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작은 마을에
살고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식량을 구할 수 있는 곳은
작은 연못 하나 뿐입니다.
마을사람 세 명도 그 연못에서
식량을 구하고 있습니다.
연못에는 열댓 마리의 물고기가 있고
물고기는 알을 낳죠.
물고기 두 마리당 매일 밤
치어 한 마리를 낳는다고 가정하죠.
그렇다면 식량 공급원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매일 잡을 수 있는
물고기는 몇 마리 일까요?
잠깐 동안 생각을 해봅시다.
치어가 단숨에 성어가
된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리고 연못은 물고기로 꽉 찼습니다.
잡는 물고기의 성별은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정답은? 한 마리이고
여러분만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의 식량을 최대한 확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한 사람 당 매일 물고기
한 마리씩만 잡는 겁니다.
왜 한 마리인지 살펴봅시다.
한 사람 당 한 마리만 잡게 되면
물고기가 여덟 마리가 남습니다.
물고기 한 쌍이 치어 한 마리를 낳고
다음 날, 연못은 물고기 열두 마리가
다시 채워져 있는 겁니다.
누군가 한 마리 이상을 잡으면
물고기 한 쌍의 숫자가 줄어들고
개체수는 다시 늘어날 수 없습니다.
결국엔 연못의 물고기는 모두 사라지고
네 명의 마을 사람들은 굻어 죽겠죠.
이 연못은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전형적인 문제의 한 예에 불과합니다.
이 현상은 1833년에 경제학자
윌리엄 포스터 로이더가
처음으로 기술했습니다.
마을 공유지에 소떼들을
과방목하는 문제를 두고
논의하면서 설명했습니다.
100년이 훨씬 지나고 생태학자
가렛 하딘이 이 개념을 되살려
여러 개개인들이 제한된
자원을 공유할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 설명했습니다.
예를 들어 목초지나
조업 구역
주거 공간
깨끗한 공기까지 공유하는 것을 말하죠.
하딘이 주장하는 바는
이런 상황들은 사리사욕과
공익 간의 싸움을 일으키고
모두에게 안 좋게 끝나게 됩니다.
과방목
남획
인구과잉
환경오염
그리고 여타의 사회, 환경적
문제를 낳게 됩니다.
'공유지의 비극'의 핵심은
더 큰 집단 전체에게
부정적인 효과가 퍼지는 동시에
모든 개인이 스스로에게 이익이 돌아갈
기회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정확한 이해를 돕기 위해
연못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각각의 개인은 가능한
많은 물고기를 잡으려고 합니다.
반면, 생산량 감소는
마을 전체가 부담하게 되죠.
옆집 사람들 보다
물고기를 더 잡고 싶어서
물고기를 한 마리 더 잡는게
최선의 이익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혹은 두 마리 더
세 마리 더 잡는 거죠.
안타깝지만 다른 사람들도
같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게 바로 비극이죠.
당장 순간에 자신을 위한 행동이
장기간 모두에게 최선책은 아닙니다.
간단한 예시이지만 공유지의 비극은
현실의 더욱 복잡한 시스템에도
부합합니다.
항생제남용은 축산의
단기간의 이익을 가져왔고
흔한 질병을 치료하게 됐지만
동시에 항상제에 내생을 지닌
박테리이가 생겼고
이는 인구 전체를 위협하는 일입니다.
화력 발전소는 소비자들을 위해
값싼 전기를 생산하고
소유자들에게는 이익을 창출합니다.
이런 한정된 이익은
당장에 도움이 되지만
채굴과 석탄을 때울 떄 발생한 오염은
대기 전체에 퍼지고
수천년 동안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 뿐만 아닙니다.
쓰레기
물부족
산림파괴
교통체증
그리고 생수를 구매하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지만 인류 문명은 인간이 경이로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우리는 사회계약을 맺었고
공동 협약을 체결했으며
정부를 선출하고
법을 통과 시켰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개인의 충동에서
집단을 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쉽지 않은 일이며 우리는 거의 매순간
제대로 해내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최선을 다하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딘의 가르침을 명심한다면
계속 해결할 수 있습니다.
'공유지의 비극'이 적용될 때
모두에게 좋은 것이
우리 개개인에게도 좋은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