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00:00:00,516 --> 00:00:04,623 저를 힘들게 하는 일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2 00:00:04,623 --> 00:00:07,127 왠지 모르게 여러분들 중 일부도 저와 비슷한 증상을 3 00:00:07,127 --> 00:00:09,047 겪었으리라는 생각이 드네요. 4 00:00:09,047 --> 00:00:11,144 미술관을 돌아다닐 때, 5 00:00:11,144 --> 00:00:13,247 수많은 작품이 걸려있는 방들을 6 00:00:13,247 --> 00:00:17,764 한 15분, 20분 정도 돌아보고 나면 7 00:00:17,764 --> 00:00:19,655 작품에 대해 생각하고 있지 않는다는 걸 깨달아요. 8 00:00:19,655 --> 00:00:21,263 나를 작품과 연관지으려 하지 않고 9 00:00:21,263 --> 00:00:23,767 그 대신, 커피 한잔을 마셔냐겠다거나 10 00:00:23,767 --> 00:00:26,767 졸음을 쫓아야겠다는 절박한 생각이 들죠. 11 00:00:26,767 --> 00:00:29,951 갤러리 피로 증상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12 00:00:29,951 --> 00:00:32,327 혹시 저와 같은 증상을 겪는 분들- 13 00:00:32,327 --> 00:00:34,332 네, 네, 많이 계시네요! 14 00:00:34,332 --> 00:00:36,482 물론 이런 증상을 20분 넘게 겪는 분도 계시고, 15 00:00:36,482 --> 00:00:38,576 혹은 그보다 짧게 겪을 수도 있지만, 16 00:00:38,576 --> 00:00:40,790 어쨌든 우리 모두가 이런 증상을 겪는다는 거죠. 17 00:00:40,790 --> 00:00:42,871 이에 따른 죄책감도 느끼고요. 18 00:00:42,871 --> 00:00:45,858 전 벽에 걸린 그림들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한답니다. 19 00:00:45,858 --> 00:00:48,873 누군가는 저 그림을 벽에 걸 가치가 있다고 20 00:00:48,873 --> 00:00:51,401 생각해서 걸어 놓았나본데, 21 00:00:51,401 --> 00:00:52,759 제가 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는거죠 22 00:00:52,759 --> 00:00:55,423 솔직히 대부분은 그렇게 보지 않아요. 23 00:00:55,423 --> 00:00:59,197 그러고 나면 뭔가 기분이 찝찝해지죠. 24 00:00:59,197 --> 00:01:02,664 스스로에게 왠지 모를 죄책감도 느끼구요. 25 00:01:02,664 --> 00:01:04,727 그림이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26 00:01:04,727 --> 00:01:06,184 내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27 00:01:06,184 --> 00:01:09,092 그런 마음으로 갤러리를 나서는 게 기분좋은 경험은 아니죠. 28 00:01:09,092 --> 00:01:10,363 (웃음) 29 00:01:10,363 --> 00:01:12,672 우리가 좀더 편하게 둘러보았으면 좋겠어요. 30 00:01:12,672 --> 00:01:15,132 음식점에 왔다고 생각해보세요. 31 00:01:15,132 --> 00:01:18,819 메뉴판을 보고, 거기에 있는 음식을 모두 다 32 00:01:18,819 --> 00:01:21,002 주문하려 하나요? 33 00:01:21,002 --> 00:01:22,884 아니죠! 그 중에서 고르는 거죠. 34 00:01:22,884 --> 00:01:26,059 셔츠 한장 사려고 백화점에 가서는 35 00:01:26,059 --> 00:01:29,036 모든 셔츠를 일일이 입어보고 36 00:01:29,036 --> 00:01:30,364 셔츠를 다 갖고 싶어하나요? 37 00:01:30,364 --> 00:01:34,491 물론 아니죠, 선택해야죠. 그게 정상이고요. 38 00:01:34,491 --> 00:01:37,112 그럼, 왜 미술관에서는 이런 선택이 39 00:01:37,112 --> 00:01:39,685 이상하게 느껴지는 걸까요? 40 00:01:39,685 --> 00:01:42,980 우리는 왜 그림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걸까요? 41 00:01:42,980 --> 00:01:45,684 전 좀 다른 접근을 해봅니다. 42 00:01:45,684 --> 00:01:47,302 두 가지 시도를 하는데요. 43 00:01:47,302 --> 00:01:51,796 미술관에 가면, 저는 먼저 모든 작품을 44 00:01:51,796 --> 00:01:56,031 재빨리 둘러본 다음, 왠지 모르게 이끌리는 45 00:01:56,031 --> 00:01:59,085 작품 몇점을 선정합니다. 46 00:01:59,085 --> 00:02:01,886 왜 이끌리는 지는 모르지만, 그냥 자석처럼 47 00:02:01,886 --> 00:02:03,943 저를 잡아당기는 작품 말이죠. 48 00:02:03,943 --> 00:02:07,061 다른 작품들은 다 잊고, 그 그림이 있는 곳으로 갑니다. 49 00:02:07,061 --> 00:02:09,525 제가 맨 먼저 하는 일은, 저만의 큐레이션을 하는 거예요. 50 00:02:09,525 --> 00:02:12,821 그림 하나를 골랐죠. 그저 50개의 작품 중 하나일 지도 모르죠. 51 00:02:12,821 --> 00:02:16,511 그리고 나서, 두번째로 하는 일은, 그 그림 앞에 서서 52 00:02:16,511 --> 00:02:19,588 저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 53 00:02:19,588 --> 00:02:23,186 왜 이야기냐고요? 글쎄요. 이상하게도 54 00:02:23,186 --> 00:02:27,077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건 우리의 DNA라고 생각합니다. 55 00:02:27,077 --> 00:02:29,446 우리는 모든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만들죠. 56 00:02:29,446 --> 00:02:34,557 아마도 그건, 이 세상이 하도 복잡하고 정신 없기 때문에 57 00:02:34,557 --> 00:02:38,508 그런 세상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위해서, 58 00:02:38,508 --> 00:02:40,677 이야기를 짓는게 아닐까요. 59 00:02:40,677 --> 00:02:44,668 이걸 미술 작품 감상에 적용하는 건 어떨까요? 60 00:02:44,668 --> 00:02:48,383 그래서, 음식점에서 메뉴 보듯이 61 00:02:48,383 --> 00:02:51,606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거죠. 62 00:02:51,606 --> 00:02:54,814 지금 여러분께 3개의 작품을 보여드리겠습니다. 63 00:02:54,814 --> 00:02:57,878 저를 멈추게 한 작품들, 64 00:02:57,878 --> 00:03:00,424 제게 이야기를 짓게 한 작품들이죠. 65 00:03:00,424 --> 00:03:03,975 첫 작품은 좀 익숙하실 텐데요. 66 00:03:03,975 --> 00:03:07,006 17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67 00:03:07,006 --> 00:03:09,162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라는 작품입니다. 68 00:03:09,162 --> 00:03:11,662 눈부시게 아름다운 작품이죠. 69 00:03:11,662 --> 00:03:13,806 제가 19살일 때 처음 보았는데, 70 00:03:13,806 --> 00:03:16,086 보자마자 나가서 이 작품의 포스터를 샀어요. 71 00:03:16,086 --> 00:03:20,243 30년이 흐른 지금까지 아직도 집에 걸려 있답니다. 72 00:03:20,243 --> 00:03:23,393 저는 이걸 가는 곳마다 가지고 다녔어요. 73 00:03:23,393 --> 00:03:25,737 한번도 질린 적이 없는 작품이예요. 74 00:03:25,737 --> 00:03:29,516 이 작품의 소녀가 저를 붙잡을 수 있었던 첫 번째 특징은 75 00:03:29,516 --> 00:03:32,073 화가가 쓴 화려한 색깔과 76 00:03:32,073 --> 00:03:34,017 소녀 얼굴에 비춰지는 빛이에요. 77 00:03:34,017 --> 00:03:36,801 하지만 여러 해가 지나도록 제가 이 작품에 78 00:03:36,801 --> 00:03:39,857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79 00:03:39,857 --> 00:03:43,551 소녀 얼굴에 드리워진 갈등을 겪는 표정입니다. 80 00:03:43,551 --> 00:03:45,969 기쁨인지 슬픔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이죠. 81 00:03:45,969 --> 00:03:48,936 가끔은 기뻐 보이기도 하고 가끔은 슬퍼 보였어요. 82 00:03:48,936 --> 00:03:52,535 그래서 자꾸만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죠. 83 00:03:52,535 --> 00:03:56,544 포스터를 벽에 건지 16년만에, 84 00:03:56,544 --> 00:03:59,226 침대에 누운 채 소녀를 바라보며 85 00:03:59,226 --> 00:04:01,805 이런 생각을 했어요. 베르메르는 어떻게 86 00:04:01,805 --> 00:04:05,723 소녀에게 이런 감정을 불어넣을 수 있었을까? 87 00:04:05,723 --> 00:04:08,667 그 순간 처음으로, 소녀의 표정은 88 00:04:08,667 --> 00:04:11,467 소녀가 베르메르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89 00:04:11,467 --> 00:04:13,606 나타내는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90 00:04:13,606 --> 00:04:16,762 전에는 늘 소녀의 초상화라고만 생각했었는데, 91 00:04:16,762 --> 00:04:21,531 지금은 소녀와 화가의 관계를 그린 거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92 00:04:21,531 --> 00:04:24,363 그리고, '어떤 관계일까?' 라는 생각을 했죠. 93 00:04:24,363 --> 00:04:27,571 그 관계를 찾아내겠다고 마음 먹은 저는 자료 수집 끝에, 94 00:04:27,571 --> 00:04:29,896 이 소녀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걸 알아냈어요. 95 00:04:29,896 --> 00:04:32,243 사실, 베르메르의 인물화 모델 중 누구도 96 00:04:32,243 --> 00:04:34,603 베르메르의 그림에 대해서 신원이 밝혀진 사람이 없죠. 97 00:04:34,603 --> 00:04:36,730 베르메르에 대해서도 알려진게 조금 밖에 없어요. 98 00:04:36,730 --> 00:04:39,504 그것은 저를 신나게 만들었어요. 99 00:04:39,504 --> 00:04:44,163 내 맘대로 이야기를 마음껏 지어낼 수 있을 테니까요. 100 00:04:44,163 --> 00:04:46,759 자, 제가 이야기를 짓게 된 과정을 설명할게요. 101 00:04:46,759 --> 00:04:48,636 먼저, 소녀가 102 00:04:48,636 --> 00:04:50,728 베르메르의 집에 있을 구실을 만들었어요. 103 00:04:50,728 --> 00:04:53,216 베르메르가 소녀를 어떻게 아는 걸까요? 104 00:04:53,216 --> 00:04:54,760 소녀가 베르메르의 12살 짜리 딸이라는 105 00:04:54,760 --> 00:04:59,183 의견이 많이 있긴 했어요. 106 00:04:59,183 --> 00:05:01,408 베르메르가 이 그림을 그릴 때 12살 짜리 딸이 있었거든요. 107 00:05:01,408 --> 00:05:04,104 하지만 제 생각은 달랐어요. 아주 가까운 관계일 것 같긴 하나 108 00:05:04,104 --> 00:05:06,288 딸이 아빠를 바라보는 표정은 저렇지 않거든요. 109 00:05:06,288 --> 00:05:08,128 왜냐하면, 저 당시 네덜란드의 그림에서는 110 00:05:08,128 --> 00:05:11,720 여인이 입을 벌리고 있으면 성관계를 나타내죠. 111 00:05:11,720 --> 00:05:13,608 베르메르가 딸을 그런 식으로 그린다면 112 00:05:13,608 --> 00:05:15,504 부적절하겠죠. 113 00:05:15,504 --> 00:05:17,384 따라서 소녀는 베르메르의 딸이 아닙니다. 114 00:05:17,384 --> 00:05:19,634 하지만 베르메르와 물리적으로 가까운 사람이죠. 115 00:05:19,634 --> 00:05:21,898 그럼 딸 말고도 집에 누가 살고 있었을까요? 116 00:05:21,898 --> 00:05:25,281 하녀, 사랑스러운 하녀가 살고 있었겠죠. 117 00:05:25,281 --> 00:05:26,842 자, 소녀는 집안에 있어요. 118 00:05:26,842 --> 00:05:29,503 어떻게 하면 베르메르의 작업실에 소녀를 들일까요? 119 00:05:29,503 --> 00:05:31,637 베르메르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지만 120 00:05:31,637 --> 00:05:33,776 우리가 아는 몇 가지를 모아보면, 121 00:05:33,776 --> 00:05:36,767 천주교 여성과 결혼해 장모님과 함께 살았고, 122 00:05:36,767 --> 00:05:39,040 개인 작업실이 따로 있는 집에서 살았고 123 00:05:39,040 --> 00:05:43,323 자녀가 11명이었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어요. 124 00:05:43,323 --> 00:05:46,400 집안이 혼란스럽고 시끄러웠겠죠. 125 00:05:46,400 --> 00:05:49,344 근데 베르메르의 그림들을 보면 126 00:05:49,344 --> 00:05:53,208 믿을 수 없을 만큼 고요하고 차분하답니다. 127 00:05:53,208 --> 00:05:57,104 11명의 아이들이 돌아다니는 집에서 어떻게 저렇게 차분한 그림들을 그릴 수 있었을까요? 128 00:05:57,104 --> 00:05:59,400 자신을 철저히 격리시켰기 때문이죠. 129 00:05:59,400 --> 00:06:03,080 작업실에 들어가면서 이렇게 말했겠쬬. "여긴 아무도 못 들어와." 130 00:06:03,080 --> 00:06:07,808 아내도, 아이들도. 뭐, 하녀는 청소해야 하니까 들여보내자." 131 00:06:07,808 --> 00:06:14,859 소녀가 작업실에 들어옵니다. 둘이 작업실에 같이 있는 상태죠. 132 00:06:14,859 --> 00:06:16,939 베르메르는 소녀를 그리기로 합니다. 133 00:06:16,939 --> 00:06:19,207 소녀에게 아주 수수한 옷을 입힙니다. 134 00:06:19,207 --> 00:06:22,578 베르메르의 다른 그림에 나오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135 00:06:22,578 --> 00:06:28,544 벨벳, 비단, 털 같이 사치스러운 옷을 입고 있어요. 136 00:06:28,544 --> 00:06:31,064 근데 소녀의 옷차림은 굉장히 평범하죠. 137 00:06:31,064 --> 00:06:33,104 평범하지 않은 것은 진주귀걸이입니다. 138 00:06:33,104 --> 00:06:36,551 소녀는 하녀라고 했는데, 어떻게 진주 귀걸이를 139 00:06:36,551 --> 00:06:38,758 살 수 있겠어요. 140 00:06:38,758 --> 00:06:42,020 소녀의 진주 귀걸이가 아니죠. 그럼 누구의 귀걸이죠? 141 00:06:42,020 --> 00:06:47,061 우연히 그 의 부인 카타리나가 가진 옷 목록이 밝혀졌는데요. 142 00:06:47,061 --> 00:06:50,677 그 중에는 하얀 털이 달린 노란 색 코트, 143 00:06:50,677 --> 00:06:52,424 노란색과 검정색이 섞인 보디스처럼, 144 00:06:52,424 --> 00:06:56,118 다른 그림들에 자주 나오는 옷들이 있어요. 145 00:06:56,118 --> 00:06:59,232 그림에서는 이 옷들을 서로 다른 여인들이 입고 있고요. 146 00:06:59,232 --> 00:07:03,710 그러니까, 부인의 옷을 다른 여인들에게 빌려준거죠. 147 00:07:03,710 --> 00:07:06,229 따라서 진주귀걸이도 148 00:07:06,229 --> 00:07:09,813 부인의 것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겠죠. 149 00:07:09,813 --> 00:07:12,990 자, 그럼 이야기의 구성 요소는 다 갖추고 있네요. 150 00:07:12,990 --> 00:07:15,420 소녀는 베르메르와 오랜 시간 동안 작업실에서 함께 있어요. 151 00:07:15,420 --> 00:07:17,463 이런 그림을 그리는 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거든요. 152 00:07:17,463 --> 00:07:20,334 오랫동안 단둘이 있었을 겁니다. 153 00:07:20,334 --> 00:07:22,334 소녀는 부인의 진주 귀걸이를 한 상태로요. 154 00:07:22,334 --> 00:07:25,149 아름다운 그녀. 베르메르를 사랑하는 게 분명하죠. 그래서 갈등을 겪고 있어요. 155 00:07:25,149 --> 00:07:27,941 부인은 이 사실을 알까요? 아마도 모르겠죠. 156 00:07:27,941 --> 00:07:31,319 만약 부인이 모르고 있다면, 157 00:07:31,319 --> 00:07:33,174 뭐 그렇게 이야기가 이어지죠. 158 00:07:33,174 --> 00:07:35,351 (웃음) 159 00:07:35,351 --> 00:07:37,941 다음으로 설명할 그림은 160 00:07:37,941 --> 00:07:41,188 샤르댕의 "카드로 집을 짓고 있는 남자아이"라는 작품입니다. 161 00:07:41,188 --> 00:07:45,564 정물화로 잘 알려진 18세기 프랑스 작가죠. 162 00:07:45,564 --> 00:07:48,157 하지만 그는 때때로 사람들을 그리기도 했어요. 163 00:07:48,157 --> 00:07:52,124 사실, 그는 이 그림을 4가지 버전으로 그렸어요. 164 00:07:52,124 --> 00:07:56,084 각기 다른 소년들이 집중해서 카드로 집을 짓고 있죠. 165 00:07:56,084 --> 00:07:59,548 저는 이 버전이 가장 마음에 들어요. 다른 그림에서는 소년들이 166 00:07:59,548 --> 00:08:02,941 더 나이가 많거나 적은데, 저에겐 이 아이가 골디락스의 죽 167 00:08:02,941 --> 00:08:05,893 (역주: 동화에서 골디락스라는 소녀가 세 개의 죽 중 딱 입맛에 맞는 걸 고름)처럼 딱 알맞아요. 168 00:08:05,893 --> 00:08:09,884 아이라고 하고도 그렇고, 어른이라고 하기도 좀 그렇죠. 169 00:08:09,884 --> 00:08:14,677 딱 순수함과 노련함 사이에 있는 나이입니다. 170 00:08:14,677 --> 00:08:19,160 그게 저의 눈길을 확 끌었던 거예요. 171 00:08:19,160 --> 00:08:22,877 소년의 얼굴을 보았죠. 베르메르의 그림과 비슷해요. 172 00:08:22,877 --> 00:08:25,500 왼쪽에서 빛이 들어와 소년의 얼굴을 173 00:08:25,500 --> 00:08:27,724 드리우고 있어요. 그림 한가운데서요. 174 00:08:27,724 --> 00:08:30,736 그리고 그걸 보면서 전 제가 어느새 175 00:08:30,736 --> 00:08:31,943 "나를 봐. 제발 나를 바라봐." 176 00:08:31,943 --> 00:08:34,896 라고 말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게 되었어요. 177 00:08:34,896 --> 00:08:37,632 하지만 그는 저를 보지 않았어요. 카드만 바라보고 있죠. 178 00:08:37,632 --> 00:08:40,384 그게 이 작품의 매력 가운데 하나예요. 179 00:08:40,384 --> 00:08:44,874 소년은 너무 몰두한 나머지 우리에게 눈길을 주지 않죠. 180 00:08:44,874 --> 00:08:48,767 뭔가 확실하게 결론이 나지 않는 작품, 181 00:08:48,767 --> 00:08:52,744 저에겐 그것이야말로 걸작의 증거입니다. 182 00:08:52,744 --> 00:08:54,265 소년은 결코 저를 쳐다보지 않겠죠. 183 00:08:54,265 --> 00:08:55,944 그래서 저는 이런 상황이라면, 184 00:08:55,944 --> 00:08:59,160 소년을 관찰하고 있을 사람은 누굴까? 라고 생각했어요. 185 00:08:59,160 --> 00:09:01,362 화가를 빼고요. 화가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네요. 186 00:09:01,362 --> 00:09:03,888 저는 그 소년보다 더 나이가 든 사람을 생각하고 있어요. 187 00:09:03,888 --> 00:09:09,833 남자, 하인, 나이가 많은 하인이 젋은 하인을 보면서 188 00:09:09,833 --> 00:09:12,304 "이봐. 너가 앞으로 겪게 될 일에 대해 이야기 할 게 있다. 189 00:09:12,304 --> 00:09:14,754 그러니 날 좀 보라구." 라고 말하는 거죠. 190 00:09:14,754 --> 00:09:16,280 그러나 소년은 돌아보지 않고요. 191 00:09:16,280 --> 00:09:20,083 결말에 대한 불확실성.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서 나타난 192 00:09:20,083 --> 00:09:22,127 불확실성은 소녀가 기쁜건지, 슬픈건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193 00:09:22,127 --> 00:09:23,776 저는 이 소녀에 대해 소설 한 권을 썼는데도 194 00:09:23,776 --> 00:09:25,776 아직도 소녀가 기쁜지 슬픈지 알 수 없어요. 195 00:09:25,776 --> 00:09:27,880 계속해서 다시, 궁금증을 채워 줄 단서를 찾기 위해 196 00:09:27,880 --> 00:09:32,561 그림을 보고, 또 봅니다. 197 00:09:32,561 --> 00:09:36,008 잠시동안 만족할만한 이야길 지어내지만, 198 00:09:36,008 --> 00:09:41,823 결국 만족할 수 없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옵니다. 199 00:09:41,823 --> 00:09:44,361 제가 설명하려는 마지막 작품은 200 00:09:44,361 --> 00:09:49,225 익명의 사람이 그린 "익명"이라는 작품입니다.(웃음) 201 00:09:49,225 --> 00:09:52,276 국립초상화미술관이 소장하고 있 는 튜더 왕가 때의 작품입니다. 202 00:09:52,276 --> 00:09:54,889 처음엔 토마스 오버베리 경의 초상화라고 생각했어요. 203 00:09:54,889 --> 00:09:57,553 나중에 오버베리 경이 아니었다는 게 밝혀지고 나자, 204 00:09:57,553 --> 00:09:59,153 그가 누군지 아무도 모르게 되었죠. 205 00:09:59,153 --> 00:10:01,296 국립초상화미술관에서는 206 00:10:01,296 --> 00:10:03,065 작품의 전기를 모르면 207 00:10:03,065 --> 00:10:04,689 사실상 쓸모가 없습니다. 208 00:10:04,689 --> 00:10:07,113 누구의 초상화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벽에 걸 수도 없고요. 209 00:10:07,113 --> 00:10:12,017 그래서 안타깝게도, 이 '고아 작품'은 다른 수많은 '고아 작품'들과 함께 210 00:10:12,017 --> 00:10:14,161 창고에 쳐박혀 지내야 했습니다. 211 00:10:14,161 --> 00:10:16,672 그 중에는 아름다운 작품들도 몇 점 있었어요. 212 00:10:16,672 --> 00:10:21,675 하지만 이 작품이 저를 붙잡은 데에는 3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213 00:10:21,675 --> 00:10:24,552 하나는 그의 웃고 있는 입과 214 00:10:24,552 --> 00:10:27,257 애련한 눈빛 사이의 괴리감 때문이에요. 215 00:10:27,257 --> 00:10:30,264 그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왜 일까요? 216 00:10:30,264 --> 00:10:33,981 저를 매료시킨 또 다른 점은 바로 217 00:10:33,981 --> 00:10:35,697 그의 밝고 붉은 뺨이었습니다. 218 00:10:35,697 --> 00:10:39,304 그는 얼굴을 붉히고 있죠. 자기 초상화를 만들기 때문에요. 219 00:10:39,304 --> 00:10:42,338 쉽게 볼이 발개지는 사람이었을 겁니다. 220 00:10:42,338 --> 00:10:44,480 무슨 생각이 그의 볼을 붉게 만들었을까요? 221 00:10:44,480 --> 00:10:48,256 제 발걸음을 멈추게 한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은 바로 222 00:10:48,256 --> 00:10:51,056 정말 멋진 더블릿입니다. (*역주: 14~17세기에 남성들이 입던 짧고 꼭 끼는 상의) 223 00:10:51,056 --> 00:10:54,624 실크로 만든 잿빛의 아름다운 단추. 224 00:10:54,624 --> 00:10:56,256 그 조화는 제게 일종의 아늑하고 푹신한 - 225 00:10:56,256 --> 00:11:01,048 침대위의 이불을 생각나게 합니다. 226 00:11:01,048 --> 00:11:03,704 계속해서 침대와 빨개진 뺨을 생각하면서 227 00:11:03,704 --> 00:11:06,464 그를 볼 때마다 성관계에 대한 생각이 들게 했죠. 228 00:11:06,464 --> 00:11:09,072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229 00:11:09,072 --> 00:11:11,344 이에 대한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230 00:11:11,344 --> 00:11:13,328 마지막으로 뭘 넣을까? 고민했죠. 231 00:11:13,328 --> 00:11:16,958 튜더 왕조의 신사들은 무엇에 사로잡혀 있었을까요? 232 00:11:16,958 --> 00:11:18,888 전 그 대상을 헨리 8세로 생각했고 233 00:11:18,888 --> 00:11:23,032 아마도 그는 상속과 그의 후계자에 관한 생각으로 사로잡혀 있었겠죠. 234 00:11:23,032 --> 00:11:26,681 누가 그의 이름과 유산을 이어받을까요? 235 00:11:26,681 --> 00:11:30,561 이 모든 것들을 모아보면, 여러분은 여러분들의 궁금증에 대한 236 00:11:30,561 --> 00:11:33,915 갈증을 해소해 줄 이야길 만들게 됩니다. 237 00:11:33,915 --> 00:11:38,636 자,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238 00:11:38,636 --> 00:11:41,566 짧아요. 239 00:11:41,566 --> 00:11:44,297 "로지" (Rosy:장밋빛)* 240 00:11:44,297 --> 00:11:48,347 아직도 난 케롤린이 준 하얀색 양단 더블릿을 입고 있다. 241 00:11:48,347 --> 00:11:52,658 수수한 높은 깃에, 붙였다 뗄 수 있는 소매 242 00:11:52,658 --> 00:11:55,834 비단실이 복잡하게 꼬여 있는 단추, 243 00:11:55,834 --> 00:11:58,760 나한테 딱 맞게 만든 옷. 244 00:11:58,760 --> 00:12:02,323 이 더블렛은 큰 침대위의 침대보를 생각나게 한다. 245 00:12:02,323 --> 00:12:06,073 아마도 그게 그녀의 의도였을지도 모른다. 246 00:12:06,073 --> 00:12:10,991 처음으로 그걸 입은 건 그녀의 부모가 우리를 위해 정성스런 만찬을 열었을 때다. 247 00:12:10,991 --> 00:12:12,817 내가 연설을 하려고 일어서기도 전에, 248 00:12:12,817 --> 00:12:15,386 내 뺨이 불타오르고 있음을 알았다. 249 00:12:15,386 --> 00:12:19,087 나는 늘 심하게 운동을 하거나 250 00:12:19,087 --> 00:12:21,442 와인이나, 들뜬 기분으로 쉽게 볼이 발개지곤 했다. 251 00:12:21,442 --> 00:12:25,907 어렸을 때 누나들과 학교 친구들이 놀리곤 했지만 252 00:12:25,907 --> 00:12:28,354 조지는 놀리지 않았다. 253 00:12:28,354 --> 00:12:31,428 조지만이 나를 로지라고 부를 수 있었다. 254 00:12:31,428 --> 00:12:33,587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는 걸 허락할 수 없었다. 255 00:12:33,587 --> 00:12:37,811 조지는 그 단어를 다정하게 말하곤 했다. 256 00:12:37,811 --> 00:12:40,610 내가 결혼 발표를 하자, 조지는 257 00:12:40,610 --> 00:12:43,674 발개지긴 커녕, 내 더블렛만큼 창백해졌다. 258 00:12:43,674 --> 00:12:45,578 그가 놀랄 것도 없었는데. 259 00:12:45,578 --> 00:12:47,250 언젠가는 내가 그의 사촌과 결혼을 할거란 것은 260 00:12:47,250 --> 00:12:51,098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일이었다. 261 00:12:51,098 --> 00:12:53,682 하지만 그 얘기를 큰 소리로 듣기는 힘들었다. 262 00:12:53,682 --> 00:12:56,983 나도 겨우 그 얘기를 꺼낼 수 있었다. 263 00:12:56,983 --> 00:13:01,385 나중에 부엌 정원이 내려다 보이는 테라스에서 조지를 찾았다. 264 00:13:01,385 --> 00:13:06,642 오후 내내 술을 들이켰는데도 그는 여전히 핼쑥했다. 265 00:13:06,642 --> 00:13:10,867 우리는 함께 서서 양상추를 자르는 하녀를 바라봤다. 266 00:13:10,867 --> 00:13:13,129 "내 더블렛 어때?" 나는 물었다. 267 00:13:13,129 --> 00:13:18,573 조지는 나를 흘낏 보며 말했다. "옷깃이 네 목을 조르는 것 같아." 268 00:13:18,573 --> 00:13:20,577 "우린 계속 만나게 될거야" 나는 강조했다. 269 00:13:20,577 --> 00:13:23,865 "같이 사냥도 나가고, 카드놀이도 하고, 궁궐도 가고. 270 00:13:23,865 --> 00:13:25,601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거야." 271 00:13:25,601 --> 00:13:29,318 조지는 아무 말이 없었다. 272 00:13:29,318 --> 00:13:32,712 난 벌써 23살이야. 이제 나도 결혼해서 273 00:13:32,712 --> 00:13:36,817 후계자를 낳아야 할 때가 온 거라고. 다들 내가 그러길 바래. 274 00:13:36,817 --> 00:13:40,398 조지는 포도주 한 잔을 비우고, 나를 바라봤다. 275 00:13:40,398 --> 00:13:44,481 "결혼 축하한다, 제임스. 276 00:13:44,481 --> 00:13:49,317 둘이 잘 어울려." 277 00:13:49,317 --> 00:13:52,634 그는 내 별명을 다시는부르지 않았다. 278 00:13:52,634 --> 00:13:54,393 고맙습니다. 279 00:13:54,393 --> 00:13:57,775 (손뼉) 280 00:13:57,775 --> 00:13:58,957 고맙습니다. 281 00:13:58,957 --> 00:14:00,504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