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저는 TV에 나오고 싶었어요. 조명, 카메라, 분장, 화려한 삶. 지금 시점에서 과거를 돌아보면, 오클라호마 로튼의 군사 기지에서 조금 벗어난 그 곳에서 어린 저는 TV 리포터인지 배우인지 구분도 못했습니다. 그냥 제겐 다 똑같았어요. 둘 중 하나였죠. "베를린에서 전해드립니다" 혹은, "그녀가 오면 나는 여기 서서 맞이하고 구애할 거야." (웃음) 그 모든 특별함과 그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저를 위한 것임을 알게 되었죠. 하지만 제 인생의 어느 순간, 그런 일이 일어났죠. 훨씬 좋네요. (박수) 저는 백반증이라고 부르는 병에 걸렸습니다. 제가 일을 시작한 초창기에 시작되었죠. 자가면역 장애의 일종이죠. 피부에 하얀 무늬가 얼룩덜룩하게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인데, 실제로는 색깔이 없는 것입니다. 이 병은 모든 인종이 걸릴 수 있고, 모든 연령대, 모든 성별에서 나타나죠. 전염성이 있지는 않고 죽을 병도 아니에요. 하지만 정신적 고통이 따르고, 그건 매우 힘듭니다. 제가 그 병을 진단받은 것은 바로 뉴욕에서 "목격자 뉴스"를 진행하던 때였어요. 저는 전국에서 가장 큰 도시에 있었고, 주력 방송국에서 일했죠. 오후 5시 뉴스 진행으로는 최고 순위였죠. 의사는 제 눈을 똑바로 보면서 얘기했어요. "백반증이라는 병에 걸리셨어요. 피부의 색소가 없어지는 질환이죠. 치료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어쩌고 저쩌고." 찰리 브라운네 선생님처럼요. (웃음) 치료법이 없다는 말이 제게는 "직장생활은 끝입니다"고 들렸죠. 하지만 전 포기할 수 없었죠. 저는 관둘 수 없었죠. 우리가 투자를 너무 많이 했으니까요. 여기서 "우리"라고 하면, 벌 대신에 웅변, 연극 클럽에 보내셨던 모스 선생님, 저의 대학 등록금 일부를 지원해준 저희 누나, 그리고 어머니, 제게 모든 것을 주셨죠. 전 관둘 수 없었어요. 저는 분장을 하고 계속 방송을 했습니다. 어차피 분장은 해야 했으니까요. TV에 나오는 거니깐, 당연하죠? 그저 분장을 좀 더 두껍게 했죠. 모든 것은 잘 진행되었죠. 몇 년 동안이나 잘 지내왔습니다. 뉴욕 시에서 리포터를 하다가 자동차의 도시 디트로이트에서 아침 프로그램의 앵커로 옮겨 갔죠. 백반증 증세가 더 심해지면서, 저는 분장을 더 두껍게 했습니다. 어렵지 않았죠. 손만 제외하면요. 백반증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시시각각 변화중이에요. 증세가 심했다가 없어졌다가 그러죠. 한 때, 거의 1년 반 동안 제 얼굴은 완전히 하얗게 되었습니다. 저도 놀랬죠. (웃음) 그래요. 의료기술의 도움을 좀 받아, 색소가 조금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이 과정을 살아 나가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았습니다. 직장에서 분장을 하고 일할 때나 분장을 하고 돌아다닐 때는 저는 TV 에 나오는 사람이었죠. "안녕하세요. 어떠세요? 좋습니다." 븐장을 하지 않고 집에 있을 때는 마치 나환자 처럼 느껴졌죠. 저를 계속해서 빤히 쳐다보고 있는 눈길 그들의 수군거리며 하는 말들. 어떤 사람은 저와 악수하기를 거부했어요. 어떤 사람은 보도의 건너편으로 옮겨가기도 하고, 엘이베이터 안에서 거리를 두기도 했죠. 그 사람들이 마치 인생의 건너편으로 피하는 것 처럼 느껴졌습니다. 힘들었습니다. 몇 년간 정말 힘들었죠. 솔직히, 때때로 저는 은신처에 몸을 숨겨야 했습니다. 제 마음이 가라 앉을 때까지 그냥 집에 쳐박혀 있는 거죠. 그러다가 눈가리개를 다시 쓰고 밖으로 나가서 제 할 일을 하죠. 하지만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제게는 분노와 짜증부리는 태도가 생겼어요. 분노는 쉽게 찾아왔고, 사람들은 저를 홀로 내버려 두었죠. 하지만 그건 제가 아니었어요. 제가 아니었어요. 저는 화내고, 짜증을 부리는 점박이가 되도록 두었어요. 그건 제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전 바꿔야 했어요. 다른 사람을 바꿀 순 없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사람들은 그저 반응하고, 자기 일을 할 뿐이죠. 하지만 냉정하고 힘겨운 현실도 있습니다. 저는 분노와 슬픔을 표출하고 있었고, 제 자신을 고립시키고 있었죠. 그건 제 선택이었어요. 저는 매일 아침 문을 나섰습니다. 세상이 부정적으로 반응할 것이라 기대하면서요. 그래서 저는 험상궂은 표정을 짓고 있었죠. 만약 제가 변화를 원한다면, 제가 먼저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계획을 세웠죠. 두 가지 계획입니다. 심오한 건 아니고요. 첫째, 사람들이 저를 응시하게 그냥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넋을 읽고 보고, 보고 싶은 만큼 다 보도록 하고 반응하지 않는 거죠. 사실 제가 백반증에 걸렸을 때, 저도 거울 앞에 서서 새로 생긴 점을 하나 하나 바라봤어요. 무슨 상황인지를 파악하려고요. 다른 사람들도 그런 경험을 하게 둘 필요가 있었어요. 잘 보고 이해할 시간을 갖도록요. 두 번째 계획입니다. 저는 긍정적으로 반응하기로 했죠. 간단하게 미소를 짓거나, 혹은 최소한 비판적이지 않은, 친철한 표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간단한 계획이죠.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웠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은 괜찮아지기 시작했어요. 한 예로, 한 번은 가게에 갔는데 어떤 남자가 저를 쳐다봤습니다. 제 머리 한쪽에 구멍이 날 정도였죠. 쇼핑 중인 저를 계속 쳐다봤죠. 계산하려고 할때도 저를 계속 쳐다봤고 계산하고 있을 때, 그는 다른 줄에서 계산하면서도 저를 계속 쳐다봤죠. 나가는 길에도 그는 여전히 저를 쳐다봤죠. 그가 쳐다본다는 걸 알게 되었고, 저는 드디어 그에게로 다가가 "안녕하세요!" 라고 했죠. 그리고 그는 말했죠. (긴장하여 중얼거리듯) "아, 네, 안녕하세요." (웃음) 어색한 순간이었죠. 긴장감을 완화시키려고, 저는 말했죠. "이거 그냥 피부 장애예요. 전염성도 없고 생명에 위협적이지도 않아요. 그냥 제가 좀 달라 보일 뿐이죠." 결국 저는 그 분과 5분 정도 대화를 하게 되었죠. 꽤 멋지지 않나요? 대화가 끝날 때쯤 그는 말했습니다. "사실, 당신이 '백번증'에 걸리지 않았다면," 사실 "백-반-증"인데, 그래도 좋은 시도였죠. (웃음) "당신이 백번증에 걸리지 않았다면 TV에 나오는 사람이랑 똑같을텐데요." (웃음) "하하. 네. 그런 말 많이 듣죠. 정말 많이 들어요." (웃음) 그래서 상황은 나쁘지 않았어요. 저는 나쁜 대화보다는 좋은 대화를 더 많이 나눴어요.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요. 일하기 전에 시간이 좀 있어서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려고 공원을 들렀어요. 아이들은 재미있게 놀죠. 제가 좀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갔고 어린 소녀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죠. 그녀는 두세 살 정도였고, 달리다가, 제 다리 쪽으로 달려와서 넘어졌어요. 좀 세게요. 저는 그 애가 다쳤다고 생각해서 도와주려고 손을 뻗었는데 백반증에 걸린 제 피부를 보고 비명을 질렀어요! 아이들은 정말 솔직하죠. 그 애는 두세 살 정도였으니까, 제게 못되게 굴려고 그런 것도 아니었어요. 악의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요. 그 어린 소녀는 두려웠을 뿐이죠. 단지 두려웠죠. 전 뭘 해야 할지 몰랐죠. 저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손을 제 쪽에 두었죠. 그 일 때문에 저는 2주하고 3일씩이나 집에서 머물렀습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겁을 준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죠. 그냥 웃고 넘길 수는 없는 일이었어요. 그래서 전 다시 계획으로 돌아갔고 눈가리개를 쓰고 다시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죠. 2달 후에, 저는 식료품 가게에서 맨 아래 선반에 손을 뻗었고, 작은 목소리가 말했어요. "아저씨 아야했어요?" 두세 살 정도의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어린 소녀였어요. 그 애는 울지 않았어요. 저는 그 앞에서 무릎을 꿇었죠. 저는 두 살짜리의 언어는 잘 몰라서 그 애의 엄마에게 물었죠. "얘가 뭐라고 한 거죠?" "손에 상처가 있다고 생각하나봐요." "아뇨. 전혀요. 상처난 게 아니에요" 라고 저는 대답했죠. 그 어린 소녀는 말했죠. "아야 했어요?" 통역해달라고 어머니를 바라봤죠. 그녀가 말하길, "아프다고 생각하나봐요." 저는 말했죠. "아니야, 얘야, 아프지 않아. 나 괜찮아." 그 어린 소녀는 그 작은 손을 뻗어서 제 얼굴을 만져줬어요. 초콜렛을 문질러 바닐라와 섞으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혹은 그런 비슷한 것처럼요. 그건 놀라웠어요! (웃음) 그건 정말 멋졌어요. (웃음) 그 애는 그게 뭔지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제가 원하던 것을 모두 주었죠. 친절함, 동정심. 그 작은 손의 터치로, 어른의 고통을 치유해주었어요. 야호. 치유되었어요. 그 일로 인해 저는 오랫동안 미소를 지었습니다. 긍정은 싸워서 얻을 만한 가치가 있어요. 그 싸움은 외적인 것이 아닙니다. 내적인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에서 긍정적 변화를 만들고 싶다면, 지속적으로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사실 저의 혈액형은 긍정적인 B형이거든요. (웃음) 네 알아요. 진부한 아재개그죠. 제 딸은 싫어하지만, 전 상관없어요. 긍정적인 B형이 되어라! (웃음) 몇 년 전에 14살 아이가 백반증에 걸렸는데 저에게 TV에서 제 얼굴을 공개하길 부탁했어요. 전 하지 않으려고 했고, 우린 계속 얘기를 했고, 전 직업을 잃을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 아이는 저를 확신시켜줬어요. "만약 댱신이 어떤 모습인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설명을 한다면, 사람들이 저도 다르게 대할 거예요." 쿵! 눈가리개가 벗겨졌어요. 저는 TV 리포트를 진행했고, 엄청난 응답을 받게 되었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쏟아진 관심을 그 소년과 백반증을 가진 다른 사람들에게 돌려 주었죠. 저는 협력단체를 시작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저희는 "VITFriends"와 "V-Strong" 같은 전국의 협력단체를 알게 되었죠. 2016년, 저희는 모두 모여서 세계 백반증의 날을 기념했어요. 지난 6월 25일, 300명 이상이 모여서 우리의 연례 행사를 축하했죠. 정말 대단한 일이죠. (박수) 감사합니다. (박수) 저는 거짓말은 하지 않습니다. 백반증이라는 병과 함께 살아가는데 긍정적인 곳을 찾는 것은 빠르고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저는 찾았어요.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얻었죠. 저는 더 나은 사람이 되었어요. 제가 언제나 되고 싶었던 그런 사람요. 낯선 사람들로 가득한 곳에서 이렇게 앞에 서서, 인생의 가장 힘겨웠던 시기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고, 미소를 지으면서 끝내고, 여러분도 똑같이 미소지어 준다는 사실에 행복을 느끼는 그런 사람이요. 감사합니다.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