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시 카푸르 : 대상물에는 사실상 실체가 없다고 느낍니다. 그들은 결코 처음 만들어졌을 때와 같은 상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사랑, 증오, 열정, 혐오같은 감정들을 가지고 그들을 봅니다. 이 때 관객이 개입됩니다. 언제나 관객과 작품 사이에 대화가 존재합니다.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중에 이따금 저는 작품의 불확실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작품을 만들다보면 외부에 설치할지 내부에 전시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집니다. 외부에 설치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때도 있어요. 왜 카메라가 안보여야 하나요? 여기를 찍으려면 카메라가 보일 수밖에 없어요. 저쪽에 두더라도 카메라가 있어요. 아주 긴 시간동안 광택이 나는 전시물이 이 곳에 전시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볼록한 구체로 이루어진 전시물입니다. 저는 오목한 구체를 사용해서 작업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의 특이한 점은 초점이 맞춰진다는 겁니다. 이 작품은 모든것을 확대하고 위아래를 뒤집어서 보여줍니다. 계속 보고 있으면 어지러움을 느낄 정도입니다. 보고 있으면 작품의 내부와 외부가 바뀌는 듯한 감정을 정말로 가지게 됩니다. 우리는 지식으로서 기하학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기하학에서 흥미로운 점은 지식의 n번째 차수의 차원에서는 지식이라는 것이 쓸모가 없어질 수 있다는 사실일 겁니다. 여기에 다른 예시가 있습니다. 음, 이들 중 어느 것이 다른 방식으로 비슷한 사물일까요? 이 작품은 하나의 곡선 모서리가 있는 삼각형입니다. 직선이 이곳과 저곳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의 모든 표면은 곡선입니다. 이 작품에서 저는 오목한 형태를 원하며 작업을 했습니다. 루이스 캐롤은 아래로 떨어져서 이어지는 공간을 그의 소설에서 보여줍니다. 토끼굴이나 뭐 그런거 아시잖아요. 그런 추락의 감각이 오목한 사물에 담겨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술가로서 우리는 대중에게 우리의 지식을 전달합니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작업을 하는 도중에 작품이 성공할지 여부를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성공을 위해서 위험을 감수해야 하죠. 저는 사람들이 어떤 공간으로 계속 걸어들어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제가 원하는 게 바로 그거에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죠. "클라우드 게이트"라는 작품이 완성된 이래로 2억 명의 사람들이 그 작품을 보았습니다. 놀라운 수치이지요. 사람들이 그 작품 앞에서 5억장의 셀피를 찍지 않았을까요? [웃음] 진짜 멋진 일이죠. 제가 이 작품을 처음 만들 때 저는 이 작품이 아주 인기가 많다고 느꼈습니다. 너무 쉬웠어요. 그리고 이 작품 근처에 앉아 있다가 이 작품에 흥미로운 요소가 잇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지요. 이 작품을 보면 크기가 대단히 큽니다. 그러나 이 작품을 보기 위해서 아주 멀리 갈 필요는 없습니다. 작품이 크기를 변하게 하는 효과를 주기 때문입니다. 작품은 크게 만들 수도 있고 작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작품의 크기는 의미와 규모 같은 것들을 조합하고 이상한 감정을 이끌어내는데 영향을 미칩니다. 저의 작품이 저의 영혼과 관계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신체의 치수는 작품과 관련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죠. 그래서 작품활동을 할 때면 작품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얼마나 작은지, 얼마나 잘 보이는지, 그밖에 고려해야 할 요소는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착하고 어린 인디안 소년들처럼 저는 어렸을 때 공학자 아니면 뭐 비슷한 게 되고 싶었습니다. 저는 17살 때 예술가가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저는 예술가가 제가 해야 하는 일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어요. 저는 예술 학교에 가기 위해서 이곳에 왔습니다. 런던은 놀라울 정도로 세계화된 도시입니다. 저는 런던에 살았습니다. 저에게 오신다면 저는 바로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니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설명하고 싶습니다. 저는 여러 가지 작품을 제작 중에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상당히 유기적이고 그들 모두 내부가 잘 구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하면 과정을 더 단순하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벽에 걸기 위해서 또는 종이 위에 그리기 위해서 어떤 지점에서 시작부터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작품에 대한 모든 것을 정해놓고 시작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하다 보면 만들어져요. 그리고 저는 그 안에 함축된 의미를 찾고 따라갑니다. 이런 과정은 저 외에 다른 예술가들도 따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힐러리가 만들었는데, 바로 저기에서 작업을 하고 있어요. 치수를 정확히 맞추기 위해서 특별한 사고 과정이 필요합니다. 힐러리와 저는 지난 몇 년 동안 함께 작업을 했고 정확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지 서로 천천히 이해하며 여기까지 왔고 작품의 치수를 잘 맞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인도 북부의 데라둔이라는 장소에서 자랐습니다. 히말라야 산기슭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마을 맨 끝에는 언제나 산이 있었습니다. 그 산은 항상 신비에 가득차 있었습니다. 이건 제가 아주 어린 시절에 40년 정도 이전에 색소를 사용해 만들었던 작품인데, 황량한 산을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작품에서 제가 보여주고자 하는 바는 저의 작품을 통해서, 저의 작품을 넘어서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언제나 그밖의 무언가가 존재하는 법이죠. 저는 군청색을 사용해서 많은 작업을 했습니다. 이 작품은 아주아주 어두운 검정색입니다. 한동안 이 색으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검정색에 가까운 붉은 색입니다. 아주 어두운 붉은 색을 사용해서 내부를 장식했습니다. 저는 관객이 얼마나 잘 몰입할 수 있는지를 염두에 두고 색채를 선택합니다. 제 작품은 샤워를 하러 들어가는 거랑 비슷해요. 샤워를 하면 몸이 젖게 됩니다. 붉은 색의 작품 앞에 있으면 마음까지 붉어지죠. 정말로 작품 주위에서 관객이 느끼는 기분이 될 수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이것은 내부를 반영한 겁니다. 저라는 존재는 저의 몸에 의해서 규정이 되죠. 그러나 사실 눈을 감으면 제 몸은 보이지가 않게 됩니다. 저는 그 순간 갑자기 완전히 다른 무언가가 되죠. 그러니 저는 작은 존재가 아닙니다. 그리고 붉은 색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어야 하죠. 작품은 심리적인 상태를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위한 교향곡"은 엄청나게 많은 양의 밀랍 덩어리를 옮기는 컨베이어 벨트 작품입니다. 밀납이 천천히 위로 올라가서 떨어져서 난장판을 만들죠. 저는 역학적인 과정과 조각 작품 그 자체라는 두 요소를 사용해서 현시감, 부패, 과정 같은 감각을 표현하고자 애썼습니다. 여기에 천천히 돌아가는 큰 블록 모양의 20톤에 달하는 밀납으로 만든 작품이 있습니다.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이 작품의 제목은 "나의 붉은 고향"입니다. 제가 잉태된 곳인 자궁이 실제로 내부적으로 [웃음] 외부적으로 붉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에 정신분석학적인 의미가 담겼다는 건 아닙니다. 그냥 재미를 위한 거에요. 저는 이 작품에 30년을 쏟았습니다. 작품에 몰두해야 작품을 만들 수가 있었죠. 저는 이 과정에서 내부 세계를 모든 조각으로 나누고, 실재하는 단어보다 더 분명하게 보여줄 수가 있다는 점 때문에 즐거움을 느낍니다. 저의 일이 빛을 발할 수가 있게 되는거죠. 그리고 이것이 정확히 스튜디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한 가지 생각이 계속해서 떠오릅니다. 이 붉은 피에 왜 집착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왜 내가 이 일을 반복해서 해야 하는 것일까요? 아시겠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냥 그 곳에 있으니까요. 예술가가 된다는 건 긴 여정입니다. 예술가로서 할 일이 많고 마음을 열고 자기 자신을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인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