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리 맥기: 회고 내 작품은 일종의 회고이기 때문에, 이런 작업을 하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상황이 매우 불편하기도 해요. 전시 공간이 지나치게 크거든요. 사람들이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제 예전 작품들도 보게 되겠죠. 제 삶에서 다시는 꼴도 보기 싫은 공간이에요. 이 작품이 여기에 전시되야 한다는 건 알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것들을 걸게 내버려 뒀어요, 나쁘지는 않아 보이네요. 많은 진열품들은 몇몇 제 친구들의 작품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작품들이죠. 만약 제가 좋은 전시를 기획한다면, 제 친구들의 작품은 항상 포함되어 있을 겁니다. 이 전시에도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있어요. 그래요, 이것들이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죠. 이건 볼리나스에 있는 친구, 차드 작품이에요. 그는 죽었지만, 생전에 나무 위에 자신이 좋아한 것들을 그리곤 했어요. 그 친구는 버드와이저를 가장 좋아했죠. 그 친구는 자기가 좋아한 것들을 그렸어요 [웃음] 그리고 (작품 위에) '차드' 라고 사인을 했죠. (저건) 내 아내 클레어가 만든 거에요. 아내는 이 세개의 작은 캔버스 작품을 만들었죠. 아내가 자신의 수업 수강생들을 여기에 데려올 때면 늘 자랑스러워했죠. 그녀는 마치 "학생들, 이 전시에 내 작품이 있어. 알겠니?" "여기에 내 작품이 있다고." 라고 하듯이 말이에요. 이건 저에겐 작품을 거는 가장 이상적인 방식이에요. 예술에서 가장 진지한 시도라고 부를만한 것과 함께 걸었죠. 바로 옆에는 제 친구가 제록스 복사기로 만든 걸 비치했어요. 그것 역시 저에게는 진지해요. 이건 판넬이고. 이건 중고품상점에서 가져온 거에요. 이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두기로 했죠. 내가 그린 것들이에요. 이 작품들도 볼펜으로 그린거죠. 나는 아버지가 생전에 하시던 것에서 단서를 얻었어요. 내 아버지는 3년 전에 돌아가셨지만, 생전 아버지는 언제나 냅킨 위에 그림을 그리곤 하셨죠. 네, 이런 작품을 수천장은 그리셨는데, 아버지는 왁스종이를 대고 냅킨그림에 다림질을 했어요. 그리고는 사인을 하셨어요. '존 C. 맥기'라고. 이 전시에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작업을 가져오려고 노력했어요. 주목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작업들이죠. 더 재밌는 것들이 많아요, 제가 생각하기에는요. 저에게는, 거대한 단체전이 더 나을 것 같거든요. 300 여명의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한 단체전 같은 거요.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몇몇 아이들이 이걸 했어요. 그 아이들은 20대 초반 쯤 되었죠. 나는 궁금했어요 스무살의 아이들은 그래피티에 어떤 걸 그려넣는지. 제가 생각할 때, 요즘 세대는 이제 저랑은 너무도 동떨어져서 이젠 젊은이들이 뭘 하는지 알지도 못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친구들의 작업을 여기에 가져오는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요. 이런 작품들은 여기가 아니었으면, 베이에리어 지역에서 냉대 받았을거에요. 앞으로 저는 이 작품과 비슷한 작업을 할 겁니다. 이 작품이 만족스러워요. 내가 내 작품에 대해 너무 많이 얘기하고 있나요? 내 작품에 대해 너무 많이 얘기하는 것 같아요. [카메라맨] 아니에요, 아주 잘 하고 있어요. [맥기] 그런가요? [카메라맨] 네. [맥기] 이 부분은 매우 만족스러워요. 어떤 이유에서인지, 가장 힘든 부분이기도 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