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십년 동안 저는 동료와 함께 대형 기업들의 악행과 범죄를 폭로했습니다. 이는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갔고 부상과 질병을 초래했으며 무엇보다 많은 사건들에 영향을 준 경제적 손실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폭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다가올 대대적인 파괴를 방지하기 위해 국가 위임장을 확보해야 했습니다. 그 결과 많은 목숨들을 구할 수 있었고, 충격적인 일들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특히나 자동차, 약학, 그리고 환경 분야와 업무 현장에서의 건강과 안전 관련하여 말이죠. 그 과정에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계속해서 받았습니다. "랄프, 도대체 이 모든 걸 어떻게 하나요? 당신의 조직은 작고 기금은 적당한 정도이고 정치인들의 캠페인에 참가하지도 않잖아요." 제 답변은 종종 간과되지만 놀라운 미국 역사의 한 패턴을 가리킵니다. 정의의 진보와 민주주의의 축복은 매번 소수의 시민 개개인의 노력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하는지 잘 알았습니다. 그들은 여론, 혹은 아브라함 링컨이 "지극히 중요한 민심"이라 칭한 것을 확장시켰죠. 이 움직임을 시작한 소수의 시민들은 그들의 개혁과 전향의 달성을 위해 다수의 사람들을 끌어모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전성기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한 사람들은 시민의 1%를 채 넘지 않았으며, 그보다 더 적기도 했습니다. 민주주의와 정의를 세운 사람들은 반(反) 노예제도의 열망에서 여성의 투표권을 위한 운동에서 나왔습니다. 이들은 은행과 철도와, 제조업자를 향한 규제와 공평한 노동기준의 수립을 외치던 농부와 산업 종사자들 중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20세기에 들어 사람들이 삶이 점점 더 나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소규모의 제 3당과 그들의 지지자들이 몇몇 조치들, 그러니까 노동조합을 세울 수 있는 권리, 주 40시간 노동, 진보적 과세제도, 최저임금법, 실업급여와 사회보장제도 등을 위해 선거에서 다수당을 지지하기 시작하면서요. 최근에 들어서는 메디캐어와 인권과 시민의 자유, 핵무기 조약, 그리고 소비자와 환경적 승리, 이 모든 것이 시민들의 지지와 선거에서 이기지 못했던 제 3당들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집요하게 지고자 한다면 그 동기는 때때로 여러분을 승리자로 만들기도 합니다. (웃음) 제가 어떻게 이 시민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상원의원 다니엘 웹스터의 "선생님, 정의는 지구상의 인간의 가장 큰 관심사랍니다." 이런 믿음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유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코네티컷의 한 매우 산업화된 작은 마을에서 자랐습니다. 세 형제들과 부모님과 함께요. 부모님은 유명한 식당, 제과점과 델리카트슨을 소유하고 계셨습니다. 두 개의 수로, 매드 강과 스틸 강은 마을의 주요 도로를 따라 교차하고 있었습니다. 어릴 적, 저는 우리가 왜 물살을 헤치며 걷고, 또 낚시를 할 수 없는 지 여쭌 적이 있습니다. 교과서에서 읽은 것처럼 말이죠. 부모님은 대답하셨습니다: 공장들이 이 강에 무분별하게 유해한 화학 물질들과 오염물질을 버려서 그렇단다. 실은 그 회사들이 우리 모두의 것인 이 강들을 그들의 이익추구를 위해 장악했어. 후에, 저는 그 강들이 우리 일상의 일부가 전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강에 홍수가 나 도로를 침수시킬 때를 제외하고요. 당시에는 수질오염에 대한 규제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강력한 법만이 우리의 수로를 깨끗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죠. 마을의 두 강의 하수관에 대한 어린 시절의 관찰은 위대한 환경보호가이자 국립공원의 지지자인 존 무어에 관한 저의 8학년 졸업연설로 이어졌습니다. 그 이후 프린스턴에 다니며 한 공공위생의 기초에 대한 연구로, 그리고 레이첼 칼슨의 '침묵의 봄' 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교류는 이후 1970대 초 제가 환경 관련 법 제정의 골든 아워를 놓치지 않도록 저를 준비시켰습니다. 저는 대기 오염 방지법을 위해 의회에 로비하는 과정을, 환경 보호국에 수질 오염 방지법을, 직업 안전 위생 관리국에 산업 안전법을, 그리고 안전한 식수법을 로비하는 과정을 이끌었습니다. 만약 당신의 몸 속에 있는 수은과 폐 속에 있는 석면의 양이 줄었다면, 그리고 깨끗해진 공기와 물이 있다면 그것은 지난 몇 년간의 이러한 법들 덕분입니다. 오늘날, 이러한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법들의 시행이 트럼프 정권 아래 대규모로 폐지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해성을 되돌리는 것은 최근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다시 유행하는 환경운동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입니다. 소비자의 대변인들의 입장에서, 영원한 승리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법을 통과시키는 것은 첫걸음일 뿐입니다. 다음, 그리고 그 다음 단계는 그 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저에게 이 몇몇의 싸움은 매우 개인적인 것이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친구들을 고속도로 교통사고로 잃었습니다. 그 연령대의 가장 많은 사망을 초래하는 요소였죠. 그러자 모든 잘못은 운전자에게 돌아갔습니다. 조롱하듯 "운전대 앞의 미친 사람"이라고 부르며 말이죠. 실제로, 음주운전자들에겐 책임이 있습니다. 하지만 더 안전하게 설계된 자동차와 고속도로는 충돌을 방지하고 충돌이 일어났을 때의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 때는 안전벨트도, 패드가 덧대어진 대시 패널도, 에어백도, 충돌 시 충격을 완화시킬만한 그 어떤 보호장치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미국 자동차들의 브레이크, 타이어, 그리고 안전성 관리는 다른 외국의 차들과 비교해도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저는 히치하이킹 하기를 좋아했습니다. 하버드 로스쿨과 프린스턴을 오갈 때를 포함해서 말이죠. 가끔 운전자와 저는 무시무시한 충돌사고 현장을 목격하곤 했습니다. 그 공포는 제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것은 제가 로스쿨에서 안전하지 못한 자동차 설계와 자동차 안전 관련 법에 대한 글을 쓰는 데에 일조했습니다. 저의 로스쿨 시절 가장 친한 친구였던 프레드 콘돈은 어느 날 퇴근하고 뉴햄프셔에 있는 그의 어린 아이와 가족을 만나러 집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그는 스테이션 왜건을 몰다가 잠깐 졸았고 차는 갓길에서 뒤집어졌습니다. 1961년에 안전벨트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프레드는 하반신이 마비되었습니다. 그런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던 사고가 제 속에 불을 지폈습니다.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지독하게도 잘 알려진 구명장치들과 오염 방지 장치들의 설치를 거부했습니다. 대신, 매년 바뀌는 자동차의 스타일과 지나친 마력 광고에만 힘을 쏟았습니다. 저는 격노했습니다. 제가 자동차 안전 장치의 억제에 대해 연구를 하면 할수록, 법정에서 자동차 회사들이 무관심하게 차주들을 해하고 있다는 증거를 알릴수록, 특히나 GM사의 Corvair라는 차의 불안정성에 대해서 말이죠. 제너럴 모터스사는 더 신랄하게 제 글과 증언에 대한 신빙성을 깎아내렸습니다. 그들은 사립탐정을 고용해 저를 따라다니며 추문을 캐내려 했습니다. 제가 "어떤 속도에서도 안전하지 않다" 라는 책을 출판한 이후 GM사는 1966년 상원의원 소위원회에서 있을 저의 증언을 약화시키려고 했습니다. 국회 경비대가 그들을 잡았죠. 미디어는 의회에서 있었던 저와 거대한 GM사의 투쟁에 대해 대서특필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과 비교했을 때 엄청난 속도로 1966년, 의회와 존슨 대통령은 미국에서 가장 큰 산업체 하나를 안전, 오염 방지와 연료 효울을 위해 연방법규 아래에 항복시켰습니다. 2015년에 이르러서는 미국 내에서만 350만명의 죽음과 몇백만의 부상이 방지되었으며 몇십억 달러가 절약되었습니다. 그런 압도적인 확률을 뒤집어 엎은 승리를 얻기까지 무엇이 필요했을까요? 자. 첫째, 증거를 어디서 어떻게 다룰지 잘 알았던 몇몇의 지지자들, 둘째, 세 명의 상원의원이 이끄는 국회 위원회의 수용적인 주요 위원장들, 셋째, 서서히 밝혀지는 이야기를 주기적으로 보도한 주요 언론사의 일곱 기자들, 넷째, 안전 규제 기관인 국가 고속도로 교통안전관리국의 개설을 흔쾌히 받아들인 린든 존슨 대통령과 그의 보좌들, 다섯째, 중요한 정보를 공유해준, 그래서 더 잘 알려질 필요가 있는 열 명 가량의 자동차 엔지니어, 조사관, 그리고 의사들이 있습니다. 중요했던 요소가 하나 더 있는데, 정보를 잘 알고 있었던 여론입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그들의 차가 얼마나 더 안전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차가 연료 효율이 좋기를 바랐습니다. 그들은 더 깨끗한 공기를 마시고 싶어했습니다. 그 결과, 1966년 9월, Lyndon Johnson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안전성 법률 제정에 서명했습니다. 저는 그의 옆에 서서 펜을 받았고요! (웃음) 1966년과 1976년 사이, 이 중요하게 연결된 여섯 개의 요소는 사용되고, 또 사용되었습니다. 이 기간은 소비자, 노동자, 그리고 환경보호를 위한 법 제정과 규제 조치의 황금기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지난 캠페인의 이 연결된 요소들은 오늘날 같은 일을 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야 합니다. 식수의 안전, 항생제 내성으로 인한 죽음들, 사법 제도 개혁, 기후 변화에 따른 위험성, 생명공학과 나노테크의 영향, 핵무기 개발 경쟁, 평화 조약, 아이들에게 끼치는 위험, 화학물질과 방사능 관련 위험, 등등의 해결을 위해서요. 2016년 존스홉킨스 약학대의 한 연구에 따르면, 미연에 방지가 가능한 병원에서의 죽음임에도, 미국에서 일주일에 무려 오천 명이 목숨을 잃습니다. 1980년대의 절정에는 공공장소 흡연과 담배 산업 규제, 그리고 흡연 감소를 위한 환경 조성을 주장했던 우리의 극적인 투쟁이 있습니다. 이 투쟁은 1964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미국 의무감이 흡연을 암, 그리고 다른 질병과 연관시키는 보고서를 발표한 이후 말이죠. 미국에서 연간 40만명 이상의 죽음은 흡연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공청회, 소송, 언론 폭로, 그리고 내부 고발자들은 강력한 업계와 대결하기 위해 의학 과학자들과 협력하였습니다. 저는 상원 주요 직원인 마이클 퍼츠척에게 담배 산업 규제를 위해 몇 명의 정규직 지지자들이 일하고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퍼츠척은 미국에서 금연 사회를 위해 풀타임으로 일하고 있는 챔피언들이 천 명이 채 안된다고 답했습니다. 저는 천 명은 그 일을 해내기엔 놀랍도록 적은 숫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뒤엔 여론, 다수의 열정적인 사람들, 비흡연자들이 있습니다. 많은 흡연자들은 니코틴 중독을 끊으려고 했죠. 생각해보세요, 45%였던 성인 흡연자 비율이 2018년에는 15%가 되었습니다. 주요 전환점이 되었던 것은 의회가 식품 의약국이 담배 회사를 규제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준 법을 통과시킨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소비자와 노동자를 위한 진보가 일어날 때마다 기업의 다양한 역습이 뒤따랐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러한 개혁의 열정이 식어갈 즈음, 입법부와 규제 기관은 규제법의 지속과 차후 시행을 방해하는 기업의 덫에 매우 취약해집니다. 그런 말이 있죠. "정의는 지속적인 경계가 필요하다." 이제는 큰 차이가 보입니다. 추진력 있는 역습과 이득을 위한 기업의 권력, 그리고 의식과 기량에 회복이 필요한 자발적 시민 의식을 압도하는 피로. 이 두 힘의 차이를요. 이것은 공정한 경쟁이 아닙니다. 제너럴 모터스, 화이자, 엑슨 모빌, 웰스 파고, 몬산토, 등등과 같은 대형 기업들과 기타 부유한 기업들과 로비스트에 비해 시민보호단체는 아주 제한적인 자원을 갖고 있습니다. 나아가 기업들은 실제 사람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면책권과 특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타카카는 아주 끔찍한 에어백 스캔들 관련하여 책임이 있었지만 그 회사는 형사 기소를 피해갔습니다. 대신, 타카카는 파산 신청을 했고 회상의 경영진은 비상금을 가져갔습니다. 하지만 체계적인 사람들은 이러한 기업의 권력에 경외심을 가질 필요 없습니다. 입법인들은 아직 그들이 기업으로부터 받을 캠페인 자금보다 표를 더 절실히 원합니다. 우리는 잠재적 영향에 관해서는 기업보다 수적으로 우세합니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체계적인 유권자들이 입법인들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하게 알고있어야 합니다. "우리 시민들"의 헌법의 권리를 위임했으니, 우리는 그들이 사람들과 관련된 일을 하기 원합니다. 사람을 위한 의회는 헌법상 가장 강력한 정부 기관으로서 매우 파괴적인 기업들의 의견을 기각하고, 중단하고, 또 다른 방향으로 전환시킬 수 있습니다. 의회에는 단지 100명의 상원의원과 435명의 하원의원이 있고, 의회 활동 감시에 취미를 둔 200만의 체계적인 활동가들이 그들의 고향에 있습니다. 의회의 정의는 믿을만하고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을 적은 수의 사람만으로도 증명하고, 또 증명했죠. 그러나 오늘날의 의회는 선거 자금에 절어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종종 대기업에 휘둘리는 법인형 국가로 자주 탈바꿈하는 하나의 행정부가 되어버렸습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1938년 의회에게 보내는 메세지 중 정부를 넘어서는 집중된 기업권력을 그의 말을 빌리자면 "파시즘" 이라고 말했습니다. 435개의 하원 의원 선거구에서 각각 1%의 성인이 상원과 하원의원, 혹은 주 의회 의원을 그들의 주민회의에 불러 시민들이 그들의 의제를 제시하고 이것이 대다수의 유권자들에 의해 뒷받침된다면, 우리는 의회를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의 하원의원들은 인간의 가능성을 높임과 동시에 민주주의와 정의의 근원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종종 소망합니다. 학교, 혹은 방과후 프로그램에서 좋은 삶으로 이끌 수 있는 지역사회 시민활동 능력을 가르치는 것을요. 성인 교육 수업도 같은 일을 해야합니다. 시민 훈련과 활동 자료를 수집 및 보관하는 도서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학생과 성인들은 일상과 관련된 정보를 아주 좋아합니다.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남녀노소 관계없이 최저 임금을 지지하고 보편적인 의료보험을 원하고 기업의 범죄, 사기와 학대에 맞서는 진정한 법 시행을 원합니다. 공정하고 생산적인 조세 제도, 현대 사회 기반 시설로 그들에게 가치를 되돌려주는 공공예산 집행, 그리고 대부분의 기업에게 제공하는 보조금의 정지를 원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기후 변화에 기타 환경적, 전지구적 건강 위험과 세계적 유행병에도 주목하길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효율적인 정부를 원하고 부메랑과 같은 끝이 없는 폭력적인 전쟁이 끝나기를 바랍니다. 투명한 선거와, 유권자와 후보에게 모두 공정한 법을 원합니다. 이것은 사람들은 하나로 모으는 변화입니다. 의회는 이 변화를 일으킬 수 있죠. 전세계의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선호합니다. 왜냐하면 주민들과 지도자들에게 최선을 가져다주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 목적은 시민들이 민주주의라는 굉장한 기회에 선거기간과 선거에 시간을 쏟는 것을 원해야 이룰 수 있습니다. 역사는 우리에게 권력을 뚫고 나아가는 것이 생각보다 쉽다고 믿게 해주는 사례들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제게 말합니다. "뭘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무언가를 하면서 배워보세요. 시민활동을 실천하면 실천할수록 사람들은 더 혁신적으로 변하고, 또 능숙해집니다. 무역, 직업, 취미, 수영을 배우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면 그들의 의심, 속단과 망설임은 행동하는 고된 과정에서 모두 녹아내립니다. 변화를 향한 그들의 주장은 더욱 깊어지고 날카로워지죠. 1965년에서 1966년 사이에 제가 더 안전한 자동차를 만들기 위한 일을 하고 있을 때 저는 많은 업계들이 이 끔찍한 사고의 결과로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건강 관리, 보험 판매, 차 수리 등등 말이죠. 거기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현상을 유지하면 받게 되는 왜곡된 보상이 있었죠. 반대로 생각하면, 이러한 불행을 막으면 소비자들이 이 비용을 더 나은 생계를 위해 쓰거나 저축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소수의 사람들이 시민 활동 근육을, 개인, 혹은 조직된 단체 단위로 우리의 법률 결정자에게 뽐내주면 됩니다. 이상적으로, 욕심과 권력의 사령관에 맞서는 시민들의 노력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자금을 기부해줄 깨어있는 몇 명의 부자만 있으면 됩니다. 과거에 부자들은 필요한 자금을 노예 제도 반대, 여성 투표권, 그리고 인권 운동을 위해 기부하곤 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후 변화로 인한 재앙이 시작하면서 우리 개개인의 중요성, 개인적인 가족의 삶과 일상을 평범하게 살아가며 시민으로서의 삶에 지속적으로 끼친 헌신을 더 높이 평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려 깊은 행동을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절반입니다. 그것이 삶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를 진보시키는 힘이죠. 기억하세요, 우리나라는 우리가 누려 마땅하지 않은 문제들과 우리가 적용하지 않는 해결법들로 가득합니다. 그 틈은 민주주의의 틈이고, 그 어떤 권력도 틈을 메우는 걸 막을 수 없습니다. 이건은 우리가 후세에게 진 빚입니다. 우리는 이런 걸 원하지 않나요? 우리 후손이 우리의 근시안적 방치를 저주하는 대신 선견지명과 밝은 미래를 축복하며 평화롭게 그들의 삶을 살고 공공의 이익을 진보시키는 것을요. 감사합니다.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