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아이들에게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아이들은 친구들에게 심할 정도로 충실합니다. 얼른 변명하고, 사과도 금방 하고 용서도 빠르죠. 하지만 전 유치원 선생님으로서 마음은 항상 유치원 선생님으로 여러분과 함께 아이들에게 배운 도움을 요청하는 법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저는 사람의 행동에 흥미가 많습니다. 상황과 환경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고 5살에 귀여운 볼살을 갖고 있고 따뜻한 포옹을 주기에는 안성맞춤인 키에 하이파이브를 하는 것을 경쟁적일 정도로 좋아하는 아이들은 상당히 흥미로웠죠. 제 첫 교실은 화성 반이라고 불렸습니다. 10명의 학생이 있었고 모두가 개성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절대 잊지 못하는 학생이 한 명 있었습니다. 그 친구를 '샘'이라고 부르죠. 샘은 본인이 5살이 아닌 것처럼 행동을 했습니다. 매우 독립적이었죠. 신발 끈을 혼자서 묶을 줄 알았고 다른 아이들의 신발 끈도 묶어주었죠. 더러워진 보온병을 절대 집에 가져간 적이 없는데 매번 점심이 지나고 닦았기 때문이죠. 만약에 무슨 일이 생기고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조용히 스스로 갈아입었죠.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지만 친구들이 매번 도움을 구하러 찾아간 사람은 이 학생이었죠. 도와주는 것이 김치를 다 먹게 도와줄 수 있는지 그러한 도움이었죠. 너무 맵잖아요. 선생님들에게 어떠한 애착도 보이기 싫어해서 '시원한(멋진) 아이'라고 불렸죠. 아침 인사로 안아주면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만들지만 불만스러운 기색도 보입니다. 하지만 안아주기 전까지 서서 기다리죠. 머리가 좋고 의지가 되어서 저도 이 아이가 5살이라는 걸 잊곤 했습니다. 초보 선생님으로서 많은 시간을 관찰하는 데 시간을 보냈고 경험이 많은 선생님들은 학생들과 어떻게 하는지 보았습니다. 그리고 상당히 이상한 걸 알아챘죠. 아이들이 넘어질 때마다 바로 울기 시작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일어나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는 마치 마음을 정하려는 듯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지?' '내가 울 정도로 큰일인가? 넘어진 게 아팠나? 무슨 일이지?' 등 생각하는 표정을 짓죠. 주로 어른에게 눈을 맞추기 전까지는 괜찮습니다. 그 어른을 믿을 수 있고 무언가 해줄 수 있는 사람이면 시선을 고정하고 나서 눈물을 쏟기 시작합니다. 제가 이걸 알아차렸을 때 저에게 이렇게 해주었으면 했어요. 저에게 있어선 아이들의 신뢰를 얻었다는 뜻이니까요. 또 무슨 일에서든 아이들을 도울 수 있다고 인정받은 거니까요. 아이들에게 영웅인 거죠. 선생님들을 관찰하는 데만 몇 주가 지났고 아이들은 선생님들에게 울면서 품에 안겼고 저는 질투의 시선으로 보았죠. 너무 질투가 났었어요. 물론 아이들이 넘어지는 것은 안 되죠. 하지만 저는 정말로 아이들에게 인정받아 도움이 될만큼 신뢰를 받는 사람이길 바랬어요. 그리고 드디어 저에게도 그 순간이 일어납니다. 아름다운 날이었죠. 쉬는 시간 실내 놀이터에서였습니다. 아이들은 놀고 있었고 저는 물건들을 메꾸고 보수하고 있었어요. 선생님들은 항상 뭔가를 보수해야 하니까요. 옆 선생님 방에 있었죠. 그때 아이가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선생님, 샘이 넘어졌어요." 저는 어떤지 보러 갔죠. 샘을 찾기 위해 주의를 둘러보았고 샘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있었습니다. 두 자릿수 덧셈 문제를 풀 때처럼요. 그리고 나서 저를 보았죠. 시선을 고정하고 그리고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아이의 아랫입술이 떨리기 시작했고 그 작은 눈이 눈물로 차기 시작했죠. 이내 눈물을 쏟으면서 저에게 달려왔죠. 영광스러운 순간이었죠. 그 순간은 잊을 수 없어요. 제가 포옹을 해줘서 진정할 수 있도록 해 주었고 알고 보니 본인 발에 걸려 넘어졌었고 방바닥 외에 혼낼 대상이 없었죠. 아이가 다치지 않았는지 확인했고 작은 멍하나 없이 회복했습니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제가 샘을 도와주기 위해서 거기에 있던 것이 아니라 제게 선물을 주기 위해서 있었던 것 같았죠. 샘을 도울 기회를 제게 준 것이죠. 제가 말로 표현하기에는 상당히 이상한 것이었죠. 그 아이의 연약함으로 제가 뭔가 할 수 있는 것처럼 도움을 청하러 오는 것이 나 자신에게 힘을 준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아뇨, 오히려 반대인데 도움을 청하는 아이에게 힘이 옮겨가는 느낌이죠. 도움을 요청받는 것은 상당한 특혜죠.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선물이죠. 특히 아이들이 취약할 때 말이죠. 제가 유치원에서 배우고 또는 가르쳤던 것으로 삶에 다른 것들을 정복하러 갔죠. 9년의 앞당기자면 프로젝트 관리 전문 협회에 가입하면서 봉사자들과 지속해서 일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자원봉사자들과 일하는 것은 매우 매력적인 경험입니다. 하지만 미리 경고를 받았다면 좋았을 법한 것이 있었는데 어떤 식으로 기준을 세우는 등의 것이죠. "봉사자들이어서" 라고 잘못된 생각에 쉽게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에요. 심야에 오는 전화? 네, 왜냐하면 이들은 봉사자들이고 본업이 있는 직장인들이기 때문이죠. 거의 주말에만 있는 출장은요? 네, 왜냐하면 이들은 봉사자들이고 본업이 있는 직장인들이기 때문이죠. 스스로 위로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하는 일에 꽤 잘하는 편이죠. 제가 이뤄낸 관계를 만끽하고 있었죠. 누군가의 신뢰를 얻었는지 판단할 가장 좋은 방법은 제게 와서 도움을 청하는지 보는 것이었죠. 정말 좋았죠. 저희는 항상 연말에 있었던 일들을 되새겨 보면서 내년에 무엇이 되고 싶은지 얘기하는데 제 주제는 항상 도움이었습니다. 문제는 단순히 도움만 되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 스스로 더욱 압박을 가하기 시작해서 항상 바빠지려고 했고 항상 잘하려고 노력했죠. 곧 제가 일하는 성과에 제 자신감이 관여하기 시작했는데 이건 당연히 재앙으로 향하는 지름길이었죠.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저에게는 특출난 대처 방법이 있었는데 부정하고 더 많은 일을 하면서 정신을 돌리고 술도 마시고요. 그것도 많이 마시죠. 저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뭐든 혼자서 하기 위해 너무 바빴어요. 마치 훌륭한 샘처럼요. 제가 필요로 할 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잊고 있었죠. 저는 단순히 물어보면 되었고 도움을 요청하는 행위가 선물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하게 되면 더 많이 물어봤어야겠죠, 그렇죠? 우리는 항상 말한 것을 실천하진 않지만 약 2년 전에 묵직한 기억을 기억하게 되죠. 저는 상당히 지쳐있다고 하기에는 절제된 표현일 정도의 상태였지만 저의 대처 방법인 술로 겉으로 보이기에는 제가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보였죠. 하지만 어느 날 놀이터에 있던 샘처럼 제 발에 스스로 결려 넘어졌죠. 저는 정신을 잃었고 깨진 유리 때문에 발에 큰 상처가 생긴 채 눈을 떴죠. 눈은 울고 난 다음이라 퉁퉁 부었고 목은 완전 쉬어서 분명 통곡을 하고 있었을 거예요.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기는 힘들었지만 답답하고, 슬프고, 무서운 감정은 기억하고 있었죠. 저를 아신 지 약 10분 정도 되었지만 저답지 않다고 느끼셨을 겁니다. 제가 제정신을 차리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챘을 때 충격에 빠졌죠. 제가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고 도움은 치료 목적에서의 도움도 있었지만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도움도 필요했죠. 제 인생에서 최악의 날 중 하나였죠. 그 순간에조차 제 머리는 문제해결 회로를 초고속으로 돌리고 있었죠.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이걸 해결하지 못하면 저 자신에게 더욱 실망할테고 이걸 해결하지 못하면 저는 더한 실패자일테니까요. 그러한 생각들이 제 머릿속에 지나가는 중에도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죠. 제 주변에 저를 생각하고 도움을 주고 싶은 많은 사람을 두고도 볼 생각을 못했죠. 결국에는 저의 친한 친구가 제 어깨를 잡으면서 도움을 요청하라고 강요했습니다. "할 수 있겠어?" "아니" "도움이 필요해?" "응." "내가 도와줘도 돼?" "응." "너를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람들 불러서 같이 도와달라고 해도 되니?" "응." 제가 어른이 된 버전으로 선생님께 시선을 맞추는 순간이었죠. 그리하여 "응, 나를 도와줘도 돼"라고 하자마자 희미하게 빛나는 희망을 보았고 제정신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생각을 해보면 이상한 것이 저희가 어린 시절을 도움을 요청을 그렇게 잘하고 자립심이 강한 사람으로 성숙할 것으로 기대받으면서 자라고 실제로 잘하게 되는데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괜찮다고 상기시켜줘야 하는 게 이상하지 않나요? 나중에 그 순간이 저에게 많은 것을 깨닫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저는 항상 남을 돕는 것이 좋습니다. 그럼 다른 사람들이 절 도와주고 싶은 것도 이해가 되죠. 더 중요한 것은 왜 제가 다른 사람들이 샘 같은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행복과 즐거움을 느끼길 바라지 않겠어요? 우리는 모두 샘 같은 사람들의 삶이 잘 되기를 바랍니다. 강하고, 독립적이지만 항상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서 도움을 더 자주 요청해봅시다. 왜냐하면 샘 같은 사람들을 돕는 것은 특권이자 선물이기 때문이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