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디온: 저는
사물로부터 많은 것을 얻어내는 예술가입니다.
저는 이 세상의 물건들을 정말 사랑합니다.
저는 항상 벼룩시장과 야드 세일, 정크 스토어로 가서
물건들을 삽니다.
그리고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물건들로 저 자신의 주변을 채우는 것을 좋아합니다.
어떤 예술가는 그림을 그리고, 다른 예술가들은 조각을 하고
또 다른 예술가들은 사진을 찍습니다.
그리고 저는 물건을 삽니다.
그게 제가 하는 일입니다.
이따금 그러한 것들을 차고에 넣어두고
이따금 그들이 저의 삶으로 들어와서
조각이나 설치 예술 작품의 일부가 됩니다.
저는 사람들이 오브제를 통해서 경험을 하고 배우는 것을
돕는 미술관의 목적과 제가 강하게 결합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목적이 조각의 본질과 설치예술
그리고 현대 예술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고 여깁니다.
저는 가장 최근에 지어진 미술관을 찾지 않습니다.
언제나 가장 오래된 미술관을 찾습니다.
저는 마치 창문을 통해서 예술을 보는 방식과 비슷하게 미술관을 찾아 다닙니다.
우리는 특정한 시대에 자연적인 세계에 관해서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들의 편견, 정서, 강박적 생각들에 대해서요.
제 모든 생각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스케치를 하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개념적인 그리고 실용적인 것들에 대해서요.
과학자들에게는 없지만 예술가들에게는 있는 도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유머와 모순, 은유. 이런 것들은 예술가들에게는 빵과 버터가 됩니다.
이 작품은 퍼핀 섬에 사는 쥐들에 대한 생각과 관련이 있습니다.
퍼핀 섬은 웨일즈 해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섬입니다.
사람들이 이 섬으로 점점 더 많이 방문하기 시작하자
쥐들도 그들을 따라갔고
곧 퍼핀 점은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타르는 중세시대 이후로 처벌과 징벌에 사용되었습니다.
타르는 자연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역사적으로 인간의 무자비함을 드러내는 재료이기도 했습니다.
미국에서 사람들은 처형당한 해적과 죄인들의 몸을 타르로 덮었습니다.
이는 경고로서 사람들에게 그들의 시체를 더 오랫동안 보여주기 위함이었어요.
중세 시대에, 끓는 타르는 성을 방어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그들은 성벽 난간으로 타르를 던졌고
무자비한 인간의 역사와 타르는 계속해서 함께 했습니다.
저는 더 나은 생태학적 미래를 상상하는데 많은 시간을 쏟는 예술가는 아닙니다.
저는 오늘날을 비추는 거울을 들고 있는 예술가에 더 가깝습니다.
우리는 현재 자연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우리 앞에 큰 시험을
마주하고 있는 순간에 살고 있다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시험에 통과를 하면 지구를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아주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자연에는 정말로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자연에 대한 생각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의 작품이 다루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디서 오는지, 역사적 배경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들을 숙고하는 거죠.
저와 다른 예술가들에게 과학은 이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과학에 대한 우리의 관계는 신학과
르네상스 예술가들과의 관계와 매우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현대예술의 일차적인 목표가
문화를 지배하는 비평적 토양으로서 기능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금 시애틀 외곽의 보호 구역에 와있습니다. 이곳은 분수계를 이루며
시애틀 비바리움 프로젝트(SEATTLE VIVARIUM)에 사용된 나무를 이 곳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이것은 1996년 2월 8일 저녁에 쓰러진 아주 큰 미국솔송나무입니다.
저는 자연계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생각하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나무 주변에서 온 실제 토양을 채취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끼와 양치류, 단순한 식물들,
버섯들을 채취할 것입니다.
이곳에는 모든 종류의 다른 식물들이 있으며 그것들은 열대우림의 나무들에서부터
떨어져나와 여기에 붙어있는 것들입니다.
우리에게는 솔송나무 씨앗이 있고
이 이끼 안에 이미 있는 다양한 모든 것들이 있습니다.
나무는 다음 숲이 자라날 기반을 제공합니다.
나무는 살아있는 유기체의 군집을 유지하게 합니다.
이런 조각을 보면 낙관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무는 죽을 때 다른 유기체에게 생명을 공급합니다.
나무의 놀라운 점이 여기에 있죠.
생명이 끝을 맺으면 새로운 시작이 이어진다는 거요.
제가 하는 일은 자연의
잊혀진 부분을 도시로 다시 가져다 놓는 것입니다.
저는 오래 전에 이곳에 존재했던 것들을 다시 그 장소로
가져다 놓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역사를 기억하게 하는 거죠.
이런 더운날에 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장소를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는 큰 일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오늘날의 장소에 나무를 가져다 놓는 일 뿐 아니라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서 주변에 구조물을 만드는 일도 합니다.
이런 일을 통해서 그곳에서 자라는 군집들이 해를 입지 않도록 합니다.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은
영화를 제작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는 조언자와 토양 과학자
생물학자와 건축가들과 함께 일합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과 한 팀이 되어 일하는 거죠.
저는 이 장소에서 어떻게 이런 요소들이 서로 화합하는지 보기를 원합니다.
이것을 내려 놓으면 그것들의 자리를 결코 옮길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빌딩과 완벽하게 맞아야 하기 때문에 올바르게 설치할 필요가 있어요.
이 작업은 어떤 의미에서 뜻대로 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