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 시간 동안 두 가지 의문점이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해를 할 수가 없었고 솔직히 말하면 자세히 알아보기엔 좀 겁이 났죠. 첫 번째 의문은, 제 나이가 40인데 제 한평생 동안 해마다 심각한 우울증과 불안장애가 증가해 왔다는 겁니다. 미국에서, 영국에서, 그리고 서구 사회 전역에 걸쳐서요. 저는 그 이유를 알고 싶었습니다.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나타나는 걸까요? 왜 해가 가면 갈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견디기 힘들어하는 걸까요? 또한 제 개인적인 의문 때문에 이것을 이해해 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청소년일 때 저는 의사에게 찾아가서 얘기했습니다. 마치 제 안에서 고통이 새어나오는 듯한 느낌이라고요. 제가 어떻게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고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도 몰랐었습니다. 오히려 그것 때문에 창피한 기분이었죠. 제 담당 의사는 저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좋은 의도였지만 지나치게 단순화된 생각이었죠.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었어요. 의사는 말했죠. "저희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되는지 알아요. 어떤 사람들은 원래 머릿속에 화학적인 불균형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당신도 분명 그런 사람 중 하나일 거예요. 약만 좀 드리면 될 거 같고요. 이 약이 화학적 균형을 정상으로 돌려줄 겁니다." 그래서 저는 팍실이나 세로자트라고 하는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죠. 여러 나라에서 이름만 다를 뿐 같은 약이에요. 제 기분은 훨씬 나아졌고 매우 큰 힘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오래 지나지 않아 다시금 고통스런 기분이 밀려왔습니다. 점점 약의 복용량이 늘어났고, 저는 13년 동안 법적 허용 최대치의 약을 복용하고 있었습니다. 그 13년 중 많은 시간을, 그리고 끝에 가서는 대부분의 시간을 여전히 큰 고통 속에서 보내야했습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이지? 사회의 지배적인 견해대로 하라는 모든 걸 다 하고 있는데 왜 아직도 이런 고통을 느끼는 거지?" 그래서 이 두 의문점에 대해 낱낱이 밝혀내고 그걸 책으로 쓰기 위해서 전 세계에 걸쳐 긴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64,000km가 넘는 여행이었죠. 전 세계의 주요 전문가들과 함께 논하고 싶었습니다. 무엇이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일으키며 결정적으로,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를요. 또 다양한 방법으로 우울증 및 불안장애를 견뎌내고 그로부터 해방된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죠. 이 여행에서 놀라운 사람들을 만나 엄청나게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제가 배운 것의 핵심은, 지금까지 우리는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일으키는 아홉 가지의 각기 다른 원인에 대한 과학적 증거를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 중 두 가지는 실제로 생물학적 요인입니다. 유전자가 여러분을 그러한 문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하죠. 그렇다고 유전자가 여러분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지만요. 또한 여러분이 우울해졌을 때 뇌에 실제 변화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병에서 더욱 빠져나오기 힘들게 말이죠. 그러나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일으킨다고 증명된 대부분의 요인은 사실 생물학적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삶의 방식이 바로 그 요인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이해하고 나면 전혀 다른 종류의 해결책이 보일 겁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종류의 해결책이 사람들에게 제시되어야 합니다. 항우울제라는 선택권과 함께요. 예를 들어 여러분이 외로운 상태라면 우울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러분이 일을 하러 갔는데, 업무에 대한 통제권이 전혀 없이 그저 시키는 대로만 일을 해야한다면 역시 우울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러분이 자연환경을 거의 접하지 않는다면 마찬가지로 우울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저는 우울증과 불안장애의 많은 원인을 아우르는 무언가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원인은 아니지만, 많은 원인을요. 여기 계신 분들 모두 우리가 선천적으로 신체적 욕구를 갖고 있음을 알고 계실 겁니다. 이건 명백하죠. 우리는 음식과 물과 주거지와 깨끗한 공기가 필요합니다. 제가 만약에 이런 것들을 여러분한테서 뺏어 가버린다면 여러분 모두 즉시 곤경에 처하게 될 겁니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인간은 선천적으로 정서적 욕구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소속감을 느낄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의미와 목적이 있다고 느끼고,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을 가치있게 바라봐줄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 삶에 건강한 미래가 있다고 느낄 필요도 있죠. 우리가 만든 이 문화에는 좋은 면이 참 많습니다. 많은 것에서 과거보다 낫죠. 저는 오늘날을 사는 것이 기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에게 깊이 내재된 이러한 정서적인 욕구를 점점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만이 문제는 아니지만 저는 이것이 이 위기가 계속 증가하는 주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이 생각을 받아들이기가 정말 어려웠습니다. 이 발상의 전환을 놓고 힘겹게 씨름해야만 했습니다. 제 우울증이 단순히 뇌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식을 포함한 다양한 원인이 있다는 생각의 전환 말이죠. 어느 순간 이 모든 것이 딱 맞아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저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정신과 의사인 데릭 서머필드를 인터뷰하러 갔습니다. 훌륭한 사람이죠. 서머필드는 2001년에 캄보디아에 있었습니다.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화학적 우울증 치료제인 항우울제를 소개시켜준 때였죠. 캄보디아 의사들은 이런 약들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게 뭐냐고 했죠. 서머필드는 설명을 해줬습니다. 그랬더니 캄보디아 의사들이 말했습니다. "저희는 그거 없어도 돼요. 항우울제라면 이미 가지고 있어요." 서머필드는 물었습니다. "무슨 말이죠?" 그는 그들이 무슨 약초로 만든 약 같은 걸 얘기하려는 줄 알았습니다. 서양고추나물이나 은행잎 추출물 같은 것들 말이죠. 대신에 그들은 그에게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었습니다. 그들의 지역 사회에는 논밭에서 일하던 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지뢰를 밟고 말았습니다. 미국과의 전쟁 후 남아있던 것이었죠. 그는 다리를 잃게 됐습니다. 의사들은 그에게 인공 다리를 달아주었고 얼마 후 그는 다시 논밭으로 일하러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제가 듣기로 인공 다리를 착용한 상태로 물에서 일하는 것은 굉장히 고통스럽고, 아마 정신적으로도 큰 고통이었을 겁니다. 다리가 절단됐던 그 밭에 다시 돌아가 일하는 건요. 농부는 하루종일 울기 시작했고 침대에서 나가기조차 싫어했습니다. 그는 전형적인 우울증의 모든 증상을 보였습니다. 캄보디아 의사들은 말했습니다. "바로 그 때 우리가 그에게 항우울제를 줬죠." 서머필드가 물었습니다. "그게 뭐였죠?" 그들은 농부에게 찾아가 그와 마주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그의 얘기를 들어주었죠. 의사들은 농부의 고통이 이해할 만 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우울증을 겪고 있던 농부에겐 보이지 않았을 지 몰라도, 사실 지극히 정상적인 원인들이 그의 삶에 있었습니다. 의사들 중 한 명이 지역 공동체의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 농부에게 젖소를 한 마리 사주면 그는 젖짜는 일을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면 저렇게 자신을 망가뜨리는 상황에 놓이지 않을 거고 논밭에 가서 일할 필요도 없을 거예요." 그래서 그들은 농부에게 젖소 한 마리를 사줬죠. 2주 내에 그는 울음을 그쳤고, 한 달 이내에 우울증이 사라졌어요. 캄보디아 의사들은 서머필드에게 말했죠. "보세요, 의사양반. 그 젖소 말이죠. 그게 항우울제였어요. 그거 말씀하신 거 맞죠?" (웃음) (박수) 우리 대부분이 우울증에 대해 보통 생각하는 방식대로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며 자라왔다면 이건 무슨 장난 같이 들리지 않나요? "항우울제를 받으러 의사에게 갔는데 젖소를 한 마리 주더라고." 하지만 그 캄보디아 의사들이 직관적으로 알고 있던 것, 개인적이고 비과학적인 일화에 근거한 그것이 바로 세계를 선도하는 의료 단체인 세계 보건 기구가 우리에게 수년 동안 얘기해오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과학적인 근거에 기반해서 말이에요. 여러분이 우울하거나 불안하다면 여러분은 나약한 게 아니에요. 정신이 이상한 것도 아니에요. 여러분은 그저 부품이 고장난 기계가 아니에요. 여러분은 충족되지 못한 욕구를 지닌 인간이에요. 그리고 여기서 캄보디아 의사들과 세계 보건 기구가 말하지 않고 있는 것을 생각해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의사들은 농부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았어요. "기운 좀 내셔야겠어요. 이건 결국 스스로 극복해야되는 문제예요." 반대로 그들이 얘기한 것은 "우리가 당신과 함께 하려고 여기 왔어요. 우리가 함께 이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 이것이 바로 모든 우울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말이며 또한 모든 우울한 사람들이 마땅히 들어야하는 말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유엔의 대표적인 의사들 중 한 명이 세계 보건의 날을 위한 공식 성명에서 말했죠. 2년 전인 2017년이었어요. 우리는 화학적 불균형에 대한 얘기를 줄이는 대신 우리 삶의 불균형에 대한 얘기를 늘려야한다고 말이에요. 약은 어떤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저에게도 한동안 도움을 주었죠. 그러나 사실 이 문제는 생물학적인 것 이상으로 심오하기 때문에 해결책 역시 심층적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제가 이 사실을 처음 알게 됐을 때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 모든 과학적 근거들도 이해하겠고, 수많은 연구 결과들도 읽었고, 이를 설명하는 수많은 전문가들과 인터뷰도 했는데," 그러나 여전히 생각에 잠겼죠. "그런데 어떻게 해야되지?"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들은 대부분이 캄보디아 농부의 경우보다 더 복잡한 것들이잖아요. 이 통찰을 가지고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하지만 제 책을 위한 긴 여정 속, 세계 곳곳에서 저는 정확히 이를 실행하고 있는 사람들을 계속 만났습니다. 시드니에서부터, 샌프란시스코, 상파울로까지요.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과 불안장애의 심오한 원인들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제가 만나고 기록한 놀라운 사람들 모두에 대해 다 말씀 드릴 순 없겠지요. 제가 알게된 우울증과 불안장애의 아홉 가지 원인 모두에 대해서도요. 저에게 10시간의 강연 시간이 주어지지는 않을 거니까요. 테드 담당자 분들에게 불평하셔도 돼요. 그래서 괜찮다면 그 중 두 가지 원인과 그로부터 알 수 있는 두 가지 해결책에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첫 번째입니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외로운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최근에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가 있었습니다. "더 이상 아무하고도 가깝지 않다고 느끼십니까?" 39%의 사람들이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더 이상 아무하고도 가깝지 않다." 외로움에 대해 국제적으로 측정을 해본 결과, 영국과 나머지 유럽 국가들은 미국 바로 다음이었습니다. 혹시 여기에 우쭐해하는 분이 계실까봐 말씀드려요. (웃음) 저는 이에 대해 의논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외로움과 관련하여 세계적인 전문가이자 시카고의 훌륭한 교수인 존 카시오포와 함께요. 그가 우리에게 제기하는 하나의 질문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했습니다. 카시오포 교수는 질문했습니다.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우리는 왜 여기에 있고, 왜 살아있는가?" 핵심적인 이유 하나는, 아프리카 대초원에 살던 우리의 조상들은 한 가지를 아주 잘했다는 겁니다. 그들은 그들이 수없이 쓰러뜨렸던 동물들보다 크지도 않았고 그들이 수없이 쓰러뜨렸던 동물들보다 빠르지도 않았지만 그들이 훨씬 잘했던 것은 함께 뭉쳐 무리를 이루고 서로 협력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종으로서 우리가 가진 엄청난 힘입니다. 우리는 함께 뭉칩니다. 벌들이 벌집 안에서 살도록 진화한 것처럼 인간은 부족 안에서 살도록 진화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의 부족을 해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 기분을 최악으로 만들고 있죠. 여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제 책 속의 영웅들 중 한 명이자, 사실 제 인생의 영웅인 샘 에버링턴이라는 의사가 있습니다. 그는 런던 동쪽의 가난한 지역에 사는 의사였습니다. 저도 거기서 오래 살았었죠. 샘은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에게 찾아오는 많은 환자들이 극심한 우울증과 불안장애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처럼 그는 화학적 우울증 치료제에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항우울제가 어떤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고 봤죠. 그러나 그는 두 가지를 알게 됐습니다. 첫 째로, 그의 환자들은 오랜 시간 동안 우울하고 불안했습니다. 완전히 이해가 가는 이유들로 인해서요. 외로움처럼요. 둘 째로, 약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 통하긴 하지만 많은 이들에겐 그것이 문제를 해결해주진 않았습니다. 근본적인 문제를 말이에요. 어느 날 샘은 새로운 접근법을 시도해보기로 했습니다. 한 여성이 그의 병원에 찾아왔습니다. 이름이 리사 커닝햄이었는데, 전 리사를 나중에 알게 됐죠. 리사는 심각한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집에 틀어박혀 있었습니다. 7년 동안을요. 그녀가 샘의 병원에 찾아왔을 때 샘이 말했습니다. "걱정마세요. 약은 계속 드릴 거예요. 그런데 다른 것도 하나 처방해드릴게요. 저희가 처방해 드릴 것은, 리사 씨가 병원에 매주 두 번씩 오셔서 우울하고 불안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만나는 거예요. 거기서 리사 씨가 얼마나 불행한지 얘기하라는 게 아니고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무언가를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외롭지도 않고 삶이 무의미하다고 느끼지도 않을 거예요." 이 사람들이 처음 서로를 만났을 때 리사는 불안감에 실제로 토를 하기 시작했죠. 그녀에겐 너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의 등을 쓰다듬어주고 서로 얘기하기 시작했죠. 사람들은 물었어요.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요?" 이 사람들은 저처럼 런던 동쪽의 도시 사람들이었어요. 정원을 가꾸는 일에는 문외한이었죠. 사람들은 말했어요. "정원 가꾸는 걸 배워보는 건 어때요?" 마침 병원 뒤쪽에 공간이 있었죠. 그저 잡초투성이인 곳이었어요. "여길 정원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사람들은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그들은 손으로 흙을 만지며 계절의 변화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어요. 자연과의 접촉이 매우 강력한 우울증 치료제라는 많은 증거가 있죠. 하지만 그들은 더 중요한 것을 하기 시작했어요. 부족을 형성하기 시작한 거죠. 집단을 이루기 시작한 거예요. 사람들은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주기 시작했죠. 어떤 사람이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찾아와 물었어요. "괜찮아요?" 그 날 그 사람의 걱정거리가 뭔지 함께 알아내려고 했어요. 리사가 저에게 이렇게 표현하더군요. "정원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을 때 우리도 꽃을 피우기 시작했어요." 사회적 처방이라고 하는 이 접근법은 전 유럽에 퍼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실제로 유의미하게 감소시킬 수 있다는 작지만 커져가는 증거가 있죠. 하루는 그 정원에 서있었죠. 리사와 한 때 우울해하던 그녀의 친구들이 함께 만든 그 곳에요. 정말로 아름다운 정원이에요. 그리고는 생각했어요. 휴 맥카이라는 오스트레일리아의 교수에게 크게 영감을 받은 건데요. 우리는 사회의 우울해하는 사람들에게 종종 이렇게 말하곤 해요. 저를 포함해 여러분 모두 그랬을 거예요. 우린 이러죠. "있는 그대로의 너로 살아. 너답게 살아." 저는 우리가 사람들에게 진짜 해야 될 말을 깨달았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너로 살지 마. 너답게 살지 마. 우리로서 살아. 우리답게 살아. 우리의 일부로서 살아." (박수)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고립된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것에 더욱 초점을 맞춰선 안 됩니다. 부분적으로는 그게 우리를 이 위기로 몰고 온 겁니다. 여러분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와 다시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제가 얘기하고 싶었던 우울증 및 불안장애의 또 다른 원인과 관련이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는 정크 푸드가 우리 식습관이 됐고 우리 몸을 병들게 했다는 걸 압니다. 제가 무슨 우월감을 느끼려고 하는 말은 아니고요. 여기 오기 전에 실제로 맥도날드에 있었거든요. 여러분은 테드의 건강식이 아침 식사더군요. 저는 사양할게요. 하지만 정크 푸드가 우리 식단을 차지하고 우리를 병들게 했던 것처럼 쓰레기같은 가치관이 우리의 머릿속을 차지하고 우리를 정신적으로 병들게 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철학자들은 말해왔습니다. 여러분이 삶을 돈, 지위, 보여주기 식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기분이 아주 더러울 거라고요. 쇼펜하우어가 정확히 이렇게 말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요지는 그거잖아요. 근데 이상하게도, 이에 대해 거의 아무도 과학적인 연구를 하지 않았죠. 제가 알게 된 정말 대단한 사람인 팀 캐서 교수가 하기 전까진요. 일리노이의 녹스 칼리지에 있고, 이것에 대해 30년째 연구를 하고 있어요. 그의 연구에는 매우 중요한 몇 가지 시사점이 있는데요. 첫 째로, 여러분이 뭔갈 구매하고 과시함으로써 슬픔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믿으면 믿을수록 우울하고 불안해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둘째로, 사회적으로 우리는 훨씬 더 이러한 믿음에 휩쓸려 다닙니다. 제 한평생 동안 항상 우리는 광고와 인스타그램 같은 것들에 짓눌려 있죠. 그리고 이에 대해 생각하다가 전 깨달았습니다. 우린 태어났을 때부터 우리 정신에 KFC를 먹여대고 있다는 걸요. 우린 완전히 틀린 곳에서 행복을 찾도록 학습된 거예요. 정크 푸드가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해주지 못 하고 여러분의 건강을 해치듯이, 쓰레기 가치관은 여러분의 정신적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여러분을 좋은 삶에서 멀어지게 만듭니다. 제가 캐서 교수와 처음 마주하고 이 모든 것을 알게 됐을 때 정말 복잡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게 정말 어려운 것이라 생각했어요. 제 일생 동안 우울할 때마다 제가 얼마나 자주 보여주기식의, 화려한 외적인 것들로 해결해보려 했는지 알게 됐죠. 그리고 그게 왜 통하지 않았는지도 알게 됐고요. 그런데 이 생각도 들더군요. 이건 당연한 것 아닌가요? 거의 진부한 내용 아니에요? 생각해보세요. 여러분 중 그 누구도 임종의 순간에 여러분이 산 신발이나 여러분이 받은 리트윗을 떠올리진 않을 것 아니에요. 여러분 삶 속에 존재했던 사랑, 의미, 관계의 순간들을 떠올리겠죠. 거의 뻔한 생각 같아 보이는데요. 전 캐서 교수와 계속해서 얘기하며 말했죠. "이게 왜 이렇게 이중적이게 느껴질까요?" 그가 말했죠. "우리 모두 어느 정도 이걸 알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 문화에서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질 않아요." 우리는 이걸 너무 잘 알아서 거의 진부한 내용이 됐는데 그렇게 살고 있진 않아요. 전 계속해서 물었죠. 왜 도대체 우리는 뭔가를 그렇게 잘 알면서 그렇게 살아가진 않는 걸까? 잠시 후 캐서 교수가 제게 말하더군요. "왜냐면 우린 어떤 기계 안에 살고 있는데, 그게 우리로 하여금 삶에서 중요한 것을 등한시하도록 설계됐기 때문이에요." 저는 이 말에 대해 생각해봐야만 했죠. "우리가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간과하도록 설계된 기계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캐서 교수는 우리가 이 기계를 멈추게 할 순 없는지를 알고 싶어했어요. 그는 여기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는데 한 가지 사례에 대해 얘기할게요. 여러분도 친구나 가족들이랑 꼭 한 번 해보세요. 네이든 던건이라는 사람과 함께, 그는 청소년과 성인들을 모아놓고 일정 기간 동안 여러 번에 걸쳐 서로 만나도록 하게 했어요. 이 모임의 목적 중 하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해보게 하는 거였어요. 그들의 삶에서 의미와 목적을 발견했던 순간에 대해서요.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다양한 것들이 나왔죠. 음악을 연주하는 것, 글을 쓰는 것, 누군가를 돕는 것 등이요. 여러분 모두 머릿속에 그려지는 뭔가가 있을 거에요. 그렇죠? 이 모임의 또 다른 목적은 사람들에게 질문하게 하는 거였어요. "그럼 어떻게 하면 삶의 더 많은 부분에서 의미와 목적의 순간을 추구하며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필요하지도 않은 쓰레기 같은 걸 사서 SNS에 올리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와 부럽다!' 하게 하는 걸 줄일 수 있을까?" 그리고 그들이 발견한 것은 그냥 이 모임을 가진 것만으로도, 이건 무슨 알콜중독자들 자조 모임 같지 않나요? 사람들로 하여금 이 모임을 갖게 하고, 그들의 가치관을 말로 표현하게 하며 그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게끔 하고, 서로 물어봐주도록 한 것만으로 사람들의 가치관에 뚜렷한 변화가 나타났다는 겁니다. 우울증을 일으키는 이런 메세지의 허리케인이 행복을 엉뚱한 곳에서 찾도록 우리를 학습시킬 때 여기에서 벗어나 우리를 우울증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의미 있고 건강한 가치관으로 나아가게 했죠. 그런데 이 모든 해결 방안들을 보고 기록하면서, 오늘 얘기 못 한 것도 포함해서요. 저는 여전히 생각했어요. 이런 통찰에 이르기까지 왜 그렇게 오래 걸렸을까? 왜냐면 이걸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게, 일부 복잡한 것도 있지만 전부 그런 것도 아니고, 이게 무슨 로켓 과학처럼 어려운 것도 아니잖아요? 우리가 어느 정도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에요. 근데 우리는 왜 이렇게 이걸 이해하기가 어려울까? 제 생각에 많은 이유가 있는데요. 한 가지 이유는 실제로 우울증 및 불안장애가 뭔지에 대해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것을 바꿔야하기 때문입니다. 우울증과 불안장애에는 명백하게 생물학적 요인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물학적 요인을 전체적인 그림이 되게 해버리면, 제가 오랫동안 그래 왔었고, 우리 사회가 거의 제 한평생 동안 해온 거라고 저는 주장하고 싶은데요. 우리가 은연중에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은, 그 누구도 의도친 않았지만 우리가 사람들에게 암묵적으로 얘기하고 있는 건 "당신의 고통이 의미하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뇌가 고장난 것 뿐이에요. 마치 컴퓨터 프로그램에 좀 결함이 있는 것처럼요. 그냥 머릿속이 좀 꼬인 거예요." 하지만 제가 제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게 된 건 우울증은 단순 고장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을 때였어요. 그건 신호예요. 여러분의 우울증은 하나의 신호예요. 여러분에게 뭔가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박수) 이유가 있어서 우울함을 느끼는 건데 그 이유들은 우울증의 고통 속에서 잘 보이지가 않아요. 제 개인적인 경험 때문에 정말이지 이해가 가요. 하지만 제대로 된 도움이 있으면, 우리는 이 문제를 이해하고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를 위해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할 것은 이 신호를 더 이상 무시하지 않는 거예요. 그건 그냥 나약함이나 정신 이상의 신호라거나, 순전히 생물학적인 거라고 치부하는 것 말이에요. 소수를 제외하면요. 우리는 이 신호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어요. 왜냐면 그게 우리가 진정으로 들어야 하는 걸 말해주고 있거든요. 우리가 진심으로 이 신호에 귀를 기울이고, 이 신호를 존중하며 소중히 여길 때만이 우리는 비로소 보게 될 거예요. 우리를 자유롭고 건강하게 만드는 진정한 해결책을요.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바로 그 젖소들 말이에요. 감사합니다.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