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아잔브람입니다. 짧은 법문과 명상 수행을 위해 다시 찾았습니다. 오늘이 몇일이죠. 오늘이 19일인가요? 2020년 5월 19일인데 확실하진 않군요. 우리가 얼마나 오랫 동안 법문을 주중에 할 수 있을지 말입니다. 왜냐하면 코비드가 좋아지고 있는 상황처럼 보이는데, 실은 코비드 바이러스가 회복되는게 아니라 코비드가 죽어가고 있죠. 불쌍한 코비드. 평화속에서 코비드가 죽기를.. 하지만, 이 작은 법문으로 사람들을 격려하고자 합니다. 더욱 긴장을 풀어주고, 더욱 명상에 집중하고, 더욱 좋은 태도들 개발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많은 걱정을 내려 놓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여기 작은 종을 치는 막대가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 저는 이것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도 하죠. 그것은 매우 간략한 아잔차 스님의 가르침입니다. 아잔차 스님은 단지 학교에서 4년을 마치셨고, 더이상 배울 기회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잔차 스님께서는 저에게 몇 가지의 지혜로운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단지 몇 단어들이지만, 아주 많은 의미를 지닌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저는 여전히 몇 가지 가르침들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아잔차 스님께서는 도로가에서 막대기를 주웠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아잔차 스님 뒤에서 걷고 있을 때 였습니다. 스님께서 도로가의 막대기를 들고서는 저에게 물었습니다. "아잔 브람!" 저를 아잔이 아니고, 스님께서는 브라마왕소라고 부르셨습니다. "아잔 브람!" "이 막대가 무거운가?" 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스님께서 막대기를 던져버리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길, "막대기는 네가 잡고 있을 때에만 무거운 것이다." "네가 움켜쥐고 있을 때, 네가 집착하고 있을 때," "네가 잡고 있을 때만, 무거운 것이다. " "네가 그것을 내려 놓거나, 던져버리면, " "그것은 전혀 무겁지 않지." 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진정 간단한 가르침이자만, 진정 강력한 가르침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맡은 아주 많은 일과 책임들, 그리고 부담은 가끔은 너무 많게 느껴집니다. 자주 그리고, 매우 분명히 말했지만, 그것은 스님으로서의 업무들이죠. 하지만, 저는 정말 바쁩니다. 제가 싱가폴에서 어느 저녁에 법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수천명의 사람들에게 긴 법문을 하였고, 질의 응답시간에 한분이 일어나서 마이크를 잡고 묻기를, "아잔 브람 스님!" "당신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법문은 모두 훌륭합니다." "어떻게 긴장을 풀고, 어떻게 지나가게 하는지 말이죠." "하지만, 당신은 스님이십니다. 당신은 스님인데" "무엇을 아신다는 건지요? 스트레스와 사업, 책임 이런 것들을 아시는지요?" 그 분은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물론, 저도 지금까지 도전해 왔다고 생각하며, 이렇게 말했죠. "잘 들어보세요. 스님으로서 저는 오늘 아침 4시에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기억하는 한 최선으로 " "해야 할 모든 것들을 아침에 작성했습니다."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죠." "스님으로서의 해야 할 책임, 의무, 법문, 상담, 질의응답, " "다른 많은 일들이 포함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이 질문을 했을 때가 저녁 10시였고, 저는 하루 종일 스님으로서의 의무로 담마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가르치는 스님이죠. 제가 그분께 자세한 대답을 하자, 그는 마이크를 다시 집어들고는, "와우! 와우!" "저는 얼마나 힘들게 현시대의 스님들이 " "일해야 하는지 결코 깨닫지 못했습니다." "저는 아이티 분야에서 힘들게 일한다고 생각했었고," "언젠가 스님이 되리라 생각헸습니다." "그런데 지금보니 안되겠군요. 그냥 하던 아이티 일 해야겠어요." "스님이 되기엔 힘들겠어요." 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하지만, 걱정말아요. 때로는 열심히 일해도, 한 순간에 한 가지만 하는 거지요. 그것이 왜 여러분이 어떻게 던져버리는지 배우는 이유입니다. 원하면 다시 가서 잡을 수도 있고, 필요하다면 가져올 수도 있죠. 여기에서 제가 어떻게 가게 하는지를 배운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어떻게 가게 할 수 있을까요? 때때로 사람들이 꽤 어렵다고 질문합니다. 그분들은 명상을 하신 분이고, 불교신자이며, 이론에 대해서는 알지만, 어떻게 가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분들은 "어떻게 해야 내가 가게 할 수 있는가요?" 라고 묻습니다. 그분들은 눈을 감고, 다리를 감았다고 말했습니다. 눈을 감고, 좌선을 한다는 말을 잘 못했네요. 어쨌든 더이상 반복은 안될것 같습니다. 눈을 감고, 좌선 한 후 호흡이나 떠오르는 것들을 보게 됩니다. 그분들은 호흡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다른 모든 문제들을 보거나, 환상들이나 꿈같은것, 또는 걱정거리들을 바라봤습니다. 그들이 말하길, "눈을 뜨고 있는 것이 더 평화롭습니다." "명상을 하지 않을 때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떻게 가게 해야하는지를 배운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명상할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로, 어떻게 "가게 하는 것"이 일어나는지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저는 이 작은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작은 세줄의 시죠. 이 이야기를 내가 가진 책 중에서 한 권의 맨 앞에 적어 놓았습니다. 세 줄의 시는 이렇게 됩니다. "자신에게 평화의 순간을 허락하세요." 단지 평화의 순간. 당신에게 평화의 순간을 허락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깨닫게 됩니다. 얼마나 자신이 바보같이 허둥대며 쫒아 다녔는지를 깨닫게 되죠. 무엇보다도 당신은 자신에게 평화의 순간을 허락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순간들을 사람들은 자신에게 평화의 순간을 주질 못 합니다. 다른 누군가 그들에게 그런 순간을 주기를 기다리는 대신에, 자신에게 그런 평화로운 순간을 주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충분한 시간이 없다고, 너무 바쁘다고 합니다. 할 일이 너무 많다고 말합니다. 이미 말했다시피, 저도 아주 아주 많은 할 일들이 있습니다. 당신은 오로지 자신에게 평화로운 순간을 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삶에서 깨달은 바로 사람들이 자신에게 평화로운 순간을 주었을 때,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할 일을 이미 알고 있다하더라도, 그리고 작성해야 할 이메일도 알고, 해야 할 레포트를 알아도, 얼마 동안의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지요? 당신은 종종 얼마나 컴퓨터를 쳐다보고, 단어들이 떠오르질 않고, 아이디어가 생각나질 않은 채 시간을 낭비합니다. 이전에는 당신의 뇌는 살아 있었습니다. 뇌는 힘이 넘치고, 모든 단어들과 아이디어들이 떠오르고 당신은 또한 혁신적일 수 있었죠. 저의 혁신적인 부분은 재밌는 농담들과 좀더 색다른 농담들 입니다. 그런 얘기들을 할 때, 그 이야기들이 어디서 올까요? 그런 혁신들은 여기에서 옵니다. 어떻게 활기찬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 배우는 것에서 오는 것입니다. 이런 혁신적인 부분들이 저절로 일어나도록 말이죠. 하지만, 어쨌든 저는 더욱 혁신적이고, 더욱 효과적으로 많은 일들을 끝낼 수 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더욱 자신이 평화로울 때 말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에게 평화의 순간을 허락한다는 것은, 당신이 단지 삶을 복사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당신이 책임을 지지 않는 다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어떻게 뇌의 활동이 균형을 잡는지 배우는 것입니다. 효과적인 일과 평화, 고요함 사이에서의 균형을 말입니다. 당신에게 평화의 순간을 허락하므로서 그냥 가게하는 순간, 그 후에 당신은 어떤 일이든 행할 수 있습니다. 많은 훌륭한 예들이 기억나네요. 여러분이 아시듯 제가 약간의 경계를 넓혔습니다. 그분들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몇년 전 싱가폴에서 그룹으로 불교적인 작은 연극에 참여했습니다. 불교 연극이었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마음의 문을 여는' 것에 대한 행사였습니다. 행사 이름이 정확하게 기억은 안납니다. 연극에서 작은 까메오 역을 해야만 했습니다. 무대 위에 나와서 단지 짧게 5분정도 돌아다는 것이었죠. 그리고, 다시 무대에 몇번 오르내렸습니다. 연극을 도울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불교를 현시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실험을 돕는 다는 것이 말입니다. 그 날 참석한 사람들에게 더욱 불교를 경험하게 했습니다. 저 또한 거기 있었구요. 당일날 퍼스에서 출발해 이른 오후에 그 오후에 있을 공연을 위해 싱가폴에 도착한 것이었습니다. 모든 다른 공연자들과 불교신자들은 저녁을 먹으러 갔습니다. 저는 저녁을 먹지 않으므로 조용히 수행 할 장소를 찾고 있었습니다. 오랜 비행으로 지쳐있었기 때문입니다. 퍼스에서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다섯 여섯 시간동안 비행기를 타고 극장으로 곧바로 갔었죠. 그리고, 연극에서 무엇을 해야할지를 얘기하고 준비를 해야만 했습니다. 움직일 타이밍을 기다렸다가, 무대에 올라 공연했습니다. 그 후라서 저는 지쳐있었고, 매우 피곤하던 차였습니다. 그래서 수행하기 좋은 조용한 장소를, 아주 조용한 장소를 극장에서 찾았습니다. 좌선을 하고, 눈을 감고, 자신에게 평화로운 한 시간을 허락했습니다. 모든 분들이 모두 저녁을 위해 나가있는 동안 말이죠. 얼마나 훌륭한 한시간이었는지... 처음에는 정말 피곤했습니다. 에너지가 다시 돌아오기 시작 할 때까지 말입니다. 저는 피곤함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피곤함을 제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피곤함을 향해 제 마음의 문을 활짝 엽니다. 몸이 반응하는 이런 방법을 존중합니다. 저는 열심히 일하였고, 그 후에 오는 피곤함을 존경합니다. 피곤함, 고갈이 있지만, 어딘가 피곤함이 없는 곳으로 피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피곤함에 대해 알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러가지 것들 중 존중하는 하나가 피곤함입니다. 그러면, 이 피곤함과 함께하다가, 곧 에너지가 몸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내 몸에 돌아온 에너지는 그 후에 나의 뇌로, 그리고 에너지는 내 마음으로 갑니다. 그때 저는 매우 행복하고, 정말 활기가 넘칩니다. 오후에 있을 공연 미안하지만, 저녁이군요. 저녁에 있을 두번째 공연에 법문을 했을 때는, 정말 정말 뜨거웠습니다. 다른 말로 뜨겁다라는 의미는 정말 좋았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어떻게 에너지를 주어야 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즉, 자신에게 평화의 순간을 허락했기 때문입니다. 분주히 돌아다는 것, 그렇게 돌아다닐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모두가 삶에서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소진되어 버리고, 쉼없이 피곤해 집니다. 피곤함 때문에 우리는 곧 화가 나기 쉽습니다. 그런 상황은 우리로 하여금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에게 끔찍한 말들이 튀어나오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치고, 너무 피곤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평화의 순간을 허락하므로서 그것은 당신 자신에게 선물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이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고 싶다면 어느 때고 생일에 가깝다거나 다른 중요한 날이 있다면, 선반으로 가서 오래된 상자를 하나 찾아 선물 포장지와 나비 매듭 리본이나 선물용 카드를 구하고, 그 다음에 상자 안에 정말 정말 정말 중요한 당신을 위한 진짜 선물을 당신에게 정말 보물 같은 것을 넣습니다. "평화" 그것을 종이에 적습니다. "평화" "나에게" 물론 당신 이름을 적습니다. "사랑과 함께" "나에게" 여기도 당신의 이름을 적습니다. 그리고 선물용 작은 종이에 "평화" "평화" "나에게" "사랑과 함께" "나에게" 적힌 종이를 상자에 넣습니다. 뚜껑을 닫고, 할 수 있는 한 아주 조심히 아름다운 선물용 포장지로 포장하고 작고 좋은 나비매듭으로 묶어서 작은 선물카드에 무엇이든 행복한 기념일 혹은 행복한 생일, 행복한 어머니의 날, 행복한 아버지의 날 또는 어떤 날이든 특별한 날을 적은 카드를 어딘가에 넣습니다. 그런 후 점심을 먹거나, 일하러 가거나, 잠을 자러 갑니다. 당신이 다음 날 잠에서 깼을 때 당신은 그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와우! 선물이다.! 누군가 나에게 선물을 주었어!" 이렇게 게임을 하는 겁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한 가장 재밌게요. "와우! 안에 뭐가 들었을까 궁금하다." 그리고 당신이 선물을 열었을 때, 뚜껑을 열고 안에 있는 "평화"라는 나를 위한 선물을 봅니다. "나에게" "사랑과 함께" "나에게" 아! 이 얼마나 기분 좋은 말인가요. 항상 평화를 원했었는데... 평화! 당신은 자신에게 기꺼이 그 평화를 주어야 합니다. 마치 이런 평화에 대한 허가증을요. 단지 몇몇 순간들을 그냥 가게 하거나 모든 과거, 그리고 모든 미래 모든 다른 삶의 문제들에 대한 허가증입니다. 당신 '자신에게 평화를 허락한다'는 선물을 주세요. 그것은 '어떻게 가게 하는지에 대한 배움'이라 부릅니다. 15분에서 20분 정도 어떻게 가게 하는지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당신이 양 다리를 꼬고 않는게 좋다면 그렇게 하십시요. 명상을 의자에서 해도 좋고, 의자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쿠션도 좋습니다. 의자나 침대등에 자세를 잡으십시요. 가장 평화롭고, 가장 편안한 자세를 취하십시요. 그리고, 눈을 감습니다. 몸을 알아차립니다. 몸에 대해 친절함을 가집니다. 이것은 당신의 몸에 평화를 허락하는 것입니다. 몸, 나는 너를 먹이고, 운동시키고, 쉬게 하고 돌보죠. 자. 이제 나는 몸에 평화라는 선물을 줍니다. 다리야, 내가 주는 평화라는 사랑의 선물을 받아들여다오. 나는 내 발에 평화를 줍니다. 종아리에 평화를 줍니다. 무릎이나 발목에도 또한 내 크기에 맞게 줍니다. 단지, 당신의 몸 각 부분이 평화라는 선물을, 현명하게 어떤 감사함의 표시로 받는다는 상상을 해보십시요. 엉덩이에 평화를 줍니다. 엉덩이야, 미안하게도 내가 쿠션에 앉아 있어서 짖눌러야만 했구나. 아래 등과 허리에 평화를 허락합니다. 허리야. 너에게 평화를 허락한다. 등을 움직이는 나머지 등의 부분들은 모두 평화롭게 될겁니다. 모든 근육, 모든 뼈, 모든 인대, 모든 관절들이 말입니다. 상상해 보십시요. 이것이 당신이 자신의 몸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걸 말입니다. 바로 지금, 내 어깨여. 너는 평화롭게 있게 될것이야. 그것은 내가 줄 수 있는 작은 선물입니다. 여러가지 다른 방법으로 상상할 수도 있습니다. 황금빛이나 아름다운 연고처럼 피곤한 곳이나 긴장된 관절에 문지르듯 평화를 줍니다. 평화를 팔 아래, 팔 꿈치, 팔 앞쪽, 팔목 그리고 손에 줍니다. 평화를 당신이 찾은 몸의 모든 부분에 줍니다. 평화를 당신의 목, 목구멍, 얼굴, 뇌, 귀, 머리, 모든 곳에 평화가 깃들기를. 당신의 몸으로 산다는 것으로 어떤 것을 고치려고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것을 멈출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치료하려고 시도하지 말라고 합니다. 보살피라고 합니다. 지금 이 순간을 보살피라는 말입니다. 그런 다음 마음으로 향합니다. 마음이여, 내가 주는 평화를 받기를. 이때 집중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떤 것들을 제거하려고 말입니다. 마음챙김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평화를 줍니다. 당신이 무엇을 경험하던 평화 안에 머뭅니다. 열반에 대한 정신적인 돌격을 멈춥니다. 어떻게 지금 이 순간에 머무는지 배웁니다. 다른 어떤 곳에 있기를 원하는 것보다 말입니다. 평화를 만듭니다. 당신의 마음과 당신의 삶과 전쟁하지 않습니다. 듣습니다. 당신의 머리 옆에 있는 귀가 아닌, 당신의 마음의 귀로 듣습니다. 여기 치유의 침묵의 노래가 있습니다. 침묵이라는 선물을 당신에게 줍니다. 평화와 함께 말입니다. 당신 자신에게 자유라는 선물을 줍니다. 어떤 것도 유지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한 순간이 왔다가 떠나갑니다. 당신 자신에게 자유라는 선물을 줍니다. 이해하려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있습니다. 당신 자신에게 내면의 기쁨을 선물합니다. 아름다운 큰 기쁨, 당신의 몸은 편안하고, 마음은 고요합니다. 지금 여기. 어딘가로 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평화입니다. 짧은 명상에 대한 법문이 끝에 가까워져 갑니다. 어떻습니까? 기분이 어떠신지요? 당신은 어떤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만족감을 압니다. 이 평화로움으로 몸은 긴장이 풀어집니다. 당신에게 평화의 순간을 주는 것. 당신이 할 수 있는 한, 당신이 원하는 한 더 지속하십시요. 친절함으로 이 평화로움의 선물을 세상과 공유하십시요. (회향) 지금 그럴 순간 입니다. 매우 천천히 눈을 뜹니다. 마치는 기도를 하겠습니다. (기도문을 낭송하고 계십니다.) 모두 강하고, 건강하며, 만족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