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VTT

00:00:00.601 --> 00:00:02.610
저는 책을 조각하는 예술가입니다.

00:00:02.610 --> 00:00:04.316
책을 이용한 초기의 작품들 중

00:00:04.316 --> 00:00:06.340
"지식을 향한 또 다른 길"입니다.

00:00:06.340 --> 00:00:10.132
사람들이 갤러리에 들어와서
쌓여있는 책들을 봤을 때

00:00:10.132 --> 00:00:12.952
그저 평범한 책이라고 생각하다가도

00:00:12.952 --> 00:00:16.441
가까이 다가갈수록
거칠게 파여진 것을 보고

00:00:16.441 --> 00:00:18.417
그게 무엇이고 왜 있는지에 대해,

00:00:18.417 --> 00:00:20.453
그 소재에 대해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00:00:20.453 --> 00:00:22.543
전 책의 질감뿐만 아니라

00:00:22.543 --> 00:00:27.623
그 속에 담긴 글과 이미지에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NOTE Paragraph

00:00:27.623 --> 00:00:31.524
작업을 할 때, 우선 책의 모서리에
두껍게 광택제를 발라

00:00:31.524 --> 00:00:34.334
겉면에 하나의 층을 형성하고

00:00:34.334 --> 00:00:38.202
안 쪽의 페이지들은 여전히 느슨하지만
외면은 단단하게 만들어 집니다.

00:00:38.202 --> 00:00:40.352
그 다음에 저는 책의 표면에서부터
조각을 해 들어갑니다.

00:00:40.352 --> 00:00:42.883
기존의 내용을 바꾸거나
무언가를 더 추가 시키지 않고

00:00:42.883 --> 00:00:45.762
그저 흥미로운 것들의
주위를 조각하면서 작업합니다.

00:00:45.762 --> 00:00:48.223
완성된 작품에서 보시는 것은

00:00:48.223 --> 00:00:51.026
시작했을 때 책에 있던 내용
그대로입니다.

NOTE Paragraph

00:00:52.666 --> 00:00:55.014
전 제 작업이 리믹스와 같다고 봅니다.

00:00:55.014 --> 00:00:57.345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소재를 가지고

00:00:57.345 --> 00:01:00.973
디제이가 다른 음악가의 음악을
리믹스하듯 작업하니까요.

00:01:00.973 --> 00:01:04.918
르네상스의 화가였던
라파엘의 작품이 담겨있던 책입니다.

00:01:04.918 --> 00:01:09.353
그의 작품들을 리믹스하듯 깎아내가면서

00:01:09.353 --> 00:01:13.905
좀 더 새롭고 현대적인 것으로
재탄생시켰습니다.

00:01:13.915 --> 00:01:17.781
전형적인 책이라는 틀과

00:01:17.781 --> 00:01:19.917
직선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00:01:19.917 --> 00:01:23.900
책 자체에 대한 조직형태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을 시도해서

00:01:23.900 --> 00:01:26.953
책이 완전한 조각품처럼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NOTE Paragraph

00:01:29.303 --> 00:01:33.068
집게와 줄 외에도 다양한 재료와
무게가 있는 것들을 사용해서

00:01:33.068 --> 00:01:36.200
광택제를 바르기 전에
책을 눌러 놓습니다.

00:01:36.200 --> 00:01:38.600
작업을 시작하기 전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00:01:38.600 --> 00:01:43.242
처음엔 이랬던 책이
이런 작품으로 바뀌게 됩니다.

00:01:43.242 --> 00:01:46.130
단 하나의 사전을 이용한 작품입니다.

00:01:46.130 --> 00:01:52.368
아니면 이랬던 책이 이렇게 바뀝니다.

00:01:54.768 --> 00:01:56.694
이렇게 보였던 책들이

00:01:56.694 --> 00:02:00.255
무엇으로 다시 탄생될지,
왜 제 작업실에 있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00:02:00.255 --> 00:02:04.994
이런 작품으로도 바뀝니다.

NOTE Paragraph

00:02:04.997 --> 00:02:08.685
사람들은 대부분 책을 파괴하거나

00:02:08.685 --> 00:02:12.378
찢는 것에 거부감을 일으키고
굳이 버리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00:02:12.378 --> 00:02:16.133
그 이유는 책을 생명이 있는 물체라고
여기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00:02:16.133 --> 00:02:19.313
책은, 그 규모면에서 볼 때,
우리가 가까이 하는 물체이기도 하지만

00:02:19.313 --> 00:02:23.661
나름대로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새 것으로
탄생할 수 있는 물체이기도 합니다.

00:02:23.661 --> 00:02:26.458
그러므로 책이라는 것은
진정 살아있습니다.

00:02:26.458 --> 00:02:31.678
저는 책이 그 자체로 하나의 생명체이고
과학 기술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00:02:31.692 --> 00:02:34.081
또한 책이 하나의 도구이거나

00:02:36.111 --> 00:02:40.435
기계일 수도 있고,

00:02:40.435 --> 00:02:42.809
또한 하나의 풍경으로
바뀔 수도 있다고 봅니다.

00:02:42.809 --> 00:02:47.081
이것은 백과사전 한 세트를
전부 붙이고 사포질을 한 것입니다.

00:02:47.081 --> 00:02:49.334
조금씩 깎아내가면서

00:02:49.334 --> 00:02:51.275
어떤것을 선택할 지 고민합니다.

00:02:51.275 --> 00:02:53.863
백과사전의 경우,
선택의 요소들이 많지만

00:02:53.863 --> 00:02:57.970
그 중에 풍경이 담긴
이미지들을 선택했습니다.

00:02:57.970 --> 00:03:00.966
그리고 사포를 이용해

00:03:00.966 --> 00:03:04.658
모서리를 문지름으로 해서,
이미지들뿐만 아니라

00:03:04.658 --> 00:03:09.476
책이라는 소재 자체도
풍경을 연상시키도록 했습니다.

NOTE Paragraph

00:03:09.476 --> 00:03:12.889
책을 거치며 조각할 때 
제가 하는 일 중 하나는

00:03:12.889 --> 00:03:16.570
책의 이미지도 생각하지만 
책 내용의 글도 염두에 두는 것입니다.

00:03:16.570 --> 00:03:18.775
글은 이미지와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00:03:18.775 --> 00:03:21.647
우리가 글의 내용을 읽거나

00:03:21.647 --> 00:03:23.146
책을 읽을 때,

00:03:23.146 --> 00:03:24.615
머릿속에 그 책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담습니다.

00:03:24.615 --> 00:03:26.638
그 글의 각 부분들을 머릿속에 메꾸고

00:03:26.638 --> 00:03:30.039
내용을 읽으면서 이미지를 만들어갑니다.

00:03:30.039 --> 00:03:32.916
또한, 하나의 이미지를 볼 때에는

00:03:32.916 --> 00:03:35.632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합니다.

00:03:35.632 --> 00:03:37.861
마치 음양의 조화가 이루어지면서

00:03:37.861 --> 00:03:39.388
앞면과 뒷면을 넘기듯이 말이죠.

00:03:39.388 --> 00:03:45.487
보는 이가 직접 그 경험을
완성해가는 작품을 만드는 것입니다.

NOTE Paragraph

00:03:45.487 --> 00:03:48.960
제 작업은 마치 고고학에서
그렇게 하는 것처럼

00:03:48.960 --> 00:03:51.979
무언가를 발굴해서 그것의 가능성을

00:03:51.979 --> 00:03:54.068
최대한 살리고 제 작품을 통해

00:03:54.068 --> 00:03:58.219
그것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00:03:58.219 --> 00:03:59.896
하지만 그와 동시에

00:03:59.896 --> 00:04:01.870
지움과 삭제라는 것을 되돌아보고,

00:04:01.870 --> 00:04:06.351
요즘 시대에 우리가 접하는
무형의 정보와

00:04:06.351 --> 00:04:09.393
그 정보의 손실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00:04:09.393 --> 00:04:13.711
컴퓨터의 형식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 뿐만 아니라

00:04:13.711 --> 00:04:16.033
정보 그 자체 역시

00:04:16.033 --> 00:04:18.262
물질적인 백업 시스템이 없다보니

00:04:18.262 --> 00:04:23.843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어야만
정보의 손실을 막습니다.

00:04:23.843 --> 00:04:26.623
작업실에는 사전이 여러 권 있지만

00:04:26.623 --> 00:04:29.140
컴퓨터를 매일 사용하기 때문에

00:04:29.140 --> 00:04:31.759
모르는 단어가 있을 때는 그때마다
컴퓨터로 검색해봅니다.

00:04:31.759 --> 00:04:34.518
제가 직접가서 찾고자 하는 것을
즉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00:04:34.518 --> 00:04:37.209
사실 책이라는 것이 효율적으로

00:04:37.209 --> 00:04:40.104
비선형의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00:04:40.104 --> 00:04:44.598
참고서들이 더 이상 사용되지 않고
거의 멸종 위기에 놓인

00:04:44.598 --> 00:04:47.413
첫번째 사례가 된 
이유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NOTE Paragraph

00:04:49.603 --> 00:04:52.510
책이라는 것이 영원히
사라지지는 않을 겁니다.

00:04:52.510 --> 00:04:56.806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00:04:56.806 --> 00:04:58.178
책이 없어질거라고 하지만,

00:04:58.178 --> 00:05:01.381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변동과 진화가 이루어지고 있어

00:05:01.381 --> 00:05:03.505
책 역시 진화할 것이라고 봅니다.

00:05:03.505 --> 00:05:11.387
사진기술과 프린트 제작법이 일상화 되자
회화기법이 멸종할 것이라고 예측했었지만

00:05:11.387 --> 00:05:15.414
사실상 결과적으로 회화기법에 허용한
것은 허드렛일을 그만둔 것입니다.

00:05:15.414 --> 00:05:22.021
더 이상 일상적인 세밀묘사 작업을
할 필요성이 없어지게 한 것입니다.

00:05:22.022 --> 00:05:25.435
그것은 작가가 자유로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되었죠.

00:05:25.435 --> 00:05:27.662
이렇게 모더니즘이 나타나게 되었고,

00:05:27.662 --> 00:05:29.984
회화는 여러 방면으로 뻗어나갔습니다.

00:05:29.984 --> 00:05:32.438
이게 현재 책이라는 매체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00:05:32.438 --> 00:05:38.987
거의 대부분의 기술과 정보와 개인적, 
문화적 기록들이 디지털화 되어감에 따라

00:05:38.987 --> 00:05:42.079
책이 새로운 형태로 
재탄생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00:05:42.079 --> 00:05:44.789
저같은 예술가들에게는
상당히 마음을 설레게 하는 시기이며,

00:05:44.789 --> 00:05:47.819
미래에는 책이 어떤 식으로 
진화할 지에 대한 귀추가 주목됩니다.

NOTE Paragraph

00:05:47.819 --> 00:05:49.768
감사합니다.

NOTE Paragraph

00:05:49.768 --> 00:05:53.576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