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마우스 클릭하는 소리] ["뉴욕 클로즈업"] [재채기] 저는 유머라는 요소가 없는 상황과 연결되어 있을 때 어려움을 느낍니다. 저에게 유머는 생존과도 같습니다. 유머가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도 없어요. [메리암 베나니의 폭발하는 시야] 저는 모로코 라바트에서 자랐습니다. 저는 9년 동안 뉴욕에서 살았습니다. 저는 지난 여름에 PS1에서 첫 번째 미술관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고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진짜 신이 났어요. 저는 1달 반동안 준비를 했습니다. 그 다음 주에는 모로코로 가는 비행기표를 샀고요. 저는 열심히 구경을 하기로 했고 모든 것을 영상에 담았습니다. 그곳에서 보낸 2주를 일기 형식으로 담았습니다. 저는 제가 결코 본 적이 없는 것들을 영상에 담아보고자 했습니댜. [음악이 연주됨] [파리가 리아나의 "kiss it better"를 부름] ♪키스해줘 더 부드럽게 내 사랑♪ 저는 비디오로 3D 파리를 만들었습니다. 파리가 여정을 소개했습니다. 파리는 스토리텔러입니다. 파리를 사용해서 저는 복합적인 이미지를 사용해 열 두가지 공간을 직접 비교해서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다른 관점들을 비디오에 담았어요. 저에게 비디오는 새로운 것입니다. 저는 언제나 그림을 그렸거든요. 저는 비디오를 사용해서 1초 동안에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저는 소재로서 특정한 장면을 사용합니다. 담긴 내용이 실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소재를 실제 세계와 완전히 분리하는 방식을 영상에 사용했습니다. 저는 무엇이 더해지거나 지워지거나 조작되는지를 보고 상상할 수 있는 작은 비디오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정말로 빠르게 작업이 이루어지고 15초 분량의 비디오가 만들어집니다. 1분도 되지 않는 영상이 인스타그램에 올라가는거죠. 그리고 영상에 정말로 즐거운 내용들을 담았습니다. [음악이 연주됨] 올해 봄에 저는 아트 두바이로부터 전시물을 만들어달라는 의뢰를 받았습니다. 저는 네 가지 조형물을 만들었습니다. 지하철 역사에 위치한 곳에요. 작품을 의뢰한 기관에서는 장소에 앉아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디자인을 선호했습니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서 머리를 통 안으로 넣어서 비디오를 보는 즐거운 경험을 할 수도 있습니다. [여성] 액션 이집트에서 온 커플이 있었는데 남성이 말했습니다. -"하빕티를 본 적이 있어요?" -여성이 말했습니다. "저는 하비비가 번식하는 걸 본 적이 있어요!" [이 장소 아름답지 않아요?"] [저요?] [베나니] 제가 모로코에 갔을 때 강력하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여성들과 함게 살고 있습니다. 저는 저의 가족인 네 여성을 영상에 담았습니다. 그 영상에서 네 사람은 가족이지만 출연자이기도 했습니다. [여성이 프랑스어로 말함] 저는 의학 전문가로 일합니다. 저는 이혼했고 아이가 없습니다. [베나니] 두 극단이 존재합니다. 한 편으로 저는 저 자신이 괴물인 것 같다고 느낍니다. 이 디지털 세계에 가족을 가두는 괴물이요. 다른 극단은 [카메라가 찰칵함] 온전히 가족을 사랑하는 존재입니다. 저는 저의 가족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그들과 마찰을 겪기도 합니다. 이런 요소가 스토리텔링의 소재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만약 한 작품에 소요된 시간이 100시간이라면 저는 1시간을 그들과 보내고 99시간동안 편집을 합니다. 그들의 얼굴을 보고 각 장면을 편집해야 합니다. 저희 가족은 제가 뉴욕에 있으면서 이렇게 많은 시간을 편집에 사용한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저는 이게 좋습니다. 저는 퍼블릭 아트 펀드에 초대받았습니다. 바클레이 센터에 사용할 둥근 스크린에 쓸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미디어는 양 극단을 묘사합니다. 그 중 하나는 무슬림에 관한 겁니다. 저는 이 비디오가 공공장소에서 사용될 것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예의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고 히잡을 쓴 여성에 그 내용을 반영했습니다. 비디오의 제목은 "당신의 1년 "입니다. 이 작품은 미국의 무슬림 공휴일을 보여주는 타임라인을 보여줍니다. 저는 장난스러운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고싶지 않았습니다. 이웃에 사는 히잡을 쓴 여성을 제가 지지한다는 사실을 관람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저는 다른 접근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히잡을 쓴 여성과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해 훨씬 더 많은 연구를 했습니다. 오늘날 미국에서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글을 쓰는지에 대해서요. "선거 이후 트럼프와 함께 미국에 산다는 것"이라는 작품에 저는 깊은 방식으로 영향을 받았습니다. 모로코에서 자라면서 저는 저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아랍인이라는 등의 생각들이요. 제가 아랍인인데도 말입니다. 저는 그런 용어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고 지금은 미국에 있습니다. 원치 않는 상황들을 겪으며 일곱 국가를 여행 밴을 타고 돌아다녔습니다. 그 때 저는 처음으로 제가 아랍인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모코코인 또는 무슬림 여성 예술가라는 타이틀을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저 나무에 대한 프로젝트를 만드는 예술가가 되고 싶습니다. -제가 이걸 만져봐도 되나요? -성격이 나쁘지는 않아요? -물지 않아요? 이 곳의 정치적 분위기 때문에 저는 저의 정체성에 대해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 분위기에 대한 저의 태도가 한 가지 장르나 정체성에 국한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제가 저 자신의 정체성을 어떤 하나로 국한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