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그림에서 자주
여성의 질처럼 생긴 어떤 형태를 봤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남성의 성기 같기도 합니다.
어느 정도까지 제 그림을
해석하고 싶은지는 모르겠네요.
저는 노골적인 관능을 작품으로 표현합니다.
제 몸은 욕구와
기쁨을 경험합니다.
관능적이기도, 굶주리기도
더럽기도, 표현이 다양하기도 합니다.
제 몸은 임신한 상태지만
꼭 사회에서 말하는
여성 혹은 임신한 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저는 누구나 겪는 기쁨과 고통을 체험하고 있으며,
이런 경험을 작품에 쏟아 붓습니다.
[로이 홀로웰 ‘초월하는 몸’]
9개월 후에
집에서 주니퍼를 출산했습니다.
딸은 이제 생후 6개월입니다.
코로나19 기간에 주니퍼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스튜디오로 복귀했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제가 7-8살때쯤
아빠가 스튜디오를 만들어 주었어요.
작은 방 이었죠.
아빠는 그곳에 작은 이젤과
새 캔버스 천을 마련해 줬어요.
그 공간이 아주 생생하게 기억나네요.
아빠의 공간과 엄마의 공간 옆에
나만의 공간이 생긴 것이 큰 변화였습니다.
아빠가 일찍부터 공간을 만들어 준 덕분에
항상 그림에 집중 할 수 있었어요.
그림 연습할 때 주안점은
색상과 빛입니다.
몇 년 동안의 작품을 살펴보면
빛에서 어두운 공간을 형성하는
아주 분명한 명암 대비가 보입니다.
‘빛과 공간’ 아티스트들이 넘쳐나는
캘리포니아에서 자랐습니다.
로버트 어윈 아름다운 작품 디스크,
빛과 그림자와 공간
순수한 빛
순수한 공간
순수한 감정을 경험
어둡거나
묘사하기 어려운 주제라 할지라도
빛이 가득한 체험을 쫓는
움직임이 항상 있었죠.
20대 후반에 임신했을 당시
저는 아이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낙태를 선택 했죠.
가족계획은 칭찬 받아 마땅했습니다.
제가 겪었던 감정과 관계의 종식은
정말 정서에 상당히 강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경험을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할지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우선 기본적으로 저의 질과 난소를 그리기 시작했고,
낙태 경험을 잘 묘사하고자 했습니다.
저는 색상이나 구성, 질감으로
그러한 추상을 느낌 또는 감정과
아우를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