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술라 본 라이딩스바르드 : 저의 작품은 아주 노동집약적이기 때문에 종종 저는 작품이나 프로젝트를 끝내기 위해서 엄청나게 반복적인 작업을 합니다.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상당히 쉽습니다. 그렇지만 그 이미지를 실현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워요. 이미지를 실현하는 과정을 겪어나가면서 전혀 다른 결과를 얻기도 합니다. 만약 나무를 깎아 접선을 만들다가 빗겨나갔는데 그게 더 흥미롭다고 여겨지면 저는 빗겨나간 그대로 작업을 이어나갑니다. 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폴란드인들을 위한 난민 캠프에서 자라났고 저에게는 여섯 명의 형제가 더 있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특별한 생존자였습니다. 그리고 저의 집에서는 어떤 말도 함부로 할 수 없었습니다. 너무 많은 말을 하는 사람은 의심을 받았거든요. 저는 시각적 수단을 통해서 이 세상에 대해 배워나갔습니다. 그것은 제가 살던 곳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진원지였습니다. 누군가가 웃을 수도 있지만 그 사람은 지나치게 웃어서는 안됐습니다. 가끔은 웃어도 되지만 자주는 안됐어요. 그리고 적당한 때에만 웃어야 했죠. 그리고 열심히 일하는 것이 삶의 정답이라고 여겨졌습니다. 저는 이것이 셰이커 교도들이 사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나무로 지어진 막사에서 살았습니다. 가공하지 않은 나무 바닥과 나무 벽 그리고 나무 천장으로 지어진 건물에서요. 저의 피까지도 그 경험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듯 합니다. 저는 세다르 나무로 모든 것을 만듭니다. 아주 자연스러운 소재에요. 마치 종이 조각과도 같아요. 제가 조각품을 만들 때 조각한 나무를 겹겹이 쌓습니다. 여기서 보시는 것처럼 나무 조각 각각의 바깥에 선을 그립니다. 그리고 절단기로 잘라냅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여기에 가져다 놓습니다. 그 뒤에 정확하게 표시를 합니다. 외부에 새겨진 이 표시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부, 맨 윗 부분에 있는 이 표시들은 실제로 가장 정확합니다. 그래서 만약 이 조각들 가운데 하나가 없어지거나 튕겨나가면 그것들을 찾아서 그들이 있어야할 곳에 다시 가져다 놓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만들고 나사로 죕니다. 그 뒤에 우리는 한겹씩 한겹씩 떼어내고 겹겹이 쌓은 나무를 풀로 붙입니다. 절단기는 단연코 저의 스튜디오에서 제일 중요합니다. 어떤 절단기는 우아하게 절단을 하고 아주 공격적으로 절단을 하는 절단기도 있습니다. 저의 필요에 따라서 그것들을 선택해야 하죠. 유기적인 형태를 만들기 위해서 아주 많은 직선 형태의 절단을 해야 합니다. 표면은 제가 잘라내야 할 풍경이 됩니다. 풍경에 관한 저의 정의는, 심리학적 풍경 또는 감정적 풍경과 관련이 있습니다. 흑연은 아주 고운 입자를 가진 가루입니다. 아주 곱기 때문에 세다르의 기공 안으로 들어갈 수 있어요. 아주 육중하게 작품을 만들기 때문에 붓을 사용해서 표면을 갈아야 합니다. 그 뒤에 표면을 문질러서 제가 원하는 표면을 만들어야 하죠. 감정적으로 소통을 한다는 점에서, 표면은 저한테 아주 중요합니다. 저는 결코 모델을 만들지 않습니다. 작품을 위해서 절대로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다. 마음에 이미 어떤 모양을 만들지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림이나 모형은 저의 선택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예측 가능해서는 안됩니다. 모든 곳에서 놀라움을 자아낼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아무 생각도 떠오지 않는다면 머리를 계속 쓰고 정신을 깨어있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저는 어떤 수준의 관심을 얻기 위해서 일종의 전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품 내부에서 일어나는 전투를요. 화라는 감정은 저를 움직이는 큰 힘입니다. 저는 저의 화라는 감정에 감사합니다. 저는 세다르 나무와 투쟁하고 있습니다. 나무는 언제나 자신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저에게 말해줍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보여주려고 노력합니다. 저는 이 조각품이 황폐화된 어떤 것처럼 보이기를 원했습니다. 삶의 무게에 영향을 받은 것처럼요. 혼란스러운 것들은 질서정연한 것들 만큼이나 흥미로운 법입니다. 이 절단기는 금속을 자를 때 사용하고 나무를 자를 때 사용하면 표면이 탈 수 있습니다. 이 절단기를 사용하면 완전히 다른 풍경, 전혀 다른 깊이의 작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제가 사용하는 기계들이 완전히 실용적인 물건들은 아니지만 절단기들이 가진 고유한 속성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들을 저의 그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삼차원적이지만 실제로 꽤나 복잡합니다. 표면에 무늬를 새겨야 한다는 점에서요. 이것은 분필이고 이것은 흑연입니다. 이것은 나무로 만들었습니다. 분명히 세다르로 만들어졌어요. 그렇지만 여전히 레이스처럼 부드러운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규칙적이고 개방적이죠. 투명하기 때문에 그 너머를 볼 수 있어요. 저는 신중하고 그리고 의식적으로 가볍게 느껴지고 보이도록 의도했습니다. 저는 인공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이 융합되어 하나가 되는 것을 좋아합니다. 메디슨 스퀘어 파크에서 진행된 프로젝트에서 우레탄 보네트를 사용했는데, 저는 그 소재가 비치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빛이 지나가는 벽처럼 보이게 하고 싶었어요. 저는 표면을 아주 거칠게 만들고 보네트를 덮은 후드 부분이 작은 현관처럼 보이기를 바랐습니다. 이 작품은 예상치 못하고 아주 즐거운 분위기를 가지며 빛을 통과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저 보네트 아래에서 열 두 번의 결혼식이 치뤄졌습니다. 작품의 이 부분은 성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분명합니다. 저에게는 제가 직접 쓴 책이 몇 권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저 자신과의 대화를 나누는데 사용하고 저의 꿈도 적어두었습니다. 이들을 문서화해서 저의 기분이 더 좋아질 수 있었어요. 저는 그림을 그리는데 이따금 그렇게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저는 결코 저의 그림을 보여준 적이 없습니다. 저는 그림에 관해서라면 대단히 수줍은 사람입니다. 그들은 정말로 저의 것이에요. 지금으로서는 가장 좋은 그림이 제가 한동안 들춰보지 않은 것들이라고 생각할 수밖에는 없겠네요. 시간을 흐르도록 내버려두면 작품에 대한 생각이 자라나게 됩니다. 점점 더 분명해지는 거라고 할 수 있죠. 이 특정한 그림을 저는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렸습니다. 이건 마치 패치워크 퀼트 같은 겁니다. 이 작업이 바느질을 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외과의사가 나중에 꿰매야 하는 절단된 부분이라고 생각하죠. 저는 이 그림들이 맨 위에서 보는 풍경의 일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제가 살면서 만들었던 것들 중 가장 바로크적인 작품입니다. 인간의 몸에서 발견할 수 있는 풍경의 일종이기도 하고요. 이 작은 주머니 모양의 구조물 내부는 외부의 모양을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이 작품의 관능미를 즐기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작품이 그들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저는 구조와 형태를 견고하게 만듦으로써 작품의 성격이 더 강해질 수 있고, 관객과 더 강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중력은 저에게 놀라울 정도로 중요한 목적을 제공해 줍니다. 이 벽 주머니는 뒷면이 평평합니다. 벽면에 기대어 전시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죠. 이 작품은 단순하고 겸손한 특징을 가집니다. 이 작품에서 내향적인 성격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저는 작품의 내부가 외부만큼이나 주의깊게 고려되기를 원합니다. 저는 이 작품이 인간의 몸을 사용해서 만들어낼 수 있는 그리고 거기에서 만들어지는 무언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틀에 부어 만들고 그 뒤에 그 틀로부터 탈피하는 어떤것이요. 저의 세다르 스튜디오에는 완성되지 않은 작품들로 가득합니다. 저의 주변에 이런 것들을 모두 가져다 놓아야 작품을 잘 만들 수 있습니다. 작품을 만들며 선택할 수 있는 나무들이 언제나 많이 있으니까요. 상대적인 생각들이 없다면 이런 작품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상반된 생각들이 완전히 서로 반대일 필요는 없지만 언제나 함께하지 않는 것 또는 일반적으로 결합되지 않는 것이 될 수는 있습니다. 상당한 정도의 고난과 고통이 담긴 작품의 내부에는 아주 조용하고 비밀스럽고 시적이고 인간적인 무언가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폭력적이라고 느낄 수 있는 맥락에서조차도 그러합니다. 그 안에는 겸손하다고 느끼는 무언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저의 "머리를 쓰다듬어 줄 수 있는(głaskać po głowie)" 그런 감정이지요. 가장 부드러운 방식으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