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플럼빌리지 2014년 5월
틱낫한 스님 Q&A
깨달음을 강 건너편에 도착한 후에도
생각을 하고 고통을 받나요?
(불어) 깨달음의 강 건너편은 어떤가요?
거기서도 생각을 하나요?
거기도 고통이 있나요?
(통역) 스님, 우리가 깨달음의 강 건너편에 도착하면...
거기서도 생각을 하고
고통을 받는지요?
그럼요!
깨달음을 얻어도
고통은 계속해서 있습니다.
하지만 고통받는 방법이 다릅니다.
고통을 통해 우리의 정신적 성장과...
치유를 돕고, 다른 사람들을 도울수 있습니다.
(베트남어)
(통역스님) 질문하신 친구분을 위해
통역해주실 분 있나요?
우리의 스승인 석가모니 부처가...
행복하기만 하고 고통이 없는
사람이었을거라 생각할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주위의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요?
세상에 벌어지고 있는 고통을
알아차리고 있다면...
깨달은 사람으로서 이러한 고통을
줄이기 위해 무언가 하고 싶을겁니다.
세상의 다른 존재들과
제대로된 소통을 하고 있다면...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싶게 됩니다.
그들의 고뇌를 나의 내면에서 느낄수 있습니다.
이러한 고통이 있어도, 깨달음이 있는 사람은
많은 자비심과 지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고통의 희생양이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고통을
잘 활용할줄 알아서...
거기서 치유와 변화를
만들어낼수 있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이 있는 사람은 고통의 희생자가
되지 않는 방법을 아는 반면...
고통을 오히려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용할줄 알아서...
고뇌에서 치유를 만들어내고,
기쁨과 행복을 만들어 냅니다.
깨달은 사람은 마치 정원사와 같습니다...
정원은 아름다운 꽃과 다양한 야채를 만들어 내지요.
하지만 정원에는 다른 것들도 있습니다.
아름다운 꽃과 야채만 있는것이 아니라...
정원 쓰레기도 나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유기농법 원예가라면
이 정원 쓰레기를 버리지 않습니다.
잘 모아 두었다가 꽃을 위한 퇴비로 사용하지요.
또한 연꽃을 기르기 위해서는
지저분해 보이는 진흙도 필요합니다.
진흙이 있어야 연꽃을 만들어 낼수 있습니다.
같은 진리가 고통과 행복에도 적용됩니다.
고통이 좀 있어야 행복을 만들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훌륭한 정원사라면
쓰레기의 피해자가 되지 않지요.
여러분이 보스입니다!
쓰레기를 잘 활용해서 퇴비로 만들줄 압니다.
부처[깨달은 사람]도 그런 사람과 같습니다.
깨달은 사람은 정원사입니다.
쓰레기를 잘 이용할줄 알지요...
고통, 화, 두려움, 절망 같은 것들을...
긍정적인 것으로 변화시킬줄 압니다.
마치 오른쪽과 왼쪽의 예와 마찬가지입니다.
왼쪽은 오른쪽이 있어야 나타날수 있듯이...
고통과 행복은 동일한 현실에 대한
두개의 다른 측면일 뿐입니다.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행복도 존재할수 없습니다.
깨달음의 강 건너편에도 고통은 존재하지만,
깨달은 우리는 그것의 희생양이 되지 않습니다.
고통을 잘 이용하는 방법을 알기 때문이지요.
제가 생각하는 기독교의 "하나님의 왕국"도
같은 개념입니다.
하나님의 왕국은 고통이 없는 곳이 아니라...
고통을 잘 다룰줄 아는 사람들이 사는 곳...
거기서 이해와 자비를 만들어낼수 있는
사람들이 사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고통이 없이는...
이해와 자비심을 만들어낼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해와 자비심은 행복의 기반이지요.
이것이 매우 분명한 "함께존재함
(interbeing)"의 견해...
"올바른 견해 (Right View)"입니다.
하나님의 왕국은 고통이 없는 곳이라는 개념...
오로지 행복만이 있다는 개념은...
함께존재함의 지혜로 볼때는 잘못된 견해 입니다.
그러니,
만약 우리가 속한 상가(커뮤니티)가
고통을 잘 다룰줄 알아서...
고통을 행복으로 변화시킬줄 안다면...
우리는 바로 지금 여기
하나님의 왕국에 있는겁니다.
우리의 수련으로 하나님의 왕국을
지을 힘을 기를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은 현재에서만 가능합니다.
(종소리)
(번역: 한국 주의깊음 수련 상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