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를 맛볼 수 있으신가요?"
저를 놀라게 했던 질문이었죠.
지난 여름, 문학 축제에서
강연을 한 후에
출판 사인회를 하던 중이었죠.
한 십대 소녀가 친구와 함께 다가와
바로 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전 그녀에게 몇몇 사람들은
색깔을 듣거나, 소리를 보는 등
공감각적인 경험을 하며
저를 포함한 많은 작가들이
이에 대해 흥미를 느껴왔다고 말해줬죠.
하지만 그녀는
다소 급하게 제 말을 끊으며
"네, 저도 그게 공감각인 건 알아요.
학교에서 배운걸요.
하지만 엄마가 작가님 책을 읽는데,
그 속에 다양한 음식, 재료
그리고 긴 저녁 식사 장면이
들어있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매 페이지마다
배가 고파진대요.
전 작가님께서는 왜 글을 쓸 때
배고파지지 않는지 궁금했어요.
아마 작가님은 단어를 쓰면서
맛보지 않을까 생각했죠.
말이 되는 거 같나요?"
충분히 말이 되는 것 같았죠.
어릴 때부터 제게는
알파벳의 글자 하나하나도
색깔이 있었고
색깔은 맛을 느끼게 해줬습니다.
예를 들자면, 보라색은
어딘지 모르게 강렬하고 향기롭죠.
그리고 제가 보라색과 연관짓는 단어들도
그런 맛이 나는 단어들입니다.
"일몰" 같은 강렬한 맛의 단어죠.
하지만 제가 만약 이런 이야기를
그 소녀에게 했다가는
너무 모호하거나
너무 이상할 것 같았어요.
그리고 설명할 시간도 별로 없었죠.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제가 전달하려던 뜻이
상황과 맞지 않게
너무 복잡하고 세세한 것처럼 느껴졌죠.
그래서 비슷한 상황에 부닥치면
늘 쓰던 방법을 썼습니다.
말을 좀 더듬다가 그만두고,
입을 닫았습니다.
사실대로 얘기하면 너무 복잡해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죠.
복잡해지는 게 싫다고 해서
입을 다물면 안된다는 걸
잘 알면서도 그렇게 했어요.
그래서 저는 오늘 이 강연을
그날 하지 못한 답변으로
시작하려 합니다.
네, 전 단어에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항상 그런 건 아니고,
가끔은 그렇습니다.
행복한 단어와 슬픈 단어는
그 맛부터가 다릅니다.
그래서 가끔 실험해보곤 하죠.
"창의성"이라는 단어는 어떤 맛일까?
아니면 "평등"은?
"사랑"이나 "혁명"은?
그리고 "모국"이라는
단어의 맛은 어떨까?
요즘 이 마지막 단어가
절 고민하게 합니다.
이 단어는 혀 끝에
달콤한 맛을 남기죠.
시나몬이나 약간의 장미수,
아니면 황금 사과처럼요.
하지만 그 아래에는
뭔가 싸한 맛이 감돌죠.
쐐기풀이나 민들레처럼요.
제 모국, 터키가 남기는 맛은
달고도 쓴 맛입니다.
제가 이걸 말씀드리는 이유는
오늘날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모국에 대해
저처럼 뒤섞인 감정들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린 모두 자신의 조국을 사랑합니다.
그렇죠? 누구나 그럴 겁니다.
우린 그곳의 사람들, 문화, 땅,
음식과 동질감을 느끼고
동시에 그곳의 정치와
정치인들이 불만스러워서
가끔은 절망하기도, 상처받기도,
분노를 느끼기도 하죠.
저는 오늘 우리의 감정과
우리의 감성 지능을 향상시켜야 할
필요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저는 주류 정치적 이론들이
감정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분석가나 전문가들은 주로
데이터나 수치에만 치중하다 보니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감정은
간과하는 것 같습니다.
감정은 측정할 수 없고, 통계 지표로도
나타낼 수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전 두 가지 이유로
이것이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먼저, 우리는 감정적인
존재이기 때문이죠.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이유는 새로운 사실인데요.
우리는 오늘날
역사에 있어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집단적으로 가지는 감정들은
정치를 이끌어가고, 잘못된
방향으로 향하기도 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그렇죠.
그리고 소셜미디어와 SNS를 통해
이러한 감정들은
더 증폭되고 양극화되어
전 세계에 매우 빠르게 퍼져갑니다.
우리의 시대는
불안감, 분노, 불신, 원망
그리고 두려움으로 가득합니다.
그렇지만 문제는 바로
경제적 요인에 대한 연구는 넘쳐나지만
감성적인 요인에 대한 연구는
너무도 적다는 겁니다.
왜 우리는 우리가 느끼고,
자각하는 것을 과소평가 할까요?
저는 이것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지적 과제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정치 체계는
감정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러 나라에서
진보적이지 못한 정치인들이
이러한 감정들을 악용하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그런데도 학계와 지식층에서는
아직 감정을 진지하게 다루지 않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세계의 경제적 불평등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 세계에 감성적 혹은
인지적 격차가 있음을 알고
그 격차를 줄일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충분히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 제가 아직
이스탄불에 살던 무렵
중동의 여성 작가들에 대해
연구하던 한 미국인 학생이
저를 찾았습니다.
잠시 대화를 나누던 중에
그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는 작가님이 페미니스트인
이유를 알 것 같아요.
보다시피, 터키에 사니까 그런 거죠."
그래서 제가 대답했죠.
"전 당신이 왜 페미니스트가
아닌지 잘 모르겠어요.
보다시피, 미국에 살면서도 말이죠."
(웃음)
(박수)
그리고 그녀는 웃었죠.
그녀는 농담으로 받아들였고,
그 순간은 지나갔습니다.
(웃음)
그녀가 우리 세상을
두 가지 가상의 진영으로 나누고
두 개의 반대 진영으로 나눈 것에
저는 계속 신경이 쓰였습니다.
이 가상의 지도에 따르면
세계의 몇몇 곳들은 아직
액체처럼 불안정한 나라들이고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 같은 곳이었습니다.
세계의 다른 곳, 이른바
"서양"이라고 불렀던 곳은
고체처럼 안전하고 안정된 곳이었죠.
그래서 그 액체처럼 불안정한 나라는
페미니즘과 사회운동 그리고
인권운동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처럼 운이 나빠서
그런 나라에 태어난 이들은
그런 가장 근본적인 가치를 위해서
계속 투쟁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희망적이었던 것은
역사는 진보하기 때문에
혼란의 도가니였던 곳들도 언젠가는
어려움을 이겨낼 거라는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충분히 안정된 국가의 국민들은
안주하고 있었습니다.
성장해 온 역사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승리 안에서 말이죠.
이제 다른 국가에서의 투쟁을
지지하기는 해도
자국의 기본적인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더 이상 투쟁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 단계는 이미 지나왔기 때문이죠.
제 생각에, 2016년에는
이렇게 계층을 구분하는 지리 체계는
이미 산산조각났다고 생각합니다.
세계는 이러한 이분법적인 패턴을
더는 따르지 않습니다.
학자들의 관점도 지금까지와는 다릅니다.
그렇죠?
이제 우리는 역사가 마냥 앞으로만
나아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가끔은 순환하기도 하고,
심지어 역행하기도 하죠.
그리고 어떤 세대는
증조부모대에 했던 실수를
또 저지를 수도 있다는 것도 압니다.
그리고 이제는 완전히 안정된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의 구분도
없다는 걸 알죠.
사실 우리는 모두 불안정한 시기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 지그문트 바우먼이
말했듯이 말이죠.
바우먼은 우리 세대를
다른 방법으로 정의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모두
움직이는 모래사장 위를
걷게 될 거라고 말하곤 했죠.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남성들보다 여성들에게 있어서
우려할 점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권위주의나 국가주의
또는 종교적 광신주의로 되돌아간다면
여성들이 잃을 것이
훨씬 더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전 세계적인 사회운동은 물론
여성들 간의 결연이
더없이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박수)
계속하기에 앞서
작은 고백을 하나 하려고 합니다.
최근까지 국제적인 회의나
축제에 참여하면서
저는 주로 우울한 강연자들 중
하나에 속했습니다.
(웃음)
터키 내에서 민주주의와
공존에 대한 우리의 꿈이
차츰, 또 놀라울 정도의 속도로
짓밟혀가는 걸 지켜보며
전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 의기소침해졌습니다.
그리고 이런 축제에는 저 말고도
다른 우울한 작가들이 있었죠.
이집트나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필리핀, 중국, 베네수엘라,
그리고 러시아 등에서 온 작가들은
서로에게 연민 어린
미소를 보내곤 했습니다.
불운한 이들의 동지애라고 할 수 있죠.
(웃음)
그런 우리를 WADWIC이라고도
부를 수 있습니다.
'근심 많고, 우울한 작가들의
국제적 모임'을 줄인 말이죠.
(웃음)
그러던 중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모임이 점차 유명세를 얻고
새로운 멤버들을
영입하기 시작했죠.
(웃음)
제 기억으로는 그리스의 작가들과
시인들이 먼저 참여하고
그 다음으로 헝가리와
폴란드의 작가들이 참여했죠.
또 흥미롭게도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프랑스의 작가들.
그리고 제 집이나 다름없는
영국의 작가들도 참여했죠.
그리고 미국의 작가들까지도요.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자국의 운명과 세계의 미래에 대해
우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아마 더 많은 사람들이
모국에 가도 이방인이
된 것처럼 느꼈을 겁니다.
그러다가 조금 특이한 일이 일어났죠.
오랜 시간을 우울하게 보내온 우리들은
우울함을 덜게 되었지만
반면에, 우울함을 느끼는 게
그리 익숙치 않았던 새 멤버들이
예전보다 더 우울해졌죠.
(웃음)
그래서 방글라데시나 터키,
이집트의 작가들이
브렉시트 이후의 영국
또는 트럼프 선거 이후의
미국에서 온 동료 작가들을
위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죠.
(웃음)
그렇지만 잠시
농담은 접어두겠습니다.
지금 세계는 전례없는
어려움에 맞닥뜨렸고
이는 감정을 동반한
반작용을 가져왔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좀 더
느리게 가고 싶어 하고
낯선 것들에 둘러싸였을 때
보다 익숙한 것을 찾습니다.
그리고 일이 너무 복잡해질 때면
사람들은 보다 단순한 걸 찾죠.
지금 우린 매우 위험한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바로 이 시점에서
선동가들이 등장하기 때문이죠.
선동가들은 집단 감성의 원리를 이해하고
그로부터 자신이 어떻게
이익을 챙길 수 있는가를 압니다.
선동가는 우리 모두가
특정한 집단에 속하고
동일함에 둘러싸일 때
더 안전할 거라고 말하죠.
선동가들은 매우 다양하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유럽 어딘가에서 소규모 정당을
이끄는 별난 정치인의 모습이거나
또는 독단적인 교리와 증오를 전파하는
이슬람 극단주의 종교 지도자이거나
어딘가에서 나치즘을 숭배하는
백인 우월주의 연설가일 수도 있죠.
이들은 언뜻 보기에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제 생각에 이들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서로를 필요로 한다고 봅니다.
전 세계적으로 선동가들이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실천을 이끌어내는가를 살펴보면
전 그들에게 한 가지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다양성을 극도로
싫어한다는 것이죠.
그들은 다양성에는 대처하지 못합니다.
아도르노는 이렇게 말하곤 했죠.
"애매모호함에 대해 너그럽지 못하다면
그것이야말로 권위주의적 특성의 상징이다."
하지만 저는 이런 의문이 듭니다.
만약 그 똑같은 상징이
즉, 애매함에 대해
너그럽지 못한 특성이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요?
어디에 눈을 돌리든,
미묘한 뉘앙스는 사라져가고
TV에서는 무언가에 반대하는 발언자가
찬성하는 발언자와
논쟁을 벌이곤 합니다.
그런 건 시청률도 높죠.
서로에게 소리를 지를수록
더 재밌어하죠.
수준높은 지식인들로
가득해야 할 학계에서도
학자들 간에 무신론과 유신론의
대결이 펼쳐지는 것을 볼 수 있죠.
하지만 그건 진정한
지적 교류가 아닙니다.
그저 서로 옳다고 믿는 이들의
충돌일 뿐이죠.
흑백으로 나뉘는 대립 구도는
곳곳에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린 지금 서서히, 그리고 체계적으로
우리의 복잡해질 권리를
부정당하고 있습니다.
이스탄불, 베를린,
니스, 파리, 브뤼셀부터
다카, 바그다드, 바르셀로나까지
우리는 끔찍한 테러 공격들을
연이어 보아왔습니다.
이에 대한 슬픔이나
테러범에 대한 반감을 드러낼 때면
온갖 종류의 반응과
SNS 메시지를 접하게 됩니다.
그 중 한 가지는
너무 널리 퍼져있기 때문에
다소 충격적이기도 하죠.
그것은 바로, 왜 그들에게만
연민을 느끼냐는 겁니다.
"왜 그들에게만 연민을 느끼죠?"
"예멘이나 시리아의 민간인들에게는
왜 그렇지 않나요?"
전 이런 메시지를 퍼뜨리는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연민을 느끼고
함께 연대할 수 있는 대상은
테러 공격이나 폭력의
모든 피해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중동이든, 유럽이든, 아시아든,
미국이든, 어디든 상관없이
모든 피해자들을 동등하게 바라봅니다.
우리가 단지 하나의 고통, 하나의
장소만을 골라야 하는 것이 아님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 또한
민족주의의 영향이라 봅니다.
우리의 사고방식을 좁히는 것은 물론
우리의 마음마저 좁혀버려
다른 사람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게 만들었죠.
더 슬픈 사실은, 우리가
항상 이렇진 않았단 겁니다.
전 터키에서 아이들을 위한
책을 낸 적이 있는데요.
출판 당시에 전 다양한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여러 초등학교를 방문하며
터키의 어린아이들을
살펴볼 기회를 얻었죠.
그들이 지닌 공감, 상상력 그리고
대담함은 항상 놀라웠습니다.
아이들은 이미 그 나이에 세계시민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 어떤 민족주의자보다도 말이죠.
그리고 그들에게 질문을 던질 때
많은 아이들이 시인이나
작가가 되고 싶어하고
여자아이들도 남자아이들 이상으로
자신감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매우 인상깊었죠.
하지만 그 다음에 고등학교를 가보면
모든 게 바뀌어 있었습니다.
작가가 되겠다는 아이도 없고
소설가가 되겠다는 아이도 없었습니다.
여자애들은 쑥쓰러워하고,
조심스러워졌으며
좀 더 많이 망설였고,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를 꺼려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이죠.
가족이, 학교가, 사회가
그들의 고유한 정체성을
지우도록 가르쳤습니다.
전 동서양을 막론하고 우리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속에서, 그리고
우리 내면에서도요.
터키 출신인 저는
다양성을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손실인지 압니다.
오늘 날, 제 모국은 많은 기자들을
투옥시킨 국가가 되어버렸습니다.
중국의 슬픈 기록마저도 제칠 정도로요.
저는 터키에서 일어난 일들이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도 일어날 수 있죠.
완전히 안정된 단단한 국가가
하나의 환상이었던 것처럼
단일한 정체성 또한
착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존재하니까요.
이란 출신의 페르시아 시인인
하피즈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의 영혼 속에는
모든 재료가 들어있습니다.
당신의 존재 자체를
기쁨으로 만들 재료들입니다.
당신은 그저 그 재료를
잘 버무리기만 하면 됩니다."
우린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전 이스탄불 사람이지만
발칸 반도, 에게해 지역,
지중해 지역에도 애착을 갖고 있습니다.
중동과 레반트 지역에도요.
전 출생에 의해, 그리고
선택에 의해 유럽인으로 살고 있고
이러한 가치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런던 사람이 되었죠.
전 제 자신을 글로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또 세계시민이자 유랑자이며
순회 강연을 다니는
이야기꾼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전 우리 모두가 그렇듯
여러 곳에 애착을 느낍니다.
그리고 다양한 애착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의미하죠.
작가로서 우리는 모두
이야기를 좇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 모두
침묵에도 관심을 갖는다고 봅니다.
우리가 이야기할 수 없는 것들
즉, 정치적 금기라든가
문화적 금기말이죠.
우리는 우리 자신의 침묵에도
관심을 가지죠.
저는 지금까지 늘 강경하게 말하고
글로 표현하며 싸워왔습니다.
소수자들의 인권, 여성인권
그리고 성적 소수자의 인권을 위해서요.
하지만 이번 TED 강연을 준비하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었죠.
전 이제까지 공개적으로
저 자신이 양성애자임을
밝힐 만한 용기가 없었다는 겁니다.
뒤따르는 갖은 비방과 낙인,
그리고 조롱과 증오를
견뎌내기가
너무 두려웠기 때문이죠.
하지만 물론, 누구도
복잡한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침묵해선 안됩니다.
(박수)
전 이제까지 여러 번
불안함을 겪어 왔고
감정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알며
이곳에서 감정의 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된 건
감정에도 결국 한계가
없지는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감정에도 한계가 있었던 거죠.
마치 감정의 전환점 또는 한계점 같은
순간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계속 두려워하다 지치는 순간
계속 불안해하다
지치는 순간이 오는 거죠.
어쩌면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국가에도 각각의 한계점이
존재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제 자신의 감정보다도
더 강한 것은
바로 성별이나 정체성을
인식하는 것뿐만 아니라
삶 그 자체가 매우 유동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선동가들은 우리를
각각의 집단으로 나누려 들지만
우리는 모두 국경을 초월한
유대관계에 있습니다.
그들은 확고함을 주장하지만
우린 우리 삶이 마법과 애매모호함으로
가득 차 있음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분법적 사고 방식을 선동하지만
우리는 그보다 훨씬 더 섬세합니다.
그럼 우리의 할 일은 무엇일까요?
기본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초부터 다시 배워야 해요.
레바논의 시인, 칼릴 지브란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수다스러운 이들에게서
침묵을 배웠고
편협한 이들에게서 관용을 배웠으며
선하지 않은 이들에게서 선행을 배웠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더 없이 좋은 좌우명입니다.
포퓰리즘을 좇는 선동가들로부터
민주주의의 필요성을 배우고
고립주의자들로부터
전지구적인 연대의 필요성을 배우며
우리를 특정 집단으로
규정지으려 하는 이들로부터는
세계시민주의와 다양성의
아름다움을 배울 것입니다.
끝으로, 한 가지 단어를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그 단어의 맛을요.
'yurt'라는 말은 터키어로
'모국'을 뜻합니다.
고향을 말하죠.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와 동시에
유목 민족이 사용하던
이동식 텐트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전 그 조합이 좋습니다.
고향이 단지 한 곳에만
존재해야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해주기 때문이죠.
어디든 우리 마음에
품고 다닐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작가와 이야기꾼들에게 있어
진정한 고향은 결국
딱 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야기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이 단어의 맛은
바로 '자유'의 맛과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