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은 국가권력의 중심 기둥이다. 감옥은 인간 고통의 저장고이며, 또한 우리를 어린 시절부터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종속을 받아들이도록 프로그래밍하고 위협하는 역할을 한다. 즉 감옥은 시키는 대로 하라는 영원한 경고이다. 여기는 분명 인간에게 비정상적인 환경이에요. 본질적으로 여긴 새장이에요. 우리는 하루에 23시간 여기 갇혀있다가 1시간 밖에 나옵니다. 정말 힘들어요. 감옥은 초기국가가 발달한 이래로 어떤 형태로든 존재해왔다. 그러나 대부분 감옥은 어떤 형태의 공개 고문, 처형 또는 강제노역과 같은 실제 처벌을 기다리는 동안 구금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것이 18세기 중반 산업자본주의의 부상 속에 현대 감옥시스템이 형성되면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유럽과 북미의 주요도시는 과밀화된 불결함, 절망, 불평등의 현장이었고, 이로 인해 범죄의 온상이 되었다. 소위 "위험한 계급"에 대한 지배계급의 히스테리에 힘입어, 화중시계를 훔치는 것과 같이, 비교적 가벼운 범죄를 공개교수형에 처할 수 있는 엄격한 법률이 통과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퀘이커 교도와 같은 진보적인 기독교 단체는, 대량처형에 대한 인도적인 대안으로, 감옥 개혁을 제안하였다. 초기 감옥의 옹호자들은, 오랜 고립이 죄수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반성하고 신에게 참회할 충분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새로운 시설을 '교도소'라고 불렀다. 오래지 않아, 권력자들은 감옥을 공공안전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적 위계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수단으로 보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감옥의 건설은 남북전쟁 이후 열풍이었다. 그것은 국가가 노예제 폐지로 인해 손상된 백인우월주의의 비계를 재건하려고 안간힘을 쓰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러한 인종주의적 대량 투옥시스템은 1970년대 블랙파워 운동과 해방운동의 패배 이후 수십년 만에 다시 확대되어, 현대적인 형태의 '교도작업장'이 건설되는 데 기여하였다. 앞으로 30분 동안, 우리는 다양한 개인들과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그들의 경험과 겪었던 어려움을 공유하면서 말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국가가 부과한 고립의 장벽을 허물고, 새장을 뒤흔들려는 죄수들과 감옥폐지론자들의 조직들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이제 많은 TROUBLE을 만들어보자. 판옵티콘은 1700년대 후반, 제레미 벤담에 의해 설계된 감옥 디자인입니다. 건물 중앙에 감시탑이 있었죠. 그리고 죄수들은 감방에 배치되어서, 중앙의 경비원은 언제라도 감방을 감시할 수 있었죠. 규율사회에서, 주체는 매순간 김사당하는 느낌을 내면화하고 자기 감시를 실천합니다. 왜냐하면 항시적 감시의 잠재력은 피감시자가 감시자가 기대하는 것에 따라 행동을 조정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감옥은 시간의 흐름을 무기화하는 국가입니다. 슬픔과 복종을 생산하기 위한 공장이죠. 감옥은 지루함과 면밀한 조사에 기반을 둔 매우 위계적인 내부문화입니다. 우리의 삶이 정말 엉터리라도, 국가가 우리에게서 여전히 빼앗을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깊이 알 수 있게 합니다. 감옥은 교환과 지배의 모든 관계를 지탱하는 영구적인 위협입니다. 즉, 감옥은 자본주의 하 모든 종류의 일상적 상호작용에서 우리 모두에게 깊은 영향을 끼칩니다. 우리가 감옥에 들어가지 않더라도요. 저는 교도작업장이 사법제도의 개념과는 별개로 발전한 것이라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건 독자적인 기계가 되었어요.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요. 교도작업장의 원동력은, 인구학적 동기와 같이 다른 동기가 이끕니다. 정치적으로, 상황을 바꾸려는 가장 큰 동기를 가진 사람들은 시스템에 갇혀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정치적 동기가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구학적 동기가 작용하죠. 통제를 위한 도구로써 말이에요. 감옥의 정치 경제는 탈산업화의 역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시카고, 오클랜드, 필라델피아, 디트로이트 같은 도시 중심지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이주하는 물결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자리가 교외로 이동하고, 세계화 하에서 해외로 이동하면서, 도시 빈곤의 집중지역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일어난 일은, 감옥이 노동시장에서 쫓겨난 사람들을 흡수했다는 것입니다. 즉, 디트로이트나 시카고 같은 곳에서, 자본이 불필요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감옥으로 모여들게 된 것이죠. 감옥은 사회에서 특정한 사람들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인종, 빈곤, 식민화의 역사, 정신질환, 장애와 같은 것들이 모두 감옥 시스템과 교차합니다. 그러니까 감옥은, 따뜻하고, 공정하고, 능력있는 시민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사람들을 배치하는 장소입니다. 감옥에 버리는 것이죠. 이주자의 집행과 구금에는 미국 이민세관단속청과 비교되는 캐나다 국경관리청과 같은 여러 기관들이 관여된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캐나다에서 추방되어왔다. 수십년동안 그 과정은 사람들을 감옥에 가두다가 캐나다에서 쫓아내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연방교정시설이나 이주자 보호소, 혹은 이주예방센터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이주민들을 위한 감옥일 뿐이다. 캐나다에서는 이주민에 대한 무기한 투옥을 시행하고 있는데, 이러한 억류는 평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8년 넘게 구금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구금 과정 중 여러 명이 사망했습니다. 그 중 대부분은 이름이나 숫자조차 모릅니다. 왜냐하면 추적되지 않으니까요. 사람들은 국경 너머를 보고, "트럼프가 아이들을 감금하고, 우리에 가두고 있어" 라고 하지만, 사실 우리도 똑같은 짓을 하고 있습니다. 이민자 수용소에도 아이들이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캐나다에 원주민들이 과잉 투옥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여성 수감자의 40% 가까이를 원주민 여성이 차지하고 있어요. 서스캐처원의 수감된 소녀들의 99%가 원주민 소녀들입니다. 캐나다에 수감된 젊은이의 50% 이상이 원주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