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프랑스 플럼빌리지 틱낫한 스님 Q&A 티벳 불교에서는 지옥이 우리가 죽은 후 가는 곳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사실인지, 아니면 깨달음을 돕기위한 비유인지요? (프랑스어로 질문) 우리 친구분은 Thay(틱낫한 스님)의 죽음에 대한 가르침이 매우 위안을 주었다고 합니다. 약 18년 전에 친구분은 티벳 불교 전통을 따르는 수련 리트릿에 갔었는데, 그곳에서도 "죽음"의 주제로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그곳의 스승은 의식(意識)의 전달에 대해 매우 자세히 이야기 하였는데, 죽음의 순간에 어떻게 의식이 이동하는지, 또한 죽음 후에 일어나는 일들에 관해서도요. 여러가지 종류의 지옥에 대해서도 자세히 이야기 하였는데, 어떤 지옥은 춥고, 뜨겁고, 그런 지옥에 대한 시각적인 설명도 있었으며, 그중 하나는 아귀(餓鬼)에 대한 내용인데, 우리가 그런 지옥에 태어나면 목구멍이 너무 작아서 배가 고프지만 음식이 들어갈수가 없어서 몸이 음식을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외에도 다른 지옥의 형상들이 있었습니다. 우리 친구분의 질문은... 이러한 것들이 우리를 돕기 위한 것인지... ... 우리를 깨어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돕기위한 일종의 도구로서, 우리가 보다 의미있고 올바르고 아름답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로서 제시되는 것인지, 아니면 이러한 것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요. 그리고 또한 우리가 이야기 하는... 지금 이순간 지구상에 존재하는 '지옥'은... 우리의 삶 안에서의 경험들에 대한 비유인 것인지, 아니면 죽음 후에 겪게 되는 것이지요. 더 많은 질문들이 있었는데 이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웃음] 이 질문은... 꿈없는 잠과 저장의식 간의 연결성과 유사합니다. 질문의 형태를 보면... 질문을 하신 분이... 이미 답을 가지고 있는것 같군요. 질문에 이미 답이 있는 것 같습니다. 동의하세요? 하지만 이 질문을 기회로... 부처님의 가르침이 많은 사람들을 도울수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지적능력이 뛰어난 사람들 뿐만 아니라, 좋은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도 말이지요. 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일반 대중을 위한 종류의 불교가 있는가 하면, 소수의 사람들만을 위한 심오한 불교도 있지요. 이러한 가르침들이 겉모습만 봐서는 서로 어긋나게 보일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8만 4천개의 가르침의 문이 있다고 하는가 하면, 수많은 종류의 가르침과 수행방법 들이 있지요. 그중에는 벌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벌을 받을 것을 두려워 하면, 행동을 좀더 낫게 하겠지요... 나중에 응징이 두려워서요. 그런 사람들한테는 지옥같은... 뜨겁고, 차가운 등의 지옥 등이 있다고 해서... 일종의 "위협" 같은 것이 되는 거지요. "그렇게 행동하면 이렇게 벌 받을거야" 하구요. 수많은 절 들이 지옥 그림으로 장식이 되어 있지요... 일종의 경고로서... "다섯개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 벌을 받을거야" 끓는 기름물에 던져지는 벌을 받는다는둥 등이요. "거짓말하면 지옥에 가서... 혀를 짤릴거야!" (웃음) 이런것이 많은 사람들을 도울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한테는 도움이 안되겠지요. 일종의 통속 불교입니다. 아직도 대부분 사람들이 다시 태어나는 환생을 믿고 있지요. 하지만 그런 믿음은... 잘못된 자아에 대한 생각, 즉 자아, 영혼이 있다... 몸과 별도의 그 어떤것이 있어서... 몸이 죽어도... 영혼은 살아 남아서... 다른 몸에 들어가서 환생한다는 잘못된 믿음이지요. 그러한 종류의 환생에 대한 믿음이나 가르침은, 진정한 부처님의 깊은 가르침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아'라는 잘못된 견해에 근거한 것이니까요. 그 어떠한 가르침이건, 다음 세가지에 어긋나면, 모든것은 항상 변한다는 것 (무상), 자아는 없다는 것 (무아), 그리고 열반... 이 셋에 어긋나면 깊이있는 가르침이 아닙니다. 인과응보이건 환생이건, 그 가르침이나 수행이 이 세가지 (무상, 무아, 열반)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이중 많은 부분이 고대 인도 경전인... Vedas, Upanishads에서 온 가르침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부처님 시대 이전에 이미 존재했던 믿음들이죠 - 환생, 응보 등이요. 이런것들은 불교가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응보, 환생의 가르침은 부처님이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어요. 하지만 이들은 자아가 존재한다는 것에 기초한 가르침 들이죠. 부처님도 현생, 후생, 연속성 등을 가르치기는 했지만 그의 가르침은 자아는 없다는 무아(無我)의 지혜에 기초하고, 무상과 열반, 즉 탄생도 없고 죽음도 없는 본성에 기반을 두죠. 하지만 순수한 불교가 아닌 믿음들도 유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미타불, 정토교를 믿는 사람들은 극락정토는 여기가 아니라, 서방으로 가야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죽은 후에만 갈수 있다고요. 그런가하면 우리처럼 좀더 나은, 다른 관점도 있습니다. 우리는 진정한 극락정토는 지금 여기에 있다는 걸 알지요. 서방이나 동방이나 거기까지 갈 시간을 잃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의 순수하다면, 우리가 사는 땅도 동시에 순수합니다. 이것이 좀더 '올바른 견해'의 방향입니다. 하지만 불교 정신은 관용의 정신입니다. 우리중에는 깊은 불교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이런 사람들이 다소 희석된 불교의 형태라도 받아들이는 것을 감안해야 합니다. 마치 약에 넣는 약간의 설탕 처럼요. 도움이 됩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러한 가르침, 믿음을 너무 비판해서는 안됩니다... 진정한 진리에 완벽하게 맞지 않는다고 해서요. 왜냐하면 우리는 자비심이 있고, 이해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자비롭게 대처하는게 가능합니다. 진정한 불교도라면 관대해야지, 극단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능숙하게 대처한다면, 그런 사람들을 천천히 유도할수 있어서, 점차 그들의 잘못된 견해를 버리고, 보다 나은 올바른 견해로 항상 나아갈수 있을겁니다. 이건 우리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로 해당됩니다. 예를 들어 세가지 의지할 곳인 삼귀의 (Three Jewels), 즉 부처님, 가르침, 상가(커뮤니티)에 대해 가졌던 처음의 생각은, 10년 수행 후에는 같지 않고 더 나아지지요, 부처님, 가르침, 상가에 대해서요. 그리고 50년 수행 후에는 더욱더 깊은 이해를 부처님, 가르침, 상가에 대해 갖겠지요. 그러니 우리는 이 관용의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의 견해가 가장 올바른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나아지면서, 지금 현재의 견해는 버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더 올바른 견해를 가질수 있습니다. 이것이 견해에 집착하지 않는 수행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지혜를 가지게 된다면, 아주 관대해지고 온갓 형태의 불교도 받아들이게 됩니다. 비난하지 않구요. 여러분 만이 사람들을 올바른 견해와 더 나은 수행을 위해 도와줄수 있습니다. 그래서 상이한 불교 종파 간 충돌이나 전쟁이 없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그것이 현실이었구요. 수많은 불교 종파 들이 존재하지만, 지금까지 불교 내부에서 생긴 종교 전쟁은 역사상 없었습니다. 그러한 관용의 전통을 지켜야 합니다. 관대한 사람이 되기위해서 억지로 관용을 베푸는게 아니라, 진정으로 올바른 견해를 가진 사람으로서,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서, 그러한 여러가지 종파들을... 여러분과 다른 견해라도 용인해야 합니다. 자애심으로 말하기, 깊이 듣기를 실천해서, 그런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돕고 설득해서... 그들이 가진 그릇된 견해를 바꾸도록 노력해 보세요. 여기서 그동안 우리는 배웠지요... 현재는 과거와 미래와 따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임의로 이렇게... 과거, 현재, 미래를 분리하고 자를 수 없습니다. 이 세가지 시간 - 과거, 현재, 미래는, 함께 존재합니다. 이중 하나를 보면 다른 둘을 볼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현재를 깊게 볼수 있게 되면, 과거와 미래와도 만날수 있습니다. 그것이 과거와 미래가 오로지 현재를 통해서만 접근이 가능한 이유입니다. 이러한 지혜는 여러분이... 시간의 함께존재함의 본성에 대해 명상을 하면 생깁니다. (종소리) (번역: 한국 주의깊음 수련 상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