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후안 카를로스 리베라는 온두라스 코판에 있는 자기 집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됩니다. 댈러스 모닝 뉴스에서 보도됐듯이 한 갱단이 그가 하는 이발소 수입의 10%를 가져가 버렸거든요. 그의 아내는 유치원 교사였는데 직장에 가지도 못했어요. 부부는 어린 딸의 안전이 걱정됐습니다. 그들은 뭘 할 수 있었을까요? 도망가는 것? 망명할 나라를 찾아보는 것? 그들은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자기 나라에서 안전하게 살고 싶을 뿐이었죠. 하지만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제한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달, 후안 카를로스는 가족들을 더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자신은 중앙 아메리카에서 시작하는 아주 위험하고 긴 이민자 행렬에 합류했고 가족들에게는 자신에게 개방적인 미국에서 일을 찾겠다고 합니다. 미국-멕시코 국경에서 그들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에게는 익숙합니다. 그 국경을 넘기 위해서 치러야 하는 수많은 가혹한 대가들.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었다는 범죄 혐의들. 비인간적인 구금생활. 가장 최악인 건, 가족들과의 생이별. 오늘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러한 처우가 잘못됐다는 것 뿐만이 아니라 불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질서를 유지하는 방법이 비인간적인 방법 뿐이라는 이러한 믿음이 잘못됐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이 반대가 진실입니다. 인간적인 제도만이 국경의 질서를 세울 수 있습니다. 안전하면서도 질서있게 합법적으로 미국으로 들어갈수 있다면 적은 수의 사람들이 무질서하거나 불법적인 경로를 선택할 겁니다. 저는 합법적인 이민이 국경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이 생각이 꽤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걸 전에도 해본 적이 있어요. 저는 케이토 연구소에서 몇 년 동안 이민과 관련된 일을 했고 워싱턴 DC에 있는 다른 싱크 탱크에서 공화당 의원의 상임 정책 고문으로서 양당 사이의 이민법 개정 협상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눈으로 확인한 건 미국이 멕시코 국경에서 인간적인 제도를 어떻게 시행하고 있는가였습니다. 그건 이주 노동자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게다가 더 좋은 소식이 있어요. 저희는 이 성공적인 제도를 중앙 아메리카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몇몇 사람들은 여전히 국경을 넘어 망명하는 방법을 찾겠지만요. 하지만 후안 카를로스 같은 이민자들에게 이 제도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해할 필요가 있고, 국경 경찰에 최근까지도 잡힌 이민자들 중 대부분이 멕시코 사람이라는 사실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1986년에 국경 경찰이 체포한 멕시코인은 510명이었습니다. 하루에 한 명 이상을 잡은 것이죠. 2019년에, 이 숫자는 8로 줄어듭니다. 43일마다 한 명씩 잡은 겁니다. 98%나 줄어든 수치예요. 그러면 나머지 멕시코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버린 걸까요? 여기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미국이 수천 수백만 되는 멕시코인들에게 외국인 노동자 비자를 주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합법적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된 것이죠. 호세 바케스 카바레라는 이러한 비자 확장에 혜택을 본 첫 번째 멕시코 외국인 노동자입니다. 그는 뉴욕 타임즈에 나와 이러한 비자가 나오기 전에는 국경을 불법적으로 넘으며 굉장히 무서웠고, 풍경과 대비되는 죽음의 위기들을 넘겼습니다. 한 번은, 뱀 한 마리가 그와 같이 있던 사람을 죽였습니다. 다른 멕시코 사람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막에서 탈수로 죽거나 리오 그란데 강에 빠져죽거나. 수백만 혹은 더 되는 사람들은 쫓기거나 체포되었습니다. 이주 노동자 비자는 비인간적인 이런 추격적을 거의 끝냈죠. 바케스 카베라가 언급했듯이, "저는 더이상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목숨을 걸지 않아도 돼요. 여기 있으면 숨어 살지 않아도 돼요." 이주 노동자 비자가 결국에는 비자를 받은 사람들의 수보다 훨씬 더 많이 불법 입국자 수를 줄였어요. 또 다른 멕시코 이주 노동자인 호세 바실리오가 왜 그런지 4월 워싱턴 포스트에 나와서 설명을 했죠. 그는 자신이 이번에 비자를 받지 못했더라도, 나중에라도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1996년부터 2019년까지 왜 이렇게 멕시코에서 넘어온 이주 노동자들 중 합법적으로 인정된 사람들 때문에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어 체포 된 사람들의 수가 줄어들었는지 설명해 줍니다. 이건 사실이죠. 멕시코 이주 노동자들이 정말로 힘든 일을 한다는 것 말이에요. 열매를 따고, 꽃게를 세척하고, 100도 넘는 곳에서 조경을 하죠. 몇몇 사람들은 여전히 이주 노동자가 비자가 사실은 인간적인 제도가 아니고 그러한 노동자들을 그냥 노예로 부려먹으려고 하는 거라고 비판하죠. 하지만 바케스 카바레라는 이주 노동자 비자는 해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노예가 아니라요. 그는 다른 이주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불법적인 길보다는 합법적인 길을 계속적으로 선택했습니다. 멕시코 사람들에게 이주 노동자 비자의 확대는 미국 이민 정책 중에서도 아마 가장 중대한 인간적인 변화일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적인 변화는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죠. 그러면 중앙 아메리카를 떠난 사람들은 어디로 갈까요, 후안 카를로스처럼? 중앙 아메리카는 2019년에 이주 노동자 중에서 딱 3%에게만 이주 노동자 비자를 발급해 주었고, 국경이 맞닿은 곳에서의 체포율은 74%였습니다. 미국은 2019년에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어 온 78명의 사람들 중 딱 한 사람에게만 이주 노동자 비자를 발급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만약 그들에게 주거지를 증명할 서류가 없다면, 수없이 많은 위험을 감수해서, 멕시코까지 온 다음 국경지역에서 망명을 신청하거나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거나, 아니면 후안 카를로스처럼, 자신을 찾는 곳에 가서 일하거나. 미국은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중앙 아메리카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이주 노동자 비자가 필요하다는 얘깁니다. 중앙 아메리카 사람들을 고용하려는 미국 사업자들에게도 이러한 제도는 분명 이득입니다. 미국까지 오는 비행기 값을 지불해주고 북쪽으로 가는 불법적이고 위험한 여정을 바꿀 수 있습니다. 중앙 아메리카는 국경에서 망명자나 불법적으로 넘어온 사람들을 찾을 필요 없이 가정을 풍요롭게 하는 제도를 세울 수 있고, 부조리한 체제를 정리할 수 있죠.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하게 되면 아무도 폭력이 빈번한 중앙 아메리카에서 일하려고 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몇 십년 동안 중앙 아메리카보다 살해 당한 사람들의 수가 세 배나 더 높은 멕시코에서 이 제도는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후안 카를로스에게도 이 제도는 효과적일 거예요. 수많은 위협 속에서도 아주 잠깐이라도 미국에서 살며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많은 돈을 벌고 싶어하는 그에게는요. 심지어 그는 이주 노동자 프로그램이 자기와 같이 온두라스에서 온 사람에게는 최선의 방법이 될 거라고 말했습니다. 29살에 세 아이를 혼자 키우는 엄마, 신티아도 동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녀는 월스트리트 저널에 나와서 엄마와 아이들을 부양할 수 있게 직업을 찾으려고 왔다고 했습니다. 멕시코 국경 대학에서 멕시코 국경까지 온 중앙아메리카 사람들을 설문 조사 해보니 후안과 신티아 같은 경우가 흔했습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은 직업을 찾으려고 왔고, 집이 정말로 심각한 위험에 처한 리베라 같은 사람도 말이죠. 후안과 신티아에게 저임금 노동은 어느 정도 도움이 될까요? 그들과 같은 온두라스 사람들이 미국에서 한 달 정도 일해서 번 돈은 온두라스에서 일 년 내내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라고 합니다. 몇 년만 미국에서 일하면 중앙 아메리카에서 훨씬 더 안전한 중산층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중앙 아메리카 사람들에게 부족한 건 일하려는 의지가 아닙니다. 미국 경제에 이바지해서 미국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려는 의지도 아닙니다. 중앙 아메리카 사람들에게 부족한 건 망명을 대체할 합법적인 제도죠.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것. 물론, 이 새로운 이주 노동자 프로그램이 복잡한 이러한 상황을 100% 해결해 주지는 않습니다. 수많은 망명자들은 여전히 안전하게 미국 국경을 넘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이 감소한다면, 우리는 이들을 훨씬 더 쉽게 인간적으로 대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어떤 정책도 이민 제도를 확립해서 질서있고 합법적으로 노동자들이 들어올 수 있게 해주는 것보다 나은 정책은 없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