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사건을 목격했을 때 그걸 알려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묵인한 경험 있으시죠? 손을 들어보라고 하지는 않겠지만 여기 계신 분들 중에도 그런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겁니다. 실제로 똑같은 질문을 직장인들에게 해봤더니 그중 46%가 뭔가를 목격하고도 알리지 않았다고 답했습니다. 손 들기를 머뭇거렸거나 손을 들었다 해서 자책하지 마세요. 다들 그러니까요. 자신이 본 것을 알려야 하는 경우는 우리 주변에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고속도로를 운전하다 보면 이런 광고판을 볼 수 있을 거예요. 신고자를 익명으로 지켜줄 테니 범죄를 신고해달라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는 진실을 밝히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저는 회계학 교수이고 부정 사건에 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저는 수업에서 제자들을 가르칠 때 알려야 할 진실과 마주할 때는 과감해지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내부고발자'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죠. 하지만 제 심정을 솔직히 말해면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할 때마다 제 마음 속은 복잡해집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내부고발자는 공격 받기 때문이죠. 여기 뉴스 기사 제목들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사람들이 내부고발자가 되기를 꺼리는 이유는 보복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직장에서 좌천되거나 목숨을 위협받기도 하고 직장을 잃을 수도 있죠. 평생 일을 못할 수도 있습니다. 내부고발자가 되기로 결심하는 순간 힘든 싸움이 시작됩니다 조직에 대한 충성심을 의심받게 되고 의도와 신뢰도도 문제 삼습니다. 그런데도 교수로서 학생들을 보호해야 함에도 내부고발자가 되라고 부추기는 이유는 뭘까요? 그에 대한 사회의 시선을 잘 알면서도 말이죠. 어느 날 내부고발자에 관한 강의를 준비하던 중에 '포브즈'지에 실릴 기사를 쓰고 있었습니다. '웰스파고와 내부고발의 흑역사, 무슨 말을 할 수 있나?' 이런 제목으로 기사를 쓰고 관련 자료를 읽던 중에 곧 분노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알고는 분노할 수 밖에 없었죠. 내부고발 한 직원 대부분이 해고당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실을 학생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고민이었습니다. 문득 제 제자들이 웰스파고 직원이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만약 내부고발자 역을 자처했다면 회사에서 잘렸을 겁니다. 반면에 부조리를 알고도 보고하지 않았다면 현행법에 따라 보고하지 않고 묵인했다는 이유로 그 책임을 져야 할 겁니다. 범죄 기소를 피할 수 없을 거예요. 그런 상황에서 과연 용기를 낼 사람이 있을까요? 저를 포함한 대다수는 내부 고발의 중요성을 압니다. 사실 부조리 대부분이 내부 고발로 밝혀진 바가 있죠. 부조리의 42%가 내부고발자에 의해 드러났습니다. 그 외에는 자체 평가나 외부 감사 등의 방법에 의존하죠. 사실 역사적으로 알려진 부조리를 살펴보면 그 시작은 내부고발자였습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내부고발자가 밝혀냈습니다. 엔론의 주가 조작도 역시 내부고발자가 알렸습니다. 희대 사기극을 벌였던 버나드 매도프 사건 아시죠? 이 사건의 시작도 내부고발이었습니다. 베일에 가려진 진실을 알리는 데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내부고발자'라는 말에는 몇몇 연상되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쥐 뱀 배신자 고자질쟁이 교활한 족제비 이런 공개된 자리에서 말할 수 있는 단어들만 말씀드린 겁니다. 그래서 저는 수업이 없을 때면 각지를 돌아다니며 사무직 노동자, 내부고발자 또는 부조리의 피해자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한 이유를 정말 알고 싶었고 그들의 경험담을 학생들에게 얘기해 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분들과의 인터뷰가 제게는 정말 의미 있었습니다. 그분들을 통해 제 자신이 가진 용기에 대해 되묻게 되었죠. 제게도 기회가 주어졌을 때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라고 말이죠. 여러분에게 들려주고 싶은 몇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분은 메리 씨입니다. 메리 윌림햄 씨는 채프힐에 위치한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교수로 학내 부조리를 고발했습니다. 메리는 대학교에서 학습 지도 전문가로 있으면서 많은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주로 체육 특기생을 맡았죠. 그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학생들의 기말 리포트 수준이 능력 밖으로 뛰어났던 거예요. 그래서 학생들을 추궁해봤더니 리포트를 모아두는 데이터베이스가 있어서 학생들이 거기서 리포트를 찾아 제출한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일부 교수는 출전 자격을 부여하기 위해 가짜 수업까지 만든다는 걸 알게 됐죠. 모든 전말을 알게 되자 메리는 화가 났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리기 위해 곧장 상급자를 찾았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죠. 안 되겠다 싶어서 메리는 대학 교무처에도 알렸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아무도 들어 주지 않을 때 어떡할까요? 블로그가 있잖아요. 그래서 메리는 블로그를 개설했고 블로그가 하루 사이에 입소문을 타면서 기자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기자와 닿게 되면서 사람들이 그녀를 알아보기 시작했죠. 신분이 노출된 거예요. 신분이 노출된 후, 직장에서는 좌천됐고 대학교 스포츠부로부터 살해 위협까지 받았습니다. 메리에게는 잘못이 없어요. 성적을 조작한 건 메리가 아닙니다. 단지 침묵하고 있는 학생들을 대신해 메리가 목소리를 낸 것뿐이었는데 그녀의 충성심이 의심받게 되었죠. 그녀에 대한 신뢰나 신고한 동기까지도요. 내부고발이 늘 좌천이나 살해 위협으로 이어지는 건 아닙니다. 이것은 2002년도 타임지 표지인데요. 진실이라는 무게를 견디고 용기를 낸 세 명의 내부고발자에게 존경하는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연구 결과를 봤더니 내부고발자의 22%만이 보복을 당했다고 나와 있었죠. 보복을 당하지 않은 사람도 많다는 것을 의미하죠. 거기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이분은 케테 씨입니다 . 케테 스완스 씨는 딕슨 시의 공무원으로 일하다 은퇴했습니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맡은 일을 하고 있는데 꽤 흥미로운 사건을 발견했죠. 케테는 월말마다 시에 보고할 회계 장부를 작성해야 합니다. 보통은 상사인 리타 크런드웰이 계좌 목록을 주면서 이렇게 말하죠. '케테, 은행으로부터 이 계좌들 내역을 받아주세요.' 그럼 그녀가 그 일을 처리하죠. 하지만 이 날은 좀 달랐습니다. 리타는 외출을 했고, 케테도 바빴죠. 그녀는 하던 대로 은행에 전화를 걸어 계좌 전부를 팩스로 보내달라고 했죠. 받은 자료를 보다가 어느 한 계좌 내역에서 자신도 모르는 입출금 내역을 발견했습니다. 계좌 관리는 오직 리타만 하고 있었는데도 말이죠. 이 사실을 알자마자 직속 감독관에게 보고했습니다. 바로 버크 시장이었죠. 진실을 알기 위해 오랜 조사에 착수했고 그 기간이 6개월이나 됐습니다. 조사 결과, 상사인 리타 크런드웰이 횡령을 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무려 20년 이상에 걸쳐 5300만 달러를 횡령했고 그게 우연히 케테에게 발각된 것입니다. 케테는 영웅입니다. 저는 'All the Queen's Horses'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그녀와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명성에는 관심이 전혀 없더군요. 사실, 대화를 길게 나누려고도 하지 않았죠. 하지만 끈질기게 달라붙어서 결국 인터뷰를 할 수 있었죠. (웃음) 케테가 추구한 건 공정함이었습니다. 명성이 아니고 말이죠. 케테가 아니었다면 이런 부정 사건이 드러날 수 있었을까요 ? 강의 준비를 위해 포브즈지 기사를 쓰고 있다고 말씀드린 거 기억하시죠? 이 기사가 나간 뒤로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전 세계의 내부고발자들로부터 메일이 오기 시작한 거예요. 그분들에게 메일을 받고 답장을 하면서 다들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었는데 바로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내부고발을 했더니, 이제 사람들이 저를 싫어합니다. 해고까지 당했죠. 하지만 그거 알아요? 같은 일이 생겨도 똑같이 행동할 겁니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계속 읽으면서 학생들과 어떤 얘기를 나누면 좋을지 생각해 봤습니다. 결국 종합해보면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거죠. 내부고발자가 있다는 것은 희망적 사실입니다. 고정관념과는 달리 직원들이 늘 회사를 향해 불평만 하지는 않습니다. 바로 그런 기대감 덕분에 내부고발자들이 나설 수 있는 것이죠. 우리는 또한 헌신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내부고발자는 헌신적이죠. 조직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에 행동에 나서는 것입니다. 내부고발자는 겸손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분들은 명성이 아닌 공정함을 추구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더 용감해져야 합니다. 내부고발자는 용감합니다. 때로는 내부고발이 자기 가족에게 미칠 영향을 무시하기도 하지만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이 더 힘든 일이라고 계속 말합니다. 이야기하다 보니 다른 분이 생각나네요. 피터 벅스턴 씨입니다. 당시 피터는 27살이었고 미국 공공보건국 직원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성병에 걸린 사람들과 상담하는 일을 맡고 있었죠. 그런데 업무 과정에서 자기 일이 기관에서 하는 임상실험이란 걸 알게 됩니다. 매독을 치료하지 않을 때 경과를 보는 목적이라는 것도요. 600명의 흑인 남성이 실험 대상이었고 무료 진료와 장례비를 제공해 준다는 말을 믿었던 거죠. 어쨌든 이 연구를 통해서 밝혀진 것은 페니실린이 매독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겁니다. 동시에 피터가 알게 된 것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매독을 치료하기 위한 페니실린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실험 참가자들은 이 사실조차 몰랐죠. 메리처럼 피터도 내부 관리자에게 진실을 알리려 시도했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습니다. 피터는 그 부당함을 알았기에 계속해서 알렸고 메리가 그랬듯이 마침내 기자와 연락이 닿았죠. 이건 1972년 뉴욕 타임즈의 1면 기사 제목인데요. '미국 매독 실험의 피해자 40년간 치료 받지 못했다' 오늘날 '터스키기 생체 실험'으로 알려져 있는 사건입니다. 피터는 이 사건의 내부고발자였고요. 실험 대상이었던 600명의 남성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시죠? 28명은 매독으로 사망했고요. 100명은 매독 합병증으로 사망했습니다. 실험자 아내들 중 40명은 감염됐고 10명의 아이들이 선천적 매독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이런 수치들을 알지도 못했을 거예요. 피터의 용기 있는 행동이 없었다면 말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 피터와 관련이 있죠. 주변에 임상 실험에 참여한 누군가가 있다면 지금은 사전에 동의를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다 피터의 용기 있는 행동 덕분이죠. 질문 하나 할게요. 기본적인 질문을 약간 변형한 건데요. 우리 중에 이 단어들을 쓰는 사람이 있을까요? 밀고자 생쥐 고자질쟁이 뱀 교활한 족제비 누설 이런 말 쓰는 분 계세요? 지금 언급한 단어들을 사용하기 전에 시간을 가져 보면 어떨까요. 그 누군가가 제2의 메리나 피터 또는 케테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역사를 바꾸는 누군가가 될 수도 있겠죠. 아니면 그 누군가가 여러분을 바꿀 수도 있고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