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께 제가 어떻게 기자로서의 소명을 찾고 돌리 파튼이 그것을 어떻게 도와줬는지에 대해 얘기하려고 합니다. 20년 동안 이야기를 했습니다. 처음에 라디오 그 다음에는 팟캐스에서 했죠. 2002년에 "라디오랩"이라는 라디오쇼에서 일할 때였는데, 여기에서는 어떤 전형적인 진행방식이 있었습니다. 초대손님을 모십니다. (음성) 스티븐 스트로가츠: 자연에서 가장 아름답고 매혹적인 경관 중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이걸 명심해야 합니다. 완전히 고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을요. 수학자인 스티브 스트로가츠는 그림을 그리곤 합니다. 상상해 보세요. 태국에서 조금 떨어진 정글에 강둑이 있습니다. 당신은 카누를 타고 강을 따라 내려가고 있습니다.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가끔씩, 정글에 사는 이국적인 새소리만이 들릴 뿐입니다. 그러니까 상상의 카누를 스티브와 함꼐 타고 있고 당신 주위에는 수많은 반딧불이들이 있습니다. 당신이 보는 광경은 별들이 무작위로 빛나는 밤과 비슷합니다. 왜냐하면 반딧불이들이 서로 다른 빛의 양으로 빛나거든요. 당신이 기대한 건 이런 것이겠죠. 하지만 스티브에 의하면, 이곳에서는, 그 어떤 과학자도 설명하지 못하는-- 훕 훕 훕 수많은 빛들이 동시에 켜졌다 꺼집니다. (음악과 전자음) 이제 제가 항상 그랬듯이 방금 그랬던 것처럼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면 당신은 따뜻한 느낌을 받겠죠. 이 감정은, 과학으로 설명하자면 머리와 가슴에서 시작하여 몸 전체로 퍼져나가는 거죠. 그 느낌이 바로 경이로움입니다. 2002년부터 2010년까지 저는 이런 이야기들을 수백 번 했습니다. 과학적이고 신경과학적이며 총명하고 영감을 주는 이야기들은 항상 경이로움으로 연결되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일이, 사람들을 경이로운 순간으로 이끄는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 소리가 어땠냐면: "허", "와아아우", "와우" "대단하다." "후아" "와우"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지겨워지기 시작했죠. 그러니까 부분적으로는요. 이건 반복이었습니다. 어느 날 제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신경세포의 소리를 만들면서요. (탁탁 소리) 백색 소음을 가져다 자르는 만들기 매우 쉬운 소리였죠. 이렇게 생각한 게 기억이 나요. "이 소리를 25번이나 만들었어." 하지만 그보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들로 가는 아주 익숙한 길이었죠. 과학으로 만들어진 진실의 길을 걷다 보면 경의로움에 도달하게 됩니다. 저는 과학을 사랑합니다.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저희 부모님은 내전으로 고통받는 나라에서, 미국으로 이민오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과학은 그들의 정체성보다 더한 것이었죠. 저 또한 그것을 물려받았죠. 하지만 과학에서 경이로움까지 너무 단순했고 그래서 전 뭔가 잘못됐다고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이야기로 도달할 수 있는 길이 이 길 뿐인가? 2012년 즈음에 전 다양한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아니"라는 답에 도달했죠. 특히 이 이야기에서 저희는 화학 무기를 라오스 산맥에 사는 그와 그의 마을 사람들에 대항하여 사용하는 거라고 묘사한 사람을 인터뷰했죠. 서양 과학자들이 그곳을 방문하여 화학적 무기를 측정했지만 어떤 것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에 대해 이 남자와 인터뷰를 했고 그는 과학자들이 틀렸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검사를 했다고 말했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한테 일어난 일은 제가 알아요." 이런식으로 대화를 계속 주고 받았고, 요약하자면 인터뷰는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끔찍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누군가 고통받으면 과학적 진실이 부서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건 어떤 것도 치유하지 못했죠. 어쩌면 제가 진실을 찾으려고 과학에 너무 의존했는지도 모르죠. 그 순간에 정말로 느꼈습니다. 이 공간에 많은 진실들이 있지만 우리는 단지 그 중 하나만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요. 그래서 전 이렇게 생각했죠. "훨씬 더 잘 이해한 것 같아." 그래서 그 후 8년 간 전 진실이 충돌할 때의 이야기들을 하는데 전념했습니다. 정치적 합의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생존자와 가해자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서로의 묘사가 충돌했죠. 우리는 인종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흑인이 어떻게 제도적으로 법적으로 배제되었고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도록 하는 법이 생겼는지 이런 얘기들을 했습니다. 상황만 악화했지만. 테러에 대항하는 이야기들, 관타나모 수용자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다 논쟁거리가 되었습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이해하려고 고군부투하는 것이죠. 이러한 고군분투는 요점에 다다릅니다. "어쩌면 이것이 내 일이구나." 전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을 논쟁에 끌어들이는 것. 어떤 소린지 들려드리죠. "하지만 난, 그러니까--" "어.. 나는..."(한숨) "글쎄, 그러니까, 그러니까, 하--" "그러니까, 내 말은, " "있잖아.. 와.. 나는..."(한숨) 그리고 바로 그 한숨을, 각 이야기에서 들리는 그 한숨을 듣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소리야말로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이니까요, 그쵸? 저희는 더 이상 진실이 일련의 포착된 사실이 아닌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건 과정입니다. 명사라기보다는 동사죠. 하지만 어떻게 이야기를 끝낼까요? 우리가 겪고 있는 일들은 그야말로 이야기를 하고 서로 충돌하는 두 관점을 따라 순항하면서, 그 끝에 도달하는데 그건 마치-- 아닙니다. 보여줄게요. 제가 끝에 뭐라고 말했죠? 오. 이런 무엇을 당신은 어떻게 당신은 이야기를 끝맺습니까? 결코 영원히 그 이후에 행복하게 살 수 없습니다. 진짜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사람들을 상황에 갇히게 둔다면 "왜 내가 이것을 들어야해?" 처럼 거기에 또 다른 움직임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논쟁을 넘어서는 방법이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제가 돌리를 만나게 된 이유입니다. 혹 성인 돌리, 남부에서는 그렇게 부르기도 합니다. 작년에 "돌리 파튼의 미국"이라는 9부작 시리즈를 집필하며 제가 깨달은 것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출발점이었지만, 전 직관적으로 돌리가 제가 이 문제를 끝낼 수 있게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본적인 직관은 바로 이런 것이죠. 돌리의 콘서트에 갑니다. 힙합 야구모자를 쓴 남자가 여장을 한 남자의 옆에 서있는 모습, 공화주의자들 옆에 서있는 민주주의자들 손을 잡고있는 여자들 다양한 모든 사람들이 서로 부딪칩니다. 사람들이 서로 증오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이러한 사람들이 그곳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녀는 미국에서 그럭저럭 독특한 공간을 개척했습니다. 그래서 전 그녀가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 궁금했죠. 그래서 전 떨어진 두 개의 대륙에서 돌리를 12번 인터뷰했습니다. 그녀는 모든 인터뷰를 이런 식으로 시작했죠. 물어보세요. 무엇이든지 물어보셔도 상관없어요. 제가 들은 것을 말씀드릴게요. (웃음소리) 그녀는 부정할 필요없이 강력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부딪친 문제는 이 시리즈를 선택한 저의 오만이었습니다. 제 영혼은 여전히 문제를 겪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돌리는 남부에 관한 노래를 많이 했습니다. 그녀의 음악은 전반적으로, 테네시주에 관한 노래입니다. 테네시, 테네시 테네시 향수병... 테네시 향수병에 걸려 내 머릿속은 계속 우울해. 테네시 "테네시 주의 산의 고향" "테네시 주의 산에 대한 기억들" 저는 테네시에서 자랐고 전 그곳에 대해 어떤 향수병도 없습니다. 저는 뼈만 앙상한 아랍 소년이었고 당시에 자살폭탄테러를 발명한 곳에서 왔었습니다. 많은 시간을 방에서 보냈습니다. 제가 내슈빌을 떠났을 때, 전 떠났습니다. 돌리우드에 갔을 때가 기억나네요. 복제품 앞에 서서, 그녀의 테네시 마운틴 홈 복제품 앞에서요. 제 주위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이 울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세트일 뿐입니다. 왜 우는 거죠? 저는 그들이 왜 그토록 감성적인지 이해할 수 없었고, 특히 남부와 저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더 그랬죠. 그러자 제게 갑자기 공황발작이 찾아왔습니다. "나는 이 프로젝트에 적합하지 않나?" 하지만 그 때 운명이 바뀝니다. 우리는 브라이언 시버를 만납니다. 돌리의 조카이자 경호원이죠. 충동적으로, 그가 프로듀서 시마 올레이와 저를 태우고 돌리우드를 떠나 산맥을 돌아 뒷편으로 가서 20분 동안 산을 오르고 좁고 더러운 길을 내려와 "왕좌의 게임"으로 나가는 듯한 거대한 나무 문을 통과해 실제 테네시 마운틴 홈으로 왔습니다. 실제 공간이었죠. 발할라. 진짜 테네시 산 속의 집. 이 부분은 바그너 정도로 평가할 수 있겠군요. 여러분들도 이해하게 되실 겁니다. 테네시 주의 전통에서 이곳은 마치 성지같았어요. 테네시 마운틴 홈은. 잔디밭 위에 서 있던 게 기억이 나네요. 피전강 옆, 나비들이 하늘에서 원을 그리며 날고 있었고, 거기서 저는 경이로움을 느꼈죠. 돌리의 테네시주의 산 속의 집은 정확히 레바논 산맥에 있는 저의 아버지의 집과 같아 보였습니다. 그녀의 집은 마치 그가 남겨놓은 곳 같았습니다. 단순하게 겹쳐보인단 이유로 아버지와의 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전에는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아버지가 집을 떠났을 때 느꼈을 고통에 관한 대화요. 그리고 아버지가 어떻게 돌리의 음악을 들었는지도요. 그런 다음 전 돌리가 자신의 음악을 이주의 음악이라고 얘기하는 곳에서 대화를 나눴습니다. 심지어 그 클래식 음악조차도 "테네시 주 산 속의 집" 여러분이 이 노래를 들으신다면-- (돌리 파튼의 "테네시주 산 속의 집") "여름 정오 정문 현관에 앉아 "등받이가 바로이고 다리가 두 개인 의자에 앉아서, "벽에 기대있네." 이미 지나가버렸지만 그것을 잡기 위해 노력하는 순간에 관한 노랩니다. 한 번 생생하게 그려보세요. 만약에 당신이 합성 수지처럼 그 장소를 얼려서 과거와 현재 사이를 잡아 놓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이주의 경험입니다.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이 저를 수많은 대화로 이끕니다. 전 컨트리 음악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음악학자와 대화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나 제가 자라온 곳과 관련이 없다고 느낀 이러한 장르들이 실제로는 중동으로부터 직접 전해진 악기와 음악적인 스타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사실은 지금은 레바논인 지역에서부터 시작해 동쪽 테네시 산맥까지 이어진 교역로가 있었습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거기 서서 그녀의 집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제가 테네시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솔직히 사실입니다. 이번 한 번만이 아니었습니다. 제 말은 계속해서 그녀는 제가 세상을 분류해놓은 가장 간단한 분류들을 넘어서도록 했습니다. 그녀와 7년 동안 함께 일한 파트너인 포트너 와그너에 대해서 얘기했던 것이 기억이 나네요. 1967년, 그의 밴드에 들어갔을 때 그는 컨트리 뮤직의 거장이었습니다. 돌리는 단지 백업 가수였죠. 유명하지 않았습니다. 짧은 기간에, 그녀는 성장했고, 그는 질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그녀를 36억가량으로 고소했습니다. 그녀가 떠나려고 할 때 말입니다. 이제 포트너 와그너가 누구인지 더 잘 알 것 같군요.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이며 멍청한 사람이라서 그녀를 방해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항상 그녀에게 제안을 하죠, 자 여기 한 남자가 있습니다. 제 말은, 영상으로도 볼 수 있다고요. 그는 당신을 팔로 감싸고 있습니다. 당연히 권력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글쎄요, 그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것 같은데요. 제 말은, 생각해보세요 그는 이러한 쇼를 수년간 했고, 그의 쇼가 인기가 있을 때는 제가 필요없었죠. 또한 그는 전처럼 제가 전부가 되길 바라지도 않았어요. 전 위험한 엔터테이너였고, 그는 그걸 몰랐죠. 그는 제게 얼마나 많은 꿈이 있었는지 몰랐습니다. 사실상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네가 세상을 보는 어리석은 방식으로 내 이야길 보지마. 그건 그런 게 아니니까. 뭐, 권력이 있었죠.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이걸 단순화할 순 없어요." 알겠습니다. 넓게 보도록 하죠.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요? 전 여기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단서가 있다고 생각해요. 기자로서, 우리는 차이를 사랑합니다. 우리는 차이에 집착하죠. 하지만 점점 더, 이런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우리에겐 이런 차이 사이에 놓일 다리가 필요합니다.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제가 보기엔 답은 간단합니다. 이런 차이들에 대한 정보를 모아 가능한 할 수 있는 만큼 지니고 있는 것이죠. 산에 오르는 것과 같이 무언가 발생할 때까지 무언가 스스로 드러날 때까지말입니다. 이야기는 차이로 끝맺을 수 없습니다. 폭로로 끝나게 되죠. 산에서 짧은 여행에서 돌아온 제 친구 중 한 명이 이 생각에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책을 주었습니다. 심리치료에서는, 이걸 제 3의것이라 부르고, 근본적으로는 이것과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스스로를 자주적 구성단위라고 생각하죠. 저는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합니다. 상대방도 저에게 무언가를 합니다. 하지만 이 이론에 따르면 두 사람이 한 데 모여 서로에게만 정말로 집중하면 성숙한 인지의 행동에서 그들은 실제로 새로운 것을 만듭니다. 그들의 관계가 새로운 독립체인 것이죠. 돌리의 콘서트를 제 3의 문화공간이라 단순히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그녀가 다양한 청중들을 보는 방식과, 청중들이 그녀를 보는 방식은 정신적인 공간을 만들어냅니다. 전 이것이 제 소명이라 생각합니다. 기자로서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으로서 단지 미국인으로서 삶을 유지하기위해 고군분투하면서 제가 얘기하는 모든 이야기들은 제 3의 것을 찾는 이야기가 되었죠. 다르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들은 새로운 것으로 합쳐지며 해결이 됩니다. 감사합니다.