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와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도 주위깊음을 유지할수 있을까요? 이러한 기술들이 우리의 깊게 듣기 능력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제 이번 질문은 미디어 기술 전반적인 면에 대한 것입니다. 제가 궁금한것은 요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SNS나 스마트폰 앱 들에 연결된 환경에서 주의깊은 의사소통을 할수 있는지 입니다. 그리고 이런 기술들이 우리의 깊게 듣기 능력에 미치는 영향도요. 우리는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전자메일 등이 우리 서로간 의사소통에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인간 간의 의사소통은 이런 전자 기술 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힘들어졌습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번 뉴스를 접하고, 여러번 메시지를 주고 받지만, 그런다고 진정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온갓 기술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아직도 다른이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직도 서로를 탓합니다. 실제로는... 이러한 전자 기술들이 우리를 우리자신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우리자신과 진정으로 함께 있을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는 고통, 두려움, 화 등이 있는데, 우린 이러한 고통들을 돌볼 겨를과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 자신과 의사소통을 할수가 없는거지요. 오히려 우리는 우리자신으로부터 도피하려 합니다. 우리자신에 귀기울일 수 없고 우리자신의 고통을 줄일줄 모릅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도 이해 못하고 다른 사람의 고통을 줄일 도움도 못줍니다. 갓가지 전자 기기 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요. 그래서 주의깊음을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의깊음은 우리 몸의 긴장을 푸는데 도움이 주며, 두려움 없이 우리 자신에게 돌아오는데 도움을 줘서, 우리 안의 고통을 알아차리게 해주고, 그 고통을 돌보고, 이해하게 해줍니다. 우리자신의 고통을 이해하면,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의 고통을 이해하게 됩니다. 우리의 이전 세대, 다른 사람들의 고통도요. 이러한 이해는 치유와 변화의 힘을 가지는 자비심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자신의 고통이 가벼워지고, 치유되면, 우리는 다른이들도 그렇게 될수 있도록, 치유와 변화가 일어날수 있도록 도울수 있고, 이러한 일은 전자기기가 없이도 할수 있습니다. 깊이 들을 수 있는 힘, 이해하고 의사소통을 회복하는 힘, 그리고 이를 통한 화해가 가능합니다. 자기자신의 고통을 이해하면, 자신과의 화해가 쉬워지며,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 조상과의 화해도 쉬워집니다. 왜냐하면 나 자신의 고통 안에는 아버지, 어머니, 이전 세대의 고통이 함께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고통을 이해하고, 자신과 화해하게 되면, 다른 사람의 고통도 이해하기 훨씬 쉬워지고, 그들과의 화해가 쉬어집니다. 깊이 들여다보면, 그들의 고통을 볼수 있게 됩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통을 감당할 힘이 없다는 것을요. 그래서 계속해서 고통을 받고, 그렇기때문에 그들 주위 사람들에게도 고통을 줍니다 자신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요. 이제, 우리가 이런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고통을 보면서, 지금까지 그들 안의 고통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도와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걸 보게 되고, 어느새 우리 마음 안에서 이해가 생겨 나고, 거기서 자비심이 태어 납니다. 그 자비심으로 그 사람을 보게 되면, 이제 내가 고통 받는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도와주고 싶게 됩니다 그 사람이 고통을 덜 받게요. 고통을 줄어들도록 무언가 말을 해주고 싶어 지는데, 그 이유는 내 안에서 자비심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 안의 자비심으로, 고통받는 사람에게 고통을 덜 받도록 말을 걷네게 됩니다. 이런식으로요, "넌 내 친구야, "지난 10년 동안 고통이 많았던거 알아. "네 안에 많은 고통과 "어려움이 있다는걸. "여태까지는 네가 고통을 덜 받도록 내가 돕지 못했어. "오히려 나는 그런 너에게 화를 내고 "내 고집으로 너의 고통이 더 커지게 만들었어. "미안해. "너를 고통스럽게 하려는건 아니었어. "다만 그동안 나는 네 고통을 보지를 못했어. "네 고통과 어려움을 이해를 못 했어. "이제 나도 도움이 필요해... "네 마음을 나에게 열고 "네 고통과 어려움에 대해서 이야기 해줘. "그래야 내가 이해할 수 있어. "네 고통을 내가 이해하면, "옛날처럼 너를 더 괴롭게 하지 않을거야. "그러니 네 마음을 이야기 해줘. 그게 나를 도와 주는 거야." 이러한 말을 우리는 사랑으로 말하기 (loving speech)라고 합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자비심이 있을때 할수 있습니다. 자비심은 우리가 상대방의 고통에 대한 이해가 있을때 가능합니다. 우리가 이런식으로 말을 하면, 상대방은 마음을 열게 됩니다. 사랑으로 말하기라는 도구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열수 있습니다. 그럼 그 사람은 자기 안의 고통,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 해줄겁니다. 이때는 우리가 깊게 듣기 (deep listening)를, 즉 자비심으로 듣기 (compassionate listening)를 실천할 때입니다. 우리가 자비심으로 들으면, 상대방의 고통을 덜어줍니다. 한시간 정도의 깊게 듣기를 하면, 상대방의 고통은 상당히 줄어 들겁니다. 아마도 당신이 그사람의 말을 그렇게 들어준 세계 최초의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 당신은 깊게 듣기의 보살 (Bodhisattva)이 된겁니다. 당신은 관음보살입니다. 이렇게 자비심으로 듣기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수련이 필요 합니다. 앉아서 상대방의 말을 들을때, 우리 마음 안의 자비심이 계속 살아있도록 지켜야 합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이 말을 할때 그 말 안에는 많은 적개심이 있을수 있고 비난과 원망이 들어 있을겁니다. 그런 말은 우리 안의 짜증, 화를 건드릴수 있습니다. 그렇게되면 깊게 들을수 있는 힘을 잃게 되지요. 그래서 깊이 듣기를 실천하기전에 며칠동안 우리 마음을 정제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말을 들을 땐 주의깊은 호흡을 해야하며, 지금 깊이듣기를 하는 목적을 계속해서 자신에게 상기시켜야 합니다 상대방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라는 것을요. 상대방이 잘못된 생각으로 가득찬 말을 하더라도, 우리는 그 말을 가로막거나 바로잡으려 하면 안됩니다. 그러면 그 듣기 시간은 수포로 돌아가게 됩니다. 자신에게 이렇게 얘기해야 합니다: "이 사람이 잘못된 생각으로 가득찼고 "원망과 화가 가득 찼지만, "나는 가로막지 않아야 해. "이 사람의 고통이 줄수있도록 계속해서 들어야 해. "며칠 지나고 나서 "이 사람이 자신의 잘못된 견해를 볼수 있도록 "정보를 모아서 줄 수 있어.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하고요. 그러니 숨을 들이 쉬고 내쉬며, 내 안의 자비심을 지키는 것을 기억하면, 한시간 또는 그이상 자비심으로 듣기를 할수 있습니다. 이런 시간은 매우 치유적입니다. 우리 경험에 의하면, 4,5일 정도 주의깊은 호흡 수련과 나 자신의 고통과 상대방의 고통에 대한 깊이보기 수련을 하면, 깊이듣기를 실행할수 있게 됩니다 자비심으로 듣고, 자애심으로 말할수 있습니다. 저희는 그동안 여러 나라에서 많은 수련회(retreat)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매번 참가 수련자들이 깊이듣기과 자애심으로 말하기를 배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화해의 기적은 항상 일어납니다. 보통 5일째에, 수련자들은 깊이듣기와 사랑으로 말하기를 실행으로 옮깁니다. 화해를 할 상대방이 수련장소에 같이 있을 경우는 수월합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여기 없을 경우는 전화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사랑으로 말하기와 깊이 듣기를 실행하기 위해서요. 그동안 저희 수련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전화를 사용해서 수련후 그들의 아버지, 어머니와 화해를 할수 있었습니다. 이 수련은 매우 효과적입니다. 사랑으로 말하기, 깊이 듣기는 다섯가지 주의깊음 수련 중 네번째 수련이며,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속한 상가(sangha)로부터 배웠습니다. 이것이 바로 의사소통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자, 화해하는 방법이며, 이를 위해서는 전자기기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필요한건 주의깊은 들숨과 날숨, 자신의 고통을 깊이 보고 다른 사람의 고통을 깊이 볼수 있는 능력이며, 그리고 사랑으로, 친절함으로 말하기와 깊이 듣기, 자비심으로 듣기만 할수 있으면, 우리는 이 모든 어려운 상황을 며칠 내에 변화시키고 화해할 수 있습니다. (번역: 한국 주의깊음 수련 상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