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옷을 입고, 신을 신고
세상으로 향합니다.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잠자리에 들 생각을 합니다.
그리곤 다시 일어나 같은 과정을 반복하지요.
그런 예상, 그런 리듬은
우리 자신과 삶을 계획할 수 있는
기초도 제공하고
예측의 정도도 제공합니다.
저는 뉴욕에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 많은 일을
짧은 시간안에 동시에 해내는걸 보면
뉴욕에 산다는건 거의 자신의 일에 손이 하나 더 있어야
할 정도지요.
절대로, 그냥 하나를 갖다 붙이는 그런건 불가능하죠.
그런 일이 있을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실겁니다.
사람들은 길을 가다가
이쪽 길로 걸어가는지,
반대편 길로 걸어가는지에 따라
인생이 영원히 바뀔거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요.
어느날 밤, 저는 도시 북쪽에서 기차를 타고 있었어요
지하철을 탔을 때, 저는 약간
씩씩한 모습이었죠.
저는 헤드폰이나 책에 집중하는 그런 편은
아니에요.
차에 올라타서 주위를 둘러보다가
한 커플을 봤어요.
대학생 정도의 나이에 학생처럼 보이는 친구들이었죠.
남자와 여자는 나란히 앉아 있었는데
여자가 다리를 남자의 무릎위로 올려놓고
둘이서 -- 둘이서 이런 이상한 뭔가를 하고 있었죠.
이렇게 매듭을 짓고 있는데
그걸 각자 한 손으로 하고 있는거에요.
둘이서 각자의 왼손과 오른손으로 빠르게 하고 있었죠.
여자가 하고나면 남자가 또 하고 그러는거죠.
전 이런걸 본적이 없거든요.
꼭 마술의 속임수를 연습하는 것 같았죠.
다음 정류장에서, 어떤 남자가 기차에 탔어요.
마치 이방인 교수같은 행색을 하고 있었죠.
그 사람은 불룩한 가죽 가방과
사각형의 파일 상자, 그리고 노트북용 가방을 들고 있었죠.
가죽을 덧댄 트위드 상의를 입고
그리고.. --(웃음)--
그 사람이 이 커플을 보더니
눈깜짝항 사이에 두 남녀 앞에 무릎을 꿇고 앉는거에요.
그러더니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어요.
"내말 들어봐. 이렇게 하는거야. 봐.. .
이렇게 하면... " 그리고는 남녀의 손에 있는 레이스를 잡더니
순식간에 이런 매듭을 짓기 시작했어요.
두 남녀가 했던 것보다 놀라울 정도로 훨씬 더 잘 했어요.
사실은 의과대학생인 두 사람은
최신 봉합 수술 강의를 들으러 가는 중이었고
그 사람은 그 강의의 교수님이었어요.
(웃음)
그 사람은 두 남녀에게 말하기 시작했죠.
"아니야, 여기 이건 굉장히 중요해.
바늘로 이렇게 매듭을 지으려면
이 모든 것을
동시에 해내야 하는거지. 그건...
이 과정에 대한 정보를 모두 알게 될거야.
어떤 장기가 방해가 되기도 하고,
미끌거릴 때도 있고
그리고
중요한 건 너희들이 이런 것을 몇 초안에 해내야 한다는거지.
두 손을 각각 왼손, 오른손으로
손가락은 보지 않고도 해낼 수 있어야 하는거야."
그 말을 들었던 순간,
저는 지하철로부터 제가 그 사건을 겪은 그날 밤으로 간 것같은 느낌이었어요.
저는 길가에서 자상을 당하고 앰뷸런스에 실려
맨하탄에 있는 성 빈센트 병원의
응급실로 옮겨졌어요.
그날 일어났던 일은
브루크린의 한 갱단원으로 시작합니다.
신입 갱 단원 3명이 입단 행사의 하나로
누군가를 살인해야만 했던 겁니다.
그리고 그날 제가 우연히 브릭커가(街)에서 그 누군가가
되었던거죠.
그들은 제게 말도 없이 덤벼들었어요.
그나마 운이 좋았던 것은
제가 노틀담 대학에 다닐 때, 권투팀에 있었거든요.
그래서 본능적으로 바로 손을 올려 저항했죠.
오른쪽에 있던 녀석은 10인치(25cm)짜리 칼을 들고 있었는데
그 놈이 제 팔 아래로 기어들어
일어나면서 저의 대정맥을 찌른겁니다.
해부학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신다면
그 부분엔 상처를 입어서는 안된다는 걸 잘 아실겁니다.
물론, 상황은 계속 되었죠.
그리고는 - 저는 팔을 계속 올리고 있었지만 -
칼을 잡아당겨 제 목쪽을 끌어 올렸어요.
칼이ㅡ 손잡이가 제 목까지 올라왔죠.
저는 직격으로 한방을 날려서
가운데 있는 놈을 쓰러뜨렸어요.
다른 놈은 여전히 제게 달려들어 있었고
제 한쪽 폐쪽을 공격했죠.
그 놈을 때린 덕에 겨우 1분쯤 벌었을겁니다.
저는 길을 따라 도망치다 쓰러졌습니다.
앰뷸런스 요원이 노상에서 제게 삽관을 하고
응급실에 환자가 가고 있다는걸
알렸죠.
중대한
대량의 출혈이 있을 때 생기는 부작용의 하나가
터널 시야를 겪는 것인데요.
저는 이송용 침대에 누워서
동전 크기의 좁은 시야만 있었다는 걸 기업합니다.
그래서 저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죠.
성 빈센트 병원에 도착해서
복도를 달려가는데
불빛이 지나가는 걸 봤어요.
그런건 아주 특별한 기억 효과지요.
그런 기억은 보통 기억이 저장되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 저장이 됩니다.
둥근 천장이 있는 금고와 같은 곳인데
죠지 루카스가 모든 음향 효과를 냈죠.
(웃음)
때로는 그런걸 기억하는게
다른 어떤 기억과도 다르지요.
저는 응급실로 이송됐고
의료진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불빛이 있는 곳이었죠.
저는 간신히 숨쉬기가 조금 나아진 정도였는데
제 폐를 꽉 채우고 있던 피가 조금 빠져나갔기 때문이었어요.
저는 숨쉬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는데
지금은 그 이송 침대속으로 사라져 버린 듯하죠.
제가 말했어요. "제가 도울 수 있는게 뭐가 있나요?"
그러자 --(웃음)--
간호사는 미친듯이 웃었어요.
저는 사람들을 보려고 머리를 돌렸는데
대학에 다니던 시절의 이상한 기억이
떠 올랐습니다.
대학때 방글라데시의 홍수 이재민을 위한 모금을 했던 기억이요.
그리고는 제가 둘러보니 마취의사가
제게 마스크를 씌우고 있었는데, 저는 그를 보고
"방글라데시 사람같다."라고 생각했어요. --(웃음)--
저는 그 두가지를 기억합니다. 또 제가 했던 생각은
"이거 어떻게든 잘 되겟는데."였어요. --(웃음)--
그리고, 저는 정신을 잃었고
사람들은 그날 밤새 수술을 진행했지요.
수술을 하는 동안 저의 생명을 유지하려고 40통 정도의
혈액이 필요했다더군요.
의사가 제 내장의 약 1/3 정도를 제거했답니다.
맹장과 제게 그런게 있는지도 몰랐던 기관 같은 것들이요.
나중에 의사가 그러는데, 수술을 하면서
맨 마지막에 했던 일은 저를 위해 제 맹장을 드러낸 거였답니다.
그건 잘한거죠. 그렇죠?
끝에 달린 그 조그만 거 말이에요. (웃음)
저는 아침에 의식이 돌아왔죠.
마취에서 깨어나자, 의사가 사람들에게
자기가 자리를 지키겠다고 했고,
생존할 확률이 2%정도 된다고 생각했답니다.
제가 깨어났을 때, 의사가 있었고
마취에서 깨어나는 건 마치
얼음을 깨고 고통의 차디찬 바다로 들어가는 것 같았어요.
온 몸이 꿰매어져 있었고
딱 한 곳만 빼고는
제가 평생 겪어봤던 어떤 고통보다도 더한 통증이 몰려왔죠.
그 부분은 발등이었어요.
의사는 제 발꿈치를 잡고
엄지손가락으로 그 부분을 주무르고 있었어요.
제가 올려다 보니까 이렇게 말하는 듯 했죠.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해내려고 했습니다.
뭐든 기억해내려고 애쓰고 있었지요.
그런데 통증은 정말 대단했어요. 의사가 그러더군요.
"자네의 머리카락은 자르지 않았네. 자네가
삼손처럼 머리카락에서 힘을 얻을지 모른다고 생각했거든,
아마 젖먹던 힘까지 다 내야만 할걸세."
그 당시, 제 머리칼은 어깨까지 내려왔어요.
저는 미혼에, 오토바이를 타고,
술집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완전히 다른 시기였죠.
(웃음)
그런데
저는 생명유지 장치에 3일간 의지했고
모든 사람들이 예측하기로는,
그들이 해야만 했던 수많은 것들 때문에
제가 살아남지 못할거라 생각했답니다.
그리고는 사흘동안
사람들은 제가 죽거나 대변을 지리기를 기다린겁니다.
그리고 --(웃음)--
결국 제가 대변을 지렸을 때, 그건
임상적으로 말하면, 그건 양호한 선을 넘어섰다는 말인데요,
음.. (웃음)
그날 의사가 들어와서
제 뺨을 세차게 때렸습니다.
주변에 서너명 동료와 함께
저를 때리고는, 모두 저를 바라보더니,
감염은 없군 이라고 했죠.
그들은 저를 굽어보면서 여기저기 찔러도 보고 만져도 보더군요.
그 사람들은 "혈종은 없고.. 어쩌구 저쩌구,
색깔 좀 봐" 자기들끼리 말하고 있었어요.
저는 마치 수선을 마친 자동차같았고
의사가 마치 "그래, 내가 그랬다." 그런 식이었습니다.
(웃음)
그건 정말,
그건 대단했어요. 제 결과가 얼마나 잘 나왔는지 동료들이 의사에게
하이 파이브를 해주고 있었어요. 아시겠죠? (웃음)
저는 단단히 결박되어 있는거죠. 여전히 여기저기 실밥으로 묶여
있었거든요.
그리고는
나중에 제가 퇴원하고 나서는
기억이 되살아나
그 공포가 엄습해 저를 힘겹게 했어요.
그 의사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라고요.
그러니까, 그 분은 의사로써, 제게 이렇게 말했죠.
"이보게, 나는 자네의 생명을 구했어.
이제부터 자네도 뭐든 원하는걸 할수 있을거야.
그걸 찾아야 하네.
그건 마치 내가 자네에게 새 차를 한대 줬더니
주자할 자리를 찾지 못하겠다고 불평하는 것과 같아.
그러니, 가서 뭐든 최선을 다해보게.
어쨌든 자네는 살아있잖아. 그게 제일 중요하지."
그때 저는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딩-동-" 지하철의 문이
닫히고 있었고, 저는 다음 역에서 내려야 했어요. 두 젊은 친구들을 보며
저 혼자 생각했습니다.
"웃 옷을 올려서
이 상처를 보여줘야지." ---(웃음)---
그리고는 이내 "아니야, 여긴 뉴욕시 지하철이잖아,
그러면 다른 일이 벌어지고 말걸." (웃음)
그래서 그냥 이렇게 생각했죠. 그 친구들은 들어야 할 강의가 있지.
저는 지하철을 내려 프랫품에 섰습니다.
그리고는 제 엄지손가락으로
저의
처음 상처 입게 된 부위를 만져봤어요.
배꼽으로부터
그 주위를 지나
외과의사가 제게 만들어준
마지막 상처 부위까지요.
그리고 또 생각해봤습니다. 길에서 칼을 든
그 녀석들과 또 조우하게될 확률까지도요.
그 확률이 저를
수술 팀과
그들이 받은 훈련과
기술
그리고 항상, 약간의 행운
이런 것들 덕분에 대혼란을 떨쳐낼 수 있게 이끌어 준거죠.
감사합니다. (박수)
(박수)
감사합니다. 이 자리에 선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