웃음) 제 친구 중 하나가 말하길, "넌 최고의 우주비행사가 될 거야." 저는 걔를 비웃으면서, "내가? 우주비행사가 된다고?" 1969년도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 기억나시죠? 걔는 저에게 신청서를 건넸고, 저는 그 신청서를 보기만 하고 작성하진 않았어요. 같은 해, 또 다른 제 친구는 신청서를 작성했고 그 친구는 합격했습니다. 저는 제 자신한테 그랬죠. "저런 멍청이도 우주비행사가 된다고 NASA에 들어간다면," (웃음) "나도 되지 않을까, 하고요." 그 다음 모집에 지원서를 제출했고 합격했습니다. 우주비행사가 된다는 것의 의미도 잘 몰랐었죠. 이런 훈련, 시뮬레이션들, 이 모든 것들은 이 카운트다운을 위해서 존재했습니다. 셋, 둘, 하나, 발사. 2007년에 저는 "아틀란티스"호를 타고 지구를 빠르게 떠나, 시속 28km로 여행을 했습니다. 8분 30초 이후에 주엔진을 끄고, 저희는 우주를 유영했습니다. 몸이 밀리면서 저는 창가 근처에 떠 있게 되었고 거기서 카리브해를 봤습니다. 제가 보는 색을 설명하려면 파란색의 새로운 정의가 필요했죠. 하늘색, 쪽빛, 짙은 감청색, 옅은 감청색, 청록색 이 단어 중 어떤 것도 제가 보는 풍경에 맞지 않았죠. 이 비행에서 제가 해야 할 일은 22억을 들인 콜롬버스 모듈을 설치하는 것이었습니다. 연구소였죠. 재료과학 연구, 인체실험을 위한. 저는 우주선 본체의 화물칸에 도착해 거대한 이 모듈을 꺼낸 다음 로봇 팔을 사용해서 이 모듈을 우주 정거장에 설치했습니다. 유럽 대원들은 이 모듈이 설치되기를 10년 동안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 거기 있는 유럽 대원들 모두 "리랜드!"라고 계속 외칠 줄 알았죠. (웃음) 이렇게 이 일이 완료됐습니다. 저희가 해야 할 일은 이것이었고, 그건 다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때, 최초의 여성 지휘관, 페기 윗슨이 저희를 러시아 팀 구역으로 초대했어요. 축구장 정도 크기의 우주정거장에는 태양 전지판과 트러스 그리고 이러한 모듈들이 있었죠. 페기가 "리랜드, 말린 야채들 좀 가지고 와요, 고기가 있거든요." 라고 해서 우리는 말린 야채가 든 가방을 메고 둥둥 떠서 거기에 도착했어요. 바로 그때 저는 엄마 부엌으로 되돌아 온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소고기과 보리가 구워지는 냄새가 나고, 음식 냄새, 색깔들, 전세계에서 온 사람들까지 다 거기에 있었죠. 마치 베네통 광고처럼, 흑인, 아시아계 미국인, 프랑스인, 독일인, 러시아인 최초의 여성 지휘관, 함께 시속 28km를 달리며 식사를 하고 90분마다 지구 주위를 돌면서 45분마다 일출과 일몰을 바라보는 것. 페기는 이렇게 말하곤 했죠. "리랜드, 이것 좀 먹어 봐." 하면서 제 입쪽으로 음식을 날려 보내면, 저는 그걸 받아 먹고, 이걸 반복했습니다. 샤데이의 "스무스 오퍼레이터"를 들으면서요. (웃음) 아시죠?, 둥둥 뜬 이런 기분. (웃음) 창가로 다가가서 지구를 내려다 보면 모든 인류가 보입니다. 제 관점은 그 순간 변화합니다. 제 고향인 버지니아주, 린치버그 위를 날아가고 있을 때 저희 가족은 아마 식사를 하고 있겠죠. 5분 후, 우리는 파리 상공을 날고 있고, 레오 아이하츠가 부모님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그 상공입니다. 그의 부모님은 아마도 와인과 치즈를 즐기고 계시겠죠. 유리는 모스크바를 내려다 보고요. 유리의 부모님은 아마도 보르시 같은 걸 드시겠죠. 그런데 우리에게는 각자의 부모님을 시속 28km로 날아다니고, 하나의 공동체에서 일하며 내려다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제 관점은 완전히 바뀌었고, 저를 변화시켰습니다. 버지나아주, 린치버그에서 살던 작고 깡마른 남자아이였던 때를 종종 생각해 보면, 저는 제 자신이 우주비행사가 될 수도 있다는 그런 생각을 절대 못했을 겁니다. 저희 아버지가 저희가 급하게 손수 만든 그 캠핑카로 저희를 여행에 데려가지 않았다면요. 집으로 돌아온 저는, 관점은 우리가 받고 가지고 있는 그 모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냥 단지 우리가 눈가리개를 얼마나 벗고 변화를 바라볼 수 있는가의 문제였어요. 우주 정거장으로 돌아가서, 독일인과 러시아인과 미국인들이 싸우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함께 살고 일하고 있습니다. 백인들, 흑인들, 러시아인들, 프랑스인들 모두 말이죠. 이런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인종으로 공존하고 있습니다. 제가 본 색깔에 대해서 생각하고, 모듈의 디자인과 모듈들이 맞춰가는 방식에 대해 생각하고, 이 방법이 저희를 하나의 공동체, 집으로 만드는 것이죠. 요즘 저는 우주를 올려다 보면서, 제게 생긴 이 새로운 관점으로 높은 하늘 위에 떠다니는 우주정거장을 바라보고 그러면서 다시 나의 공동체를 되돌아보면서 저와 함께 살고 함께 일하고 있는 공존하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예요, 특히 오늘날에는요. 우리의 관점이 옳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일이요. 감사합니다. (박수) 괜찮으시면, 저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시겠습니까? 스태프들이 다시 무대를 세팅할 텐데 그러면 그동안 제가 당신을 독점해도 괜찮겠죠. 그럼요. 여러분들은 못 듣겠네요. 먼저 제가 말씀드릴 건 저희 가족들은 우주와 관련 된 영화를 엄청 많이 봤다는 겁니다. 우주비행사와 그와 관련된 것들 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랬어요. (웃음) 당신에게 물어보고 싶은 건, 저희가 일전에 영화를 봤는데, 당신의 동료 우주비행사 중 한 명에 관한 내용이었던 것 같아요. 거기서 그는 우주로 가기 전에, 그들이 진짜로 부고 기사를 썼어요. NASA가 그를 위한 부고기사를. 그래서 전, 저게 일상인가? 그것도 일의 일부인가요? 당신도 당신이 우주로 갈 때 처해질 수 있는 모든 위험상황에 대해서 생각하나요? 그럼요. 누가 제 부고기사를 썼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아폴로데이 관련한 거였을 거예요. 저희가 탔던 135개의 우주 비행선 중 제가 탔던 비행선에서 임무를 수행하다가 전원이 사망한 사고가 두 번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모두 여기에 따르는 위험부담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만, 저희는 저희 자신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인, 문명의 발전에 기여하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할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저희 모두 우주선에 몸을 싣고 몇십 킬로그램이나 되는 연료를 싣고 우주로 나갈 때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렇군요, 저는 할리우드 버전 밖에 보지 못했지만, 조금 무섭다고, 말해야겠어요. 한 번 가봐야 해요. (웃음) 저희 남편도 몇 번이나 권하긴 했어요. (웃음) 편도 아니면 왕복이요? (웃음) 아직 그것 때문에 못 정했어요. (웃음) 저...실례가 안 된다면... 감정적으로 굉장히 하기 힘든 이야기를 꺼내셨는데요. 그 사건에 대해서 얘기하셨는데 5살 때 당신이 겪었던 그일, 당신이 강간을 당했다던 일이요. 이런 일들을 이야기해 주신 것 자체가 전 그냥 그러니까 TED 강연장 같은 이런 곳에서 그 얘기를 전부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용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가 짐작한 건대 이런 이야기를 이런 자리에서 지금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말씀하신 것 같은데요? 엄청 중요해요. 특히 남성들에게. 그러한 일이 일어났다고 말하는 것이. 저희는 사회에서 항상 강인하고 용감해야 된다고 훈련받고 교육받기 때문에 이런 일들을 당했다고 말할 수가 없잖아요. 하지만 저에게 연락한 수많은 남성들이 저에게 말하길 "당신도 이겨냈고, 당신도 극복했으니, 저도 알콜중독을 극복할게요." 이러한 일들이 그들에게 일어나고 있고, 왜냐하면 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죠. 저희는 이런 이야기들을 공유해야 해요. 저희를 치유하고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이야기의 일부이기 때문이죠. 그건 멋진 일이네요. (박수) 그리고 꽤 솔직하게, 관점의 변화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그러한 변화들이 제 생각에는 저희가 그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렇게 말씀해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를 표해야겠네요. 이렇게 멋진 우주비행사가 되어 주셔서 고맙고, TED 무대에 서 주셔서 감사해요. 리랜드 씨. 감사합니다. 치씨.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