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제니퍼 브레아는 소리에 굉장히 예민하시기에 청중들께 박수를 수화로 하길 부탁드렸습니다.] 이게 오년 전의 저예요. 저는 하버드 박사과정 학생이었죠. 여행하기를 좋아했어요. 저는 막 제 인생에 찾아온 사랑과 약혼한 상태였어요. 저는 28살이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아주 건강했어요. 마치 천하무적인것 같았죠. 그러던 어느날 열이 38.4도까지 끓어올랐어요. 그때 의사들에게 갔었어야만 했어요. 하지만 저는 제인생에서 한번도 아팠던 적이 없었어요. 그리고 저는 알고 있었어요. 집에서 치킨스프나 좀 만들어 먹으면 며칠안에, 모든게 괜찮아진다는 걸요. 하지만 이번엔 달랐어요. 열이 내린 뒤 3주 동안 너무 어지러워서 집 밖으로 나설 수가 없었죠. 문으로 똑바로 걸어나가려고 했어요. 욕실까지 가려고 벽을 안다시피 했죠. 그해 봄에 두 번째로 감염이 됐어요. 그리고 의사를 찾아갈 때마다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만 말했어요. 그는 임상병리검사를 했지만 그 실험결과는 항상 정상이라고 되돌아왔죠. 그건 전부 제 증상들이었어요. 설명은 가능했었어요. 아무도 볼 순 없었지만요. 바보같은 소리로 들리는 거 알아요. 하지만 이렇게 스스로에게 설명할 방법을 찾아야 해요. 그래서 그냥 내가 나이드는 건가보다 했죠. 25살의 반대편은 이런 건가 봐요. (웃음) 그 후에 신경계통의 증상이 시작됐어요. 저는 제가 원의 오른쪽 면을 그릴 수 없다는 걸 발견했어요. 언제 부턴가 전혀 걷거나 말할 수 없었죠. 저는 모든 분야의 전문의들을 만났어요. 감염내과의, 피부과 전문의, 내분비전문의 그리고 심장전문의를요. 저는 심지어 정신과 전문의도 만났어요. 제 정신과 전문의는 말했어요. "당신이 아픈 건 맞습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그들이 당신에게 무슨 이상이 있는지 꼭 찾아냈으면 합니다." 그 다음날, 신경과 전문의는 전환장애라고 진단내렸죠. 그가 말하기를 고열, 인후통, 축농증 소화의, 신경의, 심장의 모든 증상들이 오래된 정서적 트라우마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제가 기억하지 못할 트라우마들이요. 그 증상들은 진짜입니다, 그가 말했어요. 하지만 거기에 생물학적 원인은 하나도 없어요. 저는 사회과학자가 되는 과정에 있었어요. 저는 통계학, 확률론 수학적 모델링, 실험설계를 배웠어요. 제 신경과 전문의의 진단을 그저 부정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죠. 실감나지 않았어요, 하지만 제 공부를 통해 종종 사실은 직관과 반대되고 우리가 믿고자하는 것에 의해 쉽게 불투명해진다는 걸 알았죠. 그가 옳다는 가능성을 고려해야만 했어요. 그날, 저는 작은 실험을 해보기로 했어요. 그분의 사무실에서 저희 집까지 2마일(약3km) 걸어 돌아갔어요. 제 다리는 전기에 휩싸이는 듯한 이상한 느낌을 받았죠. 저는 고통에 잠겨있었어요. 어떻게 제 정신이 이 모든 것을 만드는 게 가능한지 생각하면서요. 문을 들어서자마자 쓰러져 버렸어요. 제 뇌와 척추가 불타오르는 느낌이었어요. 고개를 숙일 수도 없을 만큼 목이 뻣뻣해져 있었어요. 그리고 그 아주 작은 소리들이 그 침대시트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맨발로 걷고 있는 남편의 발소리가 극심한 고통으로 다가왔어요. 저는 2년중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 위에서 보내야만 했어요. 어떻게 이런 오진이 날수가 있죠? 저는 제가 희귀병에 걸렸다고 생각했어요. 의사들도 한번도 본적 없는 무언가요. 그리곤 저는 온라인으로 갔어요. 그리고 전세계 수 많은 사람들을 찾았어요. 제가 같은 증상들을 겪고 있었죠. 비슷하게 고립돼 있고 비슷하게 사람들에게 믿어지지 않았어요. 몇몇은 일을 계속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밤과 주말을 침대 위에서 보내야만 했어요. 월요일에 다시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요. 그 스펙트럼의 다른 면에서는 몇몇은 정말 아팠어요. 그들은 완벽한 어둠 속에서 살아야만 했어요. 사람의 목소리를 참을 수 없었고 사랑하던 사람의 손길도 참을 수 없었어요. 저는 근육통성 뇌척수염이라고 진단받았어요. "만성피로증후군"이라고 들어보셨을 거예요. 수십 년 간, 그게 명칭이었어요. 그 병이 이처럼 심각해질 수 있는 병이라는 인식을 갖게 해주었죠. 무언가를 할 때마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심하게 고통받는 것이 우리들이 이야기했던 주증상이었어요. 만약 제 남편이 달리기를 한다면, 이틀간 아플 거예요. 하지만 저는 몇걸음만 걸어도 일주일간은 몸져 누워있을 거예요. 감옥에 갇혀있는 기분이었어요. 제가 아는 사람중에는 춤을 출 수 없는 벨리 댄서가 있고 덧셈을 할 수 없는 회계사가 있고 의사가 될 수 없는 의대생이 있어요. 여러분이 누구였던지는 상관없어요. 여러분은 더이상 할 수 없어요. 4년이 됐습니다. 예전의 저로 돌아갈 수 없죠. 사무실에서 집으로 걸어갔던 그 시절으로요. 천오백만에서 삼천만의 사람들이 이 병을 앓고 있다고 추정돼요. 제가 살았던 미국에서는 백만정도가 있죠. 이 병이 다발성 경화증의 약 2배정도로 흔하다는 뜻이에요. 환자들은 울혈성 심부전환자들의 신체기능으로 수십 년 동안 살았어요. 저희 중 25%는 집에 틀어박혀 있거나 몸져 누워있어요. 저희 중 75%서 85%는 단시간 근무도 하지 못해요. 의사들은 아직 저희를 치료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과학은 아직 저희를 연구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흔하고 파괴적인 질병이 의료기술으로부터 외면받을 수 있나요? 제 의사가 저를 전환장애라고 진단했을때 그는 여성의 몸에 대한 혈통을 들먹이고 있었어요. 이천오백년도 더 된 거였죠. 고대 로마의 물리학자 갈렌은 그 히스테리는 특히 정열적인 여자들의 성적결핍에 의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스인들은 자궁이 말그대로 건조해서 수분을 찾아 몸주변을 어슬렁거린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요. 압박된 장기들이 극심한 감정들부터 어지러움과 마비증세들을 만들어냈다는 거죠. 결혼을 하고 어머니가 되는 것이 그 해결책이었어요. 이러한 생각들은 1880년까지 몇천 년간 바뀌지 않았어요. 그 신경과 전문의는 그 히스테리이론을 현대화시키려고 했어요.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론을 발전시켰어요. 그 무의식적인 마음이 신체적인 증상들을 발생시킨다고요. 기억들과 감정들을 다룰 때 생기는 아주 고통스러운 조절하기 힘든 무의식적인 생각들이요. 이런 감정들이 신체적 증상들로 전환된다고요. 이건 남자들도 히스테리를 가질 수 있다는 의미이죠. 하지만 물론 여전히 여성이 가장 취약했어요. 제 병의 유래를 조사하기 시작했을 때 아직도 우리에게 이러한 생각들이 존재하고있다는 것에 놀랐어요. 1934년에 로스 앤젤레스 시립 종합 병원에 198명의 의료진과 직원들이 심각한 병에 걸렸어요. 그들은 근력 저하, 목과 등의 뻣뻣함, 고열에 시달렸어요. 제가 진단받았을 때의 증상들과 동일했어요. 의사들은 소아마비의 새로운 형식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전세계에서 눈에띄게 비슷한 전염병들이 70건이상 기록되어 있어요. 이 모든 발생들은 불균형적으로 여성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경향이 있어요. 그리고 그 당시에, 그 병의 원인을 찾는데 실패했을 때 그들은 이 모든 발생들이 집단 히스테리라고 생각했어요. 이 생각들이 왜 이렇게 영향력있게 자리할까요? 이건 성차별에 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근본적으로 의사들이 돕길 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들은 해결책을 얻길 원해요. 이러한 것들는 의사들이 설명할 수 없는 질병을 설명되게 하고 치료될 수 없는 것을 치료되게 하죠. 문제는 이제 진짜 해로운 생각일 수도 있다는 거예요. 1950년도에, 엘리엇 슬레이터라는 정신과 의사가 히스테리아라고 진단받은 85명의 환자집단을 연구했어요. 9년뒤, 그들 중 12명은 죽었고 30명은 장애판정을 받았어요. 많은 사람들이 다발성 경화증, 간질, 뇌종양과 같은 상태라고 진단받았어요. 1980년에, 히스테리아는 공식적으로 "전환장애"라고 진단받았어요. 2012년에 제 신경과 전문의가 그 진단을 제게 내렸을 때 그는 프로이트의 말을 되풀이했어요. 심지어 요즘도, 여성은 2배에서 10배정도 더 그런 진단을 받을 확률이 높습니다. 히스테리아의 이론이나 심인성질환의 문제는 그것들은 절대 입증될 수 없다는 것이죠. 이건 증거의 부재로 정의돼요. 그리고 만성피로증후군의 경우에는 심리적 설명들은 생물학적 연구를 저지시켰어요. 전세계적으로, 만성피로증후군은 가장 적게 기금이 조성되는 질병중에 하나예요. 미국에서는, 매년 우리는 한 에이즈환자당 대략 2500달러를 써요. 한 다발성 경화증환자에게는 250달러를 한 만성피로증후군환자 당 5달러를요. 보이는것이 전부가 아니예요. 제가 단지 불운한게 아니었어요. 저희를 둘러싼 잘못된 생각들은 무지함이었고 그 중에서 답을 골라야만 했어요. 우리는 여러가지 이유에 대해 모르고 있습니다. 만성피로증후군이 간간이 가족들에게 전염되는지 거의 모든종류의 감염 후에 질병에 걸리게 되는지 장염바이러스부터 EB바이러스, Q열까지 남성보다 2-3배 많은 여성들에게 발생되는지 제 질병보다 이 문제는 훨씬 중요하죠. 20대 후반쯤 처음 아팠을 때 오랜 친구들이 찾아왔고 또래 중 몸이 좋지 않은 한 명이 나라는 걸 알아차렸죠. 충격적인 것은, 우리가 겪고있는 많은 문제들이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냐는 거였어요. 저는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인 피부 경화증을 앓는 여자를 알게 됐어요. 발병 후 진단이 내려지기 전까지 그녀는 몇 년간 앓았던 모든 게 상상이라는 말을 들었죠. 그녀의 식도는 굉장히 손상됐어요, 그녀는 두 번 다시 먹을 수 없을 거예요. 또한 난소암을 가진 다른 여성은 몇 년간 이른 폐경이 원인이라는 말을 들었죠. 제 대학 친구는 몇 년간 뇌종양을 불안감이라고 오진받았죠. 이 그래프는 저를 불안하게 하는 이유입니다. 1950년대부터, 자가면역질환의 비율은 2-3배 가까이 늘어났어요. 45%의 환자들은 결국, 자가면역질환이라고 진단받았어요. 처음에는 그들을 심인증환자라고 했죠. 옛날의 히스테리아처럼, 이 모든것은 성별과 우리가 믿는 학자들의 이야기와 관련이 있어요. 75%의 자기면역질환환자는 여성이에요. 몇몇 병들은, 90% 가까이 되죠. 비록 이런 질병들이 불균형적으로 여성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이건 여성들만의 질병이 아니예요. 만성피로증후군은 어린아이들과 남성들에게도 영향을 미치죠. 한 환자가 저에게 말했죠. 우리는 이 문제에서 도망칠 수 없다고. 만약 당신이 여성이라면, 증상들을 부풀려서 말한다는 걸 듣게 될 거예요. 하지만 남성이라면, 강하게 이겨내라는 말을 듣게 될 겁니다. 그리고 남성들은 진단받는 동안 더 힘겨운 시간을 보내게 되겠죠. 제 뇌는 예전같지 않아요. 이게 좋은 부분이에요. 이 모든 상황 속에서 저는 아직도 희망을 가지고 있어요. 그들의 생리학적인 기전을 발견하기 전까지 수 많은 질병들을 한 번 정도는 심리적문제 일거라고 생각했겠죠. 간질환자들은 강제적으로 보호시설로 보내져요. 뇌파검사가 그들의 뇌파에서 문제점을 찾아내기 전까지 다발성 경화증은 히스테리성 결핍으로 오진받을 수도 있어요. CAT,MRI검사가 뇌에서 발병부위를 찾아내기전까지.. 그리고 위염균이 원인인 걸 발견하기 전까지 위궤양은 단지, 스트레스로 인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헬리코박터균(위염균)이 원인인 걸 발견하기 전까지는요. 다른 질병들이 밝혀진 것에 비해 제 질병은 아직 과학적으로 밝혀진 바가 아무것도 없어요. 하지만 그건 바뀌기 시작했어요. 독일에서, 과학자들은 자기 면역의 증거를 찾기 시작했어요. 일본에서는, 뇌의 염증을 미국에서는, 스텐포드의 과학자들이 에너지 대사의 기형을 찾고 있죠. 정상과는 거리가 먼 16개의 표준편차예요. 노르웨이에서는, 연구원들이 3단계 임상실험으로 완벽한 차도를 보이는 항암제를 몇 몇 환자들에게 실험하는 중이에요. 환자들의 회복력 또한 저에게 희망을 줍니다. 우리는 온라인에서 함께 왔고 우리의 이야기들를 공유했어요. 무슨 연구가 있었는지 우리는 파헤쳤죠. 우리는 직접 경험했어요.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과학자이자 의사가 됐어요. 우리는 그래야만했죠. 천천히 5%는 여기에, 5%는 저기에 더했어요. 날씨 좋은 날 마침내 집을 나설 수 있을때까지요. 저는 여전히 웃기는 선택들을 해야만 했어요. 오늘 15분동안 정원에 앉아있을 것인가, 머리를 감을 것인가 하지만 이게 제가 치료될 수 있다는 희망을 줬어요. 저는 아픈 몸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게 전부였죠. 그러나 올바른 도움이 있다면 언젠가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전세계의 환자들과 함께 왔어요. 그리고 우리는 맞서싸우기 시작했어요. 저희는 공허를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웠어요. 하지만 충분하진 않아요. 저는 여전히, 제가 다시 걷거나 뛸 수 있을지 운동같은 걸 할 수 있게 될지 잘 몰라요. 지금은 오직 꿈속에서만 할 수 있는 것들이죠. 하지만 저는 제가 해온 것들에 대해 너무 감사해요. 천천히 나아지고 있죠. 좋을 때도 있고 좋지 않을 때도 있죠. 하지만 저는 매일 매일 조금씩 더 나아지고 있어요. 제가 침실 안에 갇혀 있을 때 한 달 동안 해를 보지못한 기분이 어땠었는지 저는 기억해요. 거기서 죽을 것만 같았죠. 하지만 오늘 저는 여기에 있어요. 여러분들과요. 이건 기적이에요. 제가 운좋은 사람 중 하나가 아니었다면 인터넷을 접하기 전 아팠다면, 이 커뮤니티를 찾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모르겠네요. 저는 아마 이미 자살했을 거예요.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요. 몇 십 년 전, 만약 우리가 올바른 질문을 했다면 얼마나 많은 생명들을 구할 수 있었을까요? 만약 우리가 진짜 첫 걸음을 내딛겠다고 마음 먹는다면 오늘 날 얼마나 많은 생명들을 구할 수 있을까요? 한 번 이라도 제 병의 진짜 원인이 발견됐었더라도 만약 우리의 제도들과 문화를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 다른 병에 이러한 실수를 반복할 것입니다. 이 병을 가지고 살면서 저는 과학과 의학이 인간의 엄청난 노력의 결과임을 느꼈습니다. 의사들, 과학자들, 정책 입안자들도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편견들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성들의 건강에 대해 더 구체적인 방법들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의 면역 체계는 우리 몸의 나머지 부분과 마찬가지로 중요합니다. 우리는 환자들의 이야기들을 들을 필요가 있어요. 우리는 기꺼이 모른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해요. 모른다는 건 아름다운 거예요. 발견은 모른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가 그걸 할 수 있다면 만약 우리가 알지 못하는 모든 것에 접근한다면 불확실성의 두려움보단 놀라움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수화 박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