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프랑스 플럼빌리지 틱낫한 스님 Q&A 제 아버지는 저에게 많은 고통을 줍니다. 저는 그분께 그동안 많은 기회를 주었고, ...이제 더이상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그분을 계속해서 바꾸어 보려 시도해야 하나요? 스님, 그리고 상가(Sangha) 여러분, 저는 아버지 때문에 고통이 많습니다... 아버지를 보는것 조차도... 어렵고 그리고... 거의 위험스러울 정도입니다. 아버지를 보기도 싫습니다. 저는 아버지에게 몇번이나 변할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싫지만 억지로 아버지에게 갔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싫습니다. 그래서 제 질문은, 그래도 제가 아버지를 변화시키려 노력을 하고 아버지에게 가야 하는지요... 그것이 나를 힘들고 지치게 하더라도요? 스님, 우리 친구는... 그의 아버지와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합니다. 그의 아버지를 보는 것 조차도 매우 힘들고 심지어는 거의 위험하다고까지 느낀다고 합니다. 그간 억지로 노력해서 아버지에게 갔었고 그에게 여러번 변할수 있는 기회를... 주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생각한답니다. 이제 더이상 억지로 그의 아버지에게 가지 못할것 같은데, 스님께 여쭙고 싶은 것은 그가 계속해서... 아버지를 변하게 할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지요... 그것이 자신을 힘들게 하더라도 계속해서 도와야 하는지요. 이에 대한 바른 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스스로... 보다 깊이 보기를 해야합니다 우리자신과 상대방 사이의 관계를요. 그것이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이던, 딸과 어머니의 관계이던, 부부 또는 커플의 관계이던 간에요. 내가 상대방과 어려움이 있고, 내가 상대방을 바뀌게 하고 싶다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나 자신을 깊게 들여다 보고, 그런다음 상대방도 들여다 봐서, 그래서... 관계를, 연관성을 볼수 있게요. 우리는 보통... 그 상대방이 나 자신과 별개의 존재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올바른 견해가 아닙니다. 지금 이 경우는, 아버지가 우리 자신의 외부에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그 외부의 것만 바꿔야 하고 나의 내부에는 바꿀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우리는 아버지도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아버지는 내 몸의 모든 세포 안에 존재합니다. 우리 안에 우리의 아버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아버지의 연속이지요. 그리고 우리 안의 아버지를 먼저 변화시키는게 더 쉬울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루 24시간 언제나 할수 있지요. 아버지를 만나러 갈 필요도 없고, 변화를 위해 그에게 말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가 숨쉬고 걷는 방법을 통해서, 우리 안의 그를 변화 시킬수 있습니다. 내가 걸을때 함께 걸을수도 있고, 함께 앉아 명상을 할수도 있고, 함께 미소 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안의 아버지는 변할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자라서 지금의 아버지와 똑같은 행동을 할겁니다. 세상의 많은 자녀들이 그들의 아버지를 싫어해서, 자신들이 자라면 아버지 같이... 행동 하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지만, 막상 그들이 자라면, 아버지와 똑같이 행동하고, 아버지와 똑같은 말들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항상 일어나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정말 싫어하고, 그런 행동은 안하려하고, 그런 말은 안하려 해도, 결국 그런 행동을 하게 되고, 그런 말을 하게 되지요. 이런것이 불교에서 윤회 (Samsara) 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아버지의 연속입니다. 단지 신체적인것 뿐만 아니라, 사는 방식 모든 면에서요. 이제 여러분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났으니, 이것은 기회입니다. 먼저 자기 안의 아버지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 안의 아버지를... 성공적으로 변화시킬수 있다면, 이 고통의 윤회를 끝내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부정적 습관을 우리의 자손에게 물려주는 것을 멈춤으로써, 이러한 고통의 윤회가... 반복되는것을... 막는것입니다. 그리고 자신 안의 아버지가 변화한 후에는, 자신 밖의 아버지를 변화하는 것이 훨씬 쉬워질 것입니다. 그게 제 경험입니다. 제 주위에는 까다로운 스님들이 있습니다. (웃음) 불교계의 고위 승려 분들이시지요. 그분들은 매우... 보수적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려는 여러가지 변화에 대해서... 반대하지요. 여러분도 알듯이 사회를 위해 봉사하려면, 종교단체도 변화해야합니다. 종교가 기독교이던 불교이던, 이슬람이던 유태교이던지요. 이러한 종교계에서는 전통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사회와 인간에게 봉사하기 위해서는요. 그렇죠? 하지만 종교 안에는 많은 보수적인 요소들이 있습니다. 이 질문과 비슷한 경우를 저도 경험 했지요. 하지만 저는 이것을 일찍부터 알아차렸습니다. 변화를 추구하는 우리 자신 안에도... 그러한 보수적인 요소가 있다고요. 우리가 먼저 우리 자신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러니 만약 부부관계에서, 상대방이 변하려 하지 않을때, 상대방이 여러분과 별개의 존재일 뿐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상대방은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그 상대방이 설사 나와 이혼한 사람이라 할지라도요. 어제는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 "이미 이혼한 상대와의 화해와 새로운 시작이 가능한지요" 이런 질문이 우리가 대답해야할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이혼을 한 직후에는 내가 모든 방면에서... 완전히 순수히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상대방을 나자신으로부터 완전히 제거했다고 믿지요. 틀린 말이지요. (웃음) 절대로 전남편을 제거할수 없습니다. 절대로 전아내를 제거할수 없습니다. 절대로요! 그러니 여러분 바깥에 있는 그 사람에게 뭔가 시도하기전에, 여러분 안의 남편이 변할수 있도록 도와 보세요. 여러분 내부의 아내가 변할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리고... 이러한 수련으로, 우리 자신의 변화에 성공해서, 좋은 본보기가 될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꽃처럼 화사해집니다. 상대방도 우리처럼 화사해져야 합니다. 그러니 평소 말, 행동, 사는 방식에서 모범을 보여서, 상대방을 변하게 할수 있습니다. 이래라 저래라 말로만 해서는 상대방을 변화시킬수 없습니다. 하지만 나자신의 행동하는 방식과... 대응하는 방식에 모범을 보이면, 상대방이 변하는 것을 도울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상대방도 지능이 있고, 그런 변화를 알아챌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알듯이... 자신을 성공적으로 변화시키고, 상대방을 변화시키려면, 우리는 상가(sangha), 함께 도와줄 친구들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상가가 불교의 삼귀의(三歸依) 중 하나인 이유입니다. 상가 공동체의 에너지에 잘 의지하고 그것을 활용해서 우리자신의 변화와 치유에 도움을 줄수 있고 상대방의 변화에도 도움을 줄수 있습니다. 상대방을 변화시키려고 섣불리 서둘러서도 안됩니다. 먼저 그를 있는그대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그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이렇게 받아들이면 마음이 훨씬 나아집니다. 그리고 우리 안의 상대방을 변화시키기 시작할수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깊이있는 수행입니다. 그리고 우리 친구분은 해마다 플럼빌리지에 와서 아주 어렸을때부터 우리와 함께 수련을 해왔으니, 해낼수 있을겁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도울 것입니다. 희망을 잃지 마세요. 그리고... 희망을 잃지 않으려면, 하루하루 수련을 해서 항상 진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질문 고맙습니다. 좋은 질문이예요. (종소리) (번역: 한국 주의깊음 수련 상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